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습

脂習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원승(元升).

경조 사람으로 중평 연간[1]에 군에서 출사해 공부의 부름을 받아 고제로 추천되어 태의령으로 제수되었다가 삼보의 난으로 헌제가 서쪽으로 갔다가 동쪽의 허도로 갈 때 헌제를 수행했으며, 소부 공융과 친했다. 공융이 조조에게 비판하는 것을 보고 그를 책망하면서 조조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공융은 듣지 않았으며, 결국 조조의 미움을 받아 살해되었다.

공융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조문을 하지 못했는데, 홀로 찾아가서 "문거!, 경이 나를 버리고 죽는다면 나는 누구와 또 말을 해야하는가!"라고 말했다가 슬프게 울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조조가 지습을 잡아들여 법대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내막을 알아내자 동토교 아래로 옮겨서 살게 했으며, 지습은 나중에 조조를 만나 전의 잘못을 사죄했다.

조조는 이에 지습에게 "원승! 경이야말로 슬픔을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하면서 지습이 사는 곳을 물어봤다가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하게 했다가 곡식 1백곡을 하사했다고 하며, 220년에 조비가 그를 불러 등용하려고 했지만 이미 나이가 너무 많다는 논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친구들과 두터운 우정을 나누거나 난포[2]의 절개가 있다고 해 중산대부로 임명되었다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8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도 공융이 죽자 그의 시체에 곡을 해서 조조에게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것으로 나온다.

  1. 184 ~ 189년이다.
  2. 초한쟁패기 때 팽월의 부장을 지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