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와무라 히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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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No.15
사와무라 히로카즈 (澤村拓一)
생년월일1988년 4월 3일
국적일본
출신지토치기 현 토치기시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체격185cm 90kg
프로입단2010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요미우리 자이언츠 (2011~)
201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초노 히사요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와무라 히로카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노무라 유스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NPB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강속구 마무리 투수. 애칭은 근육

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6학년때부터 투수를 맡았다. 중학교때부터 현 대회에 출전, 고등학교 3학년일때는 팀내 no.3 투수로 현 대회에 출전했으나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팀은 결승에서 패배, 고시엔 대회 출장은 이루지 못했다.

선배의 추천으로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굳히고 주오 대학과 토카이 대학 두 곳에 시험을 보고 두 대학 모두 합격했으나 합격 통지서가 먼저 온 주오 대학에 입학한다.
2학년 가을 대회에서 첫선발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팀내 에이스로 자리잡게 되고 같은 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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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가을 리그전에서 일본대학 리그 최고 구속을 156km/h로 경신했다. 2011년 졸업시까지 대학리그 통산성적은 41시합 등판 19승14패 방어율 1.31 266탈삼진.

대학리그에선 직구를 고집하여 2학년 시점에서 직구 구속이 150km/h를 넘게 되었으나 당시 대학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너는 투수가 아니라 그냥 공을 던지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듣고 제구와 변화구를 지도받았다고 한다. 이후 변화구를 습득하여 피칭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2010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대학 선배인 아베 신노스케, 카메이 요시유키등이 소속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을 희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도 사와무라를 1차 단독지명했다. 들어가고 싶었던 구단의 지명을 받은 사와무라는 기자 회견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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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당시 사와무라는 등번호 18번을 희망했지만, 구단 대표는 "사와무라 에이지(사와무라 에이지의 14번은 영구 결번)를 한단계 넘어달라는 의미에서 15번을 달았으면 좋겠다. 18번은 본인의 힘으로 쟁취하길 바란다" 라고 하여 15번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이후 18번은 FA로 이적해온 스기우치 토시야가 받게된다.)

2 프로 입단 후

2.1 2011년

스프링캠프부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여 1군으로 첫 시즌을 맞았다. 4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첫 등판이자 첫 선발을 맡게 되어 7회 교체 될때까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이후 불펜진이 역전을 허용하며 첫 승리를 거두진 못했다. 4월 21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승리를 거두게 된다. 5월 31일 세이부 라이온즈 전에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비교적 좋은 내용의 피칭에도 타선의 지원을 못받았지만 최종성적은 29경기 등판 200이닝 11승 11패 174 탈삼진으로 NPB 센트럴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오프 시즌중에 7살 연상의 닛테레 아나운서 모리 마키와 결혼 발표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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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012년

"상대를 압도하는 피칭"을 목표로 하여 오프시즌부터 웨이트에 전념하여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맞이하여 시즌 초반에는 방어율 1점대를 유지했으나 여름 교류전이 시작되면서 컨디션 난조로 방어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등판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거두며 겨우 10승을 달성하며 2년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27경기 등판 169.2이닝 10승 10패 방어율 2.86 138탈삼진.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선 팀이 3연패하여 탈락 직전의 벼랑 끝인 상황인 4차전에 등판, 무자책으로 승리 투수가 된다. 이후 팀은 3연승으로 일본 시리즈 진출[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등판, 1회부터 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 포수의 견제 사인을 놓치는 바람에 당시 주전포수였던 주장 아베 신노스케에게 시합중에 머리를 얻어 맞는 초유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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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노스케참교육

하지만 이 일로 정신을 차린 사와무라는 1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8이닝 무실점으로 일본 시리즈 첫 선발 첫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 후, 6차전에도 등판했으나 6회 닛폰햄의 나카타 쇼에게 동점 쓰리런을 맞으며 강판, 하지만 팀은 결국 승리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을 하게된다.

이후, 대한민국 부산 광역시 사직 야구장에서 개최된 아시아 시리즈에도 참가, 개최지 팀인 부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팀은 결승에서 대만 프로야구 우승팀 라미고 몽키스에게 승리하며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번외 대회 우승까지 모두 휩쓰는 위업을 달성했다.

