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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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김중수 감독과 함께. 2004년 사진이라 젊어 보인다..

한국의 전설적인 배드민턴 선수. 세계적인 선수로 1980년대 배드민턴 계를 평정했던 걸출한 선수다. 전영오픈 9번 우승, 세계선수권 2회 우승, 아시안 게임 2회 우승에 빛나는 대 선수.

1964년 1월 27일 생이다. 고향은 마산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드민턴에 입문해서 마산 성지여고와 경남대학교에서 배드민턴을 계속 이어나갔다. 여고 랭킹 1위로 이미 고교 시절부터 명성이 높았고, 1983년부터 대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복식 전문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이 당시 대회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던 배드민턴의 현실에서 가장 권위있던 것은 전영오픈이었는데, 이 전영오픈에서 여자 복식에서 후배인 황혜영과 함께 세 번(1986, 1987, 1990), 정소영과 함께 한 번(1989) 정상에 오른다. 주로 여자 복식의 황혜영과 호흡을 맞췄고, 이들의 호흡은 괜찮은 편이었다.

여자복식보다 더 뛰어났던 것은 바로 혼합복식. 혼합복식에서 전설적인 배드민턴 선수 박주봉과 호흡을 맞추며 그야말로 세계를 평정했다. 우승만 무려 23차례. 전영오픈에서 네 번 우승(1986, 1989, 1990, 1991)했고, 이덕춘과 호흡을 맞춰 한 번 더 우승했다.(1987) 그리고 각종 대회를 모조리 석권했고, 세계 선수권 대회 2연패(1989, 1991), 아시안 게임 2연패(1986, 1990)를 달성하는 등,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원없이 다 이룬 편이었다.

1991년에 역시 배드민턴 선수였던 김중수와 결혼하면서 사실상 선수로서 은퇴하게 되는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이 채택되면서 선수로서의 복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후배인 황혜영-정소영 조에게 기회를 주고 본인은 결국 은퇴를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조도 성적이 너무 좋아서 여자 복식에 끼기는 애매한 점은 있었다. 세계 최강이었던 혼합복식은 불행히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정식 종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커리어에 올림픽 금메달은 추가하지 못했다.

은퇴 후에는 남편의 고향인 화순에 내려가서 살다가 국가대표 트레이너, 코치 등을 역임하게 되었다. 사실 남편이 국가대표 감독이라 가장 마음에 맞는 부인을 데리고 온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국가대표 생활을 하지 않을 때는 화순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2012년 현재 화순군청 배드민턴 팀 감독. 그리고 그가 화순에서 지도자로 뛰면서 발굴한 선수가 바로 이용대다.

2003년 현역 시절의 업적을 근거로 세계 배드민턴 연맹은 정명희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켰는데, 이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