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노 히사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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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No.7
초노 히사요시 (長野久義)
생년월일1984년 12월 6일
국적일본
출신지사가
포지션외야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9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2010~ )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마츠모토 데츠야
(요미우리 자이언츠)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와무라 히로카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1 개요

일본의 오뎅 장수 프로야구 선수.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2 선수 생활

고교 당시부터 소속팀을 큐슈지역 4강에 올려놓으며 주목받았으나 니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니혼대학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 IBAF 인터콘티넨탈대회 대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로 선발이 되었는데, 이 대회에서 오승환으로부터 끝내기 쓰리런 홈런을 치는 등 활약을 했다.[1] 그리고 오승환이 2014시즌부터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게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쨌거나 대학시절의 활약으로 닛폰햄 파이터즈로부터 드래프트 4위 지명을 받았으나, 어린 시절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동경해왔던 그는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라며 지명을 거부하고 일본의 사회인야구팀 혼다 야구부에 입단, 시즈오카 대회 신인왕, 최우수선수등 사회인야구를 휩쓰는 활약을 한다. 이듬해 다시 치바 롯데 마린즈의 2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요미우리 아니면 안 간다고!!!!"라며 이것도 거부, 결국 2009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에 1순위로 지명됨으로써 요미우리 입단의 꿈을 이룬다. 삼수생의 승리

데뷔시즌인 2010년부터 타율 .288 19홈런 52타점을 달성하며 센트럴리그 신인왕[2]을 달성한 초노는 이듬해인 2011년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그거 먹는 건가요? 하는 모습을 보이며 타율 .316으로 센트럴리그 타격왕에 오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축 외야수가 되었다. 2012년에도 173안타[3] 타율 .301 14홈런 60타점 20도루로 요미우리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2013년에는 WBC에도 대표로 뽑혔으나 부진에 빠지며 별 활약은 하지 못했다. 시즌초에도 슬럼프가 이어졌으나, 전년도에 이어 전경기에 출전하며 타율 0.281 19홈런 65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3년 연속 베스트나인과 골드글러브 수상은 덤.

2014년에도 0.297 13홈런 62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2015년에는 0.251 15홈런 52타점으로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의 물타선화에 일조했다.

3 뱀발

2013시즌 이후 니혼TV의 한 토크쇼에 동료 선수들과 출연해 이런 발언을 했다(...) 이 팀 레전드가 생각난다


TV 아사히 아나운서인 시모히라 사야카와[4] 교제하고 있었으며, 2015년 3월에 결혼을 발표했다. 사실 프로 거인 입단 직전 2009년에 주간지에 차에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주간지에 실리기도 하는 등 꾸준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밤의 제왕'으로 불릴 정도의 초노를 꾸준히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이후 주간지 사진이 터지기 1년전부터 지인의 결혼식에서 만나 애정을 키워왔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7년간 키잡 2014년 초노가 부상으로 장기 입원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

가끔 번역기로 돌리면 초노가 아닌 나가노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나가노의 한자어 역시 長野로 똑같기 때문이다.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아내 나가노 츠바사(長野翼)와 혼동하지 말기를. 역시 범상치 않다
  1. 초노가 오뎅장사를 하던 사회인대표라는 이야기는 한 네티즌의 장난에서 비롯된 것으로 낭설이 퍼지던 당시 이미 신인 드래프트 우선지명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괜히 오승환만 오뎅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2. 양대리그 마지막 야수 신인왕, 퍼시픽리그는 1998년 오제키 다쓰야 마지막이고 우타자만 따지면 1986년 기요하라 가즈히로까지 올라간다.
  3. 사카모토 하야토와 함께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4. 1973년생으로, 초노보다 무려 11살 연상이다. 스즈키 이치로와 동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