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통화 | |||
베트남 동 (남베트남 동) | 라오스 킵 | 미얀마 짯 | 캄보디아 리엘 |
태국 바트 | 말레이시아 링깃 | 브루나이 링깃 | 싱가포르 달러 |
인도네시아 루피아 | 동티모르 센타보 | 필리핀 페소 |
목차
1 개요
រៀល(크메르어), Cambodian Riel(영어)
캄보디아의 통화이며 ISO 4217코드는 KHR[1], 기호는 ៛, 보조단위로 칵(Kak, 1/10)과 센(Sen, 1/100)이 있지만 이 둘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인플레는 2011년 추정값 6.2%인데 별로 믿을만한 수치는 아닌 모양. 화폐 이름의 유래는 톤레샵 호수에서 많이 잡히는 민물고기 이름에서 따왔다.
라이베리아 달러와 마찬가지로 유명무실한 통화로 유명한데, 이게 다 미국 달러 때문이다. 근원이 되는 자본 자체가 항상 모자란 캄보디아로서는 돈을 "찍기만 할 뿐"이라 리엘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폭락하다보니 UN에서 보다못해 슬며시 달러를 같이 써보라며 끼워주었다.
그런데 현지민들이 자연스레 불안한 리엘보다 안정적인 달러를 더 선호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정부의 끊임없는 반강제 홍보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리엘은 거의 미국 달러의 보조단위까지 격하된 이미지가 정착돼버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캄보디아 관련 여행잡지에는 하나같이 "달러 쓰세요"라고 조언할 정도. 환전값은 4,000리엘/USD 이다. 현지에서 달러를 얘기할 때 가끔 헷갈리게시리 리엘(Riel)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제대로 달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달러는 달러, 리엘은 리엘.) 태국 바트도 국경 주위로 통용되고 있으며, 가~~~끔 단위값이 더 낮은 베트남 동[2]을 섞어서 주는 사기꾼도 있으니 거스름돈으로 리엘을 받을 땐 주의깊게 볼 것. 한국인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대한민국 원도 받아준다 카더라. 단, 외화로 지불해도 잔돈은 리엘로 준다. 이 점 때문에 모 푸른창 웹툰의 부잣집 딸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다 카더라
2 1기 리엘
2.1 1차 (1955 ~ 1961)
구형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리엘 | 킨나리의 입상 | 수상궁 |
width=100% | 5리엘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찬치하야 정자 (프놈펜 궁전 인근) |
width=100% | 10리엘 | 반티아이 스레이 사원 | 프놈펜 중앙시장 |
width=100% | 50리엘 | 뭔가를 지고있는 남자 |
신형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리엘 | 프놈펜 항 | 왕궁 왕좌의 방 |
width=100% | 20리엘 | 콤바인 | 프놈펜 파고다(탑) |
width=100% | 50리엘 | 톤레(호수) 삽[3] | 앙코르와트 |
width=100% | 100리엘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
width=100% | 500리엘 | 춤꾼들의 석상 | 춤추는 춤꾼들 |
2.2 2차 (1962 ~ 1975)
일반권 | 앞면 | 뒷면 | |
width=100% | 5리엘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찬치하야 사원의 입구 |
width=100% | 10리엘 | (1기 1차 10리엘과 동일하나 작고 길쭉하다.) | |
width=100% | 100리엘 (구형)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전구역 |
width=100% | 100리엘 (신형) | 소 두마리 | 춤꾼들 조각 |
width=100% | 500리엘 | 소로 밭을 가는 농부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
미발행권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00리엘 | 직물 짜는 여인 | 앙코르와트 |
width=100% | 500리엘 | 물지게를 이고있는 소녀(?)와 나가(Naga) 상 | 논 |
width=100% | 1,000리엘 | 공부하는 아이들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의 큰 얼굴 |
width=100% | 5,000리엘 | 크롬 응오이 (Krom Ngoy. 캄보디아의 유명한 시인.) | 캄보디아 국립은행 건물 (프놈펜) |
- 이 중에서 당시에 실제로 유통된 것은 500리엘화 뿐이었다. 다만 지금은 이미 많이 뿌려져있어 어렵지 않게 구경할 수 있다.
