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 노부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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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5
마쓰다 노부히로 (松田宣浩)
생년월일1983년 5월 17일
국적일본
출신지시가#s-5현 구사쓰 시
포지션3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5년 희망 입단 프레임 계약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
소속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6~)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주전 3루수.

2 경력

2.1 프로 입단 전

프로 입단전에는 유격수로 뛰며 주쿄 고등학교에서 60개의 통산홈런을 기록했다.

아세아 대학(도토대학야구연맹 소속)에 진학한 뒤에도 홈런을 뻥뻥 쳐댔는데 이구치 다다히토의 대학기록을 경신할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팀 동료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팀이 경기 출전금지를 먹었고 2부 리그로 강등된 탓에 기록경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4학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춘계리그를 우승한 뒤 1부 리그로 복귀했다. 그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희망 입단 범위로 입단을 공식 표명했다.

2.2 프로 입단 후

2006년 개막전에 7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 하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서는 고쿠보 히로키 이후 12년 만에 신인이 개막전에 선발 출장을 했다. 그러나 그해 신통치 않은 타격과 잦은 수비실책 등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고 1군으로는 승격되지 못했다. 이듬해까지 고쿠보에 밀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9개의 홈런과[2] 3할초중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6월부터 1군에 등록! 8월에는 월간타율 3할을 그리고 193타수에 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장타력은 여전했다.

2008시즌 주전 3루수로 시즌을 시작하며 큰이탈 없이 타격면에서는 전년도에 비해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9월 29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 에서는 이와쿠마 히사시로부터 홈런을 때려냈는데 이것은 2008시즌 이와쿠마가 퍼시픽 리그선수에게 허용한 첫번째 홈런이었다.

하지만 2009시즌 개막전에서 귀루를 하는 과정에서 오른손에 부상을 입게되었고 팀에서 이탈하게 된다. 6월초 복귀를 했지만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 사구를 맞으며 다시한번 부상을 입게되어 그 해에는 46경기 출전에 그쳐야만했다.

2010시즌에는 한국에서 온 미남과 함께 주전 3루수 경쟁을 벌였다. 그 기간에 좌익수로 출전을 하기도 했다. 이해에는 다나카 마사히로로부터 프로데뷔 첫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타율은 2할5푼5리에 그쳤지만 19개의 홈런과 71타점, 그리고 17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데뷔후 최고의 성적을 내며 팀의 리그우승에 기여했다.

그리고 2011시즌 드디어 폭발했다. 한경기도 빠짐없이 출전하며 전이닝을 소화. 개인최다인 25개의 홈런과 83타점 25도루 2할 8푼 2리의 타율을 기록. 전년도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팀의 2년연속 리그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0타수 1안타 1홈런으로 1할 일본시리즈에서는 1,2차전 4번타자로 출장했지만 안타 2개에 도루 1개에 그쳤고 이후 타순이 뒤로 밀리며 타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4번타순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1할 6푼(28타석 25타수 2득점 4안타 2타점 3도루 1희생타 1볼넷 1사구 5삼진)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며 시작한 2012시즌에는 기대에 부응하듯 도루왕에 오를듯한 페이스로 도루를 무차별적으로 성공 시켰지만 5월부터 홈런과 도루가 급감. 그래도 타율면에서는 수위타자를 향해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8월초 라쿠텐전에서 미마 마나부의 사구에 맞아 손바닥이 골절되어 전치 3개월을 받으며 이탈하고 말았다. 10월 5일 복귀 했으나 이미 규정타석도 미달되었고 아쉽게도 최고의 시즌이 될 수 있었던 해를 날리고 말았다.

2013시즌에는 WBC일본대표에 승선해 타율 0.333,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3위에 기여했다. 정규시즌에는 초반 2할3푼대에 머물며 부진했지만 교류전에서부터 부활하며 4번타자로 정착. 3번 우치카와 세이이치 5번 하세가와 유야[3]와 함께 막강 클린업을 형성했다. 본인 최다 90타점과 2년 만의 20홈런을 기록했지만 팀성적과는 무관했다.

