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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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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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元彪 광동어 Jyun Biu 표준중국어 Yuen Biao
본명 하령진(夏令震)

1957년 7월 26일생. 홍콩의 액션 배우, 무술감독, 제작자.

1 약력

여섯 살 때 우점원(于占元) 경극학교에 입학했고, 재능을 인정받아 원표란 예명을 받고 칠소복(七小福)의 일원이 된다. 원표는 칠소복 가운데 막내였는데, 홍금보성룡이 같은 멤버였다.

열여섯 살 때 희극학교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진출해 엑스트라와 스턴트맨으로 활동한다. 워낙 선량해 보이는 마스크 때문에 배역을 따내기 힘들었고, 얼굴이 안 보이는(...) 스턴트맨을 많이 했다고.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이소룡 대역[1]을 맡기도 했다.

홍금보가 잡가소자(雜家小子 1979)에서 원표를 주연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비로소 무명생활을 벗어난다. 이후 홍금보가 제작한 인자무적(林世榮 1980), 패가자(敗家仔 1981)에 출연하였으며, 성룡이 제작, 주연한 사제출마(師弟出馬 1980)에서는 의자를 이용한 액션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1983년 골든 하베스트 작품의 주연작 파우(波牛) [2] 가 일본에서 히트를 치며, 홍금보, 성룡 못지않은 인기스타 반열에 오른다. 또한 같은 해 무술감독을 맡은 오복성(奇謀妙計五福星)으로 홍콩 금상장 무술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프로젝트A(A計劃 1983), 쾌찬차(快餐車 1984), 비룡맹장(飛龍猛將 1987) 등에 출연하며 명실상부한 골든 하베스트, 가화삼보(嘉禾三寶 : 일명 골든 트리오)의 전성시대를 연다.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까칠하고 괴랄한 연기도 잘했는데, 일명 비대칭 헤어컷으로 우스꽝스럽게 나온 동방독응(東方禿鷹 1987)[3]에서 그렇고, 비룡맹장에서는 그 연기의 정점을 찍는데 무려 중2병 증세를 보이는 캐릭터로 나온다.

그밖에 집법선봉(執法先鋒 1986/한국 개봉제목은 사대선봉), 급동기협(急凍奇俠 1989/한국 개봉제목은 청옥불), 공작왕(孔雀王子 1989) 등 단독주연 작품도 꾸준히 찍었다. 다만 가화삼보와 결별하고 찍은 90년대 단독 주연작들은 하나같이 결과가 시망이었다. 특히 본격적인 느와르물이었던 망명원앙(星湖私說 1988/한국제목은 마담킬러(개봉제목)/극도추종(비디오 제목)에서는 아내를 잃은 형사로 등장하는데, 원표 팬들도 인정할 정도로 이 작품은 원표가 주연이었기 때문에 망했다(...)

80년대 후반 쿵푸영화는 홍콩 느와르에 인기를 빼앗겼으나, 90년대 초반 황비홍(黃飛鴻 1991)과 동방불패(東方不敗 1991)가 잇달아 히트를 치면서 무협물 붐이 일어난다. 이 시기 원표는 황비홍, 비각칠(黃飛鴻之鬼腳七 1992), 육지금마(六指琴魔 1993), 용재소림(龍在少林 1996) 등에 출연한다.

90년대 후반 홍콩 영화계는 홍콩 반환과 불경기 두 가지 악재를 만났고, 결국 원표는 중화영웅(中華英雄 1999)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다른 홍콩 영화계 인사들처럼 영화에서 손을 떼고 해외(캐나다)로 이주한다.

은퇴 후 홍콩과 미국 영화계의 출연요청을 사양하고 골프를 치며 소일하다가, 결국 5년 만에 친구 장국강(張國强) [4] 의 요청을 받아들여 복귀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5년 동안 홍콩 일본 합작영화 무문제2(無問題2 2002)에 출연하는 등 완벽한 은퇴였다고 보긴 힘들다. 반쯤 활동 중지 상태였다는 편이 옳을 듯. 이후 성룡과 함께 영화 BB 프로젝트(寶貝計劃 2006)에 출연했고, 드라마 불산찬사부(佛山贊師父 2005), 영춘(詠春 2007), 통천간탐(通天幹探 2007)에 출연했다.

