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22대23대24대
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프랑수아 올랑드

이 차씨랑도 닮았다
이 뮤지션과도 닮은 듯
이 영화배우마저 닮았다

Nicolas Paul Stéphane Sarközy de Nagy-Bocsa / Nicolas Sarkozy

1 개요

프랑스의 제23대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영주였다.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종교가톨릭이다.


2 생애

사실 사르코지(Sárközy, 샤르쾨지) 가문은 프랑스가 아니라 헝가리의 귀족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소련군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사르코지 가문이 1948년 헝가리에서 프랑스국적을 바꾸면서 이주한 후 낳은 자손이 니콜라 사르코지다.

특이하게도 프랑스에서 출세하려면 꼭 나와야 하는 그랑제콜 출신이 아니다.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는 못했던 모양. 정확히는 시앙스포(Sciences Po) 박사는 나왔는데 일반 그랑제콜(학사)는 못 나온 것이다.어차피 대통령까지 해먹었는데 그랑제꼴이 무슨 소용일까?

니콜라 사르코지는 1974년 프랑스정당인 공화국 민주동맹(UDR)[1]에 가입하고 1981년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1983년 28살의 나이로 뇌이 쉬르 센(Neuilly-sur-Seine)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 후 1993년 시장을 지냈던 뇌이 쉬르 센에서 프랑스하원의원이 되었고 1997년 프랑스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1999년 유럽의회(EP) 의원으로 당선되어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직하였다.

그 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프랑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꺾고 5년 임기의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경기침체와 2010년부터 시작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PIIGS 국가들에서부터 시작된 유로존 붕괴 위기에서 독일앙겔라 메르켈 수상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다녀 '메르코지'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결국 2012년 올랑드에게 1차 투표에서는 28.6% 대 27.1%로 졌으며, 2차 투표에서도 48.3%로 51.7%의 올랑드에게 3.4%, 110만표차로 졌다. 임기중 사망한 퐁피두(4년 10개월, 1969년~1974년)와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진 지스카르 데스탱(7년 재임)에 이어 30년만의 최초의 단임 대통령의 오명을 쓰면서 퇴임했다.[2][3]

한편 이 선거에서 극우파인 마린 르펜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을 능가하는 18%의 높은 득표를 올림으로써 캐스팅보더로서의 위력을 과시했다. 르 펜은 UMP의 세력약화를 위해 무지지를 선언했고, 올랑드에 맞서는 극우 제1야당을 노리고 있는 시점이다. 중도파인 프랑스 민주동맹의 바이루에 , 우파 정치인으로 전임 대통령인 시라크까지 좌파 사회당의 올랑드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르코지는 완전 고립무원이 되었고, 여기에 카다피 사건에 대한 몇몇 불편한 진실까지 드러난 게 결정타가 됐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적은 표차로 졌다.

3 사생활

여자관계가 매우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프랑스는 대체로 공과 사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여 정치인의 애정행각을 그리 문제 삼지 않는다. 미테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아예 대통령 재임전에 사생아까지 낳았으나, 선거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갔다. 게다가 유럽각국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대통령 부인이 공개석상에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치인에게도 적용되어, 정치인의 사생활과 정치적 행보는 개별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 또한 현재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 자체가 일반적인 형태의 가정이 붕괴되는 형편이라서(전체 출산에서 혼외출산 비중이 대부분 절반을 넘는다. 한국이나 일본은 3%도 안 되는데... OECD 평균은 30% 정도) 이렇게 문란한 사생활도 프랑스 내에서는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다.

1982년 마리 도미니크 퀼리올리(Marie-Dominique Culioli)와 결혼하여 피에르 사르코지와 장 사르코지 두 아들을 낳은 뒤 뇌이 쉬르 센 시장 시절 세실리아(Cécilia Ciganer-Albéniz)와 눈이 맞아서 각자 서로의 배우자와 이혼한 후 또 결혼을 했다. 그 뒤 루이 사르코지를 낳았다.

그런데...이번엔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후 가수 겸 배우 카를라 브루니[4]와 눈이 맞아서(...) 세실리아와 이혼하고 브루니와 결혼하였다.

