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하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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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No.6
사카모토 하야토 (坂本勇人)
생년월일1988년 12월 14일
국적일본
출신지효고 현 이타미 시
포지션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6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

1 개요

현 요미우리 타선의 중심

일본야구선수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의 주전 유격수.

2 커리어

초등학교 때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며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사카모토의 동급생이었다[1]. 같은 팀에서 뛰며 사카모토가 투수, 다나카가 포수로서 배터리를 이루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 겸비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위 지명받으며 입단했다. 데뷔 초에는 주로 2군에서 플레이하며 기량을 쌓다가 7월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9월 6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에서 대타로 출장, 첫 안타를 결승 타점으로 연결시키며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개막전에서 8번 2루수로 출장, 마쓰이 히데키 이후 처음으로 10대 선수로서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카모토로써는 이 경기가 천운이었던지, 주전 유격수였던 니오카 토모히로가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하게 되며 그 다음 경기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거기다 니오카가 아나운서 야마모토 모나와 불륜 사건까지 저지르게 되며[2] 사카모토는 시범경기부터 올스타전, 클라이막스 시리즈, 일본시리즈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3승 4패로 패배. 그러나 이 패배한 7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10대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 이후 22년만에 홈런을 친 선수로 기록되었다.

2009년에는 시즌 초반에 안타를 마구 때려내며 4경기 연속 수훈 선수로 선정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가, 7월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2009시즌 팀의 리그 우승과 7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고, 센트럴리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데뷔 첫 끝내기 홈런과 선두타자 홈런을 친 것도 2009시즌.

2010년에는 1번 타자로 풀타임 출장하였고, 31홈런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 그리고 고교 4년차 이내 타자 중 30홈런을 기록한 8번째 선수가 된다. 후반기에 부진한 것은 아쉬운 대목. 이 성적을 바탕으로 연봉 1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돔에서의 시합이 크게 줄고, 새로이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타율, 장타력 모두 10년 시즌에 비해 크게 저하되었고 여기에 그동안 지적된 불안한 수비가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져서 이례적으로 선발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2012년 시즌에는 11년 시즌의 부진한 모습에서 탈피, 20번의 맹타상 (한시합에서 3안타 이상을 쳤을 때 주는 개인상) 과 리그 최다안타 (173개), 개인 최다도루 (16도루, 도루성공률 .941) 등 자신의 각종 기록들을 갱신하며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시즌 후 2013 WBC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13년 시즌에는 다소 부진하였다.

13년 이후 타격 성적은 다소 정체되었으나 도리어 리그 굴지의 강타선을 자랑하던 요미우리 타자들이 단체로 부진하면서 팀 내 입지는 더욱 올라갔다(...). 처음으로 4번에 배치된 것도

2016년에는 리그 최악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수준으로까지 몰락한 타선을 거의 혼자 멱살잡고 하드캐리하는 중이다. 6월 5일 종료시점에서 .347/.429/.637 OPS 1.065, 12홈런 35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자랑하며 센트럴리그 타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6월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핵타선이 살아나고 사카모토 본인이 부진에 빠지며 7월 15일 현재 .322/.417/.561의 기록으로 타격 랭킹 4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다른 라이벌들의 페이스가 떨어진 사이에 사카모토가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344/.433/.555 23홈런 75타점 13도루의 성적으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WAR 역시 야마다 테츠토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최고로 올라섰고 전체 리그로 따저도 최고다.[3] 커리어 첫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고, 데뷔 이후 최초로 삼진보다 볼넷을 더 많이 얻어내었다.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위에도 나와있지만 아무도 불만가지기 힘든 수준. 데뷰초부터 줄곧 고타율 고홈런으로 테이블세터와 클린업 가장 앞자리를 항상 고수해왔다. 팀 상황이 좋을때는 1번, 타선약화시에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다. 2011년에는 타격부진으로 잠시 6번까지 타순이 밀리기도 하였고, 2012년 시즌부터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인지 어쩐지는 애매한데 극단적인 당겨치기 덕후이다. 시즌 통틀어도 밀어치는 타구가 별로 없고 컨디션 좋을때는 바깥쪽 변화구조차 당겨치는 기행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은 칠 수 있는 공. 없는 공을 확실히 나눠놓고 승부하는 편이라 딱히 바깥쪽에 약하다던가 하는 뚜렷한 약점은 없는 편. 오히려 몸쪽 잘못 붙였다가는 그대로 당겨서 좌측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하는 듯.

