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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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本(ざいにほん)
朝鮮人(ちょうせんじん)
総聯合会(そうれんごうか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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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본부

혐한들의 한국인(재일동포) 악마화의 주 떡밥.

일본 극우들의 주된 타겟이자 일본 사회에서 진보세력 팀킬의 주 원인이다.[1] 요도호 사건도 그렇고, 내 이웃 사회주의 국가가 이렇게 무자비할리가 없어라고 외치던 일본 내 좌파/진보 세력들에게 결국 독재국가로서의 실상이 까발려지면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데 기여한 1등공신이다.

일본재일 조선인 단체. 북한을 조국으로 여긴다. 반대로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여기는 것은 민단이다. 괜히 일본에서 조총련 찾아갔다가 멘붕하지 말자

약칭은 조선총련(朝鮮總聯), 조총련(朝總聯), 총련(總聯) 등. 이들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5월 25일~26일 '재일본조선인연맹'을 모태로 도쿄에서 성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흔히 재일교포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총련은 재일교포의 일부일 뿐, 범주는 엄연히 다르다.

그들은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며, 민족주의국수주의 수준으로 신봉하는 사람도 상당하며, 반일은 물론이고 북한의 논리에 따라 반미적 성향도 있다.북한은 '공화국'으로 부르며, 대한민국남조선으로 호칭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빠칭코[2], 운수업, 경비업 등 대우여건이 비교적 낮은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혹은 대한민국을 경유해서 북한에 자금을 대주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일본인들은 북한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에[3] 북한과 유착관계에 있는 조총련도 당연히 싫어하고, 따지고 보면 북한과는 연관이 전혀 없는 민단까지도 도매금으로 까이는 이유 중 하나다.[4] 게다가 종사하는 업종이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3D 업종이다보니, 전체적으로 삐딱하고 과격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인식이 박혀져 있다. 최양일영화 '피와 뼈'에 등장하는 막장주인공 김준평이 바로 이런 조총련상의 전형이다.(...)

일본 내부에서 북한의 공작원들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거점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이는 일정부분 사실이다. 요코타 메구미 사건 뿐만 아니라 70~80년대에는 적지않은 "북조선 공작원"들이 일본인들을 포섭했고, 때로는 납치했다. 이들은 북한에 호의적인 언론인, 학자, 경제인들을 포섭해서 북한을 견학세뇌시켜주고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하도록 유도했다. 물론 이것도 80년대까지나 먹혔지 동구권 개방 및 소련 붕괴 이후에는 얄짤없는 이야기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망했어요

실제로 1987년 초 김만철 탈북사건에서 일본이 멋모르고 이쪽 통역사를 붙여주는 병크를 터뜨린 적이 있다. 자칫 큰 일 날 뻔한 사건[5].

2 내부 사정

일본 현지와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이유로는, 우선 북한에 대한 추종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북한의 잘못들을 옹호해주기 급급한 행태에 있다. 이들의 논지는,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했을 때 우리가 조선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우리에게 우리말을 가르쳐 주고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 준 조국이다. 좀 이상하긴 해도 어쨌건 조국 아니냐?"라는 것이다.좀 이상한 정도가 아닙니다만? 쉽게 말해서, 그래도 동포니까 쉴드를 쳐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정체성을 깨달은 아이 북한에 대해서 비판, 심지어는 독재 및 인권문제와 폐쇄성같은 지극히 당연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에 격렬한 알러지를 드러내면서 적대적인 의사를 보이는 것이다. 나의 북한은 이렇지 않아 흠좀무스럽게도, 이들은 중동국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처럼, 북한의 독재체제도 나름대로 복잡한 이유가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뭐병도 아니고 북한에 실존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 화제를 꺼내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일은 고사하고 대부분 이중잣대를 적용하거나[6] 오히려 그 사실을 외부세력의 협잡으로 극구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북한은 완벽한 까임방지권을 가진 신성하고 위대한(...) 조국이므로 깐다는 것 자체가 금기다.[7]

심지어 같은 재일동포 조직인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과도 대립하는 경향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8] 심지어는 탈북자 단체들과도 적대하고 있다.

