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

共和主義 / Republicanism

1 개요

주권이 구성원들에게 있는 정치체제 + 법을 기반으로 한 구성원들의 평등 + 개인보다 공공선을 우선시 하는 체제이며, 군주제와 반대되는 체제.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담당하는 속성이 있다. 정부의 권력 외에 시민들의 권력도 견제의 대상으로 본다.

일단 왕이나 황제가 없는 체제면 일단 공화제라고 부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공화주의는 주권이 특정한 지배자가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에게 있는 체제이다. 따라서 이 특성 덕분에 민주주의와 매우 잘 결합된다.[1] 또한 공공의 선을 강조하는 특성 덕분에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착각 할 수 있지만, 공화주의는 시민의 덕목을 우선시 하는 전제 하의 공공선을 추구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 둘을 착각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공공선"은 자유라는 개념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봤을 때 구성원들의 "자유"를 뜻하는 거라 봐도 무방하다.

플라톤의 아이디어는 아이는 무조건 공동 양육. 아내도 공동소유(…). 는 필요 없으니까 버리고 전체를 지도 계층, 군인 계층, 생산 계층으로 삼박자가 맞게 돌아가게 하려고 했다. 속성만으로는 공산주의와도 비슷해 보인다.

정치이론의 하나로서의 공화주의는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주의를 견제하는 입장이며[2], 공동체주의에 친화적이다. 자유주의가 중시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로 다분히 개인주의적 성격이 짙다면,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자유는 일종의 적극적 자유라 공동체로의 참여와 헌신을 중시하기 때문.

군 복무는 시민의 의무이자 시민으로서의 덕성 함양의 기회로 보기 때문에, 자유주의와 다르게 공화주의는 징병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다.

2 한자명의 유래

기원전 841년 중국 의 여왕(厲王)이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쫓겨나 주정공(周定公)과 소목공(召穆公)이 천자(天子)를 대신해 함께 정무(政務)를 관리하였는데, 두 사람이 공동으로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보았다고 해서 이를 ‘공화(共和)’ 혹은 ‘주소공화(周召共和)’라고 한다.[3] 나중에 황제가 없는 정치체제의 명칭을 지어야 되자, 과거에 왕이 없던 시절의 명칭을 따다 붙인 것.

3 기원

기본적으로 정치적 기원은 그리스 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본다.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다스리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이는 공화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실제 그리스를 다스리던 시민이 전체 인구중에 5%인 것을 감안하면.. (참고로 그 유명한 프랑스의 삼부회 시절에도 제 1신분과 제 2신분의 비중이 5%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본격적인 시작을 보통 로마시대로 보는 사람이 대다수다. 로마는 기존에는 왕정으로 시작했다. 로마가 에트루리아 인들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선출 된 왕들이 다스리던 체제였다. 그러나 마지막 참주인 타르퀴니우스가 막장짓을 시작하면서... 분노한 로마 시민들이 왕을 몰아내고 귀족정을 세웠다. 그러나 지속적인 정복활동을 계속하던 로마 안에서 귀족들과 시민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로마 시민들은 로마의 국방을 수호하기 위한 의무를 저버리고, 무장한 상태로 로마의 산 하나를 점거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성산사건) 이후 로마사회는 기존의 로마 귀족정의 후계인 원로원과, 정치적,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집정관, 그리고 시민들이 주축이 된 민회와 그 대표인 호민관으로 구성되게 된다.

플라톤은 군주정은 독재(참주정)로, 귀족정은 과두체재로, 민주정은 중우정으로 타락한다고 주장했기에 공화정에서는 이 세 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각 집정관, 원로원, 민회이다.

로마 공화정의 특이한 점은 군주정과 귀족정, 민주정이 혼재해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정치적 결정체제는, 민회가 안건을 결의하고, 원로원은 이를 승인하며, 정무관이 이를 수행하는 3권분립의 체제와 매우 흡사하다. 이런 방식으로 로마는 공화주의를 잘 이끌어 갔다. 하지만 이런 로마의 공화주의는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루비콘강 도하로 멸망되었고, 로마 제국이 세워지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그 껍질은 유지 되었으나 현실은..

