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로 출연할 당시 | 최근의 모습 |
역대 제임스 본드 | |||||||||||||
1대 숀 코너리 | 2대 조지 레이전비 | 3대 로저 무어 | 4대 티머시 돌턴 | 5대 피어스 브로스넌 | 6대 대니얼 크레이그 |
George Robert Lazenby
숀 코너리에 이은 007 시리즈의 2번째 제임스 본드로 알려진 배우이다. 역대 본드 중에서 유일하게 비(非)유럽권 출신의 배우이다. 1939년 9월 5일 생. 출신지는 호주.
레이전비는 1964년, 호주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뒤 제법 인기 많던 남성복 모델이었으나, 숀 코너리가 개런티 문제로 하차한 이후, 007 시리즈 6편 《여왕 폐하 대작전》에 캐스팅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1] 007 영화 시리즈에서 《여왕 폐하 대작전》은 사실 상징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데,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시 레이전비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연기가 어색했다'거나 혹은 아예 잊힌 본드로 취급 받고 있다.
제작진과의 불화가 있었던 그는 촬영 후 더 이상 제임스 본드 역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7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본드는 다시 숀 코너리가 맡게 되었다. 약 3,000:1의 경쟁률을 뚫고 본드 역을 맡았던 레이전비의 후임으로 다시 초대 본드인 코너리를 캐스팅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레이전비는 코너리가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 중후반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장식하는 스노우 액션은 007 시리즈의 수많은 스노우 액션, 아니, 더 나아가 수많은 액션신이 난무하는 007 시리즈의 모든 액션신을 통틀어 놓고 보아도 단연 압권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 장면이다. 게다가 본인이 촬영 초반부터 대역없이 직접 액션 신을 소화했다.[2] 사실 레이전비는 캐스팅 당시부터 액션 연기에 능하다는 것으로 많은 기대를 받는 배우였고, 실제로 단 한 편에 출연한 것에 그쳤지만,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고, 결과적으로는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며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것에 실패한 아쉬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그는 몇 편의 B급 영화를 전전하며, 배우로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 경력에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다면, 1983년, 《돌아온 0011 나폴레옹 솔로》에서 주인공을 돕는 캐릭터로 등장했는데, 캐릭터의 이름이 다름 아닌 'J.B.'였다는 것.[3] 또한 이소룡의 일대기나 일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에 자주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유독 홍콩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이소룡 다큐멘터리들 중 하나인 《이소룡적생여사(李小龍的生與死, Bruce Lee, The Man and the Legend)》(1973)[4]에는, 이소룡의 홍콩 장례식 때 이소룡의 영정(影幀) 앞에서 그가 예를 표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다큐는 골든 하베스트가 배급한 것인데, 이 다큐에 따르면, 레이전비가 이소룡과 공동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로 하고, 그가 홍콩에 와서 영화에 계약한 바로 그 다음 날, 이소룡이 죽었다고 한다. 그 영화는 《직도황룡(直搗黃龍, The Man from Hong Kong)》이다.[5] 이 영화는 이후 홍콩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합작으로 제작되었고, 《스카이 하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다.[6] 이때의 인연으로 이후 홍콩영화 등에 출연하게 된 듯.
사생활적 측면에서는 2008년, 테니스 선수 출신의 아내 팜 슈라이버와 이혼하고, 이혼 소송 진행 중일 때도 전처에게 연달아 폭행 피소를 당하는 등 평화롭지 못한 나날을 보냈다. 또한 2013년 이후로 연기활동도 전혀 하고 있지 않고 있다.- ↑ 1965년에도 《077 - 첩보작전》(…)이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적 있다.
- ↑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 촬영 순서는 실제 영화의 순서와 상관이 없다.
- ↑ 당연히 '제임스 본드(James Bond)'를 뜻한다.
- ↑ Fortune Star에서 나온 영어판과, 이전의 광동어판이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씩 다르긴 하다.
- ↑ 죽은 이소룡 대신 투입된 것이 왕우(王羽)였다.
- ↑ 홍금보가 무술감독을 맡으면서 동시에 출연도 했고, 원표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왕우가 급히
땜방투입된 것도 있고, 호주 제작진의 경험, 기술, 준비 부족 등이 겹쳐, 제작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문제가 좀 있었던 듯하다. 특히 왕우와 호주 제작진들, 백인 배우들과의 불화가 심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리뷰가 담긴 글 참고. 왕우를 한 번 손 봐주겠다면서 나서려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진짜로 그랬다면, 그 사람은 왕우에게 개발살났거나, 이후 생명이 위험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왕우는 싸움실력도 실력이지만, 삼합회 죽련방의 두목급 대접을 받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