3.1

프로필상 키가 165cm로 단신이다. 러시아차르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도 같은 키지만 작은 키가 연상되지 않는 푸틴의 카리스마가 없어서인지 유난히 작은 키로 놀림을 많이 받는 편이다. 오바마 부부같이 키가 큰 사람을 만날 때의 그 엽기적인 키높이 구두에 까치발이라든지, 연설할 때 몰래 상자위에서 하다가 딱 걸린다거나, 심지어는 주변에 경호원이든 엘리제궁 청소부도 키가 큰 사람은 기피한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이다. 사르코지가 연구소를 시찰하러 갔는데 공교롭게도 마중나온 연구원들이 모두 사르코지보다도 키가 작은 단신들이라 연구소에서마저 사르코지의 단신 콤플렉스를 염려한 것 아니냐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작은 키를 굳이 연연하지 않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키 따위는 고려 대상도 아니게 만들지도 못하고, 덩샤오핑같이 작은 키를 오히려 자신을 어필하는 장점으로 이용하지도 못했다. 한동안 나폴레옹 신드롬, 치와와 신드롬으로 유머란을 장식하기도 했다.


4 구설수

4.1 비리혐의

여러가지 비리혐의로 구설에 올랐다. 그나마 프랑스가 강력한 대통령국가여서 그렇지 내각책임제 국가였으면 벌써 사임하고도 남았을만한 일들을 많이 벌였다. 특히 사치스러운 행태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복지예산을 축소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비용을 국고로 뭉텅뭉텅 쓰는 짓을 해서 2012년 재선에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드골이나 미테랑을 비롯한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은 매우 검소한 생활로 유명했기 때문에 사르코지의 이런 행각은 민심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했다.

야당인 사회당의 도지에르 의원의 폭로를 보도한 영국 선데이타임즈에 따르면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주차시켜놓은 사르코지의 차는 무려 121대. 여기에 매년 보험료만 10만 파운드(1억 7천만원), 연료비로 27만 5천파운드(4억 8400만원)을 쓰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식비만 1만 파운드(1천 760만원)을 쓰며, 한 병에 160파운드(30만원)나 하는 고급 와인을 접대용으로 마구 썼다고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고 있던 자신의 아들이 아프다고 하자 대통령 주치의를 태운 전용기를 급파하여 사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언론장악 문제로도 시끄러웠는데, 일단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사장을 자신이 직접 임명한다고 해 논란이 일어났으며[5] 특히, 광고폐지는 많은 논란이 불거졌는데 공영방송의 돈줄을 막아서 자신의 휘하에 놓고자 한다는 논란과 일단 사르코지와 프랑스 최대의 민영 방송사 TF1의 회장과 매우 친하다는 점을 들어... 광고료를 TF1한테 몰빵해주는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손쉬운 경우[6]에도 전용기로 이동을 고집하며 방문 지역에 전용기를 세울만큼 큰 공항이 없다고 하자 전용기를 끌고 갈 견인차를 대령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처음에 대통령 전용 사냥터를 폐쇄하는 등의 쇼를 보여주다가 저런 본색이 드러나서 인기가 폭락했다. 한마디로 사치가 심해도 너무 심했던 것이다.

IMF 총재 재임 중 뉴욕의 한 호텔에서 강간혐의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몰락도 경쟁자를 낙마시키려던 사르코지의 쪽의 음모라는 설이 많다. 그래서 등장한 인물이………호텔의 경영자가 사르코지의 측근이라고 한다. 다만, 이것이 스트로스칸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데 스트로스칸은 평소에도 성중독으로 인해 답이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4.2 가족문제

여기에 자식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한 것인지 아들들까지 상태가 안 좋아서 구설수에 올랐는데, 재선 실패의 한 원인이 되었다. 장남 피에르가 배탈났다고 대통령 전용기를 부른 건 위에서 언급했고, 차남 장은 2008년 교통사고 뺑소니 혐의로 재판에 섰다가 공권력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3남 루이는 엘리제 궁에서 친구와 놀다가 근처를 경비하던 여경의 얼굴에 토마토를 투척해 사르코지가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 [7] 또한 미국발 경제 위기로 다수의 프랑스 국민들이 파산하여 거리로 내몰리거나 심지어 하루 먹을 게 없어 굶주리기까지 하는 상황에서도 온갖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극히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줘 마리 앙투아네트?[8] 사르코지로부터 민심이 떠나는데 한몫 더했다. 물론 자기 돈 갖고 자기 사생활 즐기는 것이라면 할 말 없지만 문제는 카를라가 대통령 영부인이고 프랑스에서 대통령 일가는 검소해야 한다는 철칙이 박혀있다는데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하고 인간적인 지도자라도 자식은 엉망진창일 수 있고 프랑스 사회 특성상 아내의 사생활도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만큼 이 문제들은 재선 실패에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다는 평가도 많다. 그리고 카다피와의 관계 등도 사실 대놓고 반인륜 범죄를 도왔다던가 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9]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부정부패[10] 및 사르코지 본인의 사치와 더불어 프랑스인들의 경제정책에 대한 인식과 사르코지가 생각하는 경제정책간의 괴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11]

