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한국인 메이저리거 | ||
텍사스 레인저스 No.17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99 | 피츠버그 파이리츠 No.16 |
추신수 | 류현진 | 강정호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No.26 | 미네소타 트윈스 No.52 | 볼티모어 오리올스 No.25 |
오승환 | 박병호 | 김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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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2007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10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11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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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No.10[2] | ||||
이대호 (李大浩 / Dae-Ho Lee) | ||||
생년월일 | 1982년 6월 21일 | |||
출신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 |||
본관 | 전주 이씨 | |||
학력 | 수영초-대동중-경남고-(영남사이버대) | |||
포지션 | 1루수, 3루수, | |||
투타 | 우투우타 | |||
신체 | 191cm, 125kg, A형 | |||
프로입단 | 2001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4번)[5]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 (2001~2011) 오릭스 버팔로즈 (2012~201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2015) 시애틀 매리너스 (2016~) | |||
등번호 | 49(2001 ~ 2004), 10(2005 ~ 2011, 2013 ~ 현재)[6], 25(2012)[7] | |||
응원가 | 롯데 시절 입장시 : 해리 벨라폰테 《Day-O》, 체리필터《오리 날다》 타격시 : 사라 본《A Lover's Concerto》, 자우림《하하하쏭》 오릭스 시절 응원가는 이승엽의 오릭스시절 응원가의 재탕.[8] | |||
취미 | 골프, 게임 | |||
가족 | 배우자 신혜정, 딸 이효린, 아들, 형 이차호 | |||
종교 | 불교(대한불교 조계종), 법명 : 삼소(三笑) |
보유 기록 | |||||
최다 연속 경기 홈런 | 9경기 (세계 최다)[9] | ||||
타격 7관왕[10] | 2010 시즌 | ||||
2010년 한국프로야구 MVP | |||||
2015년 일본시리즈 MVP | |||||
2006년 2010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 |||||
2005년 2008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 |||||
2006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 |||||
2006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 |||||
2006년 2010년 2011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 |||||
2010년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 |||||
2006년 2010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 |||||
2010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득점상 | |||||
2006년 200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 |||||
2010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장타율 | |||||
2010년 2011년 한국프로야구 최고 출루율 |
목차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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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4번타자
한국프로야구 유일 타격 7관왕
前 롯데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 現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메이저리거.
2 선수 경력
이대호/선수 경력 항목으로.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KBO 역사상 가장 뛰어난 타격기술을 보유한 타자 중 한명
NPB에서는 최정상급 거포로 군림한 타자
일본 커리어 통산 베스트 나인 2회. 일본에 진출한 역대 선수중 베스트 나인을 한번이라도 수상받은 선수는 백인천과 이대호를 제외하면 없다. 퍼시픽리그 4년 통산 타석 1위, 타율 4위, 홈런 3위, 안타 2위, 타점 2위, OPS 1위(출루율 3위, 장타율 1위), wOBA 2위, WRC+ 2위, OPS+ 2위.
거포라기보다는 중장거리형 교타자 쪽으로 분류될 때가 많다. 그의 타격 메커니즘은 슬러거들과는 전혀 다르며, 차라리 양준혁이나 김동주에 비교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고타율의 컨택형 타자이지만 워낙 힘이 좋아서 장타가 양산되는 것. 이승엽처럼 공을 띄우는 능력이 타고났다든지, 타구의 탄도가 여타 슬러거들처럼 높은 편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코스의 공에 대응해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춰냄으로써 질 좋은 라인드라이브를 생산해내는 타자. 비슷한 유형의 타자로는 최준석이나 김태균이 있지만 최준석은 이대호에 견줄 클래스가 아니다. 김태균의 경우에도 국가대표 4번을 놓고 경쟁하던 2000년대 후반이면 모를까, 도망 이후로는 이대호와 비교가 불가능하다. 평가가 벌어지게 된 까닭은 일본에서 기록한 성적 차이 및 이후의 행보.
이전까지 10년 이후 각성이라 나와있었으나 KBO에서 타격 커리어 하이는 wRC+나 OPS+ 기준으로 07년이었다.
KBO 리그 유일의 트리플 크라운 2회가 증명하듯, 2006~2007년 연속으로 3할 3푼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정교한 타격과, 2006년부터 크게 성장한 컨택트 능력을 바탕으로 정말 승부하기 어려운 타자 중 하나이다. 실제로 MBC ESPN(현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8개 구단 선수를 상대로 "9회말 2사 만루,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자는?"에 19표로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08~2009 시즌에는 2006~2007시즌의 '이대호와 여덟난장이'급의 괴물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이대형에게 밀려 도루(0개)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다시금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가 되었다. 이대형은 이대호의 타격 전관왕을 저지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다시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삼성 라이온즈 거포 신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타격의 신(神) 장효조 코치도 일찌감치 그의 실력을 예견했었다. 2004년 백골퍼에게 무릎이 아작나고 재활 후.. 2004년 사직구장에서 장효조(당시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터였다)가 이대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 였다. 그때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의 질문이 '이대호가 대타자가 될 수 있을까요?' 장 감독의 눈이 둥그래졌다. "정 기자, 아직 야구 볼 줄 모르는구먼. 저 거구에 저 정도로 유연한 선수는 정말 보기 드물어요. 저 큰 몸으로도 3루 수비를 해내잖아. 두고 봐요. 우리나라 최고 거포가 될 거야." 타격의 신의 눈은 정확했다. 출처
본인도 자신을 홈런 타자라고 인식하지 않고 교타자 내지 중장거리 타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매우 타당한 생각인데 그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2008~2009시즌을 살펴보면 홈런을 의식해 스윙이 어퍼스윙으로 변했고 밀어치기보다 당겨치기가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대호는 홈런을 의식하면 오히려 성적이 나빠졌는데, kbo 역사에서 전무후무함은 물론이고 커리어 평균보다 훨씬 많은 홈런을 기록했던 2010년은 결혼 후 심리적 안정감과 체력 관리가 잘 되어 타구 비거리가 5~10m 정도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투수로 시작한 데다가 백골프의 삽질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 손해를 봐서 한국프로야구 커리어 통산 스탯은 높지 않은 편이지만, 이대호가 대폭발한 2006년 이후로 통계시점을 잡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2000년대 후반 5년으로 한정할 경우 통산 타율 3위(0.325), 홈런 1위(142), 타점 1위(492), OPS 2위(0.983)[12], WAR 1위(28.46)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이승엽이 KBO 리그를 대표한다면 후반은 이대호가 KBO 리그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간으로 한정하여 타자들의 순위를 매겨보면 이대호는 출장경기수, 타율, 장타율, OPS, 안타, 타점, 홈런, 득점, 루타에서 1위이며, 출루율은 2위, 볼넷은 3위로, 고타율에 선구안도 나쁘지 않고 잘못 걸리면 넘겨버리는 타자가 큰 부상 없이 꼬박꼬박 출장하기까지 하니, 이대호는 투수에게 그냥 악몽 그 자체. #
선구안은 나쁘지 않지만 은근 베드볼히터로 자기가 원하는 코스에 오면 볼도 쳐야 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위에 서술했듯이 거구이면서 유연성이 탁월하여 고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로 KBO의 우타 빅뱃 계보를 김동주로부터, 국가대표 야구팀의 타선 중심을 이승엽으로부터 잇고 있다. 물론 우타 빅뱃과 국가대표 4번 자리를 놓고 끝까지 경쟁하던 경쟁자가 있긴 했지만... [13]
김태균과는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로, KBO에서 뛸 때의 전체적인 커리어 스탯을 비교하면 처음에는 투수였던 데다가 부상과 살이 쪄서 적응으로 초반에 고생한 이대호에 비해 데뷔 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김태균이 누적 스탯상 우위에 있다.
