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쇼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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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oratio Nelson 1758.9.29 ~ 1805.10.21

위기로부터 영국을 구원한 구국의 영웅

흔히 세계 최고의 해군 제독이라 평가받는 인물

영국 해군의 영웅으로, 나폴레옹이 유럽을 석권하고 영국 본토를 위협할 때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무찌르고 전사한 영웅이다. 이후 나폴레옹은 영국 본토를 공격할 생각을 포기하고 대륙 봉쇄령을 내렸다가, 러시아 원정을 한것이 파멸의 시작이 되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2 생애

1770년 해군에 입대하여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으며, 그 뒤에는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프랑스 혁명정부의 함대와 싸우는데 앞장선다. 1794년에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을 점령하였으나, 이때 오른쪽 눈을 잃었고, 1797년에는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오른팔을 잃는다... 그러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복무를 계속하며, 이집트 나일강 입구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일강의 남작이라 불리는 대 활약을 한다.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스페인-프랑스 함대를 무찌르지만, 완승 직전에 르두터블호의 돛대 마스트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고 사망했다. [1] 허파를 관통하고 척추에 박힌 총탄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에 처해 군의관에게 자신의 치료 대신 부상병에게 집중하라는 명령을 남겼다고 한다.200년 전 동양모 해전과 구도가 비슷하다

'신께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유언.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 말 잘 받아적었는가? 내가 뭐라고 했는가?'(...)이거나 [2] '내 할머니가 자네보단 키스를 잘하겠네'[3] 둘 중 하나라고 한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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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직전에 "영국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England expects that every man will do his duty.)는 말을 남긴 것도 유명하다. 이건 직접 입으로 한 말은 아니고, 깃발 신호로 전함대에 알린 것. 신호의 편의를 위해서 깃발 신호에 자주 쓰는 단어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England 'confides that(...)", "할 것이라고 자신한다(믿는다/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보낼 생각이었으나, 깃발신호 단어집에 'confides'라는 단어가 없어서(...) 한자 한자 일일히 스펠링하기에는 번거로웠고, 이 최후의 격려 문구를 보낸 직후 바로 작전지시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부족해서 대신 들어간 것이 '예상한다'라는 뜻의 'expects'(문맥상 의미는 바란다/기대한다). 두 단어의 뉘앙스가 상당히 다른데, 전자는 장병들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지만, 후자는 일단 이런 식의 문장은 잘 안쓰므로 어색하고, 조금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깃발 신호에 익숙했던 선원들은 당연히 무슨말을 하고싶은지를 알아들었고, 이 위엄돋는 문구는 트라팔가 해전의 압도적인 승리와 넬슨 제독의 전사라는 드라마틱한 배경과 어우러져서 전설이 되었다.[4]

그의 시체는 부패를 막기 위해 럼주에 담겨 7일만에 영국에 도착했는데, 이때 당시 럼주가 그의 피에 의해 붉게 물든 일화에서 따와 붉은색 럼주를 '블러디 럼'이라 부르게 된다. 참고로, 그 때 당시 그 럼주는 애도의 의미로 사람들이 나눠마셨다든지, 선원들이 몰래 럼을 빼 마시느라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통 안에 럼주는 남아있지 않았고 시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고, 넬슨의 시체가 급행으로 런던까지 이동할 때 부패를 막으려 럼주에 담겨 보내진 건 맞다. 그러나 럼주만 넣은게 아닌 장뇌와 좀약을 잔뜩 넣고, 거기에 관이 놓인 메인마스트 밑에서 보초가 계속 지키고 있었다.

영국 해군의 전통적인 관례 중 하나는 복무 중 사망한 사람의 시체는 본국으로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장사를 지낸다는 점이다.[5] 이 때문에 전사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수장하는 것이 원래 관례였지만 넬슨의 경우 유언 때문에 수장하지 않고 본국으로 시체를 옮겨 장사를 지냈다. 이는 영국 해군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에 해당한다. 그의 유해가 안장된 곳은 세인트 폴 대성당이다.

넬슨은 성격이 공격적이고 인간적으로는 결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특유의 과감성과 저돌성이 승리의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도 많다.

