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르 클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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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르 클레르(Francois le Clerc, ?~1563). 750만 달러(2008 기준)를 털어 포브스 선정 해적 13위가 되었다.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별명은 Jambe de Bois(장브 드 부아) ('Peg Leg', 나무다리), 알려진 것 중 의족을 단 첫 해적이어서 저런 별명이 붙었다. 르 클레르는 종종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사냥감이 될 배에 뛰어드는 버릇이 있었는데 1549년 건지 섬 근해에서 영국 배를 습격했을 때 벌어진 전투에서 다리를 잃고 팔에도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팔까지 잃지는 않았다. 이런 부상을 입으면 해적들은 대부분 은퇴를 했지만 르 클레르는 의족을 한 채 해적 영업을 계속했다. 그는 주로 스페인 배를 털었고, 한창때는 열 척이나 되는 사략선단(세 척은 국왕 소유)을 인솔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카리브 해에서 지속적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1562년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운명이 바뀌었다.

1562년 4월, 노르망디에서 신교도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영국군을 파병, 르아브르 항구를 1563년 6월까지 점거했는데 여기에 그 자신 노르망디 출신이었던 르 클레르가 합세했다. 영국 편에 선 르 클레르는 프랑스의 해운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르 클레르의 공헌은 배신을 당하게 되었다. 1563년 3월, 르 클레르는 여왕에게 그동안의 공헌에 대한 보상으로 꽤 높은 액수의 연금을 요청하지만 여왕은 연금 지급을 딱 잘라 거절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르 클레르는 다시 전열을 이탈, 아조레스 제도로 가서 다시 해적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해 안에 스페인 보물선을 습격하다가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