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8년에서 2012년까지 벌어진, 북한의 21세기판 개삽질.
2 상세
평양 10만호 건설 사업이 처음으로 관측된 것은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2008년 1월 18일 보도이다.기사 이 기사에서 북한은 2012년까지 5년 이내에 10만 세대의 아파트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건설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은 전형적인 북한식 속도전 방식으로 무작정 사람들을 동원해서 닥치는 대로 세우고 있다. 아파트 식으로 건설을 하는 것이 목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정일이 2010년 5월 방중 이후 '평양의 중심거리가 이렇게 한심하니 좀 잘 건설합시다' '평양을 상해처럼 만들라' 는 지시를 내려서 40여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감한 계획이 되었고, 2011년 10월 10일 당 창건일 까지 모두 건설을 완료하려는 무리한 지시까지 내려왔었다고 한다.관련기사
3 문제점
- 북한의 자재난은 여전히 심각했다. 시내 지역에서는 그나마 자재가 공급되었으나, 시외 지역에서는 자재도 장비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전력, 장비는 커녕 시멘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으니 사람을 모아놓은들 아파트를 지을 도리가 없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건축자재 수입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는 기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재는 부족햇던 듯 하다.관련기사
- 부족한 물자를 공사현장에 모으느라 공사 기간 중에 전력난, 식수난이 급등하였다.관련기사
- 무리한 공기단축을 위해서 인해전술을 펼치려고 군인은 물론, 2011년에는 대학생들까지 강제로 휴학을 시키고 투입했다. 당연히 건설 경험이 없는 미숙한 대학생들이라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추락해서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물론 미숙한 인력이 건설한 만큼 부실공사의 가능성은 더 심각해졌다.관련기사 일부 간부 집안 대학생은 뇌물을 바치고 동원에서 해방되는 비리도 있었다고 한다.관련기사
4 결말
- 최종적으로 2 ~ 3만 세대 정도로 목표를 크게 축소하고 중지하였다.관련기사
- 평양 시내 쪽의 2 ~ 3만 세대 정도 건설이 된 건물도 단지 외장만 올라갔을 뿐, 내장이 되어 있지 않았으며 주민들에게 자체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당연히 불만 투성이라고 한다.관련기사
- 결국 대부분 미완성. 건설이 중단된 아파트들은 흉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류경호텔 하나만으로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이런 폐허들을 잔뜩 만들어 놓았으니 기가 막힐 지경. 부지 확보를 위해 주택을 철거당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관련기사
- 철거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없는 것은 물론 거주지조차 마련해주지 않고 아무 집에나 임의로 들여보내 두 가구가 한 집에 살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정작 아파트 건설은 실패해서 중단돼버렸다. 이렇게 두 가구가 얹혀살게 된 집에서는 나가라는 원주민과 달리 나갈 곳이 없는 철거민들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 부실공사가 심각해서 몇년 이내에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관련기사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