이같은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고립시켜서 독자세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 결과 조선적 국적[9]을 유지하는 한편, 독자적 민족학교인 조선학교[10]를 운영하고 있다. 민단 쪽의 민족학교가 단 4곳 뿐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진학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단이 운영하는 학교가 인가 학교로 운영되는데 비해, 이쪽은 비인가 학교로서 정식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결국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은 사회진출을 놓고, 이상과 현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북한의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에는 많은 수가 진학과 제도권 진입을 포기하면서까지 꿋꿋이 조선적을 유지했으나, 이제는 대한민국일본 사회에 정식으로 편입하기 위해서 해당 국적을 따는 소위 '이적'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적을 원하는 자녀와 이를 막으려는 부모세대간의 갈등은 매우 심한 상태이며, 일단 이적한 경우 이적 의도가 불순하다고 판단되면 조총련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을 당하다시피 한다. 사실 일본을 싫어한다는 것도 일본내 조선인 사회에서의 전통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의미가 믹스된 기묘한 것으로, 실제로는 다른 일본인들과 별 차이 없이 일본의 영화나 만화, 음악을 즐기고 있다. 문화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을 철저히 나눠서 생각하고 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11]. 이러한 고충이 독립영화 우리 학교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성은 말려도 몸이 원하는데 후후 몸은 솔직하군

역시 세월을 이길 수는 없는지,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새로운 세대들은 어느 정도 융통성을 보이는 한편, 이전 세대처럼 무조건적인 윗동네지지자도 계속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개중에는 "한국조선은 모두 같은 뿌리인데 좀 안싸우고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식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마치 제3자처럼 간격을 두고 접근하려는 신세대도 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하지만 실제로, 신세대의 적지 않은 수가 조총련으로서의 정체성을 과감히 포기하고 있으며 정식으로 일본 혹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 교포사회 전체가 2~4세까지 물갈이되는 과정에서 적잖이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먹고 살기 편하다면 뭐 한국이나 일본 국적이 대수인가…?"라며 '이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아진 상황이다. 그 결과 해방 직후엔 조선적/총련계 재일교포 숫자가 다수였지만, 현재는 한국 국적자들이 조총련을 제치고 재일교포 세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 국적만 따놓고 정신적으로는 조총련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조총련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실상 한국 국적을 택한 시점에서 이미 현실과 타협하고 이질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다보니 대내적으로는 "우리가 가는 길이 옳은가?"라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으며,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사고의 차이도 이미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발언 자체만으로도 이적이라고 할 법한 "김정일 위원장도 너무한다! 자꾸 저러면 안 되는데!"라는 불평도 왕왕 튀어나오는 상황이다. 신세대들은 성장 과정부터 일본민주주의의 영향을 흠뻑 받았기 때문에, 과거 세대와 달리 상당히 자유분방해진 것이다. 이러다보니 구세대들은 어떻게든 조선학교를 통해 사상적인 교육을 이라고 쓰고 세뇌 시키려 들지만, 북한 내부와는 달리 여기서는 본인의 진학 선택권도 있고[12] 환경상 일본의 법을 적용받는지라 강제적으로 통제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워낙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게다가 윗동네의 막장화도 가속화 되다 보니까 북한식 교육을 독특한 문화(...)의 한 부분처럼 받아들일 뿐, 그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나 골수적인 주체사상 지지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고 한다.[13]

하지만, 정작 교내에서는 "일본 학교로 전학 혹은 진학한다."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2012년까지는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뭐.. 케바케지만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러한 듯.