하지만 이대호는 리그를 지배했던 2006, 2007, 2010 시즌이 워낙 임팩트가 크고, 밑에도 써있듯 2000년대 후반부터 보면 이대호의 우위. 김태균의 일본 리그 시절이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데 비해 이대호는 2012년에는 타점 1위, 홈런 2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2013년 시즌도 3할 타율에 20+홈런을 기록하면서 이 둘의 비교는 점차 식은 떡밥이 되고 있다. 실제로 두 선수의 누적스탯이나 비율스탯은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이는 wRC+, wOBA 등의 세이버 스탯으로 놓고 봐도 큰 차이가 없다.
3.2 수비
둔해보이는 체구 때문에 매우 저평가를 받지만, 실상은 기본기가 매우 충실한 야수이다.
단점은 3루 수비시 매번 롯데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던 좁은 수비 범위. 박기혁이 대신 잡아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이 수비부분이 현재까지 이대호의 MLB 진출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지워내지 못하게 만들고 MLB가 아닌 NPB로 진출하게 된 원인이다.[14] 하지만 아래 사진의 '돼호존'에만 들어오면 러닝스로나 슬라이딩 캐치 등 판타스틱한 수비를 보여줬다
사실 송구나 정면 타구 대처는 수준급이고 전진 수비도 생각하는 것만큼 둔하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좌우 한발 범위를 자랑하는 좌우 수비범위. 실제로 황재균이 롯데로 트레이드 되어 온 뒤 처음 출장한 경기에서 평범한 수비를 펼쳤음에도 롯데팬들은 슈퍼플레이를 본 양 신기해 했다.
2010시즌 1루수 붙박이로 결정되었으나, 3루수를 맡을 예정이었던 정보명의 부상으로 다시 3루수로 나섰다. 이때 롯데의 내야수들을 다 테스트 해보았으나, 결국 이대호의 3루 수비가 가장 나았다. 그리고 박종윤을 동시에 기용할수있는 장점이 있었다 뭐라고??
물론 다른 팀의 3루수들에 비하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대호의 수비범위는 수준 이하로 좁다. 이는 그 공간을 대신 커버해야 하는 유격수에게 엄청난 수비부담으로 작용했고, 이로 인해 야기된 내야수비의 불안정은 팀 전체의 수비 리듬과 투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3루를 제외하면 있을 곳이 1루와 지명타자밖에 없는데 지명타자는 이미 홍성흔[15]이 리그 최강의 수위타자로서 버티고 있으니 1루 밖에 선택지가 안 나왔다.
이대호의 주 포지션은 1루수이지 3루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대호 이외에 마땅한 3루수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멀리 갈 것 없이 2007시즌부터 2010시즌까지 롯데의 3루수 기록을 보면 이대호가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16] 그리고 이범호를 잡지 못한 이상 단기간에 정상적인 수준의 3루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는 이대호를 3루수로 기용해 온 것. 그리고 이대호가 3루수를 맡음으로 인해 왼손잡이라서 1루 수비밖에 안되는 박종윤을 1루수에 돌리거나 블래스 신드롬으로 내야 송구에 문제가 있는 김주찬을 1루에 세워 공격력 강화를 꾀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문제의 악의 근원은 그동안 뽑은 유망주 중에서 제대로 된 3루수를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키워내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 롯데의 무능한 코치진들 롯무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17] 결국 2010년 황재균을 사 오고 나서야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참고로 1루를 볼 때는 그런 대로 수비도 잘 하고, 포구는 수준급이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내야수들이 송구할 때 겨냥하기 좋다 즉, 야수들에게 확실한 타게팅을 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형저메의 경우 역시 높이 뜨는 악송구 등에도 196cm라는 큰 키로 잘 대처할 수 있는 점 등 1루수가 체격이 크면 유리한 점도 많다. 수비에 대해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었으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2014년 지명타자 전업 전까지 대부분 1루수로 경기를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정도 수준은 갖췄음을 입증했다.
파일:PB23dyS.gif
메이저 진출에서도 주루와 함께 약점으로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팀에서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고 메이저에서도 통할 수비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대호의 활약을 보고 아까워하는 팀도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주루와는 달리 1루 수비가 약하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메이저에서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는 모습
3.3 주루
뛰기 싫어서 홈런을 친다 카더라
주루 부분은 몸무게 때문에 다리가 무척이나 느리다. '중견수 키를 넘기는 1루타' 또는 '우중간(좌중간)을 가르는 1루타' 같은 다소 황당한 장면을 제법 자주 보여 준다. 물론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거포형 타자들이 자주 보여 주는 모습이긴 하다.
게다가 코스가 라인 쪽으로 붙거나 외야수들 사이를 정확히 가르지 않는 한 펜스 직격이나 원바운드 후 펜스를 맞추는 타구는 투바운드 이상 혹은 구르는 타구보다 타구속도가 빨라서, 외야수가 어지간히 어버버하지 않는 한 진루하기 어렵다. 특히 펜스 직격타구 같은 경우에는 치는 사람도 홈런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서 설렁설렁 걸으니 더더욱. 게다가 사직구장의 펜스 높이는 국내 제일이다. 고로 8회 이후로 1~2점 차로 점수차가 적게 날 때 이대호가 출루하면 발 빠른 대주자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본인도 "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 타점이 줄어드는 셈이니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이 '좀 빨리 들어와라'고 하면 "어쨌든 살았다 아이가"라고 받아쳤다나.
발이 확실히 느리긴 한데, 몸이 대책없이 불기 전인 2007 시즌까지는 그래도 간혹 가다가 도루를 시도했고 종종 성공하기도 했다. 밑에도 서술되어 있고 홍성흔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는 홍성흔에게 포수 미트를 놓게 한 대사건 중 하나가 이대호의 도루 성공이었기도 했고, 2007시즌 5월에는 괜히 도루하다가 부상당해서 봄데모드 재현에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의 체형으로 변한 2008시즌부터 2010시즌까지는 이대호의 도루시도는 올스타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그런데 2011 시즌에는 2개나 성공했다.
