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공리의 원칙에 맞서 싸우려 든다면,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그 싸움도 바로 이 원칙 자체에 근거하고 있다. 그의 논증이 무언가를 증명한다면, 그것이 증명하는 바는 공리의 원칙이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원칙을 적용했다고 상상하는 사례들에서 이 원칙이 잘못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지구를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그러나 그는 먼저 자신이 딛고 설 또 하나의 지구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ㅡ『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1]
1 개요
Jeremy Bentham, 1748년 2월 15일 ~ 1832년 6월 6일
영국의 철학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슬로건에 의거해 공리주의 사상을 정초했다. 법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변호사이기도 했으나, 변호 활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 법에 대한 고찰에 주력하며 공리주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상 생활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 주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으며 감정이 결여되어있다고 비판을 받는다. 벤담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다.
친구 아들놈보다 항목이 몇십배는 짧다(...)
2 사후
공리주의의 주창자답게 사람의 시신도 그냥 땅에 묻어 썩힐 것이 아니라, 동상을 세우는 대신 시신을 보존해서 전시한다던지 해부실습에 쓴다던지 해서 공공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하게 하자는 오토아이콘(auto-icon)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주장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실천했다.
벤담은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오토아이콘으로 만들어달라고 유언했고, 이 유언이 실제로 집행되어 유골을 이용해 일종의 박제가 만들어져 1850년부터 본인이 설립 발기인 중 하나였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에 전시되었다. 흔히들 벤담이 이 대학의 설립자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동 설립자 중 하나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대학설립 프로젝트를 후원함과 동시에 지지한것이 상기 설립 발기인이라는 점과 맞물려 와전된 것이다. 다니는 학생들도 모르는 사실인데 오죽히 알겠다
원래 이 오토아이콘의 머리 부분은 실제 벤담의 머리를 엠버밍하여 부착하려고 했으나 제작에 실패, 아주 흉측한 모습이 되어버렸다...그래서 머리는 밀랍인형으로 만들었고, 1975년까지는 흉측한 실제 머리를 오토아이콘의 발 아래 놓아둔 채로 전시했으나 그 해 도난을 당했다가 다시 찾은 후로는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
벤담의 실제 머리 혐짤이니 주의!!!
- ↑ 강준호 옮김, 아카넷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