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소

1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鮑邵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아버지인 포신조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황하 남쪽을 차지해 동탁에게 일이 생겨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라고 권하거나 동탁을 공격할 때 조조를 따라 추격하는 것에 참가했으며, 또한 황건적과의 싸움에서 유대가 전사하자 조조에게 주목의 자리를 내주어 황건적을 격파해 연주목에 오르면서 조조의 근거지를 마련하게 하는 공을 세웠다.

이 덕분에 212년에 조조가 포신의 공적을 기록해 동생인 포훈과 이에 대한 보답을 받았는데, 포소는 이 때 신도정후로 임명되었다. 포소가 봉작으로 받은 곳은 정확히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는데, 포소가 받은 곳과 이름이 동일한 곳으로는 익주의 신도군, 양주의 신도군이 있지만 익주와 신도는 각각 유비손권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영토에 속한 신야의 옛 이름이 신도였던 것으로 볼 때 신야가 포소가 정후에 임명된 곳으로 보인다.

2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

鮑素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촉나라의 장수로 강유가 적도에서 위군과 싸우려고 할 때 장수들이 조수에서 승리했으니 위군이 위엄에 굴복했는데 무슨 까닭으로 나가냐고 묻자 강유는 장수들에게 위나라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급히 얻을 수 없다는 것만 안다면서 위군을 공격해서 이길 수 있는 5가지 이유를 대면서 싸우기를 고집해 기산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위군이 기산에 영채 아홉 개를 세워놓자 강유는 위나라에서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올 것을 알 것이라 여겨 거짓으로 강유의 깃발을 세우고 골짜기 어귀를 차지해 영채를 세우도록 한 다음에 순찰하면서 깃발을 바꾸도록 하고 강유는 대군을 이끌고 동정으로 나아가 남안을 치겠다고 하자 포소가 남아 골짜기 어귀에 주둔했다.

그러나 등애가 이를 간파하면서 진태의 공격을 받아 포소는 전사했으며, 이어서 동정의 길을 막아 강유의 뒤를 끊었다. 등애가 남안을 구원하기 위해 무성산에 손에 넣은 후에 강유는 등애의 매복으로 단곡에서 격파되면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