3 캄푸치아 리엘
1975년 크메르 루주에 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완벽한 사회주의 공산사회를 만들기 위해 화폐 자체를 폐지시켰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미리 일부를 찍어놓기는 해놓았고, 이것이 이후 1979년 베트남발 혁명으로 크메르 루주가 종료, 베트남식 사회주의 경제로 전환된지 2년만인 1980년 4월 1일부터 몰래 숨겨두었던 이 통화가 봇물터지듯 터져나와 베트남 동과 함께 쓰여졌다. (다만 표기상으론 1975년(1차), 1979년(2차)으로 되어있다.) 당시 환율은 4리엘/USD, 1리엘 = 3 VND. 이전 화폐와의 교환비는 산정 자체가 불가능한 고로 무시되었고, 쌀 1kg을 1리엘로 환산하여 배급되었다. (아예 근본부터가 다른 통화라 생각하면 된다.) 시기가 시기였는지 다소 사회주의적 요소나 전쟁적인 요소가 많다.
미발행 | 앞면 | 뒷면 | |
width=100% | 0.1리엘 | 박격포수 3명 | 벼타작 하는 사람들 |
width=100% | 0.5리엘 | 주민들인지 인민군인지 | 선반기계 돌리는 사람과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width=100% | 1리엘 | 협동 논농사 | 선반 돌리는 여자 |
width=100% | 5리엘 | 앙코르와트 | 협동농장의 인부들 |
width=100% | 10리엘 | 기관총을 겨누는 인민(...) | 벼 수확 |
width=100% | 50리엘 | 모내기 하는 사람들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바주카포를 겨누는 여자 인민군(...) |
width=100% | 100리엘 | 공장 인부들 | 추수 |
발행 | 앞면 | 뒷면 | |
width=100% | 0.1리엘 | (없음) | 소로 밭가는 모습 |
width=100% | 0.2리엘 | 모내기 | |
width=100% | 0.5리엘 | 여객용 열차 | 삽 호수에서 그물로 고기잡이하는 사람 |
width=100% | 1리엘 | (없음) | 벼 수확 |
width=100% | 5리엘 (구형) | 공무원, 농부, 일꾼, 군인 | 대(對)프랑스 승리 기념탑 |
width=100% | 5리엘 (신형) | (적갈색 → 적색으로 변경) | |
width=100% | 10리엘 (구형) | 정원손질(?) | 학교 |
width=100% | 10리엘 (신형) | (보라색 → 녹색으로 변경) | |
width=100% | 20리엘 | (없음) | 소를 이용한 벌목작업 |
width=100% | 50리엘 (구형)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앙코르와트 |
width=100% | 50리엘 (신형) | 정체 불명의 남자 | 콤퐁 솜 항구 (시하눅빌 소재) |
width=100% | 100리엘 | 고무나무에서 고무 채취하는 중 | |
width=100% | 500리엘 | 앙코르와트 | 트랙터 |
- 50리엘 신형부터 500리엘까지는 1991년 발행으로 되어있다.
3.1 크메르 루주 스타일 대체통화
1993년부터는 사실상 현 캄보디아 왕정이 다시 세력을 잡았지만, 서부의 일부지역(태국의 극동부 약간을 포함)은 여전히 크메르 루주 당원들이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통화는 그 시기에 당시 임시정부(?)가 있었던 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국 바트와 캄보디아 리엘간의 통화교류를 위해 마련한 것. 1996년 지도자에 해당하는 폴 포트가 평화협정에 의해 태국으로 귀순, 1998년 4월 15일에 사망함에 따라 1999년부터 통용이 중단되었다. 참고로 엄연히 정식 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대체통화로 제목을 기입하였다.
