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24 | |
하세가와 유야 (長谷川勇也) | |
생년월일 | 1984년 12월 22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야마가타현 츠루오카 시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2006년 5순위 지명 |
소속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 |
201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수위타자 | |||||
카쿠나카 카츠야.312 (치바 롯데 마린즈) | → | 하세가와 유야 .34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이토이 요시오.331 (오릭스 버팔로스) |
201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안타상 | |||||
우치카와 세이이치 157안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하세가와 유야 198안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 | 나카무라 아키라 176안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교타자들의 천국 소뱅이 쓸어담네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NPB 퍼시픽 리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 외야수. 애칭은 하세 혹은 하세유
일본 프로야구 사상 5명 있는 시즌 풀타임 수위타자상 수상자.
일본 프로야구 시즌 최다안타 부문에서 역대 7위 기록(198안타) 보유자.
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입학전, 5살 위인 형이 소년 야구부에서 연습하는 걸 보고, 그 계기로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부모가 허락을 해줘 소년 야구단에 들어가 야구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은 주로 투수로 출전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엔 1학년 가을 대회부터 외야수로 전향, 2학년, 3학년 봄, 여름 3연속으로 고시엔 전국대회에 출장했다.
고교 졸업후 도쿄 소재인 센슈대학에 진학하여 야구부에서 1학년때부터 주전으로 정착하여, 3학년 가을 대학리그에서 수위타자, 4학년 가을에는 타율 .341, 6홈런으로 MVP를 차지했다.
2006년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5순위로 지명하여 입단하였다.
3 프로 입단 후
입단 첫해 스프링 캠프에서 1군 후보로 주목받았으나 부상을 당하며 시즌 대부분을 통째로 날리고 만다.
2년차인 2008년에는 시즌 중반 1군에 승격되고 나서 주로 우투수 상대 선발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외야 수비시 다른 외야수들과의 콜플레이에서 어려움을 보였고, 콜플레이 미스로 호텔을 두번이나 세우며 소프트 뱅크 팬들에게 빅엿을 선사했다. 이후 8월 중순에 손가락 부상으로 2군으로 강등, 이후 1군 승격 되지 못했다.
2009년에는 개막 주전 멤버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한때 4할을 넘을 정도로 고타율을 유지했었다. 10경기 연속 안타 및 커리어 첫 끝내기 안타를 치는 등, 클린업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의 활약을 보였다. 또한 수비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올스타 투표에서도 외야수 부분 3위에 들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나가게 된다. 이 올스타전에서 이 후에 팀 동료가 되는 우치카와 세이이치를 홈에서 보살시키는 강한 어깨를 보여주었다. 시즌 종료시엔 처음으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리그 4위인 타율 .312 팀내 최다 안타인 159 안타라는 성적을 남겼다.
2010년에는 전년과는 달리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2군을 왔다 갔다 하다가 비교적 초라해진 타율 .253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1년에는 개막전부터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지만 타격이 살아나지 못하고 후쿠다 슈헤이에게 주전 자리를 뺏겨 벤치 멤버로 물러났다. 이 후 다른 외야수의 부상으로 주전 기회를 다시 얻게 되지만, 타격은 살아나지 못했다. 하지만 7월부터 타격 컨디션이 올라가면서 시즌 종료시에는 규정타석을 달성하고 리그 8위인 타율 .293, 리그 3위인 출류율 .379를 기록했다.
포스트 시즌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1타수 6안타, 타율 .545라는 좋은 성적을 내며 시리즈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은 개막부터 팀의 성적이 저조한 가운데에서도 고타율을 유지하며 4월 중순부터는 컨디션이 안좋은 혼다 유이치를 대신하여 1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또한, 나카무라 아키라가 두각을 드러낸 5월 중순부터 5번에 정착하며, 우치카와 세이이치, 마츠다 노부히로와 함께 강력한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해, 안타를 양산해냈다. 교류전 사상최고타율인 .418을 기록, 교류전 MVP로 뽑혔다. 그 이후도 타격페이스가 떨어지 않고 시즌 종료시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보이며 시즌 198안타를 기록하며 기존 가와사키 무네노리가 가지고 있던 구단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커리어 첫 풀타임 출전을 달성하며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5명이 가진 풀타임 출전 수위타자가 되었다. 베스트 나인 외야수 부분도 가져가게 된다.
2014년도에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3할을 유지한 채로 시즌을 종료하게 된다. 그러나 시즌막판 발목 부상으로 포스트시즌에서는 한경기도 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소속팀인 소프트뱅크는 하세가와의 공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악전고투하기는 했지만 일본 시리즈에서는 4승 1패로 한신에게 낙승. 본의아니게 소속팀의 무시무시하게 두터운 선수층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15년 시즌 들어와서도 발목 수술과 부진으로 시즌 전체를 공치다 시피 했다. 그러나 작년에 자기를 빼고도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한 소속팀은 불과 2년전에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하고 전년도에도 3할타율을 기록한 자신을 빼고도 오히려 더 잘나가는 기현상을 보이면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결국 1군 출전기회는 팀이 우승을 확정지은 이후은 9월 하순부터 주어졌는데 이 얼마 안되는 기회 동안 거의 1년 내내 1군 엔트리에 들지 못한 울분이 폭발한 듯 타격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어갔다. 2015년 들어 무시무시한 전력으로 팀을 두개를 꾸려도 선수가 남는다는 평을 받는 소속팀인지라 타팀 팬들로부터 안 쓸 거면 우리 팀에 임대라도 해주라고 불평하는 대상 중의 한 명이 됐다.
2014년 시즌 종료 후, 다음 해에 FA 자격을 취득하고, 팀 내에서는 포지션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어 주전자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 3년 총액 6억엔에 다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거취가 불분명한 마쓰다 노부히로의 뒤를 이어 선수회장에도 취임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안정적인 선구안, 정교한 타격, 빠른 발을 갖춘 리드오프맨 스타일. 프로입단 전 50미터 달리기 기록은 6.1초, 멀리던지기 기록은 115m로 나왔다.
2009년 기준 투스트라이크 이후 타율이 양 리그 1위인 .268을 기록하며 카운트가 몰린 이후에 집중력이 뛰어나지만 아웃코스에 약점이 있다는 평이다.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악력이 떨어지면서 장타력이 저하된 적이 있는데 새끼 손가락을 검지위에 겹치는 골프 같은 파지법으로 문제점을 극복했다고 한다. 또한 하체 단련에도 시간을 들여, 팔 힘에 의존하던 타격 폼을 하반신을 이용하도록 수정했다. 결과적으로 장타력이 살아났고, 전에는 헛스윙 하던 떨어지는 변화구에 잘 대응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익수, 중견수를 주로 보지만 최근에는 코너 외야수로 많이 기용되고 있다.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인해 지명타자로 많이 출장하고 있으며 2016년 올스타 팬투표 퍼시픽리그 지명타자 포지션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5 이모 저모
주력선수들이 개인 트레이닝을 하는 12월~ 1월에 따뜻한 오키나와나 괌이 아닌 후쿠오카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하는 걸 스포트 신문에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말하길 "환경이 변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라고 한 바 있다.
팀 내에서 닉네임은 모에짱(...). 팀내 담당코치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으나 9.11 테러 사건으로 여행지가 후쿠오카로 변경되었고, 그때 처음 후쿠오카 돔을 방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