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思
(250? ~ 305)
제국 임치 사람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고 성장해서 명문을 널리 읽고 백가를 두루 섭렵했으며, 장화의 부름을 받고 좨주에 임명되었다. 가밀은 좌사를 비서랑으로 추천했으며, 300년에 가밀이 주살되자 향리로 돌아가 저술에 전념했고 사마경이 기실참군으로 초청했지만 이를 응하지 않았다.
이후 몇 년 뒤에 사망했으며 그가 쓴 글로는 삼도부가 유명하고 죽기 직전에 고치는 것을 완성했으며, 그의 사람됨은 관리로서의 재능은 없었지만 글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초방을 믿고 으스댔기 때문에 제 땅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세설신어에는 삼도부를 처음 저술할 때의 일화가 있어 그가 삼도부를 처음에 지을 때 당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편치 못해 장화를 찾아갔는데, 장화가 고명한 인사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좌사는 황보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황보밀이 삼도부의 서문을 지어줬으며, 지난번에 비난했던 사람들이 글을 칭찬했다.
그러나 좌사별전에 따르면 황보밀이 서주의 명사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삼도부의 여러 주해는 자신이 기록한 것으로 자신의 문장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당시 명사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 했다.
기록에 따라서는 외모가 너무 못 생겨 반악을 흉내내 놀러나갔다가 여인들이 일제히 침을 뱉는 바람에 기가 죽어 돌아왔다거나 외출할 때마다 아이들이 기와조각을 그에게 던져 수레가 가득찼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고사성어로는 낙양지가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