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통화 | |||
베트남 동 (남베트남 동) | 라오스 킵 | 미얀마 짯 | 캄보디아 리엘 |
태국 바트 | 말레이시아 링깃 | 브루나이 링깃 | 싱가포르 달러 |
인도네시아 루피아 | 동티모르 센타보 | 필리핀 페소 |
목차
1 개요
300px
거의 최근에 발행된 현행구권. (14, 15차)
บาทไทย (태국어)
태국의 통화로 ISO 4217 코드로는 THB. '밧'이라고도 부르며, 보조단위로는 섯땅(สตางค์)[1]이 있다. 다만 이 보조단위는 1/2(50섯땅), 1/4단위(25섯땅)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25섯땅을 1설릉(สลึง)이라고 부르는 게 기본. 기호는 ฿. "밧"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무게단위. 옛날 시암 지방에서는 은전을 통화로 써왔는데 그 기준이 되는 한 푼이 대략 15g이었던 것이다.
바트화 자체의 역사는 거의 근현대 태국 역사와 동일시 될 정도로 오래되었다. (태국은 외세에게 정복당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점도 참고하자.) 다만 근대화 동전은 라마 3세에 의해 1835년 처음 등장했고, 근대화 지폐는 정부에 의해 1851년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거의 어음 수준이었고 실질적인 현대형 지폐는 1902년에 처음 등장해 중앙은행에서도 1902년 발행분을 최초로 인정하고 있다. 이후 본격적으로 현대 통화 체계를 구축한 중앙은행은 1942년 4월 28일에 등장했다.
인플레이션은 약 4.1%인데 최대 10%대까지 오를 정도로 대외쇼크에 약하다. 그렇지만 인근 빈국(...)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에서는 불안한 자국화폐를 대신할 미국 달러 대용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인도차이나의 패자. 그렇지만 베트남도 만만찮아서 위 세 나라 국경 근처에 한해 미묘하게 반응하는데 아무래도 라이벌 관계에 있다보니 썩 좋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모양. 차이점이 있다면 태국 바트는 받아들이기 좋은 것이고 베트남 동은 배출하기에 좋은 통화이다.
은행 수수료는 높은 곳은 KEB하나은행이고 낮은 은행이 SC은행이다. 대략 평균 수수료는 4~5%내외이다. 더 싸게 살려면 서울역 안에 있는 은행 환전소로 가는 것이 좋다.[2]
시세는 2016.01.29일자 SC은행 기준으로 한다. 당시 시세는 1바트당 현금 매수할때 환율이 34.22이다.[3]
20바트 690원 | 50바트 1,710원 | 100바트 3,420원 | 500바트 17,110원 | 1,000바트 34,220원 |
2 10진법 이전 바트화
1897년 이전의 바트화 체계로, 파운드 스털링같이 복잡한 단위들이 있었다.
- 1창 = 20탐릉 = 80밧
- 1밧 = 2마용 = 4살룽 = 8페앙 = 16시크 = 32시오 = 32파이 = 64앗 = 128솔롯
- 1앗 = 100비아
3 근대화 바트화
- 놀랍게도 1942년 중앙은행 등장 이후 엄청난 개정과정과 숱한 우여곡절을 견뎌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디노미네이션을 치르지 않았다. 각 시리즈별로는 호환이 가능하며, 전 통화가 사용 가능한 법정통화로 남아있다. 다만 시중에서는 위폐로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최대 2개 시리즈 정도까지만 용인하는 분위기이다.
3.1 1차
1902년에 발행되었는데 한쪽 면에만 인쇄한 점이 특이사항. 정확히 100년 뒤인 2002년에는 이 점을 이용해서 기념권을 발행했었다.
3.2 2차
1925년 라마 6세 때 영국에서 발행했다. 옛날식 디자인에 흔히 들어가는 끈목형 장식에 방사형 배경을 넣은 시리즈. 라마 7세가 즉위하면서 교체되었다.
3.3 3차
1934년에 발행되었다. 태국지폐 최초로 얼굴이 들어갔는데 그 주인공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라마 7세이다. 즉위와 동시에 발행되었고, 하직하자마자 교체되었다.
3.4 4차
이때는 태국과 영국이 나누어서 발행했었다.
3.5 5차 (일본발행)
5차 | 메인 건물 | |
300px | 50사탕 | |
300px | ฿1 | |
300px | ฿5 | |
300px | ฿10 | |
300px | ฿20 | |
300px | ฿100 | |
300px | ฿1,000 |
- 라마 8세의 당시 어렸을 때 모습이 그려져 있다.
