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화폐 변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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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통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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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대한민국 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 | ||
중화인민공화국 위안 | 홍콩 달러 | 마카오 파타카 | 신 대만 달러 |
대한민국 원 | ||
KOREA WON ₩ | ||
ISO 4217 코드 | KRW | |
중앙은행 | 한국은행 | |
사용국 | 24px 대한민국 | |
기호 | ₩ | |
단위 | ₩1, ₩5, ₩10, ₩50, ₩100, ₩500 ₩1000, ₩5000, ₩10,000, ₩50,000 | |
인쇄처 | 한국조폐공사 |
목차
1 소개
한국은행법 제47조의2(화폐단위) ①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원으로 한다. ② 원은 계산의 단위가 되고 100전으로 분할된다. ③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④ 전은 영문으로 JEON으로 표기한다. [본조신설 2012.3.21.] |
대한민국의 통화로 ISO 4217 코드는 KRW, 기호는 ₩이다. 보조단위로 "전(Jeon)"이 있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망했어요. 1원, 5원짜리 동전은 은행업자들 간의 결산거래 및 주화세트용으로만 소량씩 제작되며, 실생활에서는 10원, 50원도 거스름돈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전 단위의 안습한 처지에 대해 조금더 부연해보자면, 시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효한 전 단위 대응 법정화폐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1] 현재 전 단위는 전산 상으로나 주고받을 수 있으며, 따라서 실생활에서는 환율 놀음(...)을 할 때에나 간간이 쓰인다.[2]
1.1 단위 입력하기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당신이 쓰고 있는 기기에서는 \로 나온다.)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므로 공식 서한 등에서는 통화 코드인 KRW를 사용하는 편이다.
2 해방 이후 ~ 한국은행 수립 전
550px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일본에서 계획한 조선은행권은 도안이 바뀌면서 한국은행권이 나오기 전까지 2차긴급통화조치 전까지 통용했었다. 일본 도안에 새겨져 있었던 일명 '수노인'은 독립문으로 교체되었고 일본의 오동문양(키리몬桐紋)은 무궁화로 교체되었다. 또한 인쇄를 일본 인쇄국이 아닌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 인쇄를 맡았다.
"유엔"의 이름으로 새나라가 세워지기는 하였으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나이 어린 이 신생정부는 소꼽장난 같은 살림살이로 선후 없이 주먹구구로 그 명맥을 이끌어오고 보니 종이조각과 다를 게 없는 지폐가 마치 거미 똥구멍에서 실 나오듯 마구 쏟아져나오게 되었다."1959년의 불연속성 ··· ⑪ 주화발행",
1959년 12월 29일 조간 1면, 《동아일보》, 그동안의 발권정책 역사를 되짚어보며.[3]
...그래서인지 상당히 저퀄이다.
3 1기 시리즈
한복 천원 (일본인쇄). 이 권종은 1차 화폐개혁 후 환권에서 이승만이 많이 인쇄되어서 일명 '한복' 천원이라고 불리운다.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들어낸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1,800원/USD. 하지만 2주만에 희대의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공식적 첫 은행권 출범은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이승만 1,000원권과 광화문 100원권. 기존의 조선은행권과 같이 사용이 가능한 통화였다. 당시 조폐공사의 기술력이 저조하여 천원권에 경우에는 지폐의 판 번호 1번부터 500번까지는 일본에서 인쇄했고 판 번호 501번 이후는 한국에서 인쇄했다. 그래서 일본인쇄권과 한국인쇄권은 품질이 다르다.
하지만 이도 얼마 못 가 북쪽의 초대 꿀꿀이가 남한 정부의 경제를 마비시킬 작정으로 판본(엄밀히는 조선은행권의 판본)을 득하여 위조지폐를 눈 뿌리듯 퍼부어댔고(북한발행 1천원권), 은행 본사마저 완전히 털려버리는 바람에 말 그대로 은행이 폭파되어버려 첫 시리즈는 제 기능을 그대로 상실하고 말았다. 발단이 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도 참고하자.
