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병신 3종 세트
국가급 좆문가질
아무래도 좋은 거지만 중간에 김정일이 시찰한 공장에 적힌 구호가 중간에 잘려있는데, '내 당성을 알려거든 내가 만든 제품을 보라!' 라는 구호다.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현지를 시찰하는 것을 말한다. 트로피코에서도 할 수 있다. 시골 농장을 방문하는 것부터 평양 시내의 어느 건설장, 심지어는 무슨 공연을 관람해도 현지지도가 된다. 이 경우 보통 "경애하는 XXX께서 XXXXXXX를 현지지도하시였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온다.
최고지도자와 직접 만난 사람, 앉았던 자리, 봐 준 물건 등은 그 날로 특별 관리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주체XX년 X월 X일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라거나 김정일 장군님께서 보아주신 기계라거나 하는 혁명사적물이라고 쓰고 폐기처분 대상이라고 읽는다들이 북한 전역에 널려있다.그럼뭐해
김일성은 집권 당시 한 집단 농장에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한 노동자가 '일일히 손으로 밭을 갈다보니 인민의 손이 너무 탄다. 현지 지형에 맞게 설계된 뜨락또르(트랙터)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발언을 듣고 부하들에게 "당장 우리 지형에 맞는 뜨락또르를 생산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트랙터를 사들여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성공했다 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극소수라서 그렇지
가끔 최고지도자가 아닌 후계자, 예를 들어 김일성 시대의 김정일이나 김정일 시대의 김정은 같은 경우나 최고실무책임자, 즉 총리나 당 고위직 등의 인물들이 현지시찰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 김정일의 경우 1988년 이전까지는 실무시찰, 실무지도 같은 단어들을 쓰다가 1988년부터 아버지 김일성과 동일하게 현지지도라는 단어를 쓰면서 확고한 후계자의 위치를 드러내보였다. 내각총리나 당 고위직들이 현지시찰을 나가는 경우는 현지에서 료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이 양반들부터가 최고지도자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위치다 보니 현지료해가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달에 1~2번 정도.
2 중요성
철저한 1인지배체제를 고수하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동정은 곧 북한의 국가정책과 직결된다. 때문에 국내외 관련 기관들은 수시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정과 현지지도 패턴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일례로 김정일 이후 김정은은 줄곧 군부대 아니면 평양시내에서만 현지지도를 다녔기 때문에, 과연 김정은이 언제쯤 지방 경제부문 현지지도를 나갈 것인가가 상당한 관심거리였다.
3 문제점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시골 공장이나 농장까지 일일이 찾아가 인민들을 만나준다는 면에서 꽤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1950년대까지는 일제강점기의 타성에 젖어있던 당·행정관료들을 다그치고 분발을 촉구하는 나름의 명분과 역할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문제는 고도로 전문화, 분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지도자 1인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란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건 이미 18세기부터 전문화 된 관료집단을 통해 해결하려 시도한 문제다. 당장 남한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전봇대가 뽑힌다거나(...) 큰 일이 터졌을 때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관계자들을 독려하는 경우는 수두룩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이런 건 그야말로 소수 사례다. 당장 전봇대 뽑힌 게 왜 그렇게 이야깃거리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자. 물론 군대에서야 아직까지도 지휘관 말 한마디에 산도 움직이는 수준이고 이는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따라서 전형적인 후진국형 정책이라고밖에 말할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에 나름 산업화된 국가인 북한에서 지도자 1인이 부지런히 전국을 쏘다니며 일일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주는 방식의 지도방법을 고수하고 있으니, 지도자는 지도자대로 자신이 잘 모르는 부문에서도 일일이 뭔가 지침을 내려줘야 하고 관료들은 관료들대로 최고지도자가 무슨 지침을 내려줄지 알 수가 없으니 능동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점들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주는 예가 대안의 사업체계와 8.3인민소비품생산운동 같은, 아직도 북한 경제를 좀먹는 각종 뻘짓거리들이다.
중앙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지방 개발에서도 현지지도의 뻘짓은 크게 나타난다. 일례로 청진시는 "후방 제철기지를 잘 지원해주라"는 김일성의 현지지도 교시 한 마디에 직할시가 되었다가 이후 별 실속 없이 함경북도도당과의 알력문제만 커져 일반시가 되기를 반복했고, 신의주시는 역시 김일성과 김정일이 현지지도 중에 국경 관문도시를 잘 꾸리라고 지시한 것이 발단이 되어 남신의주 개발, 호텔 및 공항 건립, 지하철 건설 등의 계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결국 일이 지지부진해지자 만들다 만 남신의주 시가지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심지어는 이런 사례도 존재한다.
수령님께서 어느날 평양시내에 나오셔서 시내버스들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보시고는 일일이 버스의 운행간격을 재어보시였다. 그리고는 행선지별로 번호를 달고 균일하게 배차간격을 지어 다니도록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인민사랑으로 수도시민들은 편리하게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
진짜로 편리해?-
버스에 노선번호를 달고 운행간격을 정하는 정도는 이미 근대부터 상식 중의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걸 일일이 최고지도자가 지적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국가를 만든 것이다(...)
너무 적절한 예시다(...)
괜히 첫째 줄에 좆문가질이라고 쓴 게 아니다
군대 버전으로 현장지도가 있다. 다만 지휘관은 해당분야에 진짜 전문가란게 함정.가끔 가다가 좆문가가 있기는 하지만
4 이야기거리
- 김정일이 세상을 떴을 때 현지지도를 다니다가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선전하였다. 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 그리고 본인들만 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