반면, 그의 유산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존이 잘 되어 있는 것이 부러움을 준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가보면 그의 동상이 그의 기함이었던 HMS 빅토리호의 돛대 높이와 같은 55미터 높이의 기둥 위에 서서 영불 해협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그가 최후를 맞았던 HMS 빅토리호와 관련된 것들도 매우 잘 보존이 되어있다. 현재 HMS 빅토리 호는 트리팔가 해전 당시의 모습으로 복구되어 영국 포츠머스의 히스토릭 독야드에 있는 드라이 독에 영구보존되어 있으며, 내부는 당시 선원등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박물관 함의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놀랍게도 또한 근처의 건물에는 트라팔가 해전당시 사용되었던 돛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점[6]도 전시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는 위키러라면 영국에 갔을때 한번 보고오자.[7]

참고로 HMS 빅토리호는 아직도 비록 명예직에 가깝지만 영국 해군의 함적에 남아있다.[8]

또한 여성편력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넬슨과 내연관계이던 헤밀튼 여사(엠마 헤밀튼)는 유부녀로 넬슨의 상관인 윌리엄 해밀튼 경의 부인이었는데, 넬슨을 아끼고 그 가능성을 높게 본 윌리엄 해밀튼은 자기 후배이자 부하가 와이프와 사귀는 것을 묵인했을 뿐더러 심지어 세 사람이 한 집에서 함께 살기까지 했다. 자기 와이프가 후배랑 놀아나도 "허허 이녀석 허허허..."한 대인배 or 호구 or NTR 해밀튼 경의 임종 때에도 엠마와 넬슨 두 사람이 나란히 함께 지켰고, 때문에 처음부터 해밀튼 경은 엠마를 아내로 삼기보다는 사교계에서의 추문으로 곤란해진 엠마를 보호[9] 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결혼한 것 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10] 이는 영화로도 나올 만큼 유명하며, 그녀와 나눈 연서가 경매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말이 좋아 로맨스지 막장드라마. 위에 언급된 유언 중에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호레이샤 넬슨도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도 있었다.[11] 이건 실현되지 못했지만...

한국에서는 바다를 건너온 침략자를 막아낸 해군 영웅이라는 점에서 이순신과 자주 비교된다. 또한 넬슨도 이순신처럼 자살설이 있는데, 이 자살설의 원인이 저 여자 때문이라 한다. 즉, 저 여자와의 불륜 때문에 정치적으로 입지가 위태로웠고 계속 그녀와 딸을 지키기 힘들거라 생각해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무모하게 작전을 해서 죽을듯이 싸웠다는 것. 연금을 받았습니다.

해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생각보다 몸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이순신 장군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이순신 장군과 넬슨 제독은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한 것까지 겹친다. 더불어 트라팔가르와 노량은 둘 다 계획 실패로 도망가려던 적을 격파한 전투였다. 이순신의 조선이 일본보다 함선 질이 앞섰던 것처럼 넬슨의 영국도 프랑스보다 앞섰던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포수. 보통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보다 훨씬 강력한듯이 알려져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함선은 영국 함선과 비교해도 딱히 꿇리지 않았고 오히려 몇몇 함선은 스펙상 앞섰다. 단지 영국 수병의 숙련도가 프랑스 수병의 숙련도를 압도하는지라... 판옥선 자체는 세키부네보다 강력하나 조선 수병이 일본 수병에게 (백병전에서) 밀렸던 부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참고로 노량해전과 트라팔가르 해전 모두 완승으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넬슨이 죽었으니 아이러니한 결과. 너무 이순신과 넬슨의 비슷한 점만 부각되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이순신이 더 뛰어나다!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몇몇 분도 있지만 제발 그러지 말자. 예를 들어 넬슨이 죽은 것을 뻘짓하다가 죽었다, 라는 서술도 버젓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돛에 불이 붙을 수 있어 장루 사격을 금지한 사실이 어째서 뻘짓인가? 르두터블 함의 칭송받을만한 분기탱천이 어째서 넬슨의 뻘짓 덕분이라고 해석되는가? 노량해전 당시 일본군의 분기탱천과 이순신 장군의 사망을 이순신이 뻘짓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일빠밖에 없을 것이다.

엄연히 트라팔가르 해전은 단 하나의 함선도 잃지 않고 적함을 사실상 소멸케 한 넬슨의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완전한 승리였다. 삐까뻔쩍한 패션과 훈장을 그대로 놔둔 것도 넬슨이 과연 정신차리지 못해서일지 고심해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최전선에서 싸우는 주제에 누구보다 화려한 갑옷을 입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얼마나 멍청한 장군이 되는가? 알렉산드로스는 죽지 않았기에 명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자. 총탄이 난무하는 시대임에도 알렉산드로스처럼 용맹하게 싸워보인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명장이 아니라 졸장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게다가 구스타브는 넬슨과 다르게 완승하지도 못했고 뤼첸 전투는 피로스의 승리였다.

또한, 르두터블 함을 지휘했던 루카스 함장은 함선 하나를 맡는 걸로 한정하면 굉장히 유능한 편에 속한다. 루카스는 전투 패배에도 넬슨을 전사시켜 나폴레옹에게 직접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74문 헤굴러스 호의 함장이 되었을 때조차 좌초된 함선을 이끌어 또 다시 전공을 세워보였다.