2.1 그리고, 현 실태

이처럼 세대갈등과 문화접변으로 인한 약체화 속에서 현재의 조총련은 과거와 같은 독자적 소사회로서의 위상은 고사하고 겨우 소속 교포들의 취업/주택/복지문제에 관련된 생협수준으로 크게 몰락했다. 이 때문에 요즘은 90년대 이전과 같은 병크도 많이 줄어든 대신, 오히려 혐한초딩들이나 재특회 소속의 병신들이 가끔 조선 학교에 몰려가서 깽판을 부리거나, 혹은 조총련 지부에 난입하는 식으로 입장이 역관광전되어, 오히려 일본 내의 좌파들이 이들을 불쌍하다고 안쓰러워하는 복잡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20세기 내내 일본 내 좌파는 그 특유의 국제주의적 성격 때문에, 재일 조선인 차별에 민감했고, 이로 인해 일본의 전후 전쟁범죄 청산과 재일 코리안 차별 금지운동에 가장 힘을 많이 실어준 집단이 되었다. 요즘에서야 잊혀지기도 했고, 과거의 언론통제로 잘 안 알려진 점이 있지만, 일본 좌파는 일본 내 차별금지부터 한국의 민주화 지원까지 적지 않은 부분에서도 많이 도움을 준 바 있다. 흠좀무. 다만 일본이 버블경제로 풍족하던 70~80년대 시절에는 우파고 좌파고 한국에게 오지랖을 많이 부려서 아예 일본 자체가 한국의 민주화를 도와주었었다. 지금 일본의 극우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당시에는 김대중, 김영삼 등을 지지하며 한국의 민주주의 정착을 도와주었으며, 아예 일본 정부 자체가 한국 민주화 인사들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기도 했다. 결국 90년대부터 한국이 강국으로 성장하고, 일본은 버블경제가 무너지며 장기적인 불황과 경제 위기가 닥치게 되자 일본의 우파들은 한국을 견제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른다.

이처럼 특유의 배타성에 따른 대외적 멸시와 대내적 이반 속에서도 어떻게든 근성으로 명맥은 이어오고 있지만, 결국에는 조총련 내부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조총련 기관들도 압류 크리를 겪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북한 지배층의 캐병신짓 탓에 도매금으로 같이 까이고 있기도 한데, 수차례에 걸친 미사일과 핵실험 때에도 그랬지만 특히 연평도 포격 사태를 계기로 일본 내 위기의식이 고조되어 일본 내 모든 지방 관청의 조총련/조선학교 지원 반대가 한층 힘을 얻고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친북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당연히 좌우를 막론하고 언론마다 조총련을 까대고 있다. 결국, 이 때문에 조총련뿐만 아니라 민단 등 애꿎은 대한민국 국적자들까지 도매금으로 피해를 보기도 한다. 재일 한국인 전체를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핑계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2015년 3월 26일 일본 경찰이 북한산 송이버섯 불법 수입 사건과 관련해 허종만 조총련 의장의 자택 등을 압수 수색했다아싸 일본 정부는 2006년부터 북한과의 수출입을 법으로 전면 금지하고 있다. 허종만 의장의 차남도 송이버섯 부정 수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는데, 조사과정에서 허 의장과 남승우 부의장이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져 충공깽.(...) 그냥 어디 양양이나 봉화에서 나는 송이를 가져다가 팔지 그랬어요 하와이에 가고 싶었나보다

3 대외적 인식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에서도 이들을 부정적인 인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뿌리는 한국전쟁의 후폭풍으로 인한 반공의식의 심화가 원인이다. 사민주의 조차 긍정적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불온하게 취급되던 당시 시대상황에, 아예 대놓고 북한을 찬미하고 옹호하는 조총련은 그 자체로 터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냉전이 한창이던 3·4공화국 시절, 국민의 해외여행이 제한되던 시기에는 굳이 비지니스나 여행목적으로 해외에 나갈 경우 반드시 출국하기 전 중앙정보부쪽 기구에서 방첩교육을 받는 것이 의무였는데, 그 교육 내용에는 일본에서 '고려', '조선' 과 같은 한글 단어가 쓰여진 점포들은 대개 조총련 계열의 상점이며, 그런 곳에 드나들 시 보안에 저촉됨은 둘째치고 그 돈이 그대로 북한의 자금줄이 되어 무기화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라 한다. 당시까지는조총련이 그나마 일본 내에서 꽤 기세등등했음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물론, 반공주의가 완화된 지금이라고 해서 일본이든 한국이든 조총련에 대한 인상이 딱히 나아진 것도 아니다. 조총련들은 여전히 민족주의에 대한 광신적 숭배[14] 남북관계에 대한 객관적 시각 결여, 일본 내에서의 발전적인 노선 부재, 그러니까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알맹이는 이미 일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민족개념의 쭉정이만 강조하는 부분들이 문제로 남아있다. 바꿔말해서, 일본 내의 민주주의와 풍족한 인프라를 누리며 자기 생활을 영위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체사상망상 환상을 갖거나 자기 아쉬울 때만 소수민족 드립을 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는 것이다.[15] 그나마 이들 외에는 동포 사회에서 제대로 된 향후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무작정 민족주의만 내세우기보다 실질적인 공존을 모색해보자."라고 주장하면 해당 사회에서는 배신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처럼 뿌리깊은 피해의식은 실제 역사성과도 맞물린 측면도 있어서 정말 해결하기 난감한 상황이긴 하다.