3.6 6, 7차
6차, 7차 | 메인 건물 | |
300px | ฿1 | |
300px | ฿5 | |
300px | ฿10 | |
300px | ฿20 | |
300px | ฿50 | |
300px | ฿100 |
- 20, 100바트는 6차에 해당한다.
- 6차와 7차 사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나라가 난리통이 돼버려 해외(인도네시아, 영국 외)에서 급히 찍어다 조달했었다. 중앙은행에서는 이를 특별발행권이라 부르고 있다.
3.7 8차 (미국발행, 1946)
시기상 2차 대전 직후에 발행되었는데, 라마 8세가 그려진 긴급발행권에 가까운 성격의 시리즈이다. 1, 5, 10, 20, 100바트화의 5종이 출시, 모조리 비스무리한 모양으로 등장했다.
3.8 9, 10차 (1948)
9차, 10차 | 주요 도안 | |
300px | 50사탕 | |
300px | ฿1 | |
300px | ฿5 | |
300px | ฿10 | |
300px | ฿20 | |
300px | ฿100 (9차) | |
300px | ฿100 (10차) | 수판나홍 (왕실용 유람선) |
- 9차권종의 경우, 1953년에 앞면 라마 9세의 도안을 살짝 손보았었다.
3.9 11차 (1969)
11차 | 뒷면 | |
300px | ฿5 | 아폰피목 쁘라삿 |
300px | ฿10 | 왓 벤차마보피트르 |
300px | ฿20 | 아난타나가랏 (왕실용 유람선) |
300px | ฿100 | 왓 프라께오 및 왕궁 |
300px | ฿500 | 프라 쁘랑 삼 (롭부리) |
3.10 12, 13, 14차 (1978)
12차, 13차, 14차(전기) | 뒷면 | |
300px | ฿10 | 라마 5세의 기마상 |
300px | ฿20 | 딱신 동상 (찬타부리) |
300px | ฿50 | 라마 7세의 동상과 왕궁 |
300px | ฿100 | 나라수안 대왕상 |
300px | ฿500 | 라마 1세 동상 및 왓 프라께오 (에메랄드 신전) |
300px | ฿1,000 | 중년기의 라마 9세 부부 |
3.11 14, 15차 (1994 ~)
1994년에 처음 등장해 2005년에 완성된 시리즈.
14차(후기), 15차 현행권 | 뒷면 | |
300px | ฿20 | 라마 9세의 젊은시절 모습과 라마 8세 다리 |
300px | ฿50[4] | 라마 6세 (큰모습) |
300px | ฿100 (구형) | 라마 5세와 라마 6세 |
300px | ฿100 (신형) | 라마 5세 (큰 모습) |
300px | ฿500 (구형) | 라마 1세와 라마 2세 및 왓 프라께오 |
300px | ฿500 (신형) | 라마 3세의 모습과 왓 랏차나다람의 로하 쁘라삿 |
300px | ฿1,000 | 라마 9세와 빠삭 졸라시드 댐 |
- 500바트와 1,000바트의 초기버전은 14차에 속했다.
3.12 16차 (2012 ~)
2012년 1월 12일부터 처음 등장하여 계속 발행 진행중인 시리즈.
16차 현행권 | 뒷면 | |
300px | (앞면공통) | 푸미폰 9세 |
฿20 | 람캄행 국왕 동상 | |
฿50 | 나레수안 국왕의 좌상과 미얀마로 진격하는 모습의 승상상(乘象像) | |
฿100 | ||
฿500 | ||
฿1,000 | 라마 5세 |
3.13 기념권
태국 바트화는 다른 통화와는 그 수준을 달리하는 엄청난 수량의 기념권이 존재한다. 게다가 그 내용이 죄다 왕실 관련인 건 당연 아닌 당연. 농담삼아 태국은행이 돈으로 외화벌이한다고 할 수준이다. 단순하게 기존지폐 위에다가 첨쇄한 종류를 제외하고도 아래와 같다.
