鍾離斐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수. 삼국지 손호전에서 주석으로 인용된 육기의 변망론과 진서 육기전에 따르면 정봉과 함께 과감한 군사행동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평가되었다. 해당 어구는 "丁奉、鍾離斐以武毅稱"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그러나 그 밖에 아무런 내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육기가 정봉과 같이 언급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고 기록했기에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과 함께 무에 관련된 높은 관직에 종사했을 것으로 여겨져 뭔가 급이 높다고 생각되나 진수의 정사 삼국지와 배송지의 주석을 합쳐도 저 기록이 전부다. 그렇다고 삼국지연의나 삼국지평화 등에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삼국지집해에서도 하작은 종리비는 종리목의 오자라고 제시했으며, 변망론에서는 종리비의 사실 여부를 두고 싸운다. 제갈탄이 위나라를 상대로 봉기하면서 오군이 구원하면서 주둔하는 여장이라는 곳이 언급되는데, 사서를 지은 이가 여비가 열전이 없었기에 여장을 여비로 고치는 과정에서 여비와 관련되어 잘못 서술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지도 불분명이다.
밑에 있는 것은 삼국지집해에 변망론에 있는 것의 간체로 된 원문. 참고로 간체로 종리비는 "钟离斐"다.
「钟离斐,《文选》作“离斐”。 李善注:魏将诸葛诞据寿春,魏人围之,使奉与黎斐解围。奉为先登,黎斐力战有功,拜左将军。“黎”与“离”音相近,是一人,但字不同。 弼按:本志《丁奉传》“奉为先登,屯于黎浆,力战有功,拜左将军”云云。是黎浆为地名。力战有功、拜左将军者,丁奉也。李注以黎浆为黎斐,误。 何焯曰:李注所见之本,必可征信。但此“斐”字恐“牧”字之讹。钟离牧为武陵太守,以少众讨五溪事,在蜀并与魏之后,作“牧”为得也。〖陈浩说本此。〗 潘眉曰:此即《丁奉传》之黎斐也。《孙綝传》亦云丁奉、黎斐。《史记》秦后有终黎氏,《世本》作“终离氏”,“黎”、“离”古字通。 弼按:何、潘二说均可通。《晋书》亦作“钟离斐”。此文非衍“钟”字,即误斐字也。」 |
해석은 다음과 같다.
「종리비,《문선》은 “리비”라 썼다。 이선 주:위나라 장수 제갈탄이 수춘을 차지하여,위나라 사람이 그것을 포위하자,봉과 려비에게 포위를 풀도록 하였다。봉이 먼저 오르고,려비가 힘써 싸워 공이 있어서,좌장군을 받았다。“려”와“리”는 음이 서로 가까우니,이것은 한 사람이고,글자만 같지 않을 뿐이다。 필안:본지《정봉전》“봉은 먼저 올라, 여장에 진을치고,힘써 싸워 공이 있어,좌장군을 받았다”하략。이 여장은 지명이다。힘써 싸워 공이 있어、좌장군을 받은 자는,정봉이다。이주가 여장을 여비라고 한 것은,틀리다。 하작이 말하길:이주가 보이는 본은,반드시 믿을 만하다。다만 이 “비”자는 아마도 “목”자의 오자일 것이다。종리목은 무릉태수로, 적은 무리로 오계를 토벌하고,촉과 위에 있은 후에,“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진호설본은 이것이다。〗 반미가 말하기를:이는 《정봉전》의 여비이다。《손침전》역시 정봉、여비라 한다。《사기》진 이후 종려씨가 있었고,《세본》은 “종리씨”라 하며,“려”、“리”는 글자가 통하였다。 필안:하、반의 두 설이 고르게 통할 수 있다。《진서》또한 “종리비”라 한다。이 글은 “종”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니라,비자를 틀린 것이다。」 |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9 일러스트 |
그런데 이 항목이 작성된 이유가 있었으니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한다. 실제로 있었는지도 불분명하고 오기라고도 생각되는 인물이나 263년 시나리오가 있을 정도로 삼국시대 후반기에 신경을 많이 써준 삼국지 9 였기에 등장할 수 있었다.
능력치도 통솔 75, 무력 77, 지력 56, 정치 50로 후반부 인물임을 감안하면 아주 좋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의문과 9 이후 후반부 인물들을 홀대하기 시작하면서 삼국지 9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종리목을 잘못 쓴 것이라는 주장대로라면 10편부터는 이름을 고쳐서 내보낸 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