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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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백제후백제미군정대한민국
진한신라신라
변한가야
우산국대한민국 임시정부
탐라국
진한의 국가
삼국지 위지동이전 기록사로국기저국불사국근기국난미리미동국염해국군미국여담국호로국주선국마연국우유국
삼국사기 기록감문국골벌국다벌국비지국소문국실직국압독국우시산국음즙벌국이서국초팔국
원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의 소국연맹 삼한
마한진한변한
위서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오환족선비족부여고구려옥저읍루예맥마한/진한/변한주호
표에서 초록색이 진한의 영향색이다.

辰韓

1 소개

고대 한반도 삼한경상도 지역에 위치했던 12개 소국 모임.
진한개와는 관련없다

고대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소국들의 연맹 중 하나이다. 지금의 경상도 지역에서 낙동강 동쪽 지역이 대부분 옛 진한에 해당되며, 구성원 중 하나였던 신라국이 점점 성장해 다른 소국들을 흡수하면서 5세기경 신라 1개국으로 통일되었다.

마한과는 달리 성벽이 있으며 각 마을에는 우두머리 군장을 두었다고 한다. 이들 군장중 최고 우두머리는 신지(臣智), 그 다음은 검측(儉側), 그 다음은 번지(樊秖), 그 다음은 살해(殺奚), 그 다음을 읍차(邑借)라고 하였다고 한다.

낙동강 건너편의 변한과는 편의상 구분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언어, 법속, 의식주 다 똑같고 단 제사 풍속만 달랐다고 한다. 고고학적으로도 진한과 변한이 구분되는 부분은 그다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변한과 마찬가지로 이 풍부한 나라여서 철을 화폐로 삼았으며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로 누른다고 한다. 이걸 편두라고 하는데, 이 전통은 후에 가야로까지 이어져 가야시대 무덤을 발굴하면 대부분의 두개골에서 머리가 납작하게 눌린 채로 발견된다. 신라도 편두를 했다고 추정되는 파편적인 기록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2 진한 12국

진한의 구성국 목록 및 추정되는 위치이다. 진한의 역사는 아직까지는 많은 부분이 추측뿐이며 추정되는 위치 또한 많은 나라들이 그때그때 다르므로 전공자가 있다면 수정 바람. 이병도설과 천관우설, 정인보설 등등이 있다.

국가명현재 추정 위치
사로국(斯盧國)경상북도 경주시 인근.
기저국(己柢國)[1]경상북도 안동시.[2]
불사국(不斯國)경상남도 양산시 혹은 경상남도 창녕군
근기국(勤耆國)경상북도 포항시 혹은 경상북도 청도군.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경상북도 의성군 혹은 경상남도 창녕군
염해국(冉奚國)울산광역시 북구 염포동.
군미국(軍彌國)경상남도 사천시 인근.
여담국(如湛國)경상북도 군위군.
호로국(戶路國)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혹은 경상남도 양산시
주선국(州鮮國)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마연국(馬延國)경상북도 경산시 혹은 경상남도 밀양시
우유국(優由國)경상북도 청도군 인근.

3 그 외 기록

삼국사기에는 이 외에도 후에 신라에 병합된 소국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국가명현재 추정 위치
감문국(甘文國)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위치
소개231년에 신라에 병합
골벌국(骨伐國) 혹은 골화국(骨火國)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화산면, 신령면 일대에 위치
소개236년 신라에 병합
다벌국(多伐國)대구광역시 혹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소개108년 신라에 병합
비지국(比只國)경상남도 창녕군
소개108년 신라에 병합
소문국(召文國)(혹은 조문국)경상북도 의성군 추정
소개185년 신라에 병합
실직곡국(悉直谷國), 실직국(悉直國), 실직(悉直)강원도 삼척시
소개104년 신라에 병합
압독국(押督國), 압량국(押梁國)경상북도 경산시
소개102년 신라에 병합
우시산국(于尸山國)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소개79년[3] 신라에 병합
음즙벌국(音汁伐國)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소개102년 신라에 병합
이서국(伊西國), 이서소국(伊西小國), 이서고국(伊西古國)경상북도 청도군 추정
소개297년 신라에 병합
초팔국(草八國)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과 초계면 사이로 추정
소개108년 신라에 병합

4 참고자료

4.1 정사 삼국지 위지 동이전

辰韓在馬韓之東,其耆老傳世,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馬韓割其東界地與之。有城柵。其言語不與馬韓同,名國爲邦,弓爲弧,賊爲寇,行酒爲行觴。相呼皆爲徒,有似秦人,非但燕、齊之名物也。名樂浪人爲阿殘;東方人名我爲阿,謂樂浪人本其殘餘人。今有名之爲秦韓者。始有六國,稍分爲十二國。

진한(辰韓)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진한의 어느 노인이 대대로 전해지는 바를 말했는데, 옛날 망명인이 (秦)의 사역을 피해 한국(韓國)으로 왔고 마한이 그 동쪽 땅을 나눠 주었다고 한다. 성책(城柵)이 있고 그 언어마한과 같지 않다. 국(國)을 방(邦), 궁(弓)을 호(弧), 적(賊)을 구(寇), 행주(行酒.술을 권하는 행위)를 행상(行觴)이라 부른다.서로 부르기를 모두 도(徒)라 하여 (秦)나라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는데 연(燕), 제(齊)의 명칭은 아니다. 낙랑 사람을 불러 아잔(阿殘)이라 하고 동방인(東方人)은 스스로를 아(阿)라고 했으니, 이는 낙랑 사람이 그들의 잔여인(殘餘人)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지금 진한(秦韓)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 6국이었는데 점점 나뉘어져 12국이 되었다.