1952년 완전히 서울을 되찾았을 때 긴급히 조선은행권을 이승만&파고다공원 1,000원/500원 권(국내생산인 두번째 시리즈)과 교체해주며 무마하려 했으나 이미 통화시스템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유명무실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5일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때 환율은 6,000원/USD.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1945년 ~ 1950년 전반에는 조선은행권(일제치하기 시절 은행권)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비록 조폐공사 출신은 아니지만 연감통계등에는 이 시기의 통화로 놓고 본다. 1945년 환율은 15원/USD이니 이것으로 8년간 평균을 계산해보면 대략 200%쯤 된다. 다만 물가와 환율은 1:1대응이 아님에 유의하자. 생필품 물가는 더 지독하게 폭등했는데, 1945년 8월부터 12월까지 쌀값의 경우는 무려 55배나 폭등했다.
여담으로 이 시기가 원 단위에서 유일하게 당시 생존인물을 화폐도안에 올린 사례다. 환 시절에는 한창 집권기였으니 당연히 올라갔다.
4 2기 시리즈
2기 시리즈의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4] "전(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4.1 1차 (영제권)
1962년 6월 10일, 경재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원"화의 복귀에 의의를 두어 내놓았다. 1기의 "원"화와의 차이점은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5]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비율은 10환 = 1원이다. 따라서 1기 원화와의 비는 1000:1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6]
이 시기 박정희가 주도한 화폐개혁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우선 화폐 자체를 조폐공사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 수입했기 때문에 물량이 그야말로 태부족이었으며, 무엇보다 문제는 1인당 신화폐 500원 이상은 교환불가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3차 긴급통화 금융조치인데, 이 과정에서 기존의 환화는 지폐는 물론이고, 주식, 채권, 어음, 유가증권까지 모조리 등록을 해야 했다. 물론 원화로 바꿔주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겨우 500원 한정. 사람들은 미친 듯이 교환을 했으며 사람을 동원해서 바꿨지만 결국 상당수의 환화는 그대로 수중에 남아버렸다. 당연히 환화의 가치는 급락을 시작. 동전에 대해서는 허용을 해줬는데, 이 때는 1/10로 바꿨기 때문에 가게에 있는 동전을 노린 집단 행동이 이어졌다. 환화 지폐를 내고 동전을 내놓으라는 사람들도 많았고, 환화를 처분하기 위해서 쌀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종이조각이 된 환화를 들고 한국은행으로 달려가서 지폐를 찢고 불을 지르면서 항의했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여기에 예금을 동결시킨 것까지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분노를 샀다. 결국 이 통화조치는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화폐를 기존의 환화에서 원화로 돌려놓은 것 외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7]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폰트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몰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옛 1환단위)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8]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이미 빈부격차는 시작되었다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9]이다.
앞면 | 뒷면 | ||
300px | 십전, 오십전 | - | |
300px | 일원 | - | |
300px | 오원 | - | |
300px | 십원 | - | |
300px | 오십원 | 총석정[10] | 봉화 |
300px | 백원 | 독립문 | 봉화 |
300px | 오백원 | 숭례문 | 봉화 |
-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 여담이지만 이 당시(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서울에 집 한채 혹은 외제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4.2 2차
- 2차와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1962.09) → 나 백원권(1962.11) → 다 백원권(1965.08) → 나 오백원권(1966.08) → 나 오십원권(1969.03) → 가 오천원권(1972.07) → 가 만원권(1973.06) → 다 오백원(1973.09) → 가 천원권(1975.08) → 나 오천원권(1977.06) → 나 만원권(1979.06) 이다.
