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식명은 '피 흘리신 구세주 교회'. 약칭 피의 성당으로 흔히 불린다.
2 역사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실제로 그 성당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1881년 3월 13일 , 러시아 제국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사람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의회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그런데 당일 사회주의(혹은 무정부주의, 공화주의) 운동가 인민의 의지파 소속 그리네비츠키, 소피아 페룹스카야 등의 폭탄 테러를 당했는데 첫 번째 폭탄에 맞았을 때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선물한 방탄 마차의 안전장치 덕분에 안에 있던 본인은 무사했고 호위병과 마부만 다쳤다. 이에 알렉산드르 2세는 "난 괜찮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기는 커녕 마차에서 나와 폭발에 휘말려 다친 다른 사람들을 수습하려고 하다가 그 모습을 본 또 다른 암살범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번째 폭탄을 던졌다. 두 번째 폭탄에도 그는 즉사하진 않았지만 팔 하나와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투성이로 쓰러져 "짐은 궁궐에서 죽고 싶도다..."라는 말을 겨우 했다. 이미 누가 봐도 가망이 없어서 신하들이 마지막 부탁대로 궁궐로 데려갔고 결국 궁궐 안에서 사망했다. 알렉산드르 2세가 피를 쏟았던 폭탄 테러 장소에는 후계자 알렉산드르 3세가 이 성당을 지어 아버지를 애도했고, 이후 정치범들에 대한 혹독한 복수가 이루어졌다.
3 양식
근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중세 러시아 성당건축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지었다. 다섯 개의 화려한 돔은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과 비슷하다. 내부도 매우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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