북한과는 5~70년대 꽤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지금도 서로 립서비스 정도는 잘 해 주지만 1990년을 전후해 경제난이 닥쳐오면서 지원해주는 빵셔틀 입장이라기보다 뜯어가는 을 뜯는 입장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북송사업이 한창 활발하던 때, 먼저 북송선을 타기로 한 교포가 내가 편지를 가로로 써서 보내면 너도 북송선 타고 조선으로 들어오고, 세로로 써서 보내면 오지 말라라고 했는데, 오는 편지가 줄창 세로로 쓰인 편지밖에 없어서 안 갔다는 에피소드도 존재한다(...). 때문에 그 둘의 관계도 과거에 비해서는 다소 소원해진 상태다. 여기에 대한민국에서는 어려워하고, 일본 여론과 정치가들의 분노는 아직 시작일 뿐이고. 자업자득이다. 결국, 활로의 한 방편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그토록 적대시하던 민단과도 교류협력이 자주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째서인지, 대한민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조총련일본을 휘어잡고 뒤흔드는 거대세력으로 과대평가를 하는 경향이 있다.\[\[출처 필요\]\] 어디서 이런 놈들을 본 것 같은데? 물론, 조총련이 전성기였을 때도 그런 힘은 전혀 없었다. 애시당초 북한의 경제력이 좀 괜찮았던 시절에도 일본의 경제력이 훨씬 압도적이었으며 [16] 또한, 자민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했었다.(...) 그나마 사회당과 공명당 정도를 제외한 타 야당들[17]은 북한을 아예 적대시하고 있었다. 이런 형편이니, 당연히 일본을 뒤흔들 힘을 가질래야 가질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걸 팩트랍시고 다른 네티즌들을 선동하기 위해서 들이미는 자료들은 죄다 90년대 이전 조총련 전성기 시절 자료들이다.

3.1 귀국자에 대한 북한의 취급

하지만, 북한에서 조총련계 이주자들에 대한 현지주민들의 취급은 한마디로 이질적 존재. ‘째뽀[18]라는 비하하는 멸칭으로 부르면서 일본과 자본세계의 불순한 물을 먹고 온 이단아로 취급한다.’ 애초에 법적으로도 무조건 동요계층[19] 이하로 분류되며[20], 암암리 대놓고 차별과 감시가 존재하고 사회적 진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한다.

사실, 재일교포 북송 귀국사업 당시에도 북한을 선택한 상당수의 조총련 출신 교포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일생을 마치거나 북한사회에서 증발한 일이 많았다.[21] 이러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조총련계 교포들의 이반을 가속화하기도 했으나 북송된 교포들은 일종의 볼모이자 인질이나 다름없었기에 일본 현지의 친척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총련에 충성하고 북한에 돈을 송금 빵셔틀 해야 하기도 했다.

이런 현지 인식도 모르고 [22][23]재일교포 북송선을 탔던 조총련들은 그저 안습.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다만, 고용희김정일의 부인이 되면서 북한의 조총련에 대한 차별대우는 어느 정도 시정되었고 90년대 경제난이 닥친 이후에는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일반인들은 수시로 굶는게 일상이 된 반면, 재일교포들은 꽤나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가용을 가진다거나 일본에서 친척들이 벌어온 돈으로 당국과 함께 사업을 한다거나 장마당에서 장사를 해먹어서 돈을 버는 식이었다.[24]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총련계 교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아예 사라졌다는 얘기는 아니며, 아직도 사회적인 차별이 남아있다.

