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사무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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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nthony Samuelson
1915년 5월 15일 ~ 2009년 12월 13일

20세기의 경제학자. 현시선호이론(revealed preference theory)을 개발했고 신고전학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을 이루어냈다. 또한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의 개발에도 일조했고 후생경제학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또한 국제경제학에서나, 재정학 쪽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참고로 유대인이다. 가계도를 봐도 조카로 로렌스 서머스,[1] 처남으로 케네스 애로우[2]를 두는 등, 나름 뼈대있는(?) 가문.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합리적인 규제가 동반된 시장이 훨씬 이롭다고 하였다. 밀턴 프리드먼과 사적으로는 친구였다.[3] 하지만 프리드먼과 학문적 갈등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다 신고전학파 종합으로 분류가 된다고는 해도, 가장 시장주의적인 프리드먼과 케인즈주의적 성향의 새뮤얼슨은 현격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소련이 존속 가능한 체제임을 보였다고 1989년에 의견을 표명했다. 어빙 피셔도 그렇고 이런 잘못된 예측이 트렌드인 듯

'사실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론'으로 데이비드 리카도비교우위론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 박사 과정 당시 지도교수가 조지프 슘페터였다. 이 무슨... 박사 논문 심사때 슘페터가 "Did we pass?"라고 물었다고 하는데, 즉 "우리가 잘 이해했는가?" 스승이 제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인 셈. 저 박사논문은 이후 책으로 출판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경제학의 고전 중 하나인 <Foundations for Economic Analysis>이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모교인 하버드에서는 교수가 되지 못하고 MIT 교수가 되었다고.
  1.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 시절에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했고, 이후 하버드대 총장으로도 재직했던 경제관료 출신의 저명 학자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윙클보스 형제가 면담을 요청했던 당시 하버드대 총장으로 등장(물론 본인은 아니고)했다.
  2.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며, 1972년 51세의 나이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역사에서 최연소 수상 기록임.
  3. 새뮤얼슨은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