2014시즌 5월 13일 롯데전에서 NPB통산 9만5천호 홈런을 쏘아올렸다. 7월초 연습도중 손가락에 공을맞는 부상을 당했지만 출전을 강행. 그러나 다음날에도 붓기가 빠지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손가락 골절로 6주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승리하는 팀이 리그우승팀이 되는 최종전 대 오릭스전 10회말 1대1 상황에서 좌중간 끝내기 안타를 치며 우승을 결정지었다.

2015시즌 자신의 1000호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한다. 최종성적은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짧아진 야후돔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30홈런을 돌파했고(35홈런), 94타점으로 13년 이후 오랜만에 90타점을 넘겼다.

시즌 후에는 FA를 통해 메이저리그행을 추진했다. 가장 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보였던 팀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는데, A.J.프렐러 단장이 마쓰다를 만나기 위해 직접 일본에 방문하기도 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고 결국 소프트뱅크 구단 회장 오 사다하루의 설득에 결국 소프트뱅크에 잔류를 결정.#

3 플레이 스타일

야나기타 유키 이전에 10년간 호크스에서 보기 드물게 장타력 툴을 보고 2순위 안에 지명한 야수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호크스의 드래프트는 대체적으로 1, 2위는 투수를 지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야수가 드래프트에서 2순위 안에 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4] 지명을 한다고 해도 광활한 홈 구장의 사정을 고려하여 장타력보다는 교타자 위주로 지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5] 그만큼 마쓰다의 장타력이 각별했다는 얘기.

일단 부상만 없으면 팀에서 기대한 만큼의 장타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으나 문제는 그놈의 부상. 1년이 멀다하고 같은 팀에서 뛰었던 요코하마 출신의 모 선배처럼 부상으로 1개월 이상의 장기 이탈이 연례행사이다. 이 때문에 2014년까지 프로생활 9년동안 110경기 이상 출전한 해가 4번밖에 안 되고 통산 성적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노피어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로, 타구 방향이 대부분 좌측으로 향하는 풀스윙어다. 그리고 1루까지 4초대 초반 3루까지 11.59를 기록할 정도로 발이 상당히 빠르다. 멀리던지기 110미터를 기록할 정도로 강견을 소유. 수비범위는 좁지 않으나 08시즌 17실책을 기록하기도 했다.

4 이모저모

타격 중 파울을 치거나 헛스윙을 하면 한쪽 다리를 든 채 몸을 웅크리고 뛰어다닌다. 중계를 보다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항상 화이팅 넘치며 리더십도 갖추고 있다. 덕아웃의 분위기 메이커.

눈을 상당히 자주 깜빡 거린다. 그냥 평범하게 깜빡이는 모양새가 아니라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을 상당히 자주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습관적으로 되는 듯 하니 쉽게 고치기는 힘들듯...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디테일한 선수 흉내내기로 유명한 다카모리 유키가 마츠다 노부히로의 눈깜빡임과 스윙 후 동작을 따라하는 영상
  1. 1993년부터 2006년까지 NPB에 존재했던 프로 입단 제도. 굳이 비유를 하자면 KBO 신인 드래프트의 1차 지명 제도와 유사한 제도였다. 단 KBO 리그와는 다르게 연고지의 제약이 없었다는 점.
  2. 이는 팀내 1위였다.
  3. 13시즌 198안타와 0.341의 타율로 2관왕에 올랐다.
  4. 실제로 드래프트 지명 1, 2순위를 모두 야수로 지명한 건 1996년의 이구치 타다히토마쓰나카 노부히코의 국가대표 콤비를 지명한 게 가장 최근이었다.
  5. 그렇게 지명된 대표적인 사례가 대수비, 대주자 요원으로 뛰고 있는 기도코로 류마와 어깨는 강하지만 잦은 실책과 빈타로 욕먹고 있는 일본프로야구의 오지환 이마미야 겐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