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추마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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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흔히 상놈의 성씨로 알려진 한국의 성씨이다. 천방지"축"마골피[1]란 말도 존재하며 그것은 하니이고 "천방지추고갈패[2]", "천방지마골"로 아는 사람도 있다.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백정, 마(馬)는 백정, 골(骨)은 백정, 피(皮)는 가죽백정이라는 설이며 이 성들이 노비 성이라는 도시전설이다.

2 실제

이 항목을 읽어보길 바람.

  • 천(天)씨 : 조선 때 양반 가문이다.
대표 인물 : 천명익
  • 방(方)씨 : 고려나 조선 때 관직을 지낸 가문.
대표 인물 : 방운, 방진(이순신 장군의 장인), 방덕룡, 방우정
  • 지(池)씨 : 고려의 개국공신. 명문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음. 조선때도 관직을 차지.
대표 인물 : 지용수, 지용기
  • 추(秋)씨[3] : 고려 때 관직을 지낸 귀화 가문.
대표 인물 : 추엽, 추황, 추적
  • 마(馬)씨 : 백제의 초기 개국공신, 조선 초기의 개국공신.
대표 인물 : 마려, 마천목(조선 태종 때 2차 왕자의 난 평정의 공으로 좌명공신) 마재윤
  • 골(骨)씨 : 양반 가문이다. 골씨는 1985년 인구조사 때 당시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 않았다.
대표 인물 : 골귀손, 골인서 # 골한석
  • 피(皮)씨 : 조선의 개국공신.
대표 인물 : 피득창, 피천득

천방지추마골피 성씨는 천민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이었다.
물론 족보마저 주작되었다고 퉁치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3 사유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애초에 성씨는 높으신 분 전용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성씨는 일반 대중들도 성을 갖게 된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다. 온갖 성씨라는 말에서 유래한 백성(百姓)이 원래는 귀족을 가리키다가 일반 서민을 뜻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유래한다.

이때도 천민은 성씨를 쓸 수 없었으나, 이후 신분제가 흔들리고 공명첩의 발행으로 양반 족보를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천민들도 조선 후기 족보 위조 현상에 가세한다. 돈 주고 몰락양반의 족보를 사거나 아예 새로운 족보를 창조함으로써 자기 이름에 성을 붙이고 양반을 자처하는 것. 한국에 김해 김씨가 가장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족보 위조이다.

그리고 이때 당시 유명 양반가문 성 중에 머릿수 많은 김이박최가 대량증식 절대로 자연적으론 발생할 수 없는 비율을 차지하게 된다. 대한민국 인구의 20%가 본관 상관 없이 김씨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 나뭇잎은 숲에 숨기랬다고 만약 노비가 자기 이름에 성을 붙여쓰기로 한다면 머릿수 많고 유서 깊은 성씨 틈에 섞여들겠는가, 천방지추마골피처럼 서로 누가 누군지 훤히 아는 마이너 성을 쓰겠는가?

이때까지는 그나마 출신지역을 통해 원래 신분을 대충 짐작은 가능했으나[4] 그나마도 한국전쟁 때 일제가 정리한 행정 기록이 상당부분 유실되고 반촌이고 향, 소, 부곡이고 상관 없이 피난민이 대량 발생하면서 혼돈의 카오스, 누가 어디 출신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노비 가문도 입만 다물면 자동적으로 고향세탁

즉, 대부분의 거대 본관 성씨들의 족보는 위조된 족보 내지는 돈 주고 산 족보이다. 혹시 각자의 가문의 족보에 시조가 신라시대부터 시작돼서 어쩌고 하는데 고려 이후는 비교적 아귀가 잘 맞지만 그 이전의 기록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다거나 하면 그 부분은 지어낸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전에 조상의 신분을 따지고 있는 것 자체가 현대의 한국인들은 무의미한 소모성 논쟁에 끼어듦으로써 자뻑 설정놀음이나 하는 결과를 초래하지만

4 기타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에 중죄인에게 동물을 뜻하는 성씨[5]가 부여되었긴 하다. 그러나 후대에 전혀 계승되지 않고 모두 성을 바꿨기 때문에 오늘날의 "천방지추마골피"씨들과는 상관없다.

다만, 수필가 피천득씨는 자신의 수필 중에서 '우리 조상은 노비였는데, 성(姓)이 없어 주인이 모(毛)씨와 피(皮)씨 중에 골라보라고 했더니 털(毛)보다는 털이 붙어있는 가죽(皮)이 (격이) 더 높지 않은가 라고 생각해서 피씨가 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가문 내에서 전해온 전승이라면 일부 천민들은 이런 식으로 성을 하사받았고, 그 성씨 중에 천방지추마골피가 직업적인 이유로 많이 골라졌을 거라는 추측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조선씨족통보>와 <증보문헌비고>등에 따르면 고려 후반기 원나라에서 이주한 무관 피위종(皮謂宗)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피씨 성이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한국의 가수 마골피의 예명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 '허둥지둥 함부로 날뜀'이라는 뜻의 고사성어인 천방지축(天方地軸)이 있다.
  2. 경상도권에서 이렇게 말함.
  3. 축(竺)씨는 승려나 귀화한 인도인이 천축에서 따와서 쓰는 경우가 있었다. 축씨는 1985년 인구조사 때 당시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 않았다.
  4. 조선은 농경국가다보니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호적, 호패법, 오가작통법 같은 법은 모두 양인들의 이동을 못하게 하기 위한 감시책이었던 것.
  5.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의 태조가 목천(木川) 지역의 호족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우(牛), 마(馬), 상(象), 돈(豚), 장(獐) 등의 짐승의 뜻을 가진 성씨를 부여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