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팔랑귀와 관련된 우화 중 하나. 원제는 "방앗간 주인, 아들, 그리고 당나귀(The miller, his son and the donkey)".
이 이야기의 가장 오래된 버전은 중세 아랍의 전승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 이야기가 유럽으로 넘어와 최종적으로는 프랑스 작가인 라퐁텐의 우화집에 실리면서 전세계에 전파되어 각자의 문화권에 맞게 번안되었다. 한국에서는 "팔려가는 당나귀"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 배경으로 현지화되는 바람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많이 오해하고 있다. "부자와 당나귀"로 알려져 있기도 해서, 부자와 당나귀로도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
2 줄거리
방앗간 주인과 그의 아들이 당나귀를 내다팔기 위해 끌고 가는데 그러던 가운데 길가의 여인들이 "탈 수 있는 당나귀를 왜 안타고 다니느냐?"며 비웃자 방앗간 주인은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가게 된다.
그렇게 가다가 높으신 노인들이 그들을 보자 "아버지는 고생하는데 아들만 편하게 당나귀를 타고 있네"라며 트집을 잡는다.
이에 아들이 내리고 방앗간 주인이 당나귀에 타고 가자 이번에는 또 다른 여인이 "왜 아버지가 당나귀에 타고 아들만 불쌍하게 걷게 만드느냐?"며 화를 냈고 이번에는 부자(父子)가 당나귀에 올라타서 가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마을 사람이 방앗간 주인에게 "그 당나귀가 당신 것이냐?"라고 묻자 방앗간 주인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에 마을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어 다른 사람이 "당신들은 당나귀를 메고 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하면 당나귀가 불쌍하게 당신들 태우는 것 보다 그 불쌍한 짐승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말에 방앗간 주인과 그의 아들은 진짜로 당나귀의 다리 둘을 막대기에 묶고 짐을 지어서 가게 된다.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 이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마을 입구에 가까운 다리를 지나가게 된 방앗간 주인 부자의 당나귀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개울에 빠져 익사하게 된다. 그렇게 부자는 허탕만 치고 돌아가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일일히 맞춰주려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3 변형
전래동화가 원래 그렇듯 이 이야기에도 여러가지 변형이 있다.
특히 마지막에 당나귀를 들고 가는 장면이 이 변형을 많이 받았는데 당나귀가 익사하는 게 아니라 땅에 떨어져서 등에 큰 충격으로 인해 추락사 한다던지 등의 변형이 있다. 애초에 다리 부분을 삭제하고 부자가 비웃음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버전도 많으며, 두 부자도 같은 변을 당하는 이야기도 있다.
웅진출판에서 펴낸 웅진메르헨월드에서는 교훈적으로 각색되었다. 전반적인 구성은 같으나 '그 당나귀에 둘이나 타면 얼마 못 가고 죽겠다' → '어린이는 걷게 하고 어른만 타다니 어린이가 불쌍하지도 않냐' → '어린이만 타고 어른은 걷다니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 '왜 타고 갈 수 있는 당나귀를 안 타고 둘 다 걸어가냐'로 순서가 바뀌었고, 당나귀가 죽지 않는 대신 아버지가 이치를 깨닫고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뚱딴지 명심보감에서는 부자가 당나귀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통나무 다리에 이르었는데 거기서 떨어져 셋이서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당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4 여담
한컴타자연습에 이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부자와 당나귀"라는 제목으로 되어있고,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다가 당나귀가 추락사 한다는 설정.
한국 초등학교 운동회 종목 가운데 "팔려가는 당나귀"가 있는데 한 사람이 막대기에 손과 발이 묶이고 그 막대기를 두 사람이 들고 빠른 시간 안에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장비도 없이 하는 경우가 있고, 대상자가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안전 문제가 있을지 싶다. 아직도 이 종목이 존재하는지는 확인한 뒤 수정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