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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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청천이 중심이 되어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등 북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을 말한다.

2 역사

미쓰야 협정이후 독립군의 무장 투쟁 운동에 대해 탄압이 이뤄지자 3부 통합 운동을 통해 북만주의 혁신의회(1928) 다음에 남만주의 국민부(1929)가 세워졌다. 한국독립군은 혁신의회의 한국 독립당이란 당에서 만든 군대이다. 한국 독립당은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들어서자 1931년 12월에는 1931년 12월 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이 지린성 자위군 총지휘관 딩차오(丁超)와 만나 연합전선을 결성할 것을 합의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 하얼빈의 호로군(護路軍)[1]과 한중 연합군을 결성한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로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한 덕도 있고,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연합을 결정한 것이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합의 내용(1931)

1. 한·중 양군은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경우에도 장기간 항전할 것을 맹서한다.
1. 중동 철도를 경계선으로 서부 전선은 중국이 맡고, 동부 전선은 한국이 맡는다.
1. 전시의 후방 전투 훈련은 한국 장교가 맡고, 한국군에 필요한 군수품 등은 중국군이 공급한다

이 이후 1932년 9월 22일, 11월 17일 ~ 22일에는 일본과 쌍성보 전투에서 승리[2]하였고 1933년 6월 30일엔 대전자령 전투를 벌여 승리한다. 그 외 사도하자 전투, 동경성 전투에서도 같이 연합 작전을 펼친다. 이 후 지청천은 김구의 요청으로 육군 군관학교 교관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들어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국내에 침투할 특수부대를 조직하고 국제 사회와 연계하는 등 일제를 한반도에서 몰아낼 준비를 1945년 8월 20일에 계획하였으나,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작전이 무산되었다. 후에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가 되었다.

3 주요 전투

한국 독립군이 참전한 전투는 다음과 같다.

  1. 본래 일본군 산하에 복무하던 철도 수호 부대였으나 만주사변 이후로 부대원인 중국인들이 반일 감정을 갖게 되어 항일 투쟁을 시작하였다.
  2. 사실 승리라기에는 애매한 것이 쌍성보 점령에는 결국 실패했다.(아래 문서 참조) 그러나 사상자를 비교한다면 일본군, 만주국 군대가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