참고로 일부 두개골 속에 뇌 대신 평양냉면 면발이 들어있는 잉여인간들은 북송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북한에서 북한 주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망언을 하고 있는데, 이를 논파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바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남한으로 치면 총선) 결과다. 북한은 형식적으로는 대한민국보다 훨씬 빨리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을 인정했고, 제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는 그래서 조총련계 대의원들이 7석이나 차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5기까지는 조총련계가 최고인민회의에 의석수를 작게나마 확보했나 싶더니, 6기부터는 슬그머니 조총련의 존재가 사라지고, 다시 조선민주당과 천도교정우당이 2,3당으로 떠오른다. 제 5기 대의원 선거와 북한의 70년대 대격변 시기와 시점이 일치하고, 이 시기에 조총련 의장 추대와 관련하여 조총련 내부의 분열이 있었다는 증언으로 미루어 보아, 북한사회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숙청 당했고, 북한사회에 협조적이거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조총련계 인사들만 살아남았다는 분석이 있다. #참고자료

4 각종 매체에서의 조총련

대한민국에서 연재 후 출간된 만화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보면 조총련 골수파의 전형적이면서도 솔직한, 그리고 일반인에게는 불편한 특유의 사고관을 확인할 수 있다. 조총련 사회가 민족주의를 광신적으로 숭배함을 엿볼 수 있고, 특히 반일 경향이 아주 지독하게 강해서 일본인은 진보적인 사람까지 전부 '쪽바리'라고 여과없이 통칭하는 것도 나온다. 심지어는 "이런 쪽바리까지 욕해서는 안 되는데…." 같은 여러모로 모순적인 표현도 나온다(…). 이건 뭐(…). 또한 남북관계의 모든 문제 책임에 있어 "공화국(북한)은 전혀 잘못이 없다."며 모든 문제 책임을 오로지 대한민국의 탓으로만 전가하는 등등, 소화하기 힘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조총련 골수파의 가치관이 흥미롭다면 일독해 볼 필요는 있다. 이런 거 생각하기 싫고 심심하면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처럼 개그물(...)로서 봐도 괜찮다.

과거 대한민국의 드라마 등에서는 악의 소굴(...)로 묘사되기도 했다. 때로는 월북의 창구로 그려지기도 했는데[25] 70년대 실화극장에서 소개된 조총련부분은 그야말로 조총련에 대한 음습한 조직이라는 인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26] 이후 80년대 KBS의 <멀고 먼 나라>[27]MBC의 <동토의 왕국>[28]등에서 조총련의 행태를 크게 비판하였다.

조총련이 한국 내에서 비교적 우호적으로 소개된 매체는 이현세남벌이다. 자세한 내용은 남벌 항목을 참조할 것. 근데 남벌 자체가 불쏘시개급이라(...)

5 그 외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이주한 한국인 가정이 확인될 경우, 조총련 쪽 사람들이 조직의 생계 곤란을 극복하고자 가입을 권유하러 뻔질나게 초인종을 눌러댄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멋모르고 가입했다가 한국가면 바로 공항에서 체포된 뒤 코렁탕

물론 이는 도시전설일 뿐, 현재 생활협동조합 수준으로 크게 축소된 조총련은 이런 일을 벌일 여건도 안되고, 여력도 없다. 다만 이 도시전설은 일정부분 사실인 것이, 지금은 간혹가다 종교단체인 교포들이 입교를 해달라고 초인종을 눌러대곤 한다고 한다. 으아악 이건 조총련이 아니라 해당 종교 항목에 들어가야 할 얘기 같은데

요즘은 이게 안통하는지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월북 권유글(...)을 올려대고 있다.우리 하나가 되자 의외로 미친 종북주의자들은 낚여서(...) 연락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구글 검색 결과 극우 성향 사이트인 정사갤, 일베에까지 글을 올려대고 있다.(...)흠좀무 월북 후 신분세탁해서 돌아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터졌다

민단이 세워서 한일경제에 기여를 하고 있는 신한은행과는 다르게[29], 조총련계 신용조합은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불량채권 문제로 일본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7개의 조총련계 신용조합이 있는데, 웬만하면 그러니까 국정원에서 자신의 자금을 추적해서 귀국하자마자 코렁탕을 먹이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이들 7개 신용조합에는 절대로 돈을 넣지 말자.[30]