근대 공화주의의 기원은 하나의 역사적 기원에서 나오는것이 아닌, 사회 환경이 그렇게 이끌어 갔다고 보는것이 더 옳다. 기본적으로 공화주의는 법치를 필요로 하는데, 중세에 법치가 있다고 보는건 좀 아니고, 왕이나 귀족같은 특권계급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감히 천한 것들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것도 좀 아니고, 주권이 피지배 인들에게도 있는것이 아니다. 따라서 근대 공화주의의 역사는 이 3가지 측면의 형성에서 찾아봐야 한다.

우선 법치의 형성을 본다면, 이 점에서는 로마의 법치주의적 근원이 옳다. 그리고 이는 유스타니우스 대제가 로마법 대전을 통해 고대와 중세와의 단절을 막았고, 이렇게 전해진 법은 점차 정교하게 발전해 헌법과 입헌주의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시민들은 법 앞에서의 평등을 가지게 되었다.

두번째로 특권계층의 소멸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프랑스 혁명과 큰 연관이 있다. 일단 앙시앵 레짐(기존 집권층)의 모순으로 인한 반란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특권계급의 소멸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는 로마를 모델로 하여 상원과 하원을 적용하였고, 특히 상원은 원로원을 그대로 따서 Senate라고 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이후 후속타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함과 동시에 특권계급을 말 그대로 때려잡았고, 그 덕분에 특권계층의 소멸이 가속화 되었다. 물론 테르미도르 반동이라든지 여러 사건이 있엇지만, 이런 개념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덕분에 국민주권주의, 국민자치, 권력 분립, 다수결의 원리등 여러 개념이 형성되었다.

공화주의는 이 시기 이후로 정치적 이념으로서 근대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후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따라 그 형태는 변화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특정 사회 집단 및 계층에 대한 권력 집중과 일방적 지배관계 형성을 반대하는 논리로서 전개되었다.

4 공화주의의 자유관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공화주의 입장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그 질적인 의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자유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지만 대체로 소극적 의미의 자유관이 주류이다. 이와 달리, 공화주의적 자유는 보다 구체적으로 자의적 지배의 부재라는 조건을 내건다. 따라서 공화주의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정신과 도덕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에 의한 간섭은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피치자가 스스로 정하여[4] 만들어진 법이라면 그 법은 정당한 지배이며,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이다. 법이 사람들의 의지를 곧이곧대로 반영하여 만든 것이 아닌 보편적 가치와 공공선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5] 정당하다고 본다는 면에서 민주주의적 자유와도 개념상 거리가 있다.
공화주의적 자유를 해하는 것은 공동체정신에 입각하지 않은 자의적인 간섭을 할 수 있는 집중되고 고착화된 권력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독재나 중우정치, 다수의 횡포와 같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6]
따라서 공화주의적 의미의 자유는 법치주의와 결부되며, 피치자 자신의 영향력을 반영하여 법 질서를 수립하는 절차,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의식, 정치 참여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고,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다양한 수단[7]을 갖춘 지속성 있는 정치 체제에 의해 뒷받침된다.

5 한국의 공화주의 학자

한국의 대표적인 공화주의 학자로는 곽준혁 전 고려대 교수가 꼽힌다. 이 교수는 공화주의에 관한 외국 저서를 많이 번역, 단행본을 여러권 발간하였다. 개인적 사정으로(자세한 이유는 소송방지를 위하여 작성금지) 인하여 현재는 숭실대로 이적한 상태.

6 군주국의 공화주의

국왕을 두는 군주국들의 경우에는 공화국으로 갈 것을 주장하는 세력이 꽤 있다. 군주국의 공화주의를 참고할 것.
  1. 오히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적 속성 때문에 민주주의와 갈등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2. 자유주의자는 공화주의를 단지 자유주의를 위한 제한적 측면에서의 악세사리와 같은 존재로 보는 시선이 짙다.
  3. 이외에 '공' 지역에 분봉된 백작인 '화'라는 인물이 대신 집권했다는 설도 있다.
  4. 반드시 직접 정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대의민주주의와 같이 적어도 정하는 과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충분하다.
  5. 공익 실체설과 유사한 전제를 공유한다.
  6. 공화주의가 가진 문제의식이 왕정, 귀족정, 민주정 각각의 부작용 모두에 걸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 주로 권력의 분산, 특히 대통령제에서는 권력분립 및 상호 견제와 균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