묶기는 2차로 묶었으나, 1차 시리즈 및 3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시리즈의 선행판 정도로 보면 된다.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수입산을 버리고 국내산을 쓰자는 운동이 크게 벌여지면서 적극 도입된 결과이며, 근본적인 도입 목적이기도 하다.[11] 1966년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하면서 이전권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둘 다 OME!!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세종대왕님은 은근히 작화보정(...)[12]을 받았지만 율곡 이이는... 망했어요.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10000wonsample.jpg
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13]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14]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지만, 양대 종교단체 모두의 반발을 감안하지 않은 탓에 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기독교계는 '불교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불교계는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각각 반대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되었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원판화를 담당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앞면 | 뒷면 | ||
300px | (나) 십원[15] | 첨성대 | 거북선 |
300px | (나) 오십원 | 파고다공원의 팔각정[16] | 봉화와 무궁화 |
300px | (나) 백원 | 독립문 | 경회루 |
300px | (나) 오백원 | 숭례문(남대문) | 거북선 |
(가) 오천원 | 이이, 봉화 | 한국은행 본관 | |
(가) 만원 | 세종대왕, 무궁화 | 경복궁의 근정전 |
-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
4.3 3차
묶기는 3차로 묶었으나, 2차 시리즈와 시기가 엇갈려 있다.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되고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여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50원(1972년 12월 1일), 100원(1970년 11월 30일)동전이 추가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앞면 | 뒷면 | ||
300px | (다) 백원 | 세종대왕 | 한국은행 본관 |
300px | (다) 오백원 | 이순신,거북선 | 현충사 |
300px | (가) 천원 | 이황, 무궁화 | 도산서원 |
300px | (나) 오천원 | 이이 | 오죽헌 |
(나) 만원 | 세종대왕 | 경회루 |
4.4 4차 (구권)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화폐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17] 체계가 되었다. 지폐 자체의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18],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앞면 | 뒷면 | ||
300px | (나) 천원 | 이황, 투호[19], 사슴 | 도산서원 |
300px | (다) 오천원 | 이이, 벼루[20], 학 | 오죽헌 |
(라) 오천원[21] | 기번호(시리얼)가 다르다.[22] | ||
(다) 만원 | 세종대왕, 물시계[23], 용 | 경회루 | |
300px | (라) 만원[24] | 앞면 여백부분에 소용돌이 무늬 추가 | |
(마) 만원[25] | 앞면 여백 아래 점자를 금색으로 변경 |
구권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아주 간혹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 이곳이 사형장이로구나
4.5 5차 (현행권)
대한민국의 지폐 | |||||
색상 | 청색 | 회색 | 주황색 | 녹색 | 노란색 |
지폐 | 천원 | 이천원 | 오천원 | 만원 | 오만원 |
전면 도안 | 이황 | 스피드 스케이팅 등 7개 동계올림픽 종목 | 이이 | 세종대왕 | 신사임당 |
후면 도안 | 정선의 계상정거도 |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 혼천의, 천상분야열차지도 | 사임당의 초충도 |
크기 | 136mm * 68mm | 140mm * 75mm | 142mm * 68mm | 148mm * 68mm | 154mm * 68mm |
파일:/image/kor/contents/money/money five img06.jpg
2006년 1월 2일에 위조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되었다.[26]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
그러나 돈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이전보다 빠진 장식과 간략해진 글꼴 등에 대해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 답지 못하다는 것.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27]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정도 수긍하는 분위기. 또한 사람들이 이젠 크기가 작아진 신권에 익숙해지면서 도리어 옛날 지폐가 커서 불편했겠다라는 반응. 적응력의 힘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남아있긴 하다. 그리고 천원권이 푸른 색으로 바뀌면서 한동안 야간에 만원권과 헷갈리는 사단이 자주 벌어졌다. 유로를 참고했다면 좋았을 것을.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가능한한 자극적으로 틀어준 것까지 훌륭하게 콜라보레이션 되어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몰론,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흡사 코믹마켓 개장 전 모습인 마냥.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 자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
2014년 현재 5만원권의 회수율은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야 당연히 뇌물 및 비자금의 용도로 사용되므로 그럴 수밖에...