기념권 | 기념내용 | 주요도안 | |
300px | ฿60 (1987) | 푸미폰 국왕 60번째 생일 | |
300px | ฿50 (1996) | 푸미폰 국왕 즉위 50주년 | |
300px | ฿500 (1996) | 푸미폰 국왕 즉위 50주년 고액판 | |
300px | ฿1,000 (1999) | 푸미폰 국왕 72번째 생일 | |
300px | ฿50 (2000) | 푸미폰 국왕과 시리킷 왕비 결혼 50주년 | |
300px | ฿500,000 (2000) | 푸미폰 국왕과 시리킷 왕비 결혼 50주년 고액판[5] | |
300px | ฿100 (2002) | 태국 지폐 발행 100주년 | |
300px | ฿100 (2004) | 시리킷 여왕 72번째 생일 | |
300px | ฿60 (2006) | 푸미폰 국왕 즉위 60주년 | |
300px | ฿1+5+10[6] (2007) | 푸미폰 국왕 80번째 생일 | (뒷면) 푸미폰 국왕의 일생 연대기 |
300px | ฿100 (2010) | 푸미폰 국왕과 시리킷 왕비 결혼 60주년 | |
300px | ฿100 (2011) | 푸미폰 국왕 84번째 생일 | |
300px | ฿80 (2012) | 시리킷 여왕 80번째 생일 | |
300px | ฿100 (2012) | 마하 와찌랄롱꼰 왕자 60번째 생일 |
4 환율 추이 관련
4.1 태국 바트의 아시아 금융위기
1997년 대한민국 외환위기의 원인중 하나였던 사건이다. 조지 소로스와 헤지펀드들이 단체로 태국 금융시장을 공격해서 무너뜨린 여파가 대한민국까지 들이닥친 것인데, 정확히는 1997년 5월 15일에 태국이 환율을 이용해 점차 드러나는 외환적자를 채워보고자 진행한 자본통제를 발표하면서 시작점을 끊었다. (이를두고 똠얌꿍 위기라고 한다(...)) 7월 2일 태국은행은 바트화의 가치를 기본 20%이상 연속적으로 끌어내리면서 ฿25/$(1990~1996년 평균)였던 것을 ฿29/$(1997년 후반기)까지 폭락 시켰다. 더 이상 내리지 않겠다는 선언 이후에 변동환율제라는 새로운 카드를 내놓은 태국 정부에 위기감을 느낀 외자본 주주들이 긴급히 발을 빼는 바람에 붕괴, 결국 IMF에게 170억 달러를 빌려쓰게된다. 이를 갚으려 긴급히 바트화 회수에 나선 정부의 피흘리는 노력으로 바트화는 ฿55/$(1998년, 1.8¢/฿)까지 대폭락하였다. 하지만 이후 천천히 회복하면서 02년 ฿45/$(2.2¢/฿), 08년 ฿30/$(3.3¢/฿), 13년에는 ฿33/$(3¢/฿)까지 회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인근 관련국인 필리핀, 말레이시아 그리고 특히 인도네시아[7]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한국은 몰론, 러시아와 브라질, 아르헨티나까지 영향이 퍼져나갔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같은 경우는 방어하는 데 성공하였다.
4.2 2013년 태국 시위
2013년 5월부터 무언가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더니 9월과 10월 사이에 (이하, 바트당 미국 달러로) 3.1~3.2센트를 기록하더니, 11월 시위가 터지자마자 3.0센트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2014년 5월 계엄령 선포가 이뤄진 현재까지 아주 잠깐씩을 제외하곤 3.1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동시기 한국 원 환율이 달러대비 가격이 치솟는것에 비하자면 바트와 원의 관계는 거의 역전급이라 볼 수 있다. (2014년 5월 말 현재 31.5원/฿) 그래도 2000년대 중반 25원~28원대에 비하면 아직인가
5 기타
태국이 불교국가다보니 연도표기시 불력(佛歷)을 병기하고 있다.
한국 외환은행에서 보통으로 취급하는 외화이다. 지폐 현찰은 대부분 100바트짜리를 준비해두는 편.
지폐 전면에는 모두 태국 국왕(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이 그려져 있어 태국법에 의해 지폐를 일부러 훼손하거나 지폐가 들어있는 지갑째로 밟기만 해도 경찰에게 잡혀간다.- ↑ 외국인들 입장에선 일반적으로 사탕 혹은 사땅이라 부른다.
맛있겠다 - ↑ 사설 환전소 좋긴 하지만 위조지폐만 조심만 한다면.. 더 싸게 사올 수 있다.
- ↑ 당시 은행 스프레드율은 2.03% 여기에서는 지폐로 기준으로 하며 소수점은 무조건 올림 처리 및 일단위 5이상 경우 반올림 적용
- ↑ 폴리머(구형)와 면재질(신형) 2종류가 있다.
- ↑ 엄청난 액면(액면가만 한화로 약 1,500만원을 훌쩍 넘는다.)때문에 구경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다 크기도 장난아니게 크다. 그렇다고 특별히 비싼 무언가를 주입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거의 부자들의 장난감 혹은 기부용 증서나 다름없다.
- ↑ 이게 뭔 말인고 하면 앞면에는 1, 5, 10바트짜리를 나란히나란히 붙여놓고 뒷면은 통째로 그림을 바꾸어 넣었다. 때문에
필요성도 못느끼겠지만잘라다 쓸 수도 없다. 일단 정의하기엔 16바트짜리라고도 한다. - ↑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아예 물가교란으로 인한 폭동때문에 당시 대통령인 수하르토가 사임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