오릭스로 이적한 이후에도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동시에 유일하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부분이 느린 발. 이대호가 진루하더라도 홈으로 불러들여줄 수 있을만큼 팀의 타격이 좋지 않은지라 차라리 이대호의 타순을 7번 정도로 조정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로, 그냥 홈런을 때려버리면 돼지. 절대 맞춤법을 틀린 게 아니다.
그래도 주루로 인해 부상한 적은 없고, 애초에 언제 뛸지 아무도 모를때 뛰다보니 주루사가 적다. 의외로 주루센스가 좋은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당장 이 이야기가 나온게 일본이다. 심지어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2013에선 이대호의 능력에 주루 4가 들어있다!-주루센스 관련기사
메이저 진출에서도 수비와 함께 약점이라고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 때문인지 무려 20kg이나 감량했고, 죽자사자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타에 1루에서 3루까지 달리는 등 놀라운 (...) 주루플레이를 보여주었고 2루타 4개를 치는 등 주루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250타석 출전에 bsr - 3.9의 메이저 최하급 주루는 약점으로 평가된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본선 라운드가 열리기 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연습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한 적도 있다. 이유는 이종욱이 볼에 맞아 교체해야했는데 외야 요원을 다 써 마땅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 실책으로 한번에 홈으로 들어온 적이있다. 이고시 그 유명한 인사이드 파크 모텔 게다가 잠실구장 X존을 운영했던 때니 LG만 거하게 능욕만 당하는 장면.
홈스틸 장면
깨알 발디리스
4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라이언 사도스키가 2013년 WBC를 앞두고 네덜란드 팀에 제공한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이대호 부분만 발췌.
-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타자 가운데 한 명이며 일본 무대 첫 해에도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다. 미국에 진출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센티미터의 키와 12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도 불구하고 놀랄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다. 승부처에서 반드시 피해가야 할 유일한 타자. 중요한 상황에서 강하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했고 타점 찬스를 즐긴다. 다리를 높이 들기 때문에 배트 스피드가 느려 보이지만 95마일이 안 되는 속구는 문제없이 공략한다. 한 번 속은 구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대처도 잘 한다. 사이드암 투수가 약점. 한국에서는 평균 이하의 사이드암 투수라도 이대호를 잘 잡아냈다.[18][19] 둔하지만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서 1루 수비도 해낸다.
- 외야수들이 뒤로 멀리 물러나야 한다. 타구를 앞에만 떨어뜨리면 단타로 막을 수 있다. 내야수들은 보통 위치.
5 김태균과의 평행이론
신기한 것 중에 하나는, 라이벌 구도인 김태균과 이대호가 사이클이 같은 적이 거의 없다는 것. 이대호가 절정의 타격감과 장타력을 보일 때 치고 올라갈 김태균이 볼넷만 고르다가 김멀뚱이 되거나, 김태균이 알버트 푸홀스 모드 발동하여 스탯을 쌓고 있을때 이대호는 치라는 홈런은 못 치고 안타나 똑딱거린다던지…. 이는 두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봐도 그렇게 보일 정도.사실 이제 라이벌이라고 하기도 무색하다. 이제 아예 레벨이 다른데 비교를 한다는 자체가 이제 그냥 재미로만 보자.
- 2001년
- 한해 먼저 데뷔한 김태균이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동안 이대호는 아예 나오지도 못했다.
- 2002년
- 김태균이 소포모어 징크스로 타율이 .255까지 떨어지며 허우적댈 동안 이대호는 어떻게든 나와서 .278에 8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 2003~2005년
- 롯데 팬이라면 치를 떨 백골프때문에 이대호가 2할 5푼대의 빈타와 부상에 허덕이는 동안 김태균은 3년 연속 타율 3할대, 출루율 4할대, 장타율 5할대에 각각 31, 23, 23홈런으로 맹활약했다. 그야말로 이대호의 흑역사이자 두 라이벌간 격차가 극명했던 3년.
- 2006~2007년
- 독하게 단련하고 나타난 이대호가 2006년 트리플 크라운을 포함해 3할 3푼대의 맹타를 휘두르는 동안 김태균은 2할 9푼으로 타율이 떨어지고 홈런도 반토막이 났다. 본격적인 이대호 역전시기.[20] 그러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나간 것은 김태균이었고,[21] 그 덕분에 김태균은 병역 면제를 먼저 받게 되었다.
- 2008년
- 초반 타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여름부터 축 처진 이대호에 비해 김태균은 도루, 최다안타 빼고 다 5위 안에 들어갈 맹활약으로 다시금 이대호를 제꼈다. 그러나 중요 이벤트였던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대호가 맹타를 휘두를 동안 김태균은 집에 있었다(…). 이대호도 이 때 병역 면제 획득.
- 2009년
- 이대호가 제리 로이스터감독의 지시로 3루에 들어가면서 수비로 고생하고 손바닥 부상까지 찾아오면서 3할을 못 치는 동안, 김태균은 2008년 겨울 푹 쉬고 FA로이드까지 마시며 09 WBC를 폭격하고 3할 3푼의 맹똑딱질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김태균은 뇌진탕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결장했다.
그리고 팀도 망해버렸다
- 2010~2011년
- 이대호가 한국에서 돼마왕이 된 동안 김태균은 김지진이 되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 2012년
- 반대로 이대호가 일본에서 투신타병에 고생하는 동안 김태균은 4할 5푼을 쳤다(…). 그러나 6월, 이대호가 타점 1위에 등극하는 등 날아다니는 동안 김태균은 부상과 극악의 빠따질로 타율과 출장경기 수가 같이 떨어졌다(…).
과학으로 증명될 일만 남은 듯또 이대호가 잘하다가 8월 극심한 부진에 빠지는 동안 김태균은 4할을 유지하며 4할타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이대호가 부활하자 김태균의 타율은 .365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는 일본리그 타점왕을, 김태균은 한국리그 타격왕을 차지한 것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둘 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시즌으로 볼 수 있겠다.
- 2013년
- 이대호는 전년도에 비해 홈런과 타점은 그대로였으나 타율은 3할로 올라온 반면, 김태균은 팀과 본인의 안습한 사정을 버텨내지 못하며 겨우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 2014년
- 이대호가 많은 기대속에서 소프트뱅크로 이적하였고 세자릿수 안타와 타율 3할을 기록하였지만, 딱 그것 뿐이었고 한국, 일본 양국에서 스탯돼지, 득점병, 비득점권의 악마등 2010년 이후, 소위 돼마왕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온갖 굴욕적인 별명[22]이 붙으며 준먹튀 취급받는 동안 김태균은 비록 리그 자체가 타고투저의 성격이 강하다고는 하나 타격왕 경쟁까지 하면서 상당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둘의 평행이론은 비단 타격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었는데, 이대호의 경우 FA 신청으로 오릭스팬들과 소뱅팬들은 물론이오 심지어는 국내에서도 온갖 비아냥[23]을 당하면서 팬심이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데 반해서,[24] 김태균은 비록 한화 한정이긴 하지만 적어도 홈팀 팬들의 지지를 다시 얻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팀 성적은 또 반대로 소프트뱅크는 우승했고 한화는 꼴등했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수준.