앞면 | 뒷면 | |
(다) 천원 | 이황, 명륜당[28], 매화 | 계상정거도 |
(마) 오천원 | 이이, 오죽헌(몽룡실) |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
(바) 만원 |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 혼천의[29], 천상열차분야지도,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 |
(가) 오만원 |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 월매도와 풍죽도[30] |
4.6 동전(주화)
대한민국의 주화 | |||||||
액수 | 1원 | 5원 | 10원 | 50원 | 100원 | 200원 | 500원 |
무늬 | 무궁화 | 거북선 | 다보탑 | 벼이삭 | 이순신 | 고려청자 | 두루미 |
공식적으로는 6종류이나, 실제로는 4종류만 쓴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4.7 수표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s-1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사실상 화폐 취급된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국내 수표는 종류를 불문하고 환전이 불가능하다. 뭐 그래도 예외가 있다면, 한국의 원화표시 여행자수표가 출동하면 어떨까? 문제는 여행자수표의 특성상 현금으로 바꾸기 까지 걸리는 시간이 시망#s-3인지라 사실상 불가능 한거나 마찬가지니 국제현금카드#s-1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망했어요(...)
- 자기앞수표 - 발행인과 지급인이 동일한 수표. 한국에서는 주로 특수 및 국책은행을 포함한 제1금융권 시중은행 에서 발행한다.[* 물론, 제2금융권역에서 취급하는 곳들은 상호저축은행#s-1, 지역단위농협, 지역단위수협, 산림조합#s-1, 신협, MG새마을금고가 있다.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 산하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체국 자기앞수표는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주기 때문에 제이이이이일!로 안전하다(...)- 십만원권 수표 (연보라색)
- 오십만원권 수표 (초록색)
- 백만원권 수표 (진파랑색)
- 백지수표 - 약속어음과 당좌수표 모두 백지수표라고 부를 수 있다.
5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
백원 주화의 이순신과 만원권 지폐의 세종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이황, 이이,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등록이 될 만한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다. 나름대로 해당 분야의 위인이라는 점에는 공감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위치에는 걸맞지 않다는 정도의 지적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 대왕을 넣었으면 훈민정음을 적절히 개량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주시경은 넣지 않는가?"식의 의문도 가능하다. 그 외에 이황과 이이가 모두 유교 철학자라는 점에서 현대에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유교학자만 한 사람도 아닌 여러 명 넣을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100원 동전부터 5만원권 지폐까지 전원 조선 초중반 고작 200년 정도 되는 기간에 살았던 인물들 뿐이라[31] 시대적으로도 몇천년 한국사가 무색하게 너무 시대적으로 편중되어있고, 게다가 비교적 최근에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모두 이(李)씨라는 점도 지적대상이었다. 신사임당으로 이거 하나는 깨지긴 했지만, 그나마 신사임당조차도 오천원 이이의 어머니이자 이씨 집안 며느리긴 하다.
문제는 그럼 누구를 넣느냐에 대한 대안 역시 마찬가지 이므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같이 아예 넘사벽의 명성이 아니라면 누가 들어가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흔히 후보군으로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강감찬 같은 위대한 정복군주 혹은 명장이나 장영실 같은 세기의 과학자, 김구, 안중근, 유관순 같은 독립운동가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문제는 넘사벽인 광개토대왕이나 뛰어난 과학자였던 장영실은 논란없이 들어간다 쳐도 독립운동가인 위인들은 논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지폐의 도안이 된 인물들이 죄다 조선시대 사람인 것이 일본의 반발을 의식해서라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구나 안중근 같은 위인을 넣을 경우 일본에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하며 한국 지폐 사용을 기피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32] 혹여 일본을 씹고 김구나 안중근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넣는다 쳐도 뉴라이트 같은 꼴통보수 진영에서 이승만을 넣어야 한다고 시비를 걸 수 있다. 또한 김구의 경우 일반 대중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극우적인 행보로 인한 병크가 제법 있어 진보 및 좌파 진영에서도 반대할 소지가 다분하다. 결국 정치와 연관되어 있고 진영 싸움을 불러온다. 논쟁을 어찌저찌 끝내고 개정한다 쳐도 이에 수반되는 비용이 제법 들어가는지라, 굳이 그렇게 돈을 들이면서까지 정부가 인물을 바꿀지 미지수. 게다가 그 정부마저도 정권을 새누리당이 잡았는가 기타 야당이 잡았는가에 따라 지폐 도안 교체에 소극적이냐 적극적이냐가 갈릴 수 있다. 게다가 여론조사니 뭐니해서 그 이전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누가 들어가냐는 그저 처음에 제정한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국회의사당 건물에 왜 돔이 있냐는 질문과 비슷하다.