탁월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보이는 고난도 액션과 스턴트 연기는 가화삼보 가운데 으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워낙 홍금보, 성룡 두 형이 넘사벽 스타라 막내 원표는 아쉽게 묻힌 감이 있다.[5] 작은 체구를 이용한 매우 빠른 속도의 발차기 실력은 가화삼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

또한 제작자로 나서서 흥행에 성공한 홍금보, 성룡에 비해, 원표가 직접 제작한 영화는 하나뿐이라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원표의 성향도 제작 같은 복잡한 업무보다는, 몸으로 직접 뛰어드는 스턴트나 액션 쪽에 더 관심을 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출연한 영화에서도 본인 역할 하랴 다른 사람들 역할까지 가발 쓰고 대역해주랴(...) 바쁜 원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화삼보와 결별한 후에는 항상 단조로운 연기력이 문제로 지적받아왔다. 일찌감치 제작자로서 두각을 드러낸 홍금보와 기획력과 연기력까지 갖춘 성룡에 비해, 원표는 애초부터 배우가 아니라 외모 좀 되는 스턴트맨으로 출발한 경우였다. 코믹 액션을 찍을 때는 안습한 연기력을 커버할만했는데, 점차 홍콩 영화계의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부족한 연기력으로 인해 영화를 단독으로 끌고 갈 만한 파워가 떨어져 버렸다. 깨지고 넘어지고 구르는 리얼 스턴트를 표방했던 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에는 와이어 액션으로 액션 촬영법도 변화하면서, 점차 무술 실력보다는 연기력이 되는 스타들로 물갈이되면서, 90년대 이후에는 다른 가화삼보 멤버들만큼 A급 스타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젊었을 때만 해도 덧니와 사마귀 점이 합쳐져 귀엽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사마귀 점도 빼고 나잇살도 붙고 그러다 보니 어째 인상이 험악해졌다.[6] 유독 사진마다 얼굴 크기가 들쑥날쑥한데, 젊은 시절 때도 그랬던 걸 보면 유독 얼굴 살이 잘 찌는 체질인 듯. 피부도 모공이 큰 편이고 여드름 흉터가 많은데, 젊을 때는 그런 것도 귀여운 이미지로 커버할 수 있었으나, 서른이 넘어가면서 얼굴이 확 삭아버렸다. 오랜 세월 이미지 변화가 거의 없었던 성룡과 비교해봐도 원표의 이미지 변화는 거의 역변 수준.

최근에는 TV 드라마 출연과 무술감독으로 간간이 일하고 있다. 매체에는 가끔 얼굴을 내미는 수준. 2012년에는 토크쇼에도 출연했는데 55세의 나이에도 백텀블링을 휙휙 도는 것으로 보아 운동 신경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러나 간만에 복귀작이었던 2010년 쿵푸마스터는 팬들도 OME를 외칠 수준으로 패망....안습 2012년에는 드라마 <십이금전표>의 주연으로 발탁되어 촬영했으며, 2013년 7월에 대륙에서 방영되었다.