크메르 루주 | 앞면 | 뒷면 | |
width=100% | 5리엘 | 아이들 | 물소 수레에 타고있는 사람들 |
width=100% | 10리엘 | 흔한 밭을 낀 마을 | 흔한 바닷가 마을 |
width=100% | 20리엘 | 흔한 번화가(?) 마을 | 엄청나게(?) 몰린 사람들 |
width=100% | 50리엘 | 모내기 | 쟁기질 |
width=100% | 100리엘 | 쌀 수확 | 앙코르와트 |
- 여담이나 위 5매는 2014년 현재, 매우 구하기 어려운 희귀종 취급을 받는다.
4 2기 리엘
4.1 1차 (1990 ~ 2000)
실제로는 1993년부터로 추정되고 있다.
구권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00리엘 | 독립기념탑 | 고무나무 숲 |
width=100% | 200리엘[4] | 홍수댐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width=100% | 500리엘 | 앙코르와트 | 논 |
width=100% | 1,000리엘 (구형) | 바욘 신전 (앙코르와트) | 톤레 삽 호수 |
width=100% | 1,000리엘 (신형)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 | 찬차야 정자 |
width=100% | 1,000리엘 (개신형) | 바욘 신전 (앙코르와트) | 건설현장 |
width=100% | 2,000리엘 (구형)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노로돔 국왕(젊은시절) | (없음) |
width=100% | 2,000리엘 (신형) | 톤레 삽 호수 | 앙코르와트 |
width=100% | 5,000리엘 | 반데이 스레이(여인의 성채) 사원 및 노로돔 국왕 | 프놈펜 중앙시장 |
width=100% | 10,000리엘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석상 및 노로돔 국왕 | 동남아 특유의 카누 |
width=100% | 20,000리엘 | 프놈펜 항 및 노로돔 국왕 | 왕궁의 옥좌 |
width=100% | 50,000리엘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및 노로돔 국왕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지구 |
width=100% | 100,000리엘 | 노로돔 시하모니, 모니네스 국왕부부 | 국왕부부가 시장에서 |
4.2 2차 (현행권, 2001)
현행권 | 앞면 | 뒷면 | |
width=100% | 50리엘 | 반티아이 스레이 사원 | 댐 |
width=100% | 100리엘 | 독립기념탑[5] | 학교 |
width=100% | 100리엘 (신권, 2015) | ||
width=100% | 500리엘 | 앙코르와트 | 캄퐁 참에 있는 다리 (메콩강 유역) |
width=100% | 500리엘 (신권, 2015) | ||
width=100% | 1,000리엘 | 아발로키테스바라 보살석상 | 콤퐁 솜 항구 |
width=100% | 2,000리엘 |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 앙코르 와트 앞마당의 논(...) |
width=100% | 5,000리엘 |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과 나가[6]의 두상 | 캄퐁 크데이 다리 (씨엠렙 주) |
width=100% | 10,000리엘 | 왕궁 | |
width=100% | 20,000리엘 | 앙코르와트 및 내부의 바욘 신전에 있는 아발로키테스바라[7] 보살의 사두(四頭)석상 | |
width=100% | 50,000리엘 | 앙코르와트 |
- 50리엘(14원)은 너무 가치가 없어서, 10만 리엘(27,000원, 2013년 5월 8일 새로 등장)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안 쓰이고 있다.
5 동전
1979년 5센짜리 동전이 최초로 등장했지만 익년부터 폐기되어 1994년까지 방치되었다.
그 이후 50, 100, 200, 500리엘짜리 동전이 잠깐 등장하긴 했는데 이 역시 통용이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졌고, 2013년 현재 캄보디아에는 동전이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중이다.
6 기념권
기념권 | 내용 | 앞면 | 뒷면 | |
width=100% | 1,000리엘 (2012) | 노로돔 시아누크 왕 사망 기념(...) | 시아누크 왕, 나가 신의 두상 | 백조 모양의 선형(船形) 차량으로 시아누크 국왕의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 |
width=100% | 100,000리엘 (2012) | 시아모니 왕 환갑기념 | 국왕부부와 나가 신의 두상 | 노로돔 국왕 일가 |
width=100% | 리엘 (2013) | 독립 60주년 | 노로돔 시아누크 왕과 나가 신의 두상 | 1953년 12월 노로돔 시아누크가 인민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는 모습의 사진 독립기념탑 (from 프랑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