이 때문인지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 이씨여야만 화폐인물이 될 수 있다는 조크가 오랫동안 믿어지기도 했다. 예전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어서 잠깐 지폐에 얼굴에 들어가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심지어 이승만도 이씨다.
6 대한민국 원의 인지도 그리고 그 외 이야기
왠지 달러, 유로, 엔, 파운드등 핵심 국가들의 것에 비하면 당연히 밀리는 구석이 많은 화폐이며, 환율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저 4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끝판왕인 미국 달러, 끝판왕에 도전하는 거성 유로화, 과거에 비해 명성을 잃었어도 추종자가 굉장히 많은 영국 파운드와 직접 거품이 터지기 전 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엔화 이들과는 비교하기가 좀 가혹하다. 조건 자체도 열악한데 달러는 미국 경제를 기반으로 한 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하고, 파운드도 금융 강국 영국의 의외로 견실한 경제구조와 영연방 국가들과의 연계에 미국과의 핵심 동맹 체계가 결합[33]되었으며, 유로는 최근 남유럽의 막장 테크화 및 동유럽의 부실함으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알프스 산맥 북쪽의 경제대국들[34]이 받쳐주고 있기에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낮고, 일본 엔은 그나마 나머지 3화폐보다는 가치가 크게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20년을 제자리 걸음으로나마 버텨낸 일본의 견실함 및 재기 가능성에 대한 신뢰로 인해 중국 위안 등 소위 경제강국의 화폐들보다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 원은 2015년 기준 세계 11위에 불과(?)한 경제 규모, 수출 위주 경제로 인해 국제 환경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한 점 등으로 인해 그 신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수출위주라 불안정하며, 원화의 양도 매우 적어서[35]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되기 때문. 따라서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36]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와버린다.[37]
북한과 중국의 존재가 의외로 막강하다. 그나마 북한은 전쟁 수행 능력이 많이 약해진 데다 미국의 존재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리스크는 아니지만[38] 문제는 중국.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게 있어 심장을 노리는 단검이나 다름없기에 공격이건 방어건 언제든 차지하려 들 수밖에 없는 곳이다. 사실 단검이라고도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공격 받기도 좋게 생겼다. 물론 한반도에서 미중간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 달러등 4대 화폐도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겠으나 승패와 무관하게 적어도 몇 년 간은 휴지조각 신세가 될 원화나 위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에서는 의외로 인기가 없는 편. 사실상 휴지조각인 북한 원에 비하면 한국 원은 가치는 높지만 어차피 바로바로 환전해서 사용이 가능한[39] 중화인민공화국 위안이나 미국 달러, 유로에 비하면 인기가 적고 결정적으로 중국위안이나 달러와는 달리 한국 원은 남한과 교역이 좆망 수준이라 진짜 쓸 곳이 없고, 들고있다 걸리면 요덕행 직행표가 되는지라 북한에서는 크게 인기가 없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띨 경우 욕을 많이 먹기도 한다. 대한민국/환율 항목 참조. 그래도 주요통화에 못 미쳐서 그렇지 경화(Hard Currency)까진 안되더라도, 세계적으로 꽤나 강력한 화폐 중 하나이다. 적어도 아시아권 대부분 지역에 가보면 모든 환전소에 원이 통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40] 06년도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의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안을 시행한 이후부터는 역외 미주나 유럽권에서도 아시아권역에서만큼은 안되지만 상당수 환전소에서 원이 통용되고 있는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급은 안되더라도 역내(域內)에서는 그 역할을 화폐 정도는 된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메이저 언어의 말석이나 마이너 언어의 선두주자인 것과 비슷한 위상인 듯.