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통령 선거

(프랑스 대선에서 넘어옴)

Élection présidentielle française/French presidential election

1 개요

프랑스에서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 선거를 시행하여 선출한다. 임기는 5년이며, 1회 연임이 가능하다.[1]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2 세부 규정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2.1 투표 방식

1차 투표 : 유효표의 과반수 이상을 한 후보가 득표하는 경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2차 투표 : 1차투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현재까지 모든 선거에서 1차 과반득표자가 없었음), 1차 투표 다득표자 2인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2.2 선거권 / 피선거권

선거권자 : 18세이상의 프랑스 시민이며, 선거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경우 선거권을 가진다.
피선거권자 : 선거권을 가진 18세 이상의 프랑스 시민이며, 500명의 추천인(자치단체장, 유럽의회 의원, 프랑스 의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로부터 지지서명을 받을 수 있는 경우 입후보할 수 있다. 대통령 #

3 역대 선거결과

3.1 제5공화국

3.1.1 1958년

샤를 드골 VS 조르주 마란

샤를 드골:62,394(78.51%)
조르주 마란:10,355(13.03%)

제5공화국 최초의 선거였으며 이때는 간선제로 선출하였는데 당시 화려하게 정계를 복귀한 전쟁영웅 샤를 드골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였다.

3.1.2 1965년

샤를 드골 VS 프랑수아 미테랑

샤를 드골:13,083,699(55.2%)
프랑수아 미테랑:10,619,735(44.8%)

58년도와는 달리 드골이 불리하니 국민투표로직선제로 선출하는걸로 바뀌었으며 샤를 드골의 압승으로 끝날거란 예상과는 달리 좌파단일 후보였던 미테랑의 선전으로 2차 결선투표까지 치뤄졌다.

3.1.3 1969년

조르주 퐁피두 VS 알랭 포에르

조르주 퐁피두:11,064,371(58.2%)
알랭 포에르:7,943,118(41.8%)

샤를 드골이 68혁명의 영향으로 본인이 제시한 국민투표선거 에서(드골 항목참고)지면서 부결되어 69년도에 바로 사임하였기에 곧바로 선거가 치뤄졌다. 그리고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들이 전부 탈락하고 대선에서 중도파 알랭 포에르와 드골파 우파 조르주 퐁피두의 대결로 이루워졌지만 2차 투표에서 1차 선거결과에 실망한 좌파 지지자들이 대거 투표에 불참하며 투표율이 68%로 낮게 나왔고 덕택에 예상외로 싱겁게 조르주 퐁피두의 압승으로 끝났으며 드골파 정권이 연장되었다.

3.1.4 1974년

바쁜 사람은 2분 50초부터
지스카르 데스탱 VS 프랑수아 미테랑

지스카르 데스탱:13,396,203(50.8%)
프랑수아 미테랑:12,971,604(49.2%)

이번에는 또 퐁피두가 사망하면서....... 5년만에 다시 선거가 치뤄졌다.데스노트냐??이번에는 미테랑이 다시 출마하였는데 무려 1차선거 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으나 2차 결선투표을 앞두고 토론방송에서 제대로 발리면서 막판에 역전되어 또다시 패배하였다.[2][3] 

3.1.5 1981년

둘다 대머리라 사진의 1/3이 나와도 누가 당선 됬는지 알기힘들다
바쁜 사람은 40초부터

지스카르 데스탱 VS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수아 미테랑:15,708,262(51.8%)
지스카르 데스탱:14,642,306(48.2%)

이번에도 74년도 처럼 미테랑과 데스탱의 대결이었으며 이번에는 제대로 작심한 미테랑이 토론회에서 데스탱을 공격하였고 같은 우파였던 시라크도 합세하면서[4][5]진정한 좌우협작드디어 대선 3수만에 미테랑이 승리하였던 선거였으며 정말이지 오랜만에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3.1.6 1988년

바쁜 사람은 50초부터
프랑수아 미테랑 VS 자크 시라크

프랑수아 미테랑:16,704,279(54%)
자크 시라크:14,218,970(46%)

이번에는 반대로 좌파 대통령과 우파후보의 대결이었는데
당시 2년전 하원선거에서 밀리며 내정에 관한 권한을 자크 시라크에게 넘겨주며 미테랑한테 위기가 찾아왔지만 시라크가 생각보다 이때 국정운영을 못해서....결국 미테랑이 꽤나 큰차이를 보여주며 승리하였고 덕분에 14년간 장기집권이 가능하였다.[6]

3.1.7 1995년

자크 시라크 VS 리오넬 조스팽

자크 시라크:15,763,027(52.6%)
리오넬 조스팽:14,180,644(47.4%)

지난번에 미테랑에게 패배했던 자크 시라크가 다시 한번 도전해 결국 승리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다시 우파가 재집권에 성공했던 선거였다.비록 좌파는 패배했던 선거였지만 전에 있던 93년도 총선에서 대폭망.....했던 거에 비하면 꽤나 선방했던 선거였다.[7]

