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기

1 개요

陸機
(260 ~ 303)

삼국시대 오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사형(士衡). 육항의 4남으로 육손의 손자가 된다. 형으로는 육안, 육경, 육현, 동생으로는 육운, 육탐이 있다. 육기에게 하늘이 내려준 재능은 비단처럼 다듬어져 (天才綺練), 문장의 아름다움의 점에서는 (文藻之美) 당대 제일이었다.

또한 박학하면서도 예법에 어긋나면 행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2 생애

274년 아버지 육항이 죽자 위에서 열거한 형제들 가운데 육탐을 제외한 나머지와 함께 아버지의 군사를 나눠가졌으며, 280년에 육안과 육경이 싸우다가 죽은 뒤 육기와 육운은 서진에 항복한다. 장화가 이를 보고

오나라를 격파하고 얻은 최고의 수확은 이 두 사람의 준걸을 얻은 것이다.

라며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이 둘을 추천한다. 이에 따라 태부로 있던 양준은 육기를 제주로 임명했고, 이어서 태자 세마, 상서 저작랑까지 오른다.

291년에 가밀과 곽창의 권세가 대단할 때 가밀의 친구인 24우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300년에 장화가 피살되자 뇌문을 지어 영덕부로 이를 애도한다. 전중랑이 되었다가 사마륜의 참군을 지냈으며, 여름 4월 4일에는 중서랑이 되었다.

황족들이 권력다툼을 할 때 사마륜을 위해 선양하는 조서를 썼다고 의심해 죽이려고 하자 육기는 사마영의 변호로 살아남았다가 그의 추천으로 육기는 평원국의 내사에 임명되었으며, 고영과 대연 등이 중원 지역은 많은 어려움이 있으므로 오 지역으로 돌아오라고 권했지만 사마영이 자기를 구해준 은혜가 있었기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마영이 낙양을 공격할 때 후장군으로 참여해 왕수와 견수의 20만 군사를 이끌지만 육기 자체가 오나라 출신이라 유력한 지지가 없던 인물이었기에 진심으로 복종하고 있는 군사는 없었다. 이로 인해 매번 싸움에 나갈 때마다 매번 패해 죽거나 도망친 군사가 반이 넘었다고 한다.

그 때 육운에게 원한을 품은 맹구의 동생 맹초[1]가 육기의 지휘하에 있으면서도 육기의 군령을 따르지 않았는데, 육기가 그를 법에 따라 처벌할려고 하자 맹초는 육기가 장차 반란을 꿈꾸고 있다고 비난하고 곧 견수 등도 사마영을 찾아가 육기를 비난하면서 육기가 적과 아군 사이에 양다리를 걸고 있다고 했다. 거기다가 맹구[2]까지 영내에서 육기를 비난하고 있었으므로 사마영은 사람을 보내 육기를 체포하게 하고 덩달아 육기의 동생 육운, 그리고 또다른 동생 육탐도 잡아들여 모두 사형에 처했다.

육기 형제들은 이미 강남의 수재들로 역시 제하에서도 이름이 유명했는데, 죄도 없이 몰살 당하게 되자 천하의 사람들이 슬퍼했다. 다만 사람들을 이를 두고 예전에 육항이 보천을 죽일때 어린 아이까지 죽였는데, 이 때 "육항의 후세들은 필히 그 재앙을 만날 것이다"라고 한 것이 결국에 육기가 죽게 되고 육씨의 세가족이 후세가 없어지며 사실이 되었다고 말한다.

3 평가

육기의 문장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높게 평가되었으며 이에 대해 손혜(孫惠)가 주탄(朱誕)에게 준 편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마원이 공직에 나올때는, 좋은 주군을 골라서 했다는 일화는 일반 사람들도 모두 들어서 알고있는데, 지금 육시의 삼형제가 모두 폭악한 조정에 들어가 같이 어울리다가 떼죽음을 당했으니 슬픈 일이다.

이 이야기는 진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문장전의 기록에는 육기가 문장을 잘 지어 사공 장화가 그의 문장을 보고 편마다 훌륭하다고 칭찬하면서도 그의 문장이 고운 것을 비평해 이르길 남들이 문장을 지을 때는 재능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만 그대가 문장을 지을 때는 재능이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한다고 했다.

세설신어에는 갈홍이 육기의 문장을 곤륜상에 있다고 전해지는 선경인 현포에 쌓여있는 옥처럼 밤에도 빛나지 않음이 없다고 평가했으며, 세간에서 등애와 함께 평가할 때 육운은 숨어있는 고니라고 평가받았다.

4 일화

육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자신에게 잘 대해준 장화한테 생선젓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장화가 손님이 엄청 많이 왔을 대 그 뚜껑을 열고는 "이게 바로 용의 고기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주위사람들이 당연히 믿지 않았는데 여기서 장화는 여기다가 독한 술로 이것을 씻으면 뭔가 다른 점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독한 술로 이것을 씻으니 이게 웬일? 다섯색깔의 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 생각한 육기가 돌아가 생선젓의 주인에게 물어보니 과연 말하길

정원의 띠풀 쌓인 곳 밑에서 하얀물고기 한 마리를 얻었는데 형상이 남달라 이것으로 젓갈을 만들어보니 과연 맛이 좋아 이로써 헌상하게 된것입니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왕필과 만났던 일화가 있는데, 육기가 낙양에 들어갈 때 하남의 언사 지방을 지나다가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그 곳의 민가에 묵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심원한 기품을 가진 젊은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말이 깊고 미묘해 운치가 있었다고 한다.

육기는 마음 속으로 그 재능에 탄복해 고금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명칭과 실상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증명했지만 그 그 젊은이는 그다지 즐거워하거나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하며, 새벽이 되자 서로 작별을 인사를 하고 떠났다. 육기가 여관에서 말을 풀어놓고 있을 때 여관 할멈이 "이 곳에서 동쪽으로 수십 리에는 마을이 없고 단지 산 남쪽에 왕씨 집안의 묘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육기가 만난 그 젊은이는 왕필이었으며, 이로 인해 현묘한 이치에 깊이 통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면 왕필의 생몰년도를 보고 오자 249년에 죽었다. 한 마디로 귀신이랑 떠들고 놀았단 소리.

또한 주처에게 개과천선의 유래를 말해준 것도 육기 혹은 육운이다.

  1. 맹초는 육기의 군령에 따르지 않고 함부로 경무장을 하고 나가 건춘문 앞에서 사마예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2. 육운이 자신의 행적을 비판하면서 원한을 품었는데, 동생인 맹초가 군령을 어기고 멋대로 나갔다 전사한 것을 육기가 죽였다고 여겨 더더욱 원한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