- 2015년
- 이대호는 퍼시픽리그 OPS 2위(1.018)를 기록하면서 야니기타, 마츠다와 함께 소프트뱅크의 선두질주를 이끌고 있고 김태균도 OPS 1.134(리그 4위)의 호성적으로 마리한화 열풍을 이끌다가, 시즌 후반 둘 다 부진의 늪에 빠졌다. 아무래도 2015년에는 평행이론이 폐기될 줄 알았는데 이대호가 플레이오프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일본시리즈MVP와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는 동안 김태균은 플레이오프조차 못 나갔다.(...)
- 2016년
- 이대호는 스플릿 계약에서 경쟁자들을 뚧고 메이저리거가 된 한편 김태균은 초반에 84억이라는 대형 FA 계약을 맺고도 수비와 타격 모두 최악으로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5월을 기점으로 이대호는 플래툰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10홈런을 기록하고 김태균은 장효조를 넘어 통산 출루율 1위에 등극하는 등 올해도 평행이론이 통하지 않는 듯 하다.
여담으로 이대호의 딸 이름이 효린이고, 김태균의 딸 이름도 효린이다. 두 효린 어린이는 모두 신묘년 토끼띠 생이라는 것까지 같다.
6 별명
- 통통한 체격으로 인해 언론에서 흔히 쓰는 별명은 빅 보이이지만[25] 일반적으로는 이름을 살짝 바꾼 돼호, 혹은 거기서 조금 더 바꾼 돼랑이(돼지+호랑이. 이대호의 호를 虎라고 봐서) 등등으로 불린다. 간혹 이대호가 부진하면 바로 돼지로 격하. 밑에 나올 부산우유 CF 때문에 우유돼지 추가. 반면 성적이 잘 나올 때는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리기도 한다.[26][27][28][29] 최근에는 롯데 선수들끼리만 사용하던 "백설공주"라는 별명이 MBC ESPN 중계를 통하여 알려졌다. 저 뜻이 뭔가 하면, 백만인을 설설 기게 하는 공포의 주둥이...2007년도에 이대호를 제외한 롯데 타선이 부진할 때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고 부른 것이 '공주'의 원조인듯.# 또 가끔씩 나오는 호수비에 대한 경탄의 의미로 수비요정이라고 불릴 때도 있다. 어디까지나 가끔.
- 한편 야갤 유행어로는 "이게 사람이야 이대호야"가 있다. 일본에 간 이후 오릭스 팬으로부터 이대포라고 불리는듯.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자 이데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오릭스에서 나가고 팬 영상은 귀신 같이 지워졌다
- 오릭스가 그리 강한팀이 아니여서 우리나라 처럼 많이 이야기 되고 있진 않지만 나름 이대호의 덩치에 관한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일례로 일본 방송 우치무라사마즈 에서 풋살을 할때 덩치 큰 AD가 도와주러 나왔는데 그걸 본 오오타케 카즈키가 "너 이대호냐? 오릭스의 거포."라는 드립을 쳤고 빵 터트렸다. 그리고 그 AD는 끝날때까지 이대호 AD로 불린건 덤.
- 비득점권에서 홈런을 자주 때려 2ch에서 붙혀준 별명 '비득점권 악마' 추가.
- 네이버에서 '이대호'를 치면 "이대호 도루하는 소리"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심지어 본인도 저 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1년 4월 28일 4년 만에 도루에 성공했다! 이젠 도루의 요정 이대호그리고 베니건스는...[30] 양승호감옥이 롯데 감독 시절, 롯데 프론트에서 라인업에 간섭하려고 하자 "이런 식이라면 나 내일 경기에 1번 이대호 2번 홍성흔 3번 강민호 4번 문규현 쓴다고."라고 일갈하기도 했다고 한다.그 와중에 문규현 간접디스출처
- 그리고 2011년 11월 13일 열린 부산고 VS 경남고 라이벌 매치 투수로 나와서 투심 패스트볼을 선보이자 돼덕스 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대호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등심패스트볼이라고 명명 했다. 또 그의 공에 걸리는 테일링은 돼일링, 공이 떨어지면 PORK볼[31]이라고 불린다....
돼일링 걸린 등심 패스트볼
Pork볼
그날 던진 구속이 130km/h가 나오는 위엄을 보이기도.
- 미국에 간 이후 DH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의 약자와 일치해서 생긴 별명인데, 홈런을 배달해준다고. 꽤 센스있는 별명이다.
7 응원가
이대호가 나오거나 이대호 앞의 타자가 쓰리볼 나씽이라도 되면 상대팀을 향해 "이대혼데~ 이대혼데~" 라는 응원이 있었으나 상대팀을 향한 조롱의 의미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 2008년 이후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애초에 2008년 이대호는 2006, 2007년 만큼 압도적인 모습도 아니었기도 하고...그런데 비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잘만 쓰인다. 롯데 팬들의 기대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듯).그런데 정작 신나게 까던 모 구단에서는 어떤 마무리 투수가 등장할때 이것을 똑같이 써먹는다?
롯데 소속이었을 당시는, 이대호 타석이 되면 Harry Belafonte의 'Day-O'에 맞춰 롯데팬이 '대~호~ 대~호~'라고 함성을 질렀다. 이어 이대호 주제가인 체리필터의 '돼지오리 날다'가 나온다. 응원가로서는 2009년부터는 "A Lover's Concerto"에 가사를 입혀 "오~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하는 식으로 쓰였고, 자우림의 "하하하송"에 맞추어 "홈! 런! 이대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응원은 원래 이대호 뿐만 아니라 홈런 타자들(주로 외국인 타자)에게 사용되던 응원이었는데...그럼 하주석은 뭔데이대호의 기량이 폭발하고 카림 가르시아에게는 가르시아송이 따로 생기는 등의 경위로 이대호 전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잘 안 어울린다고 많이 까였다. 무릎팍도사에서 이대호편으로 본인이 출연할 때 본인도 응원가가 빈약하는 것보다 본인이 자기 응원가를 모르겠다고 발언하였다. 강민호를 보고 '니는 롯데의 강민호자나. 내는 그냥 이대호고.'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강민호 응원가야 KBO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니 뭐...모텔에 간 민호!(간민호!) 505호~ 505호~
8 야구 외
파일:CMbzEe8.jpg
정말 베어 하고 자이언트 하다
마, 딱 봐놨어. 니...딱 거 있어라. 니능...딱 거 있어!!