유일하게 친형 기욤 사르코지만 사생활이 깨끗하다. 평범한 기업인이라서?


4.3 무개념 발언

2009년에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에서 니콜라 사르코지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초대하지 않아 엘리자베스 여왕이 격노하고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나는 등 외교적으로 결례를 범해서 커다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문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노르망디에서 전사했던 군인들은 미군과 영국군이었다. 당시 국가원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참전용사였던 엘리자베스 2세를 초대하지 않는 행위는 그야말로 큰 결례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비난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에도 사르코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여왕님 오는 것은 우리와 상관 없는데 이건 미국과 우리 프랑스의 행사라는 것만 알아둬요."라는 발언을 하면서 더욱 어그로(...)를 끌었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는 참전용사였기 때문에 참석 안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 답이 없는 양반을 가만 두면 안된다 싶었는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를 해서 어쩌어찌 넘어가긴 했지만,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이 가는 대신 찰스 왕세자를 보냈다.

2011년에는 알자스 지방의 트루츠쉐임에서 프랑스 농민 대표들에게 연설을 하던 도중 단순 말실수로 알자스-로렌은 독일 영토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전설적인 일화도 있는데.....

[무려 자기 나라의 국민에게 쌍욕을 했다!] 물론, 그 시민이 일방적으로 먼저 시비를 털기야 했지만 ("더러워 손대지마!")...... 이에 맞받아치면서 "그럼 꺼져, 이 X발새X야!" 라고 응수했다.

5 기타

31985446.jpg
2008년 10월,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사르코지의 모습을 본뜬 부두인형과 몸통을 찌를 바늘 및 사용 설명서를 한 세트로 구성해 출시한 상품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2만개 넘게 팔려나갔다. 인형의 몸체에는 '더 벌기 위해 더 일하자', '사라져라, 패배자', '키높이 구두', '하이퍼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사르코지의 정책을 풍자했으며, 어느 부분을 찔러야 사르코지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가를 나타냈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지만, 졸지에 저주의 대상이 된 사르코지는 변호사를 통해 판매 중단과 회수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대선 때 경쟁자였던 세골렌 루아얄의 부두 인형도 함께 출시되었지만 루아얄은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크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결국 법정으로 넘어간 이 사건에서 1심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인형의 판매를 허용했으며, 여기에 불복한 사르코지측이 항소한 결과 2008년 11월 29일 항소 법원은 판매 자체는 허용하되 인형을 찌르는 행위가 사르코지의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공격에 해당한다는 경고문을 부착하도록 판결했다. 한마디로 팔지 말라는 이야기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기 위해 트위터페이스북 모두를 가동시킨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말 노렸을지도. 아니면 뭐에 쓰려고? 일단 결과적으로는 재선에 실패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재선에 실패한거 보면.....

[사르코지의 트위터]
[사르코지의 페이스북]


6 이후

2013년 프랑스 검찰은 사르코지를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기소했다. 대통령 선거 전에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 사주로부터 거액을 정치자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것. 보통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내란이나 외환 관련 범죄가 아니면 재임시절 형사소추가 안 되니 검찰이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도 사르코지가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려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영부인이었던 브루니는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사르코지에게 충성 맹세 편지를 보낸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 물론 청탁성 편지를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것 자체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어온 흔한 일이지만 문제는 내용이 그야말로 절대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출세를 청원하는 신민급이었다는 것이다.[12] 과연 사르코지 가카답다

2014년 11월, 대중운동연합의 대표로 취임했다. 2선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단임으로 5년 더 할 수 있다는 걸 이용하려는 듯하다. 그리고 올랑드 정권의 지지율 폭락에 맞춰 대권 탈환을 준비중인데 먼저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 이름을 공화당으로 바꿨다. 정작 국민들은 사르코지가 '공화국'의 이념을 사유화하려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이고 있다.[##]