프로 3년차인 2009년 시즌부터 2012년 시즌까지 연속해서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을 겸비하였다. 2010년에는 31홈런을 때리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 상 최다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반발력이 감소한 2011년 이후의 통일구 시대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쳐주고 있다. 홈구장 도쿄 돔이 홈런공장장인 걸 감안해야 하지만.

여담이지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 상당히 강하다. 2010년에 기록한 31홈런의 거의 절반이 요코하마전에서 나왔다던가, 부진했던 2011년 시즌은 물론 펄펄 날았던 2012년 시즌에도 대 요코하마전 타율이 3할 후반대를 기록했다던가...

3.2 수비

3.2.1 현장의 부정적 시선

문제가 있다면 수비. 준족과 어깨로만 승부를 보는 경향이 있어 타구반응이 늦고 송구도 부정확한 편이며 결정적으로 글러브질이 매우 서툴어 포구가 불안정하다고 평가받았다. 때문에 2008년부터 유격수 레귤러로 활약하였으나, 4년 연속 최다 실책과 유격수로는 불안정한 .970대의 수비율로 가뜩이나 부실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야의 폭탄중 하나.

2010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 바 없이 줄곧 에러를 양산하고 1루수 에러로 기록될만한 폭투성 송구를 하는 등 3년 연속 실책왕으로 군림하였다. 뿐만아니라 규정시합수를 채운 유격수 10명중 수비율 9위. 10위는 그나마도 줄곧 2루를 보다가 갑자기[4] 이 시즌부터 유격수로 컨버트 당한 주니치아라키 마사히로라 논외로 쳐도, 11시즌엔 수비율, 실책 모두 12구단 탑으로 그란도시즌 달성!

해를 거듭할수록 그래도 경험치와 우월한 신체스펙이 더해져 유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횡수비는 어느정도 눈뜨고 봐줄만큼 성장하였으나 종수비는 여전히 OME. 그리고 입단시부터 지적받던 런닝스로도 여전히 답이 안나오는 상황. 뭐 사카모토의 전임이였던 니오카 토모히로(현 닛폰햄)도 수비는 내놓던 공격형 유격수셨으니 쿄진 유격수 수비문제야 별로 잃을게 없는 부분이긴 했다(...). 11년 시즌에 결국 수비 그동안 지적된 수비불안이 한방에 터졌고 이에 하라 감독이 사카모토를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등의 강수를 두며 강하게 질책한 탓인지 12년 시즌에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미숙한 모습에서 탈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3.2.2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한 재평가

하지만 이런 현장의 시선과는 전혀 딴판으로 UZR 같은 발전된 수비 지표 상에선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된다. 수비적으로 기량이 완성되었다고 평가받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기록한 UZR이 +16.0 / +26.2 / +22.5 / +33.6인데, 리그 위상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값만 비교할 경우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를 가진 유격수로 평가되는 안드렐튼 시몬스가 연상되는 수치다. 내야 키스톤의 수비 지표는 타 포지션에 비해 훨씬 신뢰도가 높을 뿐더러 수년 동안 저런 경향이 이어졌다면 이를 부정하긴 힘들다. 사카모토는 주변으로부터 범위보다도 안정성을 중시하는 수비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소극적인 수비가 무슨 가치가 있냐며 반박한 적이 있다. 어찌보면 일본 야구계의 보수적인 시각의 피해자. 때문에 이처럼 뛰어난 수비력에도 골든글러브 상을 한번도 수상한 적이 없다. 그 기간동안 유격수 골글을 수상한 토리타니 타카시는 2013년까지는 UZR 등도 사카모토만큼이나 우수하게 나왔지만, 부상으로 수비력이 확연히 감퇴한 2014년 이후에도 줄곧 골글을 수상해왔다. 이는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수비 노하우와 '기술'을 중시하는, 나쁘게 말하면 적극적인 수비와 발전된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들을 과소평가하는 일본 야구계 주류의 시각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다.