넬슨에게 이순신 장군과 공통점이 아니라 차이점을 찾아보면 아무래도 과감함과 저돌성이 나올 것이다. 넬슨은 지휘권이 없었을 때조차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일례로 빈센트 해전은 넬슨이 멋대로 스페인 대열의 통로를 가로막아 대승한 전투다. 비록 승리를 가져왔으나 넬슨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히 규율 위반이었다. 하지만 도박이 성공하여 더 좋은 결과를 불러와 넬슨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넬슨 휘하의 병사들은 맨 먼저 스페인 전열함 2척을 나포하고 승선할 수 있었다.

이 과감함과 저돌성이 빛났던 가장 영광스런 승리를 가져오면 그것은 바로 아부키르만 해전이다. 이 당시 함대를 이끌던 프랑스의 제독 프랑수아 브뤼예는 전열함 13척을 난공불락 위치에 줄지어 배치했다. 이 장소는 포함과 해안 포대의 보호까지 받는 그야말로 앞서 말했듯이 난공불락이었다. 만약 넬슨이 프랑스 함대와 똑같은 숫자의 전열함으로 정석이자 유일한 공격 방법인 횡대 항해를 시전할 경우 전투는 프랑스의 압도적인 승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넬슨은 프랑스 함정이 단 하나의 닻만 내리고 있단 것을 주목했다. 더해서 함정과 모래톱 사이에 일정 정도 개방된 물길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넬슨은 엄청난 물길 속으로 가장 먼저 들어갔고 여러 함정이 그 뒤를 따랐다.

도박이라고 해야 할만한 위험은 곧 승리를 불러왔다. 함선 한 척이 좌초되었지만 다른 함정들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영국 함대가 발포를 시작하자 프랑스 함대는 마치 샌드위치처럼 양쪽에서 포격을 받았다. 전혀 기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넬슨은 난공불락 요새를 오히려 배수진으로 변화시켰다. 우선 횡대를 이뤘던 3척의 프랑스 함정이 박살났다. 120문의 대포를 탑재한 프랑스의 오리엔트 호는 아주 강격했지만 불행하게도 갑판 위 일부 페인트 통에 불이 붙어 화약고가 폭발하였다. 시간이 흘러 자정 무렵, 프랑스는 전열함 3척을 제외한 모두가 항복했다. 또 나머지 3척 중 2척은 도망갔고 1척은 자초됐다. 이런 면을 봤을 때 넬슨이 과연 이순신 장군과 비슷한 지휘 스타일인지 의문스럽다.

여담으로 넬슨은 전투에서 눈이 다쳐 애꾸였다고 한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1801년 코펜하겐의 해군 전투에서 넬슨은 영국 함대를 이끌고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당시 영국 함대는 파커(Sir Hyde Parker) 제독에 의해 지휘되었는데, 넬슨과 파커는 전술에 대해 종종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하루는 파커가 넬슨에게 깃발을 통해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허나, 넬슨은 만약 계속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여, 그 순간 깃발을 향해 “보이지 않는 눈을 돌렸다(turned a blind eye to the flat).” 기록에 따르면 당시 넬슨은 애꾸였는데 보이지 않는 눈에다가 망원경을 가져다 대며 “신호가 보이지 않는군”이라고 말한 뒤 전투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 전투 역시 위에서 나열한 두 개 전투처럼 넬슨의 과감함이 승리를 불러온 부분은 덧붙여 말할 것도 없다.

이래저래 유명하고 영국에서 하도 추앙받다보니 자주 잊혀지지만 이사람도 결점이 있다. 시칠리아 섬의 반왕당파 반란에 개입했고 거기서 벌어진 학살극에 연관되었다는 문제와 앞서 말한 엠마와의 추문인데, 전자는 넬슨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에 의하면 넬슨은 죄가 없다는 것이지만 알렉상드르 뒤마 등의 호사가들에 의해서 조작된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이를테면 원균 명장론이 아직도 살아있듯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 레이디 해밀튼[12]에서 당시로서는 영화계의 뉴비인 로렌스 올리비에[13]가 비비안 리와 함께 공연했다. 이 둘은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수잔 손탁의 "화산의 연인들"은 엠마와 넬슨의 연애담을 그린 작품.

프랑스 영화 "아우스테를리쯔 대전투"에서는 앞 부분에 잠깐 나온다. 보통의 초상화 이미지와는 달리[14] 외팔이에 외눈안대를 정비한 좀 흉칙한 모습...

제독의 이름을 딴 넬슨급 전함들이 2차 대전 당시 활약했다.

