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스페인의 역대 국왕 | ||||
펠리페 2세 | ← | 펠리페 3세 | → | 펠리페 4세 |
펠리페 3세, 프란스 푸르부스 2세, 1612년 | |
왕호 | 스페인의 왕 펠리페 3세 (Felipe III Rey de España) |
생몰년도 | 1578년 4월 14일 ~ 1621년 3월 31일 (42세) |
출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사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재위기간 | 1598년 9월 13일 ~ 1621년 3월 31일 |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국왕이며 포르투갈 국왕으로서는 필리프(Filipe) 2세이다. 펠리페 2세와 4번째 왕후의 아들이다.
1598년에 왕위에 올라 1601년에 의회를 바야돌리드로 옮겼다가 1606년에 다시 원래 장소로 복귀시켰다. 1609년에 발렌시아에서 모로인들을 추방하는 명령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안달루시아, 무르시아, 아라곤, 카탈루냐, 카스티야에서 차례로 모로인들을 추방했다. 모로인들을 추방한 이유는 지중해 연안에 나타나는 해적들이 모로인과 합세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발렌시아에서 11만 7천명, 아라곤에서 6만 1천명이 추방되는 등 약 27만에 달하는 모로인들이 추방되었다. 이 조치로 인해 발렌시아 등의 지역에서는 노동력 부족 때문에 많은 마을들이 초토화되었고, 아라곤에서는 빠져나간 노동력을 프랑스에서 이주자들을 받아들여 해결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추방 조치가 계속되다 보니 발렌시아는 계속해서 노동력이 부족했다.
외교면에서 펠리페 3세의 스페인은 오스만 제국과 계속 적대 관계였고 플랑드르에서 벌어지는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중지하려고 했다.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국고의 손실이 심한 것이 이유였다. 결국 1609년에 12년 동안 휴전할 것을 조건으로 한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한편으로 1603년까지 계속 싸웠던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한 제임스 1세와 협정을 맺어 평화를 정착시킨 것이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30년전쟁이 일어나자 펠리페 3세는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편을 들어 참전했다. 1621년에 병에 걸려 마드리드에서 승하했다.
아들이나 아버지에 비해서 스페인 국내에서나, 대외적으로나 영 존재감이 없고 주목을 덜 받은 편이다. 아버지인 펠리페 2세야 성공한 군주로 평가하든, 실패한 군주로 평가하든 서유럽 다른 국가들의 동시대 최종보스이자 세계제국을 지휘하던 거대한 역사적 비중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 초대빵 갑이었고, 아들인 펠리페 4세도 기존의 학계에서는 무능한 암군으로 보았으나, 근대에 들어와서 나름대로 스페인 제국의 노화를 확실하게 의식하고, 올리바레스 공작을 중심으로 대내외적으로 개혁과 고착 상황 탈피를 추구한 나름 생각은 있었고, 노력도 열심히 한 왕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펠리페 3세는 그러한 재평가도 없고, 아들이 선택한 정권의 파트너였던 올리바레스와 달리 펠리페 3세가 국정을 전임하고 가장 총애한 재상인 레르마 공작은 의욕이나 원대한 비전은 없는 주재에 탐욕은 또 가득찼던 간신에 가까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