2015년 10월 29일에는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고립을 중단하고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 13일 프랑스 지방선거의 결선 투표에서는 국민전선의 돌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사회당과 공화당이 위 아 더 월드로 힘을 합쳤고, 그 결과 국민전선에게는 단 하나의 광역자치단체장도 허용하지 않고 승리했다. 그러나, 사회당은 고작 국민전선보다 2% 높은 30%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단독으로는 국민전선 하나 상대하기 버겁다는 현실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사회당과 올랑드는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승리를 거뒀고, 국민전선과 장 마리 르펜은 당장은 기세등등하지만 어쨌든 실속은 얻지 못한 반면, 공화당과 사르코지는 모든 것을 다 얻은 선거였다. 결국, 다시 한 번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려는 사르코지에게 날개가 달린 모양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다. [#]


독일과 프랑스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 브렉시트 철회 할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 직후 토론회 직후 여론조사서 쥐페 36% 지지율로 1위를 지키며, 사르코지는 22% 그쳤다.[#]
  1. 현재 프랑스야당프랑스 공화당의 전신.
  2. 사실 프랑스는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임기가 7년으로 길기 때문이다. 2002년 이후엔 5년으로 단축되었지만 여전히 긴건 마찬가지다. 구조상 자력으로 14년 임기를 마친건 미테랑 정도고, 시라크 역시 동거정부를 운영했던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이길 수 있던 이유는 1차 투표에서 좌파 후보 난립으로 사회당 조스팽이 간발의 차로 극우파 르펜에게 지면서 좌파 표가 모조리 시라크에게 쏠렸다.
  3. 사실 사르코지의 총리도 프랑수아 피용이다. 그냥 이름 자체가 흔한 듯하다.
  4. 이 분의 남성편력은 사르코지의 여성편력보다 화려하면 화려했지 부족하지 않다. 에릭 클립튼, 롤링스톤즈의 맥 제거, 도널드 트럼프, 뱅상 파레 등 엄청나게 많다. 특히 믹 제거와 사귈 때는 브루니는 에릭 클립튼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상황이었고, 믹 제거는 제리 홀과 사실혼을 거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5. 일단 어떻게 해서 임명에 성공하긴 했으나 후임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다시 법을 개정해서 지금은 직접임명은 못한다.
  6. 파리에서 128km 떨어진 곳 방문. 굳이 우리나라로 대입하자면 서울-청주 거리 쯤.
  7. 20대까지는 탑급 모델(입생로랑, 지방시 등의 모델이었다.)이었고, 이후에는 현역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영부인으로 있으면서 앨범을 냈다.) 한국에도 앨범이 나온적이 있다. 참고로 이탈리아계인데 그래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우리가 님 나라에 영부인 보냈뜸!'이라는 개드립을 치기도... 답이 없다 언니인 발레리는 배우와 감독을 하고 있다.
  8. 이 사람은 그래도 초반 한정이고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쓴 돈은 꽤나 적었다
  9. 어차피 외교에서는 온갖 더러운 짓도 감수해야 할 때가 많고 독재자에게 립서비스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 본심은 나중에 그 독재자가 쫓겨나고 나서 혹은 김정은처럼 답이 안 나올 정도의 인간말종에다가 욕해도 큰 상관이 없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고립된 경우에나 드러내는 것이다.
  10. 프랑스 국민들 대다수는 사르코지의 여자관계나 본인 돈으로 하는 사치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거니 했지만, 사르코지 일가가 벌이는 세금 낭비와 권력남용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깽판은 용서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11. 사실 두번째 부분은 억울할 수도 있는게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워낙 막장이라 긴축 외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랑드 역시 처음에는 성장을 우선시한다고 했지만 프랑스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는 멘붕하며 사르코지 노선을 그대로 계승해야 했다.
  12. 프랑스 대통령이 과거의 왕이나 황제와 비견될 정도로 권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지위는 국민의 대표자이다. 그런 대통령을 절대군주에 비유한 편지를 보내고 대통령이 그걸 보낸 사람을 지원해줬다는 것 자체가 사르코지의 권력에 대한 인식 및 리가르드 총재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