디시위키에서 명장틀에 이순신과같이표현되어있다

4 창작물에서

소설 혼블로워의 주인공 혼블로워는 넬슨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토탈워 시리즈에서는 엠파이어: 토탈 워에서 일단 대영제국 고유 유닛으로 HMS Victory가 나왔다가, 나폴레옹: 토탈 워에서 본인 등장. 능력치는... 캐사기적이다 별이 하늘을 찌르는 능력치를 자랑한다! 게다가 122문 1급함 을 타고 있어서 전함 몇개는 다 쌈싸먹는다. 그러다 죽으면 영국은 꿈이고 희망이고 없다. 그니까 당신이 프랑스로 플레이 하고 있다면 122문 1급함 20대를 넬슨 함대에 박아넣고 자동을 돌리는 짓은 하지말라고... 진짜 모조리 씹어먹는다. 압도적인 양적, 질적차에도 불구하고.

Europa Universalis 4에서도 이 게임에서 셋밖에 없는 최고급 능력치의 제독으로 등장. 여담으로 나머지 둘 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님이시다.

테메레르에서는 간간히 이름을 비추고,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사망이 오보로 나온다. 적 용이 돛에 불을 붙여 돛에 깔렸는데, 이때 훈장이 가슴에 눌어붙게 된다.

코드 기어스에서는 프랑스 해군에게 패배한다고 나온다. 여기서는 그냥 삼류 제독이 된 걸로 추정.

알파캣월드 오브 워쉽 만화 폭풍의 바다에 등장해 리지 테일러에게 중요한 아이템 기어링을 건네준다

[1]
  1. HMS 빅토리호에서 총에 맞은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 위치는 후갑판의 타륜 앞부분.
  2. 실제로 저 공식적인 유언을 남긴 이후 넬슨 제독은 몇번이나 자신의 말을 받아적었는지 확인했고 심지어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도 깨어나서는 확인했다.
  3. 죽기 직전 부관인 하디(Thomas Hardy)에게 키스해 달라고(작별인사를 뜻함) 한 다음 하디가 키스하자 남긴 말이라고.
  4. duty도 단어집에 없어서 일일히 스펠링해야만 했다. confides와 다르게 대체할 만한 단어도 없었고 그 단어가 바로 하고싶은 말의 요점이었으므로... 출처
  5. 이 때문에 한때 영국에게 점령당했던 거문도에 영국 해병의 묘가 남아 있다.
  6. 포어 탑세일이며 HMS 빅토리호에 달린 돛중 두번째로 큰 돛이었다.
  7. 이때 주의할 것이 하나 있는데 HMS 빅토리호는 입장권 하나로 단 한번만 입장이 가능하다. 즉, 입장했다가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외 몇몇 시설도 이와 동일한 제한이 걸려있다.
  8. 미 해군 역시 1797년에 건조된 자국의 대형 프리깃 USS 컨스티튜션호를 현역함 명부에 남겨두고 있다. 차이라면 빅토리는 영구적으로 정박 상태로 묶여 있지만 컨스티튜션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여전히 항해 가능 상태로 남아 있는 '진짜 현역함'이라는 것.
  9. 사실 남아있는 초상화를 보면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동안 미녀다. 넬슨 사후에도 인기가 끊이지 않아 여러 남자들이 얽혔다고...
  10.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밀턴 경이 보호하고자 했던 대상은 엠마가 아니라 조카였던 Charles Greville이라는 인물이다. 그레빌은 명문가의 자손이며 국회의원이었는데, 당시 엠마와 동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레빌은 어차피 신분이 낮은 엠마와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돈도 궁해서 부자집 딸과 결혼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런 이유로 동거하던 엠마가 거추장스러워지자, 그레빌이 자신의 삼촌인 해밀턴 경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결혼 당시 엠마는 26세이고 해밀턴 경은 60세(...)였으며, 평생 해로했던 부인과 사별한 이후였다. 누가 봐도 정략결혼이었으며, 조카를 위해 엠마를 떠안은 해밀턴도 엠마에게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엠마가 넬슨과 바람을 피건말건 무관심했던 것이다.
  11. 문제는 엠마 해밀튼이 낭비벽도 심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도벽까지 있는 판이었다. 결국 몇 번의 사기에 당하고 과소비로 중년기에는 말 그대로 알거지가 된다. 보통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넬슨의 유언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해밀튼 경의 유산이나 넬슨 개인이 준 재산도 꽤 많았지만 낭비벽이 심한게 탈이었다. 레이디 해밀튼에서는 알콜중독 거지가 된 엠마를 그려서 논란이 심했다.
  12. 노골적인 영국 찬양과 전쟁 참가 독려로 고립주의 당시의 미국에서는 대단한 비판을 받았다.
  13. 영화에서는 뉴비라서 대부분 원거리 촬영이 많았다
  14. 로렌스 올리비에도 주로 안대 대신 의안 연기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