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 제공하는 국내 은행 경우 G8(미 달러, 유로, 엔, 파운드, 스위스 프랑,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통화에 홍콩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 달러, 유로, 엔화 거래만 유럽식 호가로 표기하며 일본이나 다른 통화 FX마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 경우 엔,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대해서는 미국식 호가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마진 회사를 빼면 나마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프랑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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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권 예상 도안 출처
- 우연인건지 노린건지 현재나 과거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권 화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들이 죄다 이(李)씨이면서 조선시대 사람이다.(세종대왕(이도), 이순신, 이황, 이이, 이승만[41]
덤으로 50원 주화의 앞면은 이삭) 1973년 1만원권 등장 이후로 24년만에 등장한 신 고액권 5만원이 이 법칙(?)을 조금이나마 깨뜨렸다. 다만 웃긴 것은 신사임당도 조선시대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인데다 성은 신씨이나 이씨 가문 며느리라는 점.
- 한국에서도 계산의 편의성 등을 위해 구미권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2단위 화폐를 도입[42]하자는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금방 도입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 급하게 도입했다가는 2000년 일본에서 2천엔권 지폐가 발행되었을 때 터졌던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
- OECD 국가 중에선 액면 대비 가치가 가장 낮은 화폐.[43] 그러니까 1원, 1달러, 1유로 등등 OECD 국가 화폐를 1씩 놓고 비교하면 그 중에 1원이 가치가 가장 적단 소리다. 사실상 십원 이하는 시중에서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백원조차도 가치가 아슬아슬해졌다. 그래서 웬만한 상품들은 가격 표시가 죄다 천의 자리 이상이고, 그래서 1000:1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가 너무 큰데 비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액면이라 당분간 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UN이나 IMF, OECD등의 권고가 있다거나, 아니면 국민의 결정적인 요구가 있지 않는 한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 관련 논문에서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 아무리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원화의 가치에 1000을 곱하면 달러나 스위스 프랑, 유로와 가치가 매우 비슷해지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국내 일부 관광지나 번화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가격표에 0 세 개를 떼고 대신 k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예 : 아메리카노 3000원 → 3.0k, 비빔밥 6500원 → 6.5k, 기념품 2000원 → 2k) 여기서 k조차 안 붙이고 그냥 0 세 개만 떼어놓는 경우도 있다. (예 : 아메리카노 3000원 → 3.0) 그 이전부터 쓰인 줄임법으로는 큰 액수를 말할 때 '만' 단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10만, 혹은 100만이 넘어가는 큰 금액을 이야기할 때 '만 원' 부분을 떼어버리는 것. (예 : 그 차 얼마짜리냐? / 5천만 원 → 5천 주고 샀다., 이 아파트는 매매가가 3억 3천만 원입니다. → 3억 2천
300,002,000원)
- 한 해 5억 장 정도의 화폐가 손상 등의 이유로 폐기되고 이로 인한 교체비용이 매 해 500억 이상 든다. 착한 위키러는 동전, 지폐 등을 험하게 다루지 말도록 하자.
