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

1 丁奉

의 군권 1인자
주유노숙여몽육손주연제갈각손준손침주적정봉육항
오서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程黃韓蔣周陳董甘凌徐潘丁傳)」
정보황개한당장흠주태진무동습감녕능통서성반장정봉

丁奉
(? ~ 271)

후한 말과 삼국시대 오나라용장. 는 승연(承淵). 여강군 안풍현 출신.

삼국지연의에서는 삼국지 중반부터 등장하지만 사실 정사에서는 제갈량 사후부터 제대로 활동하는 삼국지 후반부 인물이다. 연의에서 너무 일찍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문흠, 문앙, 제갈탄보다도 익숙하다. 뒤에 보듯이 이는 시대 고증 오류에 따른 삼국지연의의 대표적 수혜자. 정사의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에서 마지막에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가 후시대 인물이라는데 증거를 보탠다.

1.1 정사

어려서 용맹하여 소장(小將)이 돼,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1]. 자주 정벌에 따라가, 전투하면 항상 군에서 앞장섰다. 매번 장수를 참살하고 깃발(旗)을 뽑아 내며,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점점 승진해 편장군(偏將軍)이 됐다. 손량(孫亮)이 즉위하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됐고,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다.

젊었을 때부터 용맹을 떨쳐 싸움터에서 매번 적장을 베고 깃발을 탈취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고 하니 타고난 맹장이었을 듯. 어느 작품누군가가 생각난다

손권을 따라나서 어려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서 명성을 쌓아나갔고 252년 12월에 손권이 사망한 후 제갈탄, 호준 등이 지휘한 의 공격에서도 제갈각의 휘하에서 위군 진영을 공격해서 적장 한종[2]을 베는 전과를 세웠다. 이 때 그는 병사들에게 갑옷을 풀고 단병기만 지니도록 했으며, 위군은 정봉군이 오는 걸 보고서도 그 수가 적고 가벼운 옷차림인 것을 보고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아[3] 크게 패했다. 그 공으로 멸구장군, 나아가 도향후로 승격한다.

255년에 문흠이 위군에 패하고 오나라로 도망왔을때에도 추격해온 위군을 격파하여서 문흠을 맞아들였다. 이때 그야말로 초인적인 용력을 보였는데 이는 오서 정봉전에 기록되어 있다. 말 그대로 무쌍. 단기로 적병 수백을 베고 군기를 빼앗아 왔다고 하는데, 군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대의 상징으로서 지휘관의 생명과 더불어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군기를 탈취당했다는 건 부대가 아예 박살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조금 앞서 문앙이 보인 용맹에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위력이다.

奉跨馬持矛,突入其陣中,斬首數百,獲其軍器.
정봉이 말을 타고 모를 들고, 적의 진중으로 돌입하여, 수백 명의 머리를 베고, 군기를 노획했다.

257년 제갈탄의 반란때에도 그를 돕기 위해서 참전하였다. 이후 손휴가 제위에 오른 후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세울 때 장포가 그를 추천했고 이에 가담하여서 258년에 손침을 죽이고 이 공로로 대장군으로 승진한다.

263년에 위나라의 등애을 공격할 때 동생과 같이 구원을 가지만 유선이 이미 항복하였기에 회군한다.[4] 손휴가 사망한 후에는 손호를 차기 황제로 추대하고 우대사마좌군사로 승진한다.

268년에 11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과 함께 합비를 공격하지만 여음왕 사마준에게 패배했으며, 269년에 곡양성을 공격했지만 여기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우장군사마를 지냈고 270년에도 군을 보내 진나라의 와구(渦口)를 공격했지만 공이 없음을 추궁받아 271년 12월, 분노한 손호에 의해서 정봉의 도군(導軍)이 처형되었다.

271년에는 만욱이 정봉과 유평에게 손호를 단념하도록 발언했는데, 이 발언이 손호의 귀에 들어가서 272년 신년연회에서 만욱과 유평에게 독주를 보내는 등 죽게 만들었지만 이 시점에서 정봉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 아들 정온이 대신 처형당했다고 한다. 정봉은 승진하면서 점점 교만한 태도를 보였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인 272년에는 손호에게 정봉을 참언한 자가 있어서 생전의 군사행동에서의 실패를 이유로 정봉의 유족은 임천으로 강제 이주되었다.[5]

1.2 연의

연의에서는 미친 존재감으로 장수한 인물로 나와 황충, 요화 등과 함께 (연의를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면) 노장의 이미지가 남은 케이스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서성과 세트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에서 정봉이 장군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기록은 손권 사후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미스매치. 손권 초창기 전투에서 대부분 등장한다. 콤비로서도 덕을 보아, 천막과 지푸라기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서 위성계로 조비에게 엿을 먹인 서성과 콤비가 되어 맹활약을 한다든지 하는 활약이 추가되는 등 오나라 장군들 중 거의 유일한 삼국지연의의 수혜자이다.