3.1.8 2002년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문서참조

3.1.9 2007년

유일하게 2차 투표 후보들이 탈모인 없던 선거 그래서 인지 밑에서부터 보여준다

니콜라 사르코지 vs 세골렌 루아얄

니콜라 사르코지: 18,983,138(53.1%)
세골렌 루아얄: 16,790,440(46.9%)

이때 최초로 여성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며 큰관심을 모았으나 생각보다 큰 차이로 밀리며.... 우파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때 선거가 끝나고 루아얄하고 올랑드하고 헤어졌고[8] 사르코지도 대통령이 된후 5달만에 두번째 부인이었던 세실리아와 이혼하고[9]기껏 수십년을 옆에서 도와줬더니만-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었던 인기모델이자 가수였던 카를리 브루니와 재혼을 하였다...(역대 대통령중에 최초로 임기중에 이혼하고 재혼을 했다.)훗 이래야 프랑스 정계답지

3.1.10 2012년

니콜라 사르코지 VS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수아 올랑드 : 18,000,668(51.6%)
니콜라 사르코지 : 16,860,685(48.4%)

미테랑이 퇴임한 이후 무려 17년만에 다시 좌파가 정권을 잡았고. 사르코지는 31년 만에 지스카르 데스탱 이후 단임 대통령이 되었다...

3.1.11 2017년

지금 2016년을 기준으로 하면

  • 프랑수아 올랑드
사실상 재선 불가능이다.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현재 노동법 개정안 문제로 기존 좌파의 지지도 다 떨어져 나간상태에다가 2012년에 분명 본인이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재선을 안한다고 했기에... 재선에 도전해 봤자 1차 결선 투표에서는 2위로는 진입하겠지만그러나 올랑드보다 더 평이 좋았던 조스팽조차 떨어진 적이 있으니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2차 투표에서는 매우 큰 차이로 낙선할것이라고 예상된다...
  • 니콜라 사르코지
다시 한 번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당대표에 취임한 뒤 기존의 당명을 대중운동연합을 공화당으로 바꾸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워낙 대통령 시절 때 평가가 처참한 편이라 재선에 성공하기는 어려울듯 싶다. 프랑스의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부정부패 혐의가 많은 편이다.
  • 국민전선
프랑스 대선의 큰 폭풍우를 몰고올 강력한 존재감. 2015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사회당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했을정도로(다만 이때 그야말로 좌우가 하나가 되어 결선투표에서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어 국민전선은 2차 투표에서 전패하였다.)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과격한 테러로 국민전선의 인기는 날날이 높아지고만 있기에 잘못했다간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처럼 2차 결선 투표 진출이 가능할지도...무슬림들을 싫어하는 국민전선에게 큰 힘을 주는 ISIS…응???
  1. 원래는 7년이었고 1회 연임이 가능해 이론적으로 14년이나 집권이 가능했으나 2000년도에 국민투표로 임기가 축소되었다.
  2.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에 의하면 당시 미테랑이 크게 방심했던것이 컸었는데(좌파답게대중연설에만 익숙한 그였고 점심먹고 낮잠을 자지않나...토론방송에 대해 심지어는 제대로 연습도 안한 상태였다고 한다)유튜브에서 방송을 찾아보면 확실히 미테랑의 상태가 별로 좋은편은 아니었다.
  3. 다만 이때 미테랑은 프랑스 본토에서는 이겼지만 외국령,부재자 투표에서 밀렸는데(이게 결정적이었다.) 여기서 부정선거의혹이 제기되는둥 자세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다지 깔끔하게 치뤄진 선거는 아니었다.
  4. 참고로 같은 우파였지만은 둘이서 추구하던 방향은 많이 달랐는데 시라크가 정통 드골파(보수주의) 였다면 데스탱은 중도우파(자유주의)였기 때문에 한동안 프랑스 우파는 드골파의 RPR 과 데스탱의 UDF 로 나뉘어졌었다.
  5. 그리고 시라크의 경우에는 우파가 선거에서 져도 본인이 우파의 1인자가 되는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으로 미테랑을 도왔고 또 본인의 판단처럼 우파의 1인자가 되어 한동안 좌파의 1인자였던 미테랑과 대립하였다.다만 미테랑이 시라크보다 더 한수위였지만...
  6. 참고로 미테랑은 프랑스 대통령중에서 가장 최장기간으로 집권한 대통령이다.
  7. 선거에서 패배했는데 무슨 선방한거냐라고 할수있겠지만 93년도 프랑스 하원선거 당시 총 의석수가 577석였는데 사회당+기타 좌파정당 합쳐서 80석..... 밖에 얻지 못했을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당장 우리나라의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8대 총선과 비교해보자
  8. 결혼은 안했지만 4명의 자식이 있을정도로 사실상 부부였는데 올랑드가 대선을 치루기 2년 전쯤에 바람을..피워서... 이미 둘이 별거하고있는 상태였는데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대선이 끝날때 까지 서로 함구하기로 한거같다.
  9. 심지어 세실리아와 사르코지는 서로가 유부남,유부녀(세실리아도 사르코지가 두번째 남편이었다..)인 상태에서 바람을 피우고 이혼한 뒤 다시 서로가 재혼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