- 공식 프로필에는 194cm, 100kg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2001년 입단 당시이고 지금 현재는 어느 누가 봐도 120kg을 너끈히 넘는다. 만약 192cm, 100kg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 혹은 마해영과 같음. 같은 팀의 선수들과 비교를 하면 이재곤이 191cm에 96kg으로 공식 프로필상 4kg 차이지만 누가 봐도 절대 믿을 수 없는 차이다. 2009년 올스타전 하루 전 부산에서 있었던 슬러거 이벤트에서 팬들의 질문에 127kg라고 밝힌 바 있으며,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10대 1 인터뷰 기사에서 몸무게를 공식적으로 밝힘. 총 20개의 질문 중 3개가 몸무게 및 살에 관한 질문이었다. 개중에는 "맞을 각오를 하고 물어보는데 왜 살 안 뺌?"이라는 질문도 있었다. 2012년에는 125kg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듯. 의외로 의식하고 있는지 KBS 다큐멘터리 촬영 때 오릭스에서 낸 기사에 130kg라고 적혀있자 "저 125kg임. 확실히 체크해 주세요 OK?"라고 일어로 구단 직원에게 항변하기도 했다. 정말 많이 나갔을 때는 150kg까지 나갔었다고..
- 그의 체중 변화를 한눈에 볼수 있는 짤.jpg
- 2016년 3월부터 현대증권의 모델로 활동 중이다.
- 2009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 특별 출연. 특별출연한 야구선수들 중 유일하게 대사가 있다! [32] 영화 내에서도 4번 타자 주제에 병살타나 치고 있다며 까고 있는 설경구를 향해 "마, 딱 봐놨어 니...딱 거 있어라 니능...딱 거 있어!!"라는 대사를 친다.[33]
Calm down, take it easy라고 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묻혔다.장원준은 이 신을 찍다 달려나오다 넘어져 유일한 NG를 낸 사람이 됐다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설경구가 너무 했다기 보다는, 사직 야구장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에 가깝다.(설경구처럼 그물까지 뚫고 들어가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그 와중에 까메오로 한명재 캐스터와 허구연 해설위원이 캐스팅되었는데 퀄리티가 MBC SPORTS+ 야구중계(…)다. 장원준은 덤(…)
해운돼
- 이때 이대호는 '아 연기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슛 들어가보니 설경구가 정말로 사직구장에서 술마시고 욕하는 아재들처럼 레알스런 연기로 순간 이대호의 뚜껑을 열어버렸고, 열이 확 받아 진심으로 대사를 치며 한번에 OK 사인을 받았다고 술회. 나중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설경구를 볼 때까지도 분이 안 풀렸다나... 편집된 애드립 대사가 저렇게 나왔을 정도면 꼴리건이 얼마나 문제인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
-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석, "천만 관객 동원 배우다"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말하고 나서 멋쩍은 듯 한숨을 쉬는거 보면 자신이 생각한건 아니고 대본에 있었던 듯 하지만, 절친한 개그맨 이동엽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종종 저 말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즈음 거대 캐릭터 풍선이 만들어졌다.#
- 2009년 12월 26일, 신혜정씨와 결혼하였다. # 시즌 중에 사직구장 전광판을 이용해서 영상메시지를 날리고, 이어 3만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그날은 4타수 무안타. 경기도 기아에게 7-4로 졌다.이대호가 부상으로 신음할 때 정성껏 간호해주고[34]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해 준 사람으로, 2001년 롯데 선수단이 임수혁선수 돕기 일일호프를 했을 때 만났다. 처음에는 이대호가 너무 크다며 싫어했으나 적극적인 구애에 곧 사귀기 시작, 오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였다. 2010년 이대호의 포스를 보면 신혜정씨의 공헌이 큰 듯하다. 이대호 본인도 그렇게 느끼는 듯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용됐다고 해 달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 아래 서술한 대로 넉넉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며 꿈도 가족끼리 외식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소박. 그래서인지 아내와 딸이 야구장을 찾으면 꼭 홈런이나 타점이 나오는 활약을 한다고. 그에 비해 자신을 키워주다시피 한 형 이차호 씨가 야구장을 찾으면 지는 징크스가 있어 아예 보러 가지 않는다고.
- 여담으로 2010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도루는 왜 못 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100m를 15초 대에 달려서 도루를 못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홈런을 많이 쳐서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해당 영상
그리고 결국 그 해 홈런을 많이 쳐서 누구보다 많이 출루했다.참고로 이대호의 선수 생활 통산 도루는 9개이다.
- 추신수가 함께 등장하는 수영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엄청난 체격으로 고등학생 포스를 자랑했다.[35] 다만 이대호 본인은 바로 아래 서술할 불우한 가정형편 때문에, 당시 롯데의 떠오르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된 박정태를 외삼촌으로 둔 추신수가 부러웠다고 한다. 타고난 체격 덕에 살면서 해봤던 마지막 주먹다짐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른 야구부원이 6학년에게 맞고 오자, 찾아가서 코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팼던 것이었다고 한다. 워낙 큰 덩치 탓에 중학생 이후로는 감히 싸움을 걸어오는 또래가 없었다고.
- 큰 덩치만 보면 누가 봐도 잘 사는 집안에서 잘 먹고 큰 듯하나, 어린 시절이 꽤 불우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집을 떠났을 때 할머니가 홀로 키워줬다고 한다. 추신수의 권유로 이대호가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자 삼촌들이 모여서 가족 회의를 했고, 그 끝에 "야구선수가 되도록 한 번 밀어 줘 보자."로 결론. 이후 삼촌들이 사직 야구장에 많이 데려갔다고 한다. 학창시절 이대호는 야구선수로 대성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드릴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경남고 2학년 때 그만 돌아가셨다고 한다. 1년 뒤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2억원이 조금 넘는 거금을 계약금으로 받고도 할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그리고 이대호가 프로에 입단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친어머니가 다시 같이 살자고 전화도 왔었다고 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운동선수의 체격은 선수 어머니의 신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대호의 경우는 어머니의 키가 169cm였다고 한다.
- 고교 재학 중 부모님 같았던 할머니를 여읜 후에는 형인 이차호 씨가 이대호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3살 터울의 형은 할머니를 덜 고생시켜드리고 싶어, 우수한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빨리 취업을 하기 위해 공고에 진학해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고, 이대호가 프로 지명을 받은 뒤에야 뒤늦게 군대에 입대했다고 한다. 군 전역 후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이대호가 속한 스포츠 매니지먼트 그룹인 O2 S&M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여담이지만 이대호의 형 이름이 '이차호'로, 원래 뜻으로 따지면 이차호가 첫째이니 차호가 '대호'라는 이름을 갖고, 이대호가 둘째이니 '차호'라는 이름을 받아야 하는데, 할머니가 호적 등록 과정에서 한자를 헷갈려 이 둘의 이름을 뒤바꿔 버리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이자 코치였던 박계원이 이대호의 학창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92년 당시 박계원의 지인이 수영초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수영초를 찾은 박계원이 이대호의 불우한 사정을 듣고 야구장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선행 활동이 많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오프 시즌마다 자비로 구입한 연탄을 팬클럽, 동료들과 함께 달동네 독거노인들에 직접 방문하여 배달하고, 독거노인들을 직접 목욕시키거나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못다한 효도를 대신하려고 그런다고. 특히 연탄배달은 2006년부터 시작해서 2015년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 2010년의 몬스터 시즌을 바탕으로, 마구마구 2010년 KBO 카드 업데이트를 통해 첫 출시부터 엘리트 카드로 나온 최초의 현역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 마구마구는 2006년부터 매년 해당 시즌 성적을 반영한 새 선수들을 내놓는데, 07 리오스를 제외한 2006~2013년에 나온 모든 선수들은 처음 나올땐 레어 카드였다. 그러나 2014년에 지속적인 엘리트 카드 추가 패치를 통해서 현재는 엘리트 카드가 있는 현역 선수들이 적지 않고, 첫 출시부터 엘리트인 경우도 많아졌다. (박병호, 강정호, 유한준, 강민호 등)
- 부산우유 광고로 부산우유제품 중 요네뜨라는 광고를 찍었는데...간에 기별이나 가나?
