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월


彭越
( ?~ BC 196)

1 개요

초의 무장. 창읍 사람으로 사기의 팽월 전기가 실린 <위표팽월열전>에는 가 중(仲)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자라기보다는 '둘째'를 나타내는 말로 보인다. 고조본기에서 유방의 자도 계(季)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자가 아니라 '막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 이른바 백중숙계(伯仲叔季)라는 것이다.

2 거야의 수적

거야 지역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무리를 이끌고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 진시황 사후 진승이 난을 일으켜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그를 따르던 무리 중 일부가 팽월에게 우리도 들고 일어나자고 궐기할 것을 권했으나 팽월은 "지금은 두 용이 싸우고 있으니[1] 때를 기다리자"며 궐기하지 않았다.

1년 정도 지난 후 팽월의 근거지 주변의 사람 백여명 정도가 팽월에게 다시 찾아가 수령이 될 것을 청했는데 팽월은 이를 사양하다가 억지로 권하자 겨우 허락했다. 이들에게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약속 시간에 늦는 자는 참수하기로 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10여명이 지각했는데 가장 늦은 자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도착했다. 그러자 팽월은 "난 나이도 많은데도 니들이 나 억지로 밀어놓고 약속까지 했는데 늦게 온 사람이 왜이리 많아? 그래도 늦은 사람이 많아 다 죽일 수는 없고 가장 늦게 온 사람을 죽이겠음."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가장 늦은 사람이 속한 무리의 두령에게 명을 내려 그를 죽이라고 말했다. 모인 사람들은 "뭘 그렇게까지..."하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팽월은 지각한 그 사람을 끌어내어 직접 목을 쳐 제사를 지냈고 이후 팽월이 모인 자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팽월을 두려워하며 명령을 따랐다고 한다. 군령의 엄격함을 설명해주는 일화로, 손무에 대한 일화중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즉 팽월은 용병의 기본을 알았다.

이렇게 세력을 규합한 후 각지를 전전하며 땅을 공략하다가 제후들로부터 떨어진 병사들을 모아 1천명을 모았다. 한편, 당시 패공이었던 유방이 초회왕의 명을 받고 서진하던 중에 창읍을 공격할 때 팽월이 유방을 도우면서 유방과 대면했다. 하지만 창읍이 함락되지 않자 유방은 그대로 서진했고 팽월 역시 거야에 머물면서 위나라의 흩어진 병사들을 모았다.

3 급습의 명인

이후 항우가 진의 수도 함양을 점령하고 제후들을 왕으로 봉하여 제후들은 임지로 들어갔지만 팽월은 만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듬해 나라 왕 전영이 항우에게 반기를 들자 한왕 유방은 팽월에게 장군의 인을 주어 팽월을 꼬드겨 초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항우는 소공 각을 보내 팽월을 공격했지만 되려 역으로 털렸다.

이윽고 유방이 관중을 탈환한 후 동진하자 팽월은 또 무리가 늘어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외황 지역에서 한나라에 귀속했다. 이 때 유방은 팽월을 위나라 상국으로 임명하고 군권을 줘서 양나라 땅의 평정을 맡겼다. 그러나 팽성까지 쳐들어간 유방이 수수에서 항우에게 개발살이 나자 팽월도 여태껏 얻은 성을 다시 잃고 군대만을 거느린 채 황하 연안에서 머물렀다.

그 후 초한쟁패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초나라 각지에서 유격전을 수행하며 초나라의 국내를 교란시켰고 특히 위나라 땅에서 초나라 후방으로 가는 군량 보급로를 게릴라전을 통해 끊어버리는 활약을 했다. 이것이 팽월의 최대 활약이자 초한쟁패에서 그가 세운 최대의 공적이다. 항우는 자꾸 성가시게 하는 팽월을 직접 토벌하러 나서서 팽월에게 점령당한 성읍을 다시 탈환하기도 했으나 팽월은 도망쳤다가 다시 갑툭튀하여 빼앗긴 성들을 다시 점령하고 그곳의 군량을 얻어서 그 군량들을 유방에게 주었다. 팽월의 이러한 활약으로 초나라의 보급로는 큰 혼란에 빠졌고 이것이 초한쟁패에서 항우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에게 계속 패배하는 등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되었는데 유방은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 항우를 함께 치자고 제안했지만 팽월은 위나라를 평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고릉에서 또 항우에게 깨진 유방은 장량을 불러 어찌 하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장량은 "팽월은 자기가 위나라 왕이 되고 싶은데 대왕께서 왕으로 임명해 주지 않아서 츤츤대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겁니다. 수양 이북에서 곡성까지의 땅[2]을 팽월에게 주어 왕으로 삼고, 진나라에서 동쪽 바다에 이르는 땅[3]한신[4]에게 준다면 얘네들 좋다고 뛰어오겠지요."라고 진언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따랐고 이에 팽월 역시 항우와의 최후 결전인 해하에 와서 초나라를 격파하여 항우는 패사했다.

