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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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 1977년
대한민국승려이다.속명은 이창림(李昌林).

1 생애

1891년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서 태어났다. 1903년 13세 때 백담사에서 출가하여 10여년간 만해 한용운을 모시며 수학한 직계제자.[1] 1919년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가 되었고, 1929년 만공의 법을 이어받았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북한산의 망월사에서 머물렀다. 1977년 불국사에서 나이 87세, 법랍 74세로 입적하였다. 유언에 따라 사리와 재는 서해에 뿌려졌다.

2 기행

이 스님이 유명한건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의 제자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래의 기행들과 육두문자 설법 때문. 그렇다고 그게 다 해괴한 것도 아니고 해학적이면서도 솔직담백하면서 진리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 군사독재 시절, 춘성스님이 통금을 어기고 길을 걷고 있었다. 스님을 발견한 경찰이 정체를 물으니 중대장이라 답했고, 그게 무슨 뜻이냐 물으니 내가 중들의 대장이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갔다고 한다.

2. 지하철을 타던 중, 예수쟁이가 나타나 그에게 '죽은 부처 말고 부활한 예수를 믿으라'고 하자, 스님이 그들에게 부활이 뭔지 물었다. 이에 예수쟁이들은 부활이란 죽었다 살아나는걸 뜻한다고 답했는데,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렇다면 너희들은 밤에 죽었다가 아침에 살아나는검열삭제를 믿어라."고 답했다.

3. 이번엔 기차를 타던 중, 또 다른 예수쟁이가 나타나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자, "하나님은 어디에나 있으면 똥통에도 있겠네."라고 답변하고 이에 흥분한 예수쟁이가 그럼 부처도 똥통에 있는거냐고 묻자, 스님은 "부처가 똥이고 똥이 부처인데 말하고 말게 뭐가 있냐?"[2]고 대답했다고 한다.

4. 산에서 나무를 베던 중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에게 잡혀가 조사를 받았는데 출신지를 물어보니 '우리 엄마 검열삭제'라고 답하고 다시 물어보니 '우리 아빠 검열삭제'라고 답했다고. 패드립 나중에 절에 돌아가서는 "아 글쎄 그놈들이 내 말귀를 못 알아들어"라고 했다고 한다.

5. 한번은 비구니 사찰 중창불사를 위한 법회에 모피옷과 고급 핸드백 등 온갖 사치품으로 치장한 귀부인들이 많이 방문했는데, 스님이 법문 끝에 던진 한마디가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시집 장가가는 데는 검열삭제검열삭제가 제일이듯, 중창불사 하는 데는 돈이 제일이니 오늘 이 법회에 온 인간들아 돈 많이 시주하고 가거라!

이 이후로 스님이 방문한 사찰에는 방문자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고.

6. "백척간두에서 나뭇가지를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대장부다"대장부 한번 되려다 귀신 되겠다 라는 주제로 백범 김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법문을 했는데,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 발을 더 내딛으면 그 다음 경계는 무엇입니까?"라는 어느 수행자의 질문에 "야, 이 새X야. 내가 떨어져 봤어야 알지."라고 답했다고.

7.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육영수의 생일날 스님이 초청받아 법문을 하게 되었는데, 몇십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오늘은 육영수 보살께서 지 애미 검열삭제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입니다."라고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박정희는 "정말 훌륭한 분이시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한번은 육영수에게 "우리 입이나 한번 맞추자"라고 했는데, 당황한 주위 사람들과 달리 대통령 부부는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스님의 농담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8. 그는 이불이 '부처를 멀리한다(離佛)'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하여 평생 이불을 덮지 않고 살았는데, 한번은 절로 수행하러 온 사람들이 온갖 값비싼 이불을 펴자 "수행하는 자가 따뜻한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 이 놈들아! 그거 당장 내놓거라!"라고 일갈하고는 모두 불태워 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스님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9. 어느 노파에게 노처녀 손녀가 있었는데, 하도 눈이 높아서 웬만한 남자는 성에도 차지 않았다. 이에 노파가 손녀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자 스님에게 보냈는데, 스님이 대뜸 "네 그 좁은 것으로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손녀가 아연실색해서는 할머니에게 돌아가 "스님은 엉터리 땡초다"라고 하자, 노파가 "그럼 그렇지.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네 소견머리에 어찌 큰스님의 바다 같은 깨우침이 들어가겠느냐"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여기서 손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니 추가바람.
  1. 하지만 자신은 만해에게 파문당했다고 생각해 어디에서 만해스님의 수제자라고 하면 극구 부인했다고 한다. 사실 여기엔 일화가 있는데 만해가 투옥되었을 때 춘성을 비롯한 제자들이 스승님의 잠자리를 걱정하여 절에 딸린 밭을 판 돈으로 옷을 지어서 형무소로 가져갔다. 하지만 절의 밭을 팔았다는 사실을 안 만해는 "부처님의 재산을 함부로 팔았단 말이냐! 너는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일갈하였고, 그 이후로 춘성은 "나는 스승님이 계시지 않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2. 후당 시기 선사인 운문(雲門)의 유명한 선문답이다. 어떤 이가 '부처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똥 친 막대기'라고 답했다는 일화. 부처와 대중을 따로 생각하는 분별심을 깨뜨리기 위한 화두로 이후 선불교 역사를 풍미한(?)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