다만 정사에서 보여준 그의 용맹이 그다지 부각되지는 못한다. 정비석 삼국지 등에 의하면 서성과 힘을 합치고도 손부인에게 쳐발려서 손권이 주태를 출동시키게 만들었다. 오나라로 가길 거부하는 손부인을 정봉이 서성과 같이 끌고가려다가 손부인에게 어디서 감히 헛소리냐고 하자 데꿀멍(...) 안습.[6] 주태가 와서 손부인도 유비와 함께 베어오라고 했으나 이미 그때는 유비가 다 도망을 가고 제갈량의 함대가 출현한 뒤였다.

특히 224년 조비의 오나라 침공때에는 서성과 같이 참전하여 장료를 사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사에서 장료는 222년에 이미 병사하였다.

1.3 미디어 믹스

2 丁封

(? ~ 271년 이전)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으로 위에 설명된 정봉의 동생.

형과 이름이 같은데다가 훨씬 능력이 출중한 형에 이름이 가려진 케이스로 열전 자체도 형의 열전이 수록된 오서 정봉전이나 오서 삼사주전에만 조금 나온다.

263년 10월에 의 공격으로 이 멸망의 위기에 몰리면서 촉에서 구원 요청을 하자 22일에 촉을 지원하기 위해 손휴의 명령에 따라 손이와 함께 위를 견제하기 위해 손이와 함께 한수 유역으로 주둔하지만 촉이 항복했기 때문에 성과는 없었다. 관직은 후장군까지 올라갔다고 하며, 생몰년도는 불명이지만 형 정봉보다 일찍 사망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형 정봉이 촉을 구원하러 갈 원수에 임명되면서 형 정봉에게서 손이와 함께 2만의 군사를 받아 면중으로 나가게 해 촉군을 구원하러 갔다.

2.1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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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선 그냥 특별할 거 하나 없는 능력치로 나온다. 안짤리면 다행일정도.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7/72/51/38. 형처럼 노병계나 궁기병계 병법이 없다. 수군계 병법도 몽충 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7/68/52/41/59에 특기는 보수, 일제, 역공 3개. 일제특기가 있긴 하지만 통솔 67에 다른거 볼거 없는 장수를 전장에 데려가기엔 메리트가 부족하다.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전공성강화로 괜찮은 전법이긴 한데 지력이 좀 낮은지라 손침이 더욱 각광받고있다.(...)

3 丁峰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가공인물. 황건적으로 이주범의 부하.

이주범과 함께 낙양선을 약탈할 때 유비가 차를 가지고 간 목격했으며, 마원의감홍유비를 붙잡아 끌고 갈 때 이주범과 함께 마원의가 기다린다고 하는 공자묘에 갔다고 했지만 늦게 가는 바람에 마원의와 만나지 못했다.

이주범을 따라가다가 이주범이 절 앞쪽 솔밭의 사잇길에서 마원의와 만나게 되었는데, 이 때 이주범이 부하들에게 쉬라고 해서 늪가에서 쉬었다. 이주범이 낙양선을 약탈하다가 놓친 유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원의가 유비를 가리켜 이 녀석이냐고 묻자 이주범의 부름을 받아 일어나서 뛰어왔다가 유비를 보고 그 녀석이 맞다고 해서 장비가 구해주기 전까지 유비가 황건적들에게 차와 보검을 일시적으로 빼앗기게 되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이주범의 지시에 따라 유비를 지목해 정체를 밝히면서 이 자가 어떻게 여기 있냐고 물었다.
  1. 감녕의 군사들은 감녕이 사망한 후 반장에게 귀속된다.
  2. 적장이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습한 이유는 이 한종이라는 사람이 다름아닌 한당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손권은 그걸 그래도 한당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냐오냐 해줬다. 하지만 한종은 배은망덕하게도 아버지의 영구를 들고 위나라로 항복하고 오나라로 쳐들어와서 오나라 백성들을 마구 도살했다.
  3. 일반적인 기습과는 좀 다른 상황으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적군이 보는 앞에서 그냥 돌격하여 무쌍을 찍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공격 과정에 대한 기술은 정사와 연의가 일치한다.
  4. 실제로는 위의 군사력을 분산 시키기 위해 수춘으로 출진했고 촉을 구원하기 위해 간 사람은 동생 정봉.
  5. 건강실록에 따르면, 정봉이 손호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집해를 비롯한 다른 여러 기록에는 정봉의 아들이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아 건강실록의 기록이 틀린 것일 가능성도 있다. 사실 건강실록은 근거없는 기록이 상당히 많다.
  6. 그런데 이건 딱히 뭐라하기도 뭐한게 정봉과 서성은 후에 나오는 주태처럼 손부인을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주군의 여동생에게 손을 댄다는건 부하로써 목숨까지 좌우되는 일이기에 (당장 손권이 아니라 오국태한테 목이 날아갈 것이다.) 굴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