3.3 주루

주루 면에서도 2013년까지 통산 도루성공률 81.3%를 기록한 준수한 주자이다.

4 에피소드

2008년 리그 우승 자축회에서 "맥주를 끼얹지 말아주세요"(원어 ビールをかけないでください)라는 문구를 걸고 나와 탄산 음료를 맥주 대신 끼얹었다.[5]

원래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잡이인 형의 글러브를 사용하여 야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떠오를텐데, 준족 강견이지만 다소 안정감이 떨어지는 수비, 화끈한 공격력 등 이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닮은 점이 있다.

여담으로 강정호가 사카모토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황재균 이적과 관련하여 팀내 경쟁할 상대가 줄은 것에 대해 인터뷰어가 일본의 사카모토 하야토가 강정호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하자, 그럼 라이벌이네요 식으로 얘기한 것.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기록했다. 오오오

2014년 시즌 전에는 체조스타 타나카 리에와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2015년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로 출전. 개막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쐐기 홈런을 치기도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도미니카 전 이후 마에다 겐타, 아키야마 쇼고, 오노 유다이 등과 함께 대만 걸그룹 멤버들을 끼고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대만 현지 매스컴을 타는 사고를 쳤다. 하필이면 요미우리가 도박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라[6]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고 판단된다. 이미 2014년 시즌 종료후 아베 신노스케 후임으로 주장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이 사건으로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5년 11월 25일, 주장 자리를 반납하는 것에 대해 구단 내에서 검토 중이라고 한다.(일본어 주의) 요미우리 프론트에서는 '마이동풍'을 거론하며 구단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여론도 성적도, 인성도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선수였나며 한탄하는 중.

다행히도 2015년 11월 26일, 국내 FA 자격을 얻어 3년 계약으로 요미우리에 잔류했다. # 주장 직을 2016년까지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프리미어 12때의 사건은 문제삼지 않은 듯하다. 그것보다도 타카하시 요시노부가 은퇴하여 감독이 되었고 아베 신노스케도 남은 현역기간이 얼마 안되는 상황에서 주장자리를 맡길만한 놈이 없었던 게 컸다.

은근히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 데릭 지터와 닮은점이 많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에있는 최고 인기팀의 유격수이자 캡틴이라는 점,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도시적인 외모와 기럭지로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것까지. 물론 커리어 차이는 넘사벽이지만...

  1. 일본 야구계에서 88년생 스타에는 이외에도 마에다 켄타, 야나기타 유키, 아키야마 쇼고 등이 있다. 이들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대'를 잇는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로 평가받는다.하지만 한때 이들 중 최고 스타였던 사이토 유키는...안습~~
  2. 선수의 사생활에 제약을 많이 가하는 편인 요미우리로써는 이런 사건을 저지른 니오카를 그냥 냅둘수 없었고, 시즌이 끝나자 니오카는 닛폰햄 파이터즈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되었다.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후배 선수를 괴롭혔단 사실까지 들키면서 문책성으로 트레이드 된것. 굳이 교진이 아니라 어느 구단이라도 쫓겨날만 했다.
  3. 9.6
  4. 키스톤 콤비를 이루던 유격수 이바타 히로카즈의 어깨부상 염려로 인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원래 포지션에서 더 잘하는 바람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5. 일본법에 따르면 만 20세부터 음주가 가능하다. 여기서 만 20세는 만 20세가 되는 해가 아니라 만 20세 생일이 지나야 하므로, 사카모토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 다음 시즌 리그 우승 자축회에선 그런거 없이 맥주를 잔뜩 끼얹으며 자축했다.
  6. 거기에 요미우리는 이미 가을 캠프때 기율을 단속한 바가 있었고, 프리미엄 12 기간 내내 "되도록 외출은 삼가길 바란다. 외식은 몰라도 술집은 안 된다. 외부인과 접촉을 최대한 피해서 행동하라"라고 누누히 강조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