오프 시즌엔 쿠바와의 국가대표 시합에 소집되어 국가대표 데뷔, 12월 4일에는 제3회WBC 일본 대표로 뽑히게 된다.

2.3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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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부터 제3회WBC 일본 대표로 참가. 불펜 투수로 등판하여 4경기 3.1이닝 1실점이란 성적을 거둔다

3월말에 부인 모리 마키와 결혼한지 1년 5개월만에 이혼.

시즌 초반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도(당시 센트럴리그 선발투수중 득점 지원이 가장 낮았다고...) 4승 6패 방어율 2.46으로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게 된다.
후반기부터는 선발로써의 경기 내용이 안좋아지면서 후반부터는 아예 중계 투수로 등판하게 되고 불펜 투수로 1승 1패 6홀드 방어율 0.63 이란 성적을 거둔다.
선발, 불펜 합쳐서 최종성적은 158이닝 5승 10패 방어율 3.13 148탈삼진. 포스트 시즌에선 줄곧 중계 투수로 총 5시합을 등판하였다.

2.4 2014년

스프링 캠프에서 어깨 부상을 입어 데뷔 이래 처음으로 2군에서 시즌을 맞이했다. 시즌 중반부터 1군 승격 선발로 12경기에 등판해 72이닝 5승 3패 방어율 3.72 66탈삼진을 거두며 시즌을 끝냈다. 그러나 한신과의 포스트 시즌 2차전에 등판에 선발 등판했지만 한신의 우에모토 히로키에게 빈볼성 사구를 던지면서 위험구 퇴장을 당하게 되고, 이 시점부터 한신의 타격이 폭발하여, 그 시합을 포함아여 팀은 4연패를 당하며[2]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하게 된다.

오프 시즌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불펜 강화를 위해 사와무라를 앞으로 불펜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2.5 2015년

기존의 마무리인 스캇 매티슨이 중계로 이동하고 사와무라가 새 마무리가 되었다. 3월 27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의 개막전에서 9회에 등판, 피홈런을 허용하면서도 첫 세이브를 올리게 된다. 이 후에도 안정적으로 세이브를 쌓으며 전반기에 20 세이브를 달성했다. 7월 16일에는 프리미어 12 일본대표 1차 후보로 뽑히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사와무라의 피칭 영상

오버 스로로 평균 구속 145km/h, 최고구속 157km/h의 패스트볼, 종횡 슬라이더, 커브, 포크를 던지고, 퀵은 1.0초대로 빠른 편이다. 사와무라의 포크는 스플리터처럼 낙차가 적고 140킬로대 구속에 슬라이더성 회전을 해서 종 슬라이더로 혼동되기도 한다. 또한 2012년 일본 시리즈부터 투심도 던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구속과 구위를 자랑하지만 제구에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어 탈삼진율은 통산 7.84로 그리 높지 않다. 본인은 삼진을 잡는 것보다 맞춰 잡는데 중점을 두고있다고 한다.

4 이모 저모

2012년 한 방송에서 "일본 시리즈 우승하면 뭘 할껀가" 란 질문에 같이 출연한 같은 팀의 아베 신노스케, 우츠미 테츠야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라고 대답한데 반해 사와무라는 "트레이닝" 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연습벌레라고 한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줄곧 해온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우 열심히여서 2011년에 스쿼트로 240킬로 중량을 10번 들어올렸다. 최근엔 더 무거운 중량을 들어올리질 못해서 그만뒀다고 한다.

동경하는 선수는 사이토 카즈미. 좌우명은 "저돌맹진(猪突猛進)". 취미는 가전 제품, 몇시간이고 계속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
  1. 당시 2013년 한국시리즈 처럼 1승 3패로 몰렸다가 3연승으로 클라이막스 시리즈를 돌파했었다.
  2. 사실 결정타는 시리즈 처음으로 리드를 잡은 3차전에서 불펜 붕괴가 벌어진 게 컸다. 3회 이후 교진 타선이 점수를 못 뽑는 동안 3차전 선발 스기우치 도시야가 위기를 만들고 내려간 걸 구원 투수들이 수습을 못 하고 동점과 역전을 허용, 그대로 무너졌고 그 여파는 4차전에서 고야마 유키가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으며 절정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