弁辰韓合二十四國,大國四五千家,小國六七百家,總四五萬戶。其十二國屬辰王。辰王常用馬韓人作之,世世相繼。辰王不得自立爲王。【魏略曰 明其爲流移之人 故爲馬韓所制。】土地肥美,宜種五穀及稻,曉蠶桑,作布. 乘駕牛馬嫁娶 禮俗男女有別。以大鳥羽送死,其意欲使死者飛揚。【魏略曰 其國作屋 橫累木爲之 有似牢獄也。】 國出鐵,韓、濊、倭皆從取之。諸市買皆用鐵,如中國用錢,又以供給二郡。俗喜歌舞飮酒。有瑟,其形似筑,彈之亦有音曲。兒生 , 便以石厭其頭,欲其。今辰韓人皆頭。男女近倭,亦文身。便步戰,兵仗與馬韓同。其俗,行者相逢,皆住讓路。

변한진한은 모두 24개 국인데 대국은 4-5천 가(家), 소국은 6-7백 가(家)로 총 4-5만 호다. 그 12국은 진왕(辰王)에 속한다. 진왕은 항상 마한사람이 맡아 세세토록 계승한다. 진왕은 스스로 즉위하지는 못한다.【위략에 이르기를 유이민이 뛰어났으므로 마한의 제어를 받았다.】토지가 비옥하여 오곡과 벼농사에 적합하고 누에 치는 법을 알아 겸포(布)(비단의 일종)를 만든다. 결혼할 때 우마(牛馬)를 타고 예속에 남녀의 구별이 있다. 장사 지낼 때 큰 새의 깃털을 쓰는데 죽은 자가 날아 오르도록 한다는 뜻이다. 【위략에 이르기를 그 나라가 집을 지을 때 나무를 가로 질러 묶는데 그 모습이 감옥과 비슷하다 】 철(鐵)이 산출되는데 한(韓), 예(濊), 왜(倭)에서 모두 와서 취한다. 시장에서는 모두 철을 사용하는데 중국에서 전(錢)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한 2군(낙랑,대방)에도 공급한다. 그 풍속이 음주 가무를 좋아한다. 금(瑟)이 있는데 그 형태가 축(筑)과 비슷하고 또한 연주하는 음곡(音曲)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돌로 누르는데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지금 진한 사람들은 모두 편두(頭-납작머리)다. 남녀가 왜(倭)와 가까워 또한 문신을 한다. 보전(步戰)에 익숙하고 병장기는 마한과 같다. 그 풍속으로, 길가던 사람이 서로 마주치면 모두 멈추어 길을 양보한다.

4.2후한서》 동이열전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割東界地與之. 其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城柵屋室. 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次有儉側 次有樊秖 次有殺奚 次有邑借【皆其官名.】土地肥美, 宜五穀. 知蠶桑, 作縑布. 乘駕牛馬. 嫁娶以禮. 行者讓路. 國出鐵, 濊、倭、馬韓並從巿之.凡諸(貨,貿)易, 皆以鐵爲貨. 俗憙歌舞飲酒鼓瑟. 兒生欲令其頭扁, 皆押之以石.【扁音補典反.】

진한(辰韓)은 늙은 노인이 스스로 말하기로 진(秦)나라 망명인인데, 힘든 노역을 피해 한국(韓國)으로 왔을 때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한다. 국(國)을 방(邦), 궁(弓)을 호(弧), 적(賊)을 구(寇), 행주(行酒.술을 권하는 행위)를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를 부를 때 도(徒)라 하여 진나라 말과 유사했는데 이 때문에 때로는 진한(秦韓)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책(城柵)과 옥실(屋室)이 있다. 여러 작은 별읍들은 각각 거수(渠帥.우두머리 혹은 군장)를 두는데, 큰 것은 신지(臣智), 그 다음은 검측(儉側), 그 다음은 번지(樊秖), 그 다음은 살해(殺奚), 그 다음을 읍차(邑借)라 한다.[4]토지가 비옥하고 오곡에 적당하다. 잠상(蠶桑)을 알고 겸포(縑布.비단의 일종)를 짓는다. 우마(牛馬)를 타고 혼인하는 예법이 있다. 보행하는 자들은 길을 양보하는 풍속이 있다. 나라에 철(鐵)이 산출되고 예(濊), 왜(倭), 마한(馬韓)에서 모두 와서 사 간다. 무릇 재화를 교환할 때 모두 철을 화폐로 삼는다. 그 풍속으로 가무(歌舞), 음주(飲酒), 고금(鼓瑟)을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모두 돌로 누른다.[5]

  1. 이저국(已柢國)이라고도 한다.
  2. 문서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영주군 풍기와 울주군 언양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3. 삼국사기에는 거칠산국(부산광역시)과 같이 병합되었던 사건만 거도 열전에 있고 시기에 관한 내용은 없으며 79년은 동국통감, 동사강목 기록
  4. 모두 그 나라의 관직 명이다.
  5. 편(扁)의 발음은 보전(補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