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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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 수상자 | 수상자 | 수상자 | 수상자 | 수상자 |
1 개요
과학 분야 중 물리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받을 수 있는 상중 가장 영예로운 상.
1901년 X선을 발견한 뢴트겐에서부터 2009년 광섬유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한 가오와 CCD 소자[1]를 발명한 스미스와 보일까지 103년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상을 할 수 없게 되었던 1916년과 1931년, 1934년, 1940~1942년을 제외하면 186명의 과학자가 이 상을 수상받았다.[2]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많은 과학자들이 이 상을 받았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파인먼 등이 이 상을 수상받았다. 수상자들은 엄청난 명예와 함께 1천만 스웨덴 크로나의 상금[3]을 받게 된다.
2 수상 방법
수상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된다. 노벨상 시상식이 이루어지기 전 해의 9월경, 노벨 위원회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각 대학의 저명한 교수, 그리고 스웨덴 왕립 과학회의 회원들에게서 노벨상 수상후보에 대한 추천을 받는다. 이때 선정된 3000여 명의 후보자들은 다음해 2월까지 350~450명으로 갈무리된다. 이후 3월에서 5월간 노벨 위원회는 후보자에 대하여 특별한 검증 작업을 거치게 되며, 6월에서 8월까지는 이 후보자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후 위원회의 최종적인 승인을 거치게 되면, 대망의 10월, 투표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게 된다.
3 특징
실험적으로 검증된 영역에 대해서만 수상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경우 상대성 이론이 당대 학계에 엄청난 여파를 불러일으켰고, 당연히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이 수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실험으로 검증된 영역으로만 수상을 하는 노벨 위원회에 의해 거의 5년간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서 번번히 까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반발이 심했다고 하며, 어느 정도냐면 '아인슈타인 말고 노벨상 받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라고 할 정도였다고. 이 여파 때문에 당시 노벨 물리학상의 권위가 바닥을 칠 뻔하자, 결국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수상한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노벨상 수상 명칭은 "이론물리학에 대한 기여와 광전효과의 발견". [4][5]
인물의 품성도 꽤나 중요한 듯하다. 빅뱅 이론의 창시자인 조지 가모프가 그 대표적인 예. 가모프의 연구는 노벨상을 받을 만하지만 이 양반은 음주가무를 밥먹듯이 일삼았으며, 학회에서의 기행으로 인하여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6]
비슷한 예로, 물리학상은 아니지만 존 포브스 내시가 노벨경제학상을 받던 1994년에는 노벨 위원회에서 직접 찾아와서 그의 성격이 어떤가 살펴보기도 했다. 참고로 내시는 미국의 수학자로, 조현병을 앓아 프린스턴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썼던 논문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데 45년이 걸렸다. 그래서 위원회 측에서도 상의 권위가 훼손될까봐 내시를 직접 확인하러 찾아왔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 참고.
한국은 아직까지도 과학상 전반은 물론이고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분야에 수상자가 단 한명도 없다.[7] 현재까지 가장 유력했다고 생각되는 학자로는 故 이휘소 박사[8]와 김필립 박사(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가 꼽힌다. 이 중 김필립 교수는 지난 2010년 한국인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을 아깝게 놓친 경험이 있다. 김 교수는 그래핀의 존재를 확증하는 실험을 가임·노보셀로프 교수와 같은 시기에 성공했다. 때문에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굳이 수상자를 가임·노보셀로프 두 명으로 제한, 김 교수를 배제한 결정에 이의 제기가 잇달았다. 네이처에는 노벨상 위원회가 실수를 했다는 기사까지 실렸다. 참고로 통상 노벨상은 해당 분야 업적이 있는 세 사람까지만 주도록 돼 있었다. 동아일보, “노벨상위원회 실수 때문에 한국인 첫 물리학상 놓쳤다”
4 수상자
한 해에 최대 3명까지 수상된다.
자세한 내용은 /수상자 항목을 참고.
- ↑ 디지털 카메라에 사용되는 그 CCD
- ↑ 다만 1956년과 1972년 바딘이 이 상을 두번 수상했다. 정확히 정정하자면 187번 수상된 것.
- ↑ 약 1000만 크로네는 140만 달러 가량 된다. 그러나 2012년 이후 노벨재단의 운영비 확보를 위하여 상금이 20% 삭감되었다. 현재는 800만 크로네인 110만 달러 가량이다.
- ↑ 그러나 수상 전인 1919년 아서 에딩턴 탐사대에 의해 일반 상대성 이론이 실증적으로 검증되었으며, 1900년대 중반쯤 실험 물리학자들에 의해 특수 상대성 이론이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가 있다.
- ↑ 이 연구가 나중에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축이 될 어떤 괴물을 낳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광전효과만 해도 대단한 업적이다.
- ↑ 거기다 출신지도 우크라이나로 금상첨화
- ↑ 한국국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수상자가 없는건 아니다. 노벨화학상항목 참조.
- ↑ 이휘소 박사는 소립자 물리학에서의 업적이 매우 뛰어나며, 그와 일했던 사람 중에는 1979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가 있다. 거의 '절친'이라고 칭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