6 관련 항목

  1. 대한민국의 종북과도 일맥상통한다.
  2. 일본내 빠칭코의 상당 수가 재일 한국인(민단 및 조총련을 모두 포함한)계 소유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의 인식도 안 좋지만, 특히 혐한초딩들의 공격 이유 중 하나다. 다만, 이는 한국인들을 일본으로 이주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놓고, 2차대전 종전후 각종 차별과 찬밥대우를 가하니 결국 암시장이나 어둠의 세계로 빠질 수 밖에 없게 되어 일본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으니, 일본의 자업자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3. 21세기에 들어서는 요코타 메구미 사건이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4. 물론 역사문제나 경제적으로 우월하다는 점 때문에 그런것도 있지만
  5. 당시에는 북한이 똥망 테크를 타기 전이고, 당시 대한민국은 아직 일본에서 잘 사는 나라라고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이었고, 거기다 당시로부터 불과 10년 ~ 20년 전에 활동했던 좌익 운동가가 조총련과 연계된 경우가 꽤 있었기에 1980년대 후반 당시는 당연히 조총련의 입김이 센 편이었다.
  6. 북한은 그 특수성 때문에 그런 곳이 존재할 수는 있는데, 그걸 전체로 보면 곤란하다. 라든가(...) 근데 그게 전체잖아? 이런 특수성 드립은 일부 이단 드립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1차원적인 옹호에 불과하다. 그 '특수성'으로 인한 특이한 케이스가 사실상 북한의 전체 체제를 규율하는 상태일 뿐더러, 애초에 그 이유라는 '특수성'도 용인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특수성이라면 비오는 날 대로변에서 발가벗고 달리는 바바리맨도 그냥 특수한 거다.(...) 이뭐병도 아니고.
  7. 이는 조총련계 학교의 철저한 세뇌교육에 기인한다. (‘하늘과 땅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해와 달이 꺼질 때까지 존경합니다. 위대한 어버이 수령님을 우러러보며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이것은 조총련계 국민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김일성 수령을 찬양하는 대목이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500 링크는 1994년 시사저널 기사로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조총련의 30대 연령층이다. 조총련계 학교의 교육은 북한의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했다. 조총련 고위층은 북에서 직접 임명하는 이상 사실상 북한의 대외공작기구에 가깝다)요새는 옹호보다는 오히려 앞장서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실 독재정권 하에서도 끊임없이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면, 조총련의 저런 이중잣대는 그냥 "세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애초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 맞서 자기 나라를 옹호하는 경우는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중대한 인권유린에 대한 지적같은 게 아니라, 그냥 개고기 문제 같은 말초적인 놀림에 대응하는 경우이거나 논쟁이 분분한 정치적인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과 같은 명백한 결함국가......아니, 국가도 아닌 불법단체에 대한 인지부조화적 옹호에 댈 바가 아니다.
  8. 이쪽은 옛날부터 서로서로 비방하고, 심지어는 상대방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몽둥이로 조지는등(...) 정말 사이가 험악했다. 한민통(또는 한통련)시절에는 어느정도 화해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망했어요.
  9. 사실상 무국적
  10. 통칭 조교응??
  11. 사상적으로는 아무리 반일성향이라고 하나, 그들은 이미 일본사회에서 몇 십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문화와 정치를 상당부분 유기적으로 보는 한국이나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이는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이겠지만, 개개인이 파편화 되고 개인주의화가 상당수 진행이 된 일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이들은 정치적 스탠스는 북한을 긍정하지만, 실제 생활은 일본인과 별 다를바 없는 기묘한 상황이 네토라레 완성된 것이다.
  12. 부모가 조선 학교에 강제로 보내려 들자, 대판 싸우고 분가해 일본의 제도권 학교로 진학한 사례도 흔하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무력으로 옥죌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
