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px
위의 사진은 이즈시 신사(出石神社, いずしじんじゃ, izushi shrine)인데 여기에 천일창 관련 자료가 있다고 전해진다.
350px
성씨정보의 스샷이다.
국적 | 사로국 |
이름 | 천일창(天日槍,天之日矛,アメノヒボコ) |
생몰년 | ? ~ ? |
링크 | izusi,성씨정보 |
《일본서기》에서 사로국 출신의 왕자라고 주장하는 인물. 11대 스이닌 덴노 시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고사기》에서는 천지일모(天之日矛)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귀화 동기 등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1 일본서기에서의 등장
스이닌 덴노 3년(31년) 봄 3월 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 이 귀화했다. 가지고 온 물건은 우태옥(羽太玉) 1개, 족고옥(足高玉) 1개, 제록록적석옥(鵜鹿鹿赤石玉) 1개, 출석소도(出石小刀) 1자루, 출석모(出石鉾) 1자루, 일경(日鏡,청동거울) 1개, 웅신리(熊神籬) 1개 등 7가 지였는데, 다지마국(但馬國)에 보관하여 항상 신물(神物)로 삼았다.
【일설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천일창이 작은배를 타고 와서 하리마노쿠니(播磨國)에 정박하여 육속읍(肉粟邑) 播磨國 肉粟邑 에 있었다. 그 때 덴노가 미와노키미(三輪君)의 시조 오토모노누시(大友主)와 야마토쯔끼(倭直)의 시조 나가치(長尾市)를 하리마(播磨)에 보내어 천일창(天日槍)에게, "너는 누구이며, 어느나라 사람인가" 라고 물었다. 천일창이, "저는 신라 국왕의 아들인데, 일본국(日本國)[1]에 성황(聖皇)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동생 지고(知古)[2]에게 주고 귀화하였습니다" 라 대답하고, 물건을 바쳤는데 엽세주(葉細珠), 족고주(足高珠), 제녹녹적석주(鵜鹿鹿赤石珠), 출석도자(出石刀子), 출석창(出石槍), 일경(日鏡), 웅신리(熊神籬), 단협천대도(膽狹淺大刀) 등 8가지였다. 이에 (덴노가) 천일창에게, "하리마노쿠니(播磨國) 肉粟邑이나 아와지시마(淡路島) 出淺邑의 두 읍 중에서 너의 마음대로 살도록 하라"고 조칙을 내렸다. 이 때 천일창(天日槍)이, “신이 장차 거주할 곳에 대하여 만일 천은(天恩)을 내려 신이 원하는 곳을 허락하신다면, 신이 직접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지급받고자 합니다”라고 아뢰니,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천일창이 토도하(菟道河)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북으로 오미노쿠니(近江國) 아나무라(吾名邑)에 들어가 잠시 머물 다가 다시 오우미(近江)으로부터 와카사국(若狹國)을 거쳐 서쪽으로 다지마국(但馬國)에 이르러 거주처를 정하였다. 오미노쿠니(近江國) 경촌곡(鏡村谷) 도인(陶人)은 바로 천일창를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천일창는 타지마국(但馬國) 출도(出嶋)의 사람 태이(太耳)의 딸 마타오(麻多烏)와 결혼하여 단마제조(但馬諸助)를 낳았다. 제조(諸助)는 단마일유저(但馬日楢杵)를 낳고 일유저(日楢杵)는 청언(淸彦)을 낳았으며 청언(淸彦)은 다지마모리(田道間守)를 낳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신라 왕자 천일창이 일본의 덴노를 섬기기 위해 신라 왕위를 내팽개치고 일본으로 건너와 덴노의 은총을 받고 애 낳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또한 진구 황후가 그의 후손이라는 기록도 있다. 물론 진구 황후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인물이다.
2 실존 인물인가?
위와 같이 천일창은 일본의 위대한 덴노(...)를 섬기려고 왕위를 지고(知古)에게 물려주고 위험을 감수하며 일본에 왔다는 이야기인데, 사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또한 천일창이라고 하는 이름이 한국 역사 기록에 발견되지 않을 뿐더러 시대상으로 따져도 마땅한 사람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미스테리의 인물이다. 현재 가설이 여러 가지 있지만(예: 일성 이사금 등) 일본서기 기록 연대 자체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결국 미스테리다(...).
일설에는 천일창이 일본에 처음 상륙했을 때 바위가 막고 있었으나 이를 칼로 베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제철기술자라는 설##도 있으며, 기원전 무렵 진한인의 일본 이주 설화로 풀이하거나[3],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처럼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다는 점이나 연오랑의 동생인 지고가 등장하는 것을 비교해 천일창이 바로 연오랑이며 신라의 태양신 신화가 일본으로 넘어간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4]
어쨌거나 한-일 고대사 관련의 또 다른 떡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