2 기타

  • 팬들 사이에선 몇몇 성룡 영화에서 원표가 스턴트를 해줬다는 설이 있다. 쾌찬차에서 홍금보가 펜싱 대결을 벌이는 장면의 상대역 스턴트를 원표가 했다. 잘 보면 펜싱 머리 보호구 사이로 원표 얼굴이 대놓고 보인다(...) 홍금보, 성룡 주연의 <용적심>에서 무술감독으로 참여했는데, 거기서 성룡의 대역을 담당했다.
  • '패가자'에서 영춘권의 종사 양찬(梁贊)을 연기했는데, 이후 '불산찬사부'와 '영춘'에서 또 양찬 역을 맡았다.
  • '공작왕'은 당시 히트한 일본만화를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홍콩과 일본 합작영화다. 홍콩판은 괴작 레벨이지만, 일본판은 편집을 다시 하고 더빙까지 해서 완전히 새 작품이 되어버렸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공작왕 DVD는 홍콩판이다.
  • 뺨의 사마귀는 사실 피부병이라고... 영화를 유심히 보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없어지기도 한다.
  • 가화삼보 중에서는 결혼을 빨리 한 편이다. 27살에 코디네이터 겸 배우 출신인 팽수하(didi pang)와 결혼했고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 아내가 코디인데 옷차림 보면 완전 동네 아저씨다 [7]
  • 한국에서는 성룡과 홍금보에 비해 인지도가 밀리지만, 80년대 일본에서는 원표의 인기가 높았다. 샤프하면서도 귀여운 얼굴과 쿵푸 청년의 이미지가 물 건너에서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던 듯. 원표 본인도 일본에 방문해서 공항을 가득 메운 팬들을 보고 꽤 놀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원표의 리즈시절 사진은 일웹에 자료가 많다. 일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급조한 음반도 몇 장 있다.흑역사 일본 쪽에서 밀었던 이미지는 얼굴 귀엽고 운동 잘하는 대학생 이미지의 청춘스타였는데, 홍콩 쪽에서는 병맛의 임팩트가 느껴지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서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 원표의 일본 내 인지도를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바로 일본의 액션배우인 오시마 유카리의 일화다. 원래 체육교사가 장래 지망이었던 그녀가 사제출마에서의 원표를 보고 액션배우로 전향하고, 원표가 나오는 신작 액션영화(1985년작 부귀열차)에 외국인 배역[8]의 오디션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원서접수를 해 버렸을 정도. 덤으로 이 때 오시마 유카리는 중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였는데 그냥 무작정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배우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도 원표 이야기를 틈틈히 할 정도다.
  • 활발할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고 한다. 칠소복 멤버 중에서도 가장 내성적이라고. 그래서 가화삼보끼리 나온 인터뷰에서는 혼자 거의 말을 안 한다. 홍금보, 성룡이 영화 촬영이 끝나면 사람들을 만나거나 모임에서 가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달리 원표는 곧장 귀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성룡이 밝히길 공처가 성향이 있다고 한다(...). 홍금보와 성룡이 뒷세계에 대한 루머나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 자주 올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지도가 없어서인지 사생활 면에서는 구설수에 오른 일이 한 번도 없다.
  • 학창 시절에 공부는 너무 싫어했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경극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성격도 유쾌하고 복잡한 걸 싫어하는 단순한 성격이라고 한다. 제작자보다는 배우로 오래 활동한 것은 이런 성향과 연관이 없지 않을 듯.
  • 미국에서 제작한 무술영화 관련 다큐멘터리[9]에서 성룡의 언급에 의하면, "서로가 실제로 싸운다는 가정을 했을 때, 체급 차이 때문에 나는 절대로 홍금보를 못 이긴다. 같은 이유로 원표 역시 나에게 진다. 그렇기 때문에 원표는 체격을 살린 날거나 차는 액션을 집중적으로 수련했고, 나 역시 주변의 기물을 이용하는 액션을 배웠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반대로 이런점이 가화삼보 3인의 개성을 확실히 부여해서 서로 공연할 때 절묘한 조합을 이루게 되었다고.
  • 팬들이 팬레터를 보내면 일일히 답장을 해 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가할 때는 본인이 직접 써 주고, 바쁠 때는 매니저가 대신 맡는다고. 팬들이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탓에 기왕 팬레터를 보내려면 EMS보다는 이메일을 주로 추천한다고. 혹여나 원표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된다면 메일을 한번 보내 보자. 십중팔구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0]