  13. 이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쉽게 말하자면, 미션스쿨에 다닌다고 다 교인이 되는게 아니지 않는가?(…) 이미 이런 분위기는 영화 박치기에서 학생들이 "야, 미국하고 김일성 장군하고 싸우면 누가 이길까?"같은 것을 농담 따먹기에 써먹는 분위기가 가감없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은 실제로 흔히 조선학교에서 이미 일어나는 상황이고, 이런 것이 조선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현재의 조선학교 학생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북한 같았으면 무시무시한 아저씨들한테 끌려가서 코로 랭면 원샷
  14. 겉보기엔 멀쩡해보여도 그들과 직접 얘기해보면 한민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대한민국 국민들하고는 엄청나게(!!) 다르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다문화 개념까지 등장할 정도로 민족관념에 한결 포용적인 사회가 된 것과 달리, 그들은 "북과 남은 무조건 한민족! 그러므로 둘은 동일!"라는 매우 고전적이고 안이한 민족주의에 젖어있는 것이다. 골수 조총련계는 이 안이함에 더해 "그러므로 위대한 령도자 동지의 훈령 아래 단결해야 한다"(...)하기도. 무슨 나치 독일인가? 직접 얘기하다보면 "사상도 의식도 제도도 이렇게나 판이하게 다른데 닥치고 무조건 합치고 보자는 거냐?"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속이 터진단다(…). 만약, 당신이 탈민족주의적인 사고관을 배양했다면 그 정도는 더할지도 모른다.
  15. 위 내용을 잘 봤다면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목적어만 몇 개 바꾸면 한국 내 종북주의자들과 수구꼴통들의 특징과 정확히 일치한다.
  16. 특히 70년대 들어 북한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격차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벌려졌다. 90년대 이후에야 뭐...
  17. 민사당과 공산당
  18. ‘재일동포’(在日同胞)를 북한에서는 줄임말로 ‘재포’라고 부르는데, 이 말을 세게 발음한 것이다. 이는 일본제 물품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19. 혹은 복잡한 군중
  20. 분류 과정에서 적대계층이 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
  21. 대표적인 예로 수용소의 노래의 저자인 강철환씨의 경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조총련 지역 간부 출신으로 있다가 북송교포 귀국사업때 북한으로 간 경우이다.
  22. 물론 일본내의 재일동포 차별 대우 문제도 있긴 했지만
  23. 실제 당시 일본 정부에선 재일동포를 골치덩어리 취급하며 암알리에 차별했고, 50년대 중반 즈음 북한이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일본측에 제안했고 이에 정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겉으로는 인도적인 목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라며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골칫덩어리도 떠나 보내고, 거기에다가 세금도 아낄수 있다며 좋아했다.
  24. 사실 조총련계가 일본에서 하위층에 속한다고 하지만 애시당초 압도적인 일본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90년대 중반에 일본의 1인당 GDP가 4만 달러를 넘어선데 비해(엔고의 영향이지만(...) 북한의 1인당 GDP는 500$선까지 떨어졌다.)를 생각해 보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25. 과거 외국여행이 제한된 시절, 월북하는 주된 코스가 바로 일본 방문-> 총련의 커넥션을 통한 월북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월북자 자체가 엄청나게 드물어졌긴 하나, 여전히 월북의 정석으로 통한다. 물론, 잘못하면 현실은 시궁창이 되지만. 제대로 하면이 아니고?
  26. 최은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한으로 유출된 이 드라마에서 만경봉호 선장(겸 조총련 고위간부)으로 열연한 문오장의 연기를 본 김정일이 적화통일 후 붙잡아 손봐주겠다고 했다 한다.
  27. 김성겸이 조총련 창시자인 한덕수 역을 맡아 열연했다.
  28. 각본은 조선왕조 5백년의 신봉승, 연출은 바로 태왕사신기김종학이었다. 다만 이 작은 가족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잃은 조총련 전직 간부의 고백록을 극화한 것으로, 정치성보다 다분히 인권중시 측면에서 북한의 어두운 실태를 조명하였다.
  29. 씨티은행 다음으로 일본에 2번째로 외국계 은행 현지 법인허가를 받았다.
  30. 대도시 지역 거주자들 중에서 한국계 금융기관에 돈을 넣고 싶으면 외환은행, 신한은행(SBJ은행),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 소속 7개 신용조합(+ 긴키산업신용조합)에 돈을 넣을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