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렌코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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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GA 원자로의 노심. 저기에 탄산 넣으면 시원한 콜라가 된다

Cherenkov radiation. 러시아 물리학자 파벨 알렉세예비치 체렌코프(Павел Алексеевич Черенков) 등 3명이 규명한 현상. 이들은 이것으로 1958년 노벨 물리학상을 따냈다. 요약하자면 '왜 방사능은 푸른 빛을 띨까?'에 대한 원리이다.

하전입자가 투명한 물질(유전체) 속을 통과할 때, 이 입자의 속도가 그 투명한 물질 속에서의 빛의 위상 속도[1]보다 빠르면 하전입자가 청백색의 빛을 내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기장의 작용으로 입자의 궤적에 따라 유전분극(전기장을 가했을 때 전기적으로 극성을 띤 분자들이 전체적으로 정렬하여 물체가 전기를 띠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이 유전분극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갈 때 이 에너지를 전자파로 복사한다.

쉽게 말하면 광학적 소닉붐이다. 물질 안에서는 진공과 비교할 때 빛의 속도가 느려지는데, 느려진 빛보다 다른 전기적 성질을 띤 입자가 빠르면 이와 같은 특이한 빛이 난다. 게다가 체렌코프 현상이 일어나면 입자의 에너지가 높음을 뜻한다. 보통 원자로나 사용 후 연료 저장 수조같이 방사능이 높은 곳에서 나타난다

체렌코프 현상을 이해함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대기 중에선 체렌코프 현상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기 중에선 아예 안 일어난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기본적인 전자기학 개념으로 생각할 때 기체든 액체든 진공이 아니면 전부 진공보다 큰 유전율과 투자율을 가지므로 진공이 아니라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지구상의 방사성 물질인 라듐이나 우라늄이 내뿜는 입자는 대기 중에서 체렌코프 현상을 일으키기엔 에너지가 한참 부족하다. 가끔씩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사람한테서 퍼렇게 빛이 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이는 그 사람이 물 속에 있지 않는 이상 물리적으로는 잘못된 농담. 대기 중에서 방사성 물질이 빛을 내뿜는다면, 체렌코프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 방사성 물질에서 방출된 베타선이 형광 물질을 때렸을 때 발생하는 형광이거나, 신틸레이션 광이다.

대기 중에서 체렌코프 현상을 일으키려면 얼마나 에너지가 필요한지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통해 계산해 볼 수 있다. 대기 중에서 체렌코프 현상이 일으키기 위해 고에너지 입자가 가져야 할 로렌츠 팩터는 약 40 이상이며 (즉 총 에너지가 정지 질량의 40배 이상, 전자는 >20MeV, 양성자는 >40GeV.) 이는 현대의 입자 가속기 실험을 통해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에너지다. (LHC의 현 양성자 충돌 에너지가 13TeV)

그렇다면 "인공적 가속이 아닌 자연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에너지 천체가 내뿜는 TeV영역 감마선이 쌍생성을 거쳐 생기는 초 고에너지 전자, 양전자가 가끔씩 대기 체렌코프(Air Cherenkov) 현상을 일으킨다. 엄청나게 높은 에너지에 의한 현상인 만큼, 과학자들이 갖는 흥미도 크다. IACT(Imaging Air Cherenkov Telescope)는 감마선 폭발의 지표 관측 등, 차세대 감마선 천문학을 위한 망원경으로 여겨진다.

가속기 실험에서 체렌코프 현상이 대표적으로 이용되는 분야는 RICH(Ring-imaging Cherenkov detector). 파이온이나 케이온 등의 서로 종류가 섞여있는 입자들이 운동량이 동일하게 유지되었을 때 생기는 하전입자의 속도차를 측정한다.

자연 중성미자의 검출에 있어서는 체렌코프 복사 관측이 절대적인 방법이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인 데다 다른 소립자들과의 반응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덕분에 인간이 실험적으로 검출하기에 가장 어려운 소립자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Particle Data Group의 실험 데이터집에서는 중성미자로 붕괴하는 과정을 Invisible이라고 표현한다. 중성미자는 대기 중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일으키지 않으므로(물론 물리적으로 생각할 때 반응을 일으켜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 일어나지만.) 반응을 관측하려면 일단 액체나 고체 속을 관통시켜야 한다(액체나 고체속에서도 반응 확률은 그야말로 극도로 낮다. 중성미자의 입장에선 밀도가 높든 낮든 허공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액체의 밀도가 높은 만큼 중성미자가 반응을 일으키는 대상인 원자핵의 밀도가 높으므로 반응 확률은 증가한다.).

중성미자의 검출기에서는 아주 작은 확률로 물분자나 얼음분자(정확히는 그것들의 원자핵)와 상호작용[2]하면서 만드는 입자(중성미자의 세대에 대응하는 각각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온)가 물이나 얼음 분자속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빠를 때 발생하는 체렌코프 광을 관측함으로써 중성미자를 간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

xkcd가 말하기로는 체렌코프 광이 은은히 비치는 사용 후 연료 저장수조에서는 수영해도 된다고 한다Spent Fuel Pool. 결론은 10에서 40시간 동안 헤엄치다 과로로 익사한다고 한다. 이론상으론 물이 방사능을 막아주므로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가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는 소리. 다만, 물 밖으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었다면 그대로 피폭당하므로 현실적으로는 위험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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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 4, 5에서 등장하는 보드카 브랜드 'CHERENKOV'는 '당신의 속까지 따뜻하게 해 드립니다(Warms you to the core)'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 아마 이 현상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4편에서 화염병에 사용되는 병들은 모두 체렌코프 보드카 병이다. 아쉽게도 5편에선 그냥 맥주병.
  1. 빛의 속도와는 좀 다른 개념. 진공이 아닌 일반 매질 내의 빛의 위상 속도는 반드시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보다 느려진다(#). 단, 플라즈마 같은 매질 속에선 오히려 위상 속도가 진공에서의 광속보다 빠를 수 있다.
  2. 정말로 0에 가까운 확률이지만 검출기 내부를 엄청나게 많은 중성미자가 통과하므로 일어나긴 한다. 독립시행의 여사건을 생각해 보자. 확률이 10%라면 10번하면 아마 한 번은 일어날 것이고 확률이 1%라면 아마 100번 중에 한 번은 일어나겠지…라는 근성이다. 그래서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크고 아름다운 시설이 필요하다. 조그만 시설로는 의미 있는 수준의 관측 통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 국제 협력 프로젝트인 아이스 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는 남극에 설치하여 남극점의 두꺼운 얼음에 86개의 구멍을 뚫어 놓고 그 86개의 구멍에 각각 2820m짜리 줄을 내리고 줄 각각에 체렌코프 광을 탐지할 관측기를 달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