3 출연작

1966대취협
1973용쟁호투
1974중태권단생사전
1976소림문, 춘애명월도
1977이소룡 일대기 생과 사, 응조철포삼, 암스테르담의 음모
1978금강혈인, 사망유희, 용봉타적, 비룡과강
1979잡가소수, 인자무적
1980사망탑, 사제출마
1981용자무구, 패가자
1982용소야
1983오복성, 프로젝트A, 촉산, 파우
1984쾌찬차
1985복성고조, 복성고조2, 시래운전
1986부귀열차, 집법선봉, 동방독응, 강시선생2, 신용쌍향포속집
1987영환도사, 프로젝트A 2
1988화중선, 공작왕, 비룡맹장
1989망명원앙, 미라클, 급동기협
1990상하이 상하이, 공작왕2,
1991서장소자, 황비홍
1992화두복성
1993벽혈신검, 비각칠
1994비각칠2, 홍콩투캅스, 육지금마, 스트리트파이팅
1996비각칠3, 용재소림
1997마영정, 탈출- 당안 X 살인범
1998스턴트
1999중화영웅
2000흑우
2001철권
2002무문제2
2004소년진진, 대도애미려
2006BB프로젝트
2007쌍룡기, 격정세월
2010월광보합, 엽문3, 신소림사전기-쿵푸마스터
2013십이금전표
  1. 액션 스턴트를 했는데 자세한 건 사망유희에서 Bob Wall과 벌이는 탈의실 액션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발차기라든지 덤블링이 천상 원표 티가 팍팍 나기 때문.
  2. 한국에서는 4년 늦은 1987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30-4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하며, 은근히 주성치의 소림축구와 비슷한 플롯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포츠영화가 그렇듯이 한국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하지 못했고, 성룡이나 홍금보가 출연하지 않은 원표 단독 작품은 망한다는 공식만을 확인해주었다.
  3. 액션물이다. 미국이 불법체류자인 홍콩인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특수훈련을 시켜 베트남에 잠입시킨다는 줄거리. 액션은 상당하지만 홍콩 특유의 썰렁한 코미디가 흠일 수도...(대원들 중 먼저 죽는 대원은 말더듬이라서, 숫자를 얼마까지 센 후에 낙하산을 펼치라고 했더니 말을 더듬은 탓에 펼치지 못해서 죽는다는 황당한 설정) 원표가 맡던 배역은 성룡을 염두에 두었었는데, 성룡은 당시에 프로젝트A 속집을 작업하고 있어서 원표에게 돌아갔다.
  4. 파우에 같이 출연했다.
  5.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SG 워너비의 김진호와 윤하에게 세대차 이야기를 하며 윤종신이 가화삼보를 아냐고 물었는데, 이들은 원표가 누군지 몰랐다. 안습. 결국 김구라의 분노의 일갈은 "원표 모르면 끝이야 끝!"(...)
  6. 노사연 씨처럼 사마귀 점이 점점 커져서 할 수 없이 뺐다고 한다.
  7. 아내도 경극학원에서 만났다는 데, 당시 사부의 교습방법이 지금 기준으로는 아동학대 수준이였다고 한다. 연습할 때 북경어 대사를 제대로 못하면 (광동어를 쓰는 홍콩인이라 서투른 게 당연한데도) 젓가락으로 목을 찔러서 피가 날 정도였고, 종아리를 맞을 때는 막내라서 형, 누나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려고 자기 바지를 안에 입혔다고 한다.
  8. 오시마 유카리 외에도 황정리, 신시아 로스록, 리처드 노튼, 쿠라타 야스아키등 당시 홍콩에서 활약하던 외국인 액션배우들이 총출동 했다. 게다가 신예였던 오시마와는 달리 다들 본국에선 한가닥 하는 주연급 배우들
  9. 정확히는 "미국에 비디오가 발매된 홍콩 액션영화"에 대한 내용이었다.1990년대 초반에 국내에 비디오 출시된 적이 있는데 제목을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10. 페이스북에 오피셜 페이지가 있다. 가끔씩 근황 사진을 올리며 영어로 멘트를 작성하는데, 본인이 영어에 서툴다고 양해를 바란다고 써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