- 동아시아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임에도 영어가 인쇄된 유일한 화폐다[44]. 여기서 로마자와 영어를 헷갈리면 안 된다. 예를 들면 한국은 "Bank of Korea"라고 영어로 표기했지만, 일본은 "Nippon Ginko", 중국은 "Zhongguo Renmin Yinhang" 등 모두 현지어의 로마자 표기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은행을 표기하면 "Hanguk Eunhaeng"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영어는 엄연한 외국어의 지위임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 공용어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국가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 지폐에 외국어가 적힌 이례적인 사실에 대해서 자국민들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1기 시리즈 때부터 지폐 뒷면에는 "THE BANK OF KOREA"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 ↑ 현행 통화체제 발족 초기에 10전과 50전짜리 지폐가 발행된 바 있으나, 둘 다 얼마 못 가 실물화폐로써의 효력을 아예 상실하였고 기존 발행분은 모조리 휴짓조각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요즘 공중화장실 페이퍼타월이 가치로 따지면 한 장에 2원 50전 정도 한다니 썩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하여튼1원 동전과 5원 동전이 아직 유효한 것과 비교하여 보면 그저 안습일 따름. - ↑ 은행에서 그날의 환율을 고지할 때 소수점 두 자리까지 나타내는 것을 보았을 텐데, 이는
아까운 내 돈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가려는 금융업자들의 농간전 단위가 아직 법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에 계산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해서 그러는 것이다. - ↑ 기사 전반적으로는 갓 발행된 대한민국 환 주화 시리즈의 품귀 현상, 그리고 1959년 당시 부동산 가격을 필두로 하여 한창 진행되던 인플레이션을 소재로, 눈속임만도 못한 수준 낮은 통화정책을 펴놓고는 무작정 국민에게 "정부를 믿으라"고 요구하던 화폐당국을
거미 똥구멍 운운하며신랄하게 비꼬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 ↑ 몰론 외국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은행별로 환전 가능 시리즈가 있겠지만...
- ↑ 1기 원화는 圓이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으나 2기 원화부터 폐지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대한민국 원 단위를 표기할 때 그냥 'ウォン'이라고 쓴다. 한자로 쓰면 '円'이 돼서 엔화와 혼동된다는 이유도 있고. 다만,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중국에선 '韓圓(韩圆)'이라고 쓴다.
- ↑ 주화의 통용에 관한 임시조치법
- ↑ 이에 대해서 화교자금을 노린 것이라거나 지하자금을 노린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당시화폐의 대부분이 회수(1653억환이 회수되었고, 미회수액은 71억환)되었는데 이중 90%는 1인당 100만환 이하에서 나왔고, 1인당 1억환 이상을 소유한 경우는 7건으로 12억환이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게, 당시 화교를 비롯한 알부자들은 화폐가 아니라 금 등의 현물로 재산을 보유했기 때문에 화폐재산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관련글 링크 참고.
- ↑ 잔존수량이 많아 지금도 구매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려 관봉단위로도 팔고 두 장 세트로 비싸야 2천원이면 가능하다. 웬만하면 1000원이면 팔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기준으로
- ↑ 미사용 기준 60~100만원대. 사용제라도 어지간한 걸레가 아닌 이상 10만원 넘게는 쳐준다.
- ↑ 한국은행권 유일하게 실물이 북한에 있는 도안이다.
- ↑ 반은 농담이지만, 자존심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출되는 외화도 절약할 겸.
- ↑ 지금의 모습이 인자한 모습이라면, 이때는 간지폭풍이었다.
- ↑ 정식 용어로는 시쇄권이라고 한다.
- ↑ 이 실물은 한국은행 본관 옆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 뒷면 하단 왼쪽에 발행 년도가 적혀있으면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
- ↑ 공식적으론 "파고다공원"이나, 흔히 팔각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
- ↑ 500원 주화가 비교적 뒤늦은 1982년에 등장한 탓에 지폐와의 공존기간이 있었다.
- ↑ 다만 초창기에는 지폐재질과 잉크의 화학적 상성이 워낙 옳지 못해서... X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로 진동하는 바람에 "X돈"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금방 문제를 인지하고 교체해 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 ↑ 장대를 멀리서 던져 항아리 속에 넣는 전통놀이
- ↑ 그냥 판대기처럼 보이지만, 서예할 때 쓰는 그 벼루다.