이렇게 천하가 평정된 후 유방은 황제가 되어 한나라를 열었고 팽월은 양나라 왕에 임명되어 정도에 도읍을 세웠다. 그러나 한나라 개국공신 제후왕들이 대부분 그렇듯 팽월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4 몰락

몇 년 뒤 진희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친히 반란 진압에 나서면서 팽월에게도 병사를 징발하려 했으나 팽월은 병을 핑계로 직접 가지 않고 수하 장수를 보냈다. 빡친 유방이 사자를 보내 갈구자 쫄아버린 팽월은 직접 유방에게 가서 사죄하려고 했지만 부하 호첩이 "처음에 안 가셨다가 꾸지람을 듣고 가시는데, 지금 가시면 분명히 황제에게 잡히게 됩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반란을 일으키심이..."라고 진언했지만 팽월은 듣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가자니 그 역시 호첩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병을 핑계대고 버티고 있었다.

이 무렵 팽월은 태복[5]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끝끝내 태복을 죽이려고 하자 태복은 도망쳐서 유방에게 "팽월과 호첩이 모반을 꾀합니다"라고 고변했다. 유방은 사람을 보내 팽월을 급습하여 잡은 후 낙양에 가두었고 이후 심문을 해 보니 반란죄가 인정되어 심문한 관리가 팽월을 법대로 처벌하기를 청했다. 보고를 받은 유방은 팽월을 서민으로 강등시켜 촉으로 귀양보냈다.

촉으로 귀양가던 중 장안에서 오던 여후와 만났는데 팽월이 여후에게 울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고향 창읍에 살게 해달라고 청하자 여후는 이를 허락하고 팽월을 낙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이것은 여후의 페이크였다!

여후는 유방에게 몰래 "팽월을 살려두는 것은 후환을 남기는 것이니 이 기회에 목을 따는 게 나아요. 그래서 제가 팽월을 데리고 왔지요"라고 아뢰었고 팽월의 부하였던 사람으로 하여금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했다고 말하게 했다. 정위[6] 왕염개가 팽월과 그 가족을 멸족시킬 것을 청하자 유방은 이를 받아들여 팽월과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 양나라 왕은 유방의 아들인 유회[7]에게 넘어갔다. 야! 신나는 토사구팽 시간! 유방과 여후는 팽월의 시체를 소금에 절이고 그 살덩이를 각지의 제후들에게 보냈다. 즉 "니들도 허튼 생각하면 요 모양 요 꼴이 된다. 알아서 몸 사려"라는 의미. 다만 머리 부분만은 시장에 내걸렸는데, 팽월의 옛 친구이자 신하인 난포가 죽음을 무릅쓰고 거두어 무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초한전쟁에서 화려한 게릴라전을 펼쳐 용맹을 떨쳐 개국공신의 반열까지 올랐지만 그 역시 토사구팽의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었다. 제거된 공신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례로, 한신은 여러모로 고조의 심기를 건드린 적이 있고 장도영포노관은 자기가 알아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거당한 것이지만 팽월은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의심받아서 죽었다. 거병할 때도 나이가 제법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 걸 보면 죽을 무렵에는 고령이었을 것이다. 그냥 귀양만 보내려다가 느닷없이 젓갈형이란 가혹한 형을 내린 것은 자신이 아닌 여후에게 빌었다는 것이 불쾌했기 때문일지도.

사기에서는 위에서 언급되었듯 위표와 함께 열전이 실려 있는데,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미천한 신분에서[8] 입신출세하여 왕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반역의 마음을 품고 패망한 부류라고 적고 있으며 위표와 팽월 모두 능력은 나름 있었으면서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것만 걱정한 부류로 평가하고 있다.

5 창작물에서

적룡왕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노인으로 등장. 거병할 때 지각한 사람의 목을 벤 일화도 나온다. 마지막에 항우를 함께 치자는 유방의 사자를 받고 나서는 "후후훗, 유방놈! 드디어 천하를 잡으려 하는구나!"라는 대사를 날린다(...). 이러니 토사구팽 크리?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 중 한 명으로 등장. 한신, 영포 등과 비교하면 능력치가 살짝 후달리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무장으로는 쓸만한 능력치다.

삼국지 11에서의 특기는 급습. 급습전에 능했던 그에게 잘 어울리는 특기.

파일:Attachment/팽월/이놈들아.jpg
그리고 희대의 명대사를 남겼다(...).

그러나 삼국지 12에서 삭제되었다. 그것도 같이 삭제되었던 인상여, 장의가 나오는데... 안습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는 인천지역에 해상물류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등장하였다. 배역은 자이언트에서 이범수의 조력자로 등장했던 송경철. 이러다 이문식영포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1. 진승과 진나라의 싸움을 말한다.
  2. 대략 오늘날의 하남성 동북부와 산동성 서부 지역이다.
  3. 제나라 영토.
  4. 한신 역시 제나라를 평정한 이후 제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핑계로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5. 이 당시 수레나 말을 관리하던 관리. 유방의 심복 하후영이 이 직책에 있었다.
  6. 형벌을 관장하던 관리
  7. 시호는 조공왕. 유방의 아들들은 문제를 제외하면 다들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조공왕도 마찬가지. 여태후가 동생 조유왕 유우를 굶겨죽이고 조공왕을 양나라에서 조나라로 옮겼고 또 여씨의 여자를 왕후로 삼게 했는데, 조공왕이 어떤 여자를 사랑하자 이 여왕후가 그 여자를 죽였다. 조공왕은 상심이 커 자결했고, 여태후는 조공왕이 여자 때문에 죽었다고 조나라를 조공왕에게서 거두어 여씨 제후왕국으로 삼았다.
  8. 그러나 성씨만 봐도 알수 있듯, 위표는 위국의 왕족으로 금수저였다가 위가 망하면서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케이스이지, 처음부터 미천한 신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