- 1박 2일의 6대 광역시 특집에 부산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 갑작스러운 섭외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친화력이 높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게 남들에게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이대호와 이승기 모두 쉽게 친해져 거의 의형제급의 친한 사이가 되어 헤어졌다.
- 이 와중에 이대호는 복불복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도 했으며, 예의 황금배트를 노리고 오는 도둑이 있을까봐 불안해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는 복불복으로 짝퉁 방망이 갖다 놨습니다. 부산시내 은행이 100개가 넘으니까 복불복으로~"라고 드립치는 등 예능감을 터트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이승기가 "우리가 무릎팍도사보다 먼저 나가는 거야?"라고 했다는 후문. 녹화는 12월 8일에 마쳤고 1월 초에 방영 예정이라고. #
- 찜질 중이신 대호
- 애교다리 이대호
- 그리고 2011년 1월 12일 밤에 무릎팍도사 이대호편이 방송됐다. 고민은 "팀이 우승을 못 해요." 강호동과 쿵쿵따를 하거나 '좀 알고 질문을 하셔야죠~'라고 하는 등 예능감을 적절히 뽐냈다. 이대호의 술회에 따르면 소속팀이 우승했을 때(고등학교 1학년) 후보선수라 우승컵 잠깐 만지고 끝났고, 유소년 대회 우승 때(추신수, 정근우, 김태균 등과 함께 활약한 대회) 우승하자마자 도핑 테스트에 랜덤으로 걸려 환호도 못 지르고 끌려갔다고. 그리고 이대호의 고민은 결국 무릎팍도사도 발을 뺌으로 인해서 사상 최초로 무릎팍도사가 해결해주지 못한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으나 2014년 시즌에 팀이 퍼시픽리그 우승과 재팬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달성하면서 드디어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 이듬해에는 한 술 더 떠서 일본시리즈 MVP도 먹었다....
- 어지간한 경우(상대가 빈볼을 던졌다거나, 상대가 정대현이라거나...) 외에는 얼굴에서 싱글거림이 떠나지 않는 선수라 이것과 같은 짤방도 있다.# 반대로 과거에는 이런 시절도 있었다.
마! 니 얼굴 딱 봐놨어!
- 2011년에 개봉한 영화인 위험한 상견례에선 롯데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 어린이'가 등장한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말. 실제 모습과 아역 배우의 씽크로율이 상당하다.
- 응답하라 1997의 8화에 '경남고 투수 이대호'가 등장한다. 스카우팅을 위해 경남고를 방문한 성동일이, 이대호에게 좋은 투수의 자질이 보인다며, 경남고 감독에게 이대호를 투수로 키울 것을 강추하는 에피소드가 짧게 지나간다.
앞서 성동일은 부산고의 추신수도 투수로 키울 것을 추천하는데...야알못 인증
- 2011년 7월 18일 불교 조계종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본래 2006년부터 불교 신도였다고.
- 2011 MVP 시상식때 2표 받았지만 특유의 능글거림을 뽐냈다. %
- 2012년 9월에 이대호의 사촌동생 이병호가 슈퍼스타 K 4에 지역예선에 출전하여 만만치 않은 가창력을 보이며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슈퍼위크에 출전하게 되었다.
- 이대호 라커룸에 나이트 삐끼가 준 명함을 꽂은 적도 있다. 본인 이름이 적혀 있어서 그런 듯.
- 2012년 10월 31일, 모든 야구게임에서 이대호의 이름이 이태산으로 바뀌었다. 단 나는 야구감독이다에서 "장거포"로 이름이 바뀌는 등 예외도 있긴 하지만.[36]
그래도 신대수가 안된게 그나마 다행이다.2013년 초에는 이대호의 이름이 돌아왔다.
- 그리고 이대호의 딸 효린양의 얼굴이 공개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이대호 판박이네." "부산 내에서 길을 잃으면 누가 봐도 사직 야구장으로 데려갈 정도로 닮았다."
이제는 세이프코 필드로 데려가야 한다.
- 2012년 12월 11일에는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다. 몰래 온 손님으로는 최준석이 출연했는데, 최준석이 훨씬 웃겼다. 서로 훈훈한 모습 보이며 잘 마무리.
-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놓고 한참 갑론을박이 많았을 때, FA 자격을 얻고 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다. 이대호와 함께 롯데에서 클린업을 이루던 홍성흔은 팀과 상의하되 1살이라도 젊을 때 갈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외에 이대호처럼 FA를 얻어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고 한 다른 야구 관계자나 선수로는 이종범이 있고, 홍성흔과 비슷한 의견을 낸 건 김병현, 박찬호, 봉중근 등 메이저리그에서 몸을 담은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 평소 선행과 달리 팬서비스는 류현진, 이승엽, 양준혁 등과 함께 굉장히 비판받는 선수다. 아이들에게는 웬만하면 싸인을 다해주지만 어른들이 싸인해달라고 하면 짜증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경기 전에 싸인해주면 지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라 밝혔다는데,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다. 프로야구선수들의 팬서비스 관련 게시물에서도 류현진, 양준혁과 함께 팬서비스가 별로인 선수 중 한 명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래도 MLB에 진출한 후에는 자기를 보러 구장에 온 한인들에게는 몇명씩이라도 싸인을 해준다
카더라실제로 2016년 4월에 앤젤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원정경기에서도 한인들 위주로 몇몇 팬들에게 싸인 해주는 모습이 목격되었다.[38]. 하지만 싸인 해주기 싫을때는 얼굴 찡그리면서 짜증내는건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 사직 야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2차례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39]. 그것도 2007,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기록했다. 날아간 것은 2010년의 홈런이 더 멀리 날아갔으나, 시즌 40호 홈런이라는 사실과 함께 9경기 연속 홈런에 묻혀 버렸다고. 사직구장 바깥에 가면 당시 홈런의 낙하 지점에 이를 기념하는 동판이 있다.
- "카라 얘기하니까 갑자기 카레가 먹고 싶네."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
???이에 야구팬들은 앞뒤를 뒤집어서 카레 얘기하니까 카라가... 라는 식으로 섹드립을 치기도 했다.