- ↑ 2002년 개정판
- ↑ 다 오천원은 "가가 0000000 가" 순이나 라 오천원은 "0000000 가가가" 순이다.
- ↑ 1994년 개정판부터는 이 물시계 밑바닥에 "한국은행"이라 깨알같이 쓰여 있다. 이를 미세문자라고 한다.
- ↑ 1994년 개정판
- ↑ 2000년 개정판
- ↑ 사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현행권과 비슷한 스타일의 스위스 프랑이나 독일 마르크화는 10년 이상 빠르게 나온 디자인이었고 특히 한국 화폐가 바뀔 당시의 스위스 현행권은 그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건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었고 당시 유로 및 비슷한 디자인의 영국 파운드 등의 변화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도 적당한 시기에 늦지 않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 ↑ 이걸로 화폐 인물군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함(1백-충무공이순신, 1천-퇴계이황, 5천-율곡이이, 1만-세종대왕)은 물론, 유명인 모자가 나란히 지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사임당은 아들 잘 둔 덕분에 왕도 제치고 최고액 화폐에 등장하였다.
- ↑ 성균관대에 있는 그것이다.
- ↑ 원래는 혼천시계를 그릴려 했는데 너무 육중한 몸매...때문에 혼천의만 분리해서 그려놓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Made in China라서 논란이 되었다. 실물은 고려대박물관에 있다.
- ↑ 신사임당 작품이 아니다. 각각 어몽룡과 이정의 작품.
- ↑ 대한민국 원에 있는 인물들 5명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세종대왕 출생 1397년~마지막에 사망한 이순신 전사 1598년
- ↑ 일본은 최근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짓는다고 했을 때에도 대놓고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했었다. 남의 나라에서 기념관이 지어져도 불만을 표출하는데 국제 통화에 자신들이 싫어하는 인물이 들어간다면..
- ↑ 일각에서 일본이나 이스라엘 등을 거론하는데 미국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핵심동맹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국 뿐이다(5개의 눈). 나머지는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으며 실제로 미국은 지정학적인 상황에 따라 이스라엘조차 외면한 적도 있다.
- ↑ 특히 독일과 북유럽.
- ↑ 무역결재대금, 외환거래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율 200%대비 1.5%로로 세계10위
- ↑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정치-경제적 순위가 열 손가락에 들어가며 자칫하면 한국에 문제가 생길경우 외국인 투자자들도 왕창 손해본다. 예를 들어 연평도 해전대 사태때 해외 증시를 급락시킨 걸 보면 알 수 있다.
- ↑ 그 때문인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뿐이었고 그 외 통화는 메이저급이라도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뤄왔고,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위안화간 직거래가 시작되었다.
- ↑ 선제타격이 성공할 경우 한국 측 민간인 피해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거라는 계산도 나오고 있다.
- ↑ 평양에선 외화로 돈을 받는 가게들이나 식당들이 꽤 있다고 한다.
- ↑ 심지어 이들 나라 관광지 상인들은 원화를 그냥 받기도 한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의 관광지 가보면 "싸다 싸! 천원!"(...) 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에게 물건을 파는 상인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관광지 밖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으니 주의하자.
- ↑ 이승만도 일단은 조선시대 사람이다. 1875년 생이니까.
- ↑ 역사상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2단위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었으며 미국 달러화의 쿼터(25센트)와 비슷한 두돈 오푼(2錢5分) 백동화도 통용된 적 있다. 다만 이때는 한국은행이 아니라 조선은행 시절.
- ↑ OECD/중위 가처분 소득 항목에 가서 자국 통화로 표시된 소득을 확인해보자. 천만 단위에 해당되는 건 한국밖에 없다. 사실 백만 단위도 굉장히 드물다.
- ↑ 따지고 보면 일본 엔도 있다. 지폐에 EN(로마자 표기)이 아니라 YEN(영어 표기)이라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