- 일본 활동을 하면서도 고기를 먹기 위해 한국 불판을 챙겨 갔다고 한다. 일본 불판은 작아서 고기를 굽는데 애로 사항이 있다나..##
- 이대호의 부모님도 안계시고 아내 신혜정씨도 이대호가 일본에서 뛰는 동안 모친이 별세해 친정이 없는 탓에 미국에서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해야갤 등 일부 커뮤니티에선 이를놓고 노리고 원정출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대호와 아내의 집안사정이 익히 알려져 있는데다 원정출산 관련 법은 진즉 개정되어 조금만 찾아보면 아니란게 드러났던지라 금방 수그러들었다.
-
경제효과가 무려 16조라고 한다.# 뻥튀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히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계산이다.이대호 팔면 뉴욕 양키스 살 수 있나?
9 연도별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 타자 성적
역대기록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출루율 | |
2001 | 롯데 자이언츠 | 6 | 8 | .500 | 4 | 0 | 0 | 0 | 1 | 0 | 0 | .500 | .556 | |
2002 | 74 | 255 | .278 | 71 | 19 | 0 | 8 | 32 | 27 | 1 | .447 | .345 | ||
2003 | 54 | 152 | .243 | 37 | 6 | 0 | 4 | 13 | 8 | 0 | .362 | .328 | ||
2004 | 132 | 444 | .248 | 110 | 26 (10위) | 0 | 20 | 68 | 52 | 4 | .441 | .331 | ||
2005 | 126 | 447 | .266 | 119 | 16 | 2 | 21 (9위) | 80 (5위) | 53 | 1 | .452 | .354 | ||
2006 | 122 | 443 | .336 (1위) | 149 (2위) | 26 (4위) | 0 | 26 (1위) | 88 (1위) | 71 (5위) | 0 | .571 (1위) | .409 (4위) | ||
2007 | 121 | 415 | .335 (3위) | 139 (4위) | 29 | 1 | 29 (2위) | 87 (2위) | 79 (3위) | 1 | .600 (1위) | .453 (3위) | ||
2008 | 122 | 435 | .301 | 131 (9위) | 23 | 0 | 18 (9위) | 94 (3위) | 73 (10위) | 0 | .478 (10위) | .400 (7위) | ||
2009 | 133 | 478 | .293 | 140 | 28 | 1 | 28 (4위) | 100 (3위) | 73 | 0 | .531 (9위) | .377 | ||
2010 | 127 | 478 | .364 (1위) | 174 (1위) | 13 | 0 | 44 (1위) | 133 (1위) | 99 (1위) | 0 | .667 (1위) | .444 (1위) | ||
2011 | 133 | 493 | .357 (1위) | 176 (1위) | 26 (3위) | 1 | 27 (2위) | 113 (2위) | 76 (7위) | 2 | .578 (2위) | .433 (1위) | ||
KBO 통산 (11시즌) | 1150 | 4048 | .309 | 1250 | 204 | 5 | 225 | 809 | 611 | 9 | .520 | .391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출루율 | |
2012 | 오릭스 버팔로즈 | 144 | 525 | .286 | 150 (5위) | 25 | 2 | 24 (2위) | 91 (1위) | 54 | 0 | .478 (2위) | .356 (4위) | |
2013 | 141 | 521 | .303 (9위) | 158 (8위) | 27 (8위) | 0 | 24 (6위) | 91 (5위) | 60 | 0 | .493 (7위) | .384 (8위)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출루율 | |
2014 | 소프트뱅크 호크스 | 144 | 566 | .300 (6위) | 170 (2위) | 30 (5위) | 0 | 19 (8위) | 68 | 60 | 0 | .454 (9위) | .362 | |
2015 | 141 | 510 | .282 | 144 | 30 | 0 | 31 (5위) | 98 (4위) | 68 | 0 | .524 (4위) | .368 | ||
NPB 통산 (4시즌) | 570 | 2122 | .293 | 622 | 112 | 2 | 98 | 348 | 242 | 0 | .486 | .370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장타율 | 출루율 | |
2016 | 시애틀 매리너스 | 104 | 292 | 0.253 | 74 | 9 | 0 | 14 | 49 | 33 | 0 | .428 | .312 | |
MLB 통산 | 104 | 292 | .253 | 74 | 9 | 0 | 14 | 49 | 33 | 0 | .428 | .312 | ||
전체 통산 | 1824 | 6462 | .301 | 1946 | 325 | 7 | 337 | 1166 | 860 | 9 | .515 | .386 |
역대수상 | |
년도 | 수상내용 |
2005년 | 올스타전 MVP |
2006년 | 골든글러브 1루부문 수상 |
2007년 | 골든글러브 1루부문 수상 |
2008년 | 올스타전 MVP |
2010년 | 골든글러브 3루부문 수상 정규시즌 MVP |
2011년 | 골든글러브 1루부문 수상 |
2012년 | 퍼시픽 리그 베스트9 1루수 |
2015년 | 일본시리즈 MVP 퍼시픽 리그 베스트9 지명타자 |
- ↑ 설경구, 하지원 주연의 1000만 관객을 모은 흥행 영화 해운대에서 롯데 자이언츠 소속 타자로 출연하였다. 유일하게 선수들 중에서 단역이었지만, 대사가 있는 배역을 했는데, 그 역할이 "이대호 선수 역"이었다. 그리고 영화가 흥행하고 난 뒤에,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우스갯소리로 "나는 1000만 관객을 모은 배우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 ↑ 시범경기 당시에는 초청선수 신분이어서 56번을 달았지만 25인 로스터에 최종발탁되고 공석이었던 10번을 가져갔다.
- ↑ 롯데 입단 당시의 포지션, 자세한 내용은 하기 내용 참조.
- ↑ 수영초 재학 시절엔 무려 유격수로도 뛰었다! 유격수로 부산지역 초교 야구대회서 상도 받았을 정도. 이우민 항목 맨 밑에 사진이 나와 있다.
- ↑ 신규창단한 SK 와이번스가 2차지명 1라운드에서 3명을 지명하는 어드밴티지를 받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전체 2번으로 지명된 셈. 이대호를 거르고 지명한
그래도 프로생활 자체는 하고 있는김희걸과 이제는 지도자인 김동건 등이 프로에서 성공했다고 보기엔 힘들기에 SK 입장에선 속쓰릴 만한 선택이라 하겠다. - ↑ 등번호 10번은 이대호를 상징하는 번호이며 롯데 자이언츠-오릭스 버팔로스-소프트뱅크 호크스-시애틀 매리너스 그가 몸담았던 모든 팀에서 10번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물론 대표팀에서도 10번을 달고 활약했다.
- ↑ 할머니 오분이 여사의 이름에서 따온 등번호이다. 원래 52번을 달려고 했으나 달고 있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52번을 뒤집어 25번으로 달게 되었다.
- ↑ 멜로디는 그대로고 가사만 바뀌었다. 그래도 국내에서도 롯데시절의 응원가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이대호의 활약상 덕분에 일본에서도 듣기 좋은 응원가라는 평을 얻고있다.
- ↑ 2010년 8월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회초 김희걸을 상대로 비거리 125m짜리 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시즌 38호 홈런이자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 ↑ 도루부문을
당연히차지하지 못했는데, 도루부문은 이대형이 가져갔다. - ↑ WBSC 프리미어 12의 도쿄 대첩에서 역전 안타를 친 당시의 사진. 오른쪽에 서있는 선수는 나카타 쇼.
- ↑ 1위는 로베르토 페타지니인데 이 분은 2시즌 기록(2008~2009 시즌).
- ↑ 이대호는 딱히 부동의 4번 타자 자리에 있던 타자는 아니었다. 이대호의 옆에는 늘 김태균이 따라붙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격차가 꽤 있지만, 2000년대 후반에 김태균과 이대호의 경쟁은 몹시 치열했다.
- ↑ 국내 해외야구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보면 이대호 정도 타격과 수비실력을 지닌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1루수를 거금을 들여 데려 올 메이저리그 구단은 많지 않다는 의견이 대세이며 유감스럽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프로야구/리그 레벨차 논쟁 참고
거금은 아니지만 가기는 갔다. - ↑ 다만, 홍성흔이 포수 출신이라 발은 느린 편이다. 통산 병살 1위가 이를 증명한다.
- ↑ 물론 2007시즌의 이원석과 에두아르도 리오스가 있었으나 둘 다 공격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리고 이원석도 홍성흔 FA 영입에 따른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이적.
- ↑ 내야수 자원으로 지명한 전준우는 결국 중견수로 전환했고, 이제는 올스타 3루수로 올라선 김민성은 롯데 시절에 주로 2루수나 유격수로 나왔다.
수비형 용병에두아르도 리오스와메원석이원석은 수비는 괜찮아도 타격이 안 돼 타선 운용에 어려움을 줬다. - ↑ 사도스키 리포트에서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관계로만 보면 거의 유일하게 틀린 부분이다. 이대호는 KBO에서의 전성기 동안 사이드암/언더핸드 상대 타율이 3할이 넘는다. 정대현이 이대호의 천적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대호가 다른 잠수함 투수에 강한데 정대현에게만 약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사도스키 선발출장한 날에 가뜩이나 득점지원도 못받는 것도 억울한데 리그 최고의 타자이자 팀내 4번타자가 정대현만 만나면 맥을 못추니 충격을 받은 걸수도 있다. - ↑ 2010년 이대호의 사이드암/언더핸드 타출장은 0.389 0.484 0.611 이고, 시즌전체 성적(0.364 0.444 0.667)과 비교하면 장타를 적게 쳤을 뿐 매우 강했다. 심지어 정대현과의 맞대결을 제외한 성적은 4할5푼에 출루율은 5할이 넘는다.
- ↑ 이시기가 역대급 투고타저였음을 감안한 조정스탯으로 비교할 경우 김태균은 이 시기 평소보다 부진하지 않았다. wRC+ 수치로 보면 김태균은 한국리그 커리어 평균 155.6에 비해 2006년 161.1, 2007년 159로 오히려 평균보다 더 잘한 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2006년 191.8, 2007년 194.7을 기록한 이대호가 미쳤을 뿐.
- ↑ WBC가 2006년 정규시즌 전에 3월에 열렸기 때문. 이승엽, 최희섭이 있어서 김태균도 꼴랑 4타석 나왔다.
- ↑ 단 스탯돼지는 한국에서도 못할 때 자주 불렸던 별명이다. 특히 2011년 초 한창 양승호호가 삽질중일 때 이대호도 똑딱거리며 다소 부진한 감이 있었는데 이때 롯데 팬덤, 특히 꼴갤에서는 스탯돼지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 ↑ 안타치면 똑딱거린다고 까이고, 홈런을 치면 솔로홈런이라고 까이고, 멀티 히트를 쳐도 주자 없다고 까인다. 심지어는 출루를 해도 후속타자들 타점 올리는데 방해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 ↑ 다만 이것은 해외로 나간 선수들에 대한 국내팬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딱히 등을 돌리니 마니 할 정도는 아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전의 팀 팬이 아니고선 바로 비아냥이 나오기 때문. 그리고 이전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들을 생각해보면 어떤지 답이 바로 나온다.
- ↑ 결혼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인데도 여전히 '보이'이다(...)
- ↑ 실제 응원에서 자주 쓰이는 문구이며, 최훈의 베이징 올림픽 야구 카툰 정리 편에서 대중화시켰다.
- ↑ 도쿄 대첩에서 역전타를 치면서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이 평소 야구를 안보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졌는데, 조선이라는 이름에 적의를 가지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이를 '대한민국의 4번타자'라고 수정하라며 반감을 표하기도 했다.
- ↑ 사실 '조선의 xxx' 라는 표현은 명성황후 뮤지컬에서 등장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WBC에서 시도때도없이 등판했던 정현욱의 사진을 명성황후 포스터에 합성시켜 '내가 조선의 국노다'라고 칭하는 페러디가 야갤에서 흥했고 그 이후로 야갤을 중심으로 '조선의 xxx'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 영화 YMCA 야구단에서 비롯된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해당 영화의 주인공인 송강호의 풍채(...)가 이대호와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 ↑ 베니건스가 이대호가 도루하면 그날 맥주 공짜 이벤트를 걸었는데 2011년에만 두 번 도루하는 통에.. 그리고 이 여파로 카림 가르시아가 출국하던 날 베니건스에서 맥주를 스무 잔 넘게 공짜로 마시고는 이대호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면서 출국했다고.
- ↑ 포크볼은 Forkball이다.
- ↑ 다른 선수들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여러분'이라고 뭉뚱그려 나오는데 이대호 혼자 따로 배역으로 나온다. 배역은 이대호 선수 역
- ↑ 이 대사 뒤에 '니는 가도 죽고 안 가도 죽어!!!' 도 있었다는데, 이미지를 생각해 편집되었다고...
- ↑ 2001년 무릎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할 때 보호자가 필요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당시 여자친구이던 와이프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신혜정씨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시험기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뒷바라지를 해주었으며, 7시간의 장시간 수술 뒤 이대호가 1L 소변통을 가득 채웠는데 아무 내색없이 받아서 치워줬다고.
- ↑ 추신수가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야구를 위해 수영초등학교로 전학 가서 교실에 갔더니 웬 고등학생이 뒷줄에 앉아 있더라고...감독한테 말했더니 꼭 데려오라고 구박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야구를 권유했다고 한다.
- ↑ 이쪽은 매우 일찍 바뀌었다.
- ↑ 초기버전 출시 시기가 2011년 시즌 최후반이었다.
- ↑ 이에 이대호에 비판적인 측에서는 미국에서는 잘 보이려고 한국에 있을 때는 안 하던 행동 열심히 한다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 ↑ 1차례 이상 기록한 선수는 2011시즌에 당시 LG 소속이었던 조인성과 2014시즌의 황재균, 2015시즌 최준석, 댄 블랙, 이승엽이 장외 홈런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