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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하면 이렇다.
1 개요
남해상에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소속의 섬. 하지만 사실 여수항보다는 고흥군 녹동항에서 더 가깝다. 거문도뿐만 아니라 삼산면 전체가 다 그렇다. 아니, 그러니까 고흥군에 편입시키란 말이야! 정확히는 서도, 동도, 고도의 3개 섬을 말한다. 그 중 면소재지인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라 불리는 교량으로 연결되었으며, 서도와 동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또한 완공되었다.
육지에서는 보통 여수시 여수항과 고흥군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쯤 가면 도착할 수 있다.[1] 나로도에서 타고 가면 1시간 반 정도. 1박 2일 촬영지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국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조선 후기 격변기를 배우면서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섬이다.
특산물로 해풍쑥과 은갈치가 있으며, 연례행사로 특산물로 축제를 연다. 불꽃놀이도 하지만 섬 특성상 안개가 자주 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2 역사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대영제국 해군이 이 섬을 2년(1885년 4월 15일~1887년 2월 27일)간 불법으로 점거한 거문도 점령 사건의 무대. 이 사건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도 한반도의 부속도서로서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거론되었다.[2]
당시 영국인들이 거문도를 불렀던 이름은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 이 이름에서 따와서인지 오래 전에는 섬 사람들이 이 섬을 스스로를 보도 해밀도라고 부르던 적도 있다. 운이 좋았다면 나빴다면 홍콩처럼 조차지 팔자가 될 뻔도 했다.
영국이 점거할 만큼 해상의 요충지이다 보니 등대도 비교적 빨리 1905년에 설치된 섬. 영국이 철수한 뒤로는 이를 눈여겨 본 일본 제국이 어업 기지로 활용했다. 그러나 면적이 작아서 해군 요지로 활용되진 않았다. 위치상으로만 의미가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영국 해군도 중간 기항지 및 해안포 기지로만 활용했다.
현지 여자(무당)를 짝사랑하다 죽은 영국 수병이 있어서 젊은 여자가 빠져 죽으면 영국인 귀신이 잡아간 것이라는 괴담도 전해진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야사이고 증명은 불가능. 이와 관련해서 드라마도 제작하려 했지만, 무산되었다.
영국 해군에 남아있는 기록에는, 당시 한 일본인이 여성 5명을 데려와 거문도 서도에서 유곽(성매매 업소)을 운영했다고 한다.
1886년 6월18일 저녁, 2척의 보트에 영국 병사 12명은 나눠 타고, 이 유곽에 놀러 가다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났다. 고도와 서도 사이는 약 500m 거리다. 11명은 구사일생으로 헤엄쳐 나왔지만, 해병대원 피터 와드(Peter Ward) 일병은 익사했다고 한다. 수영이 미숙했던 데다 주머니에 유흥비로 쓸 은화를 잔뜩 갖고 있었기 때문인 듯 하다고 영국 해군 기록에 적혀 있다.
영국군은 시신을 찾아준 조선인에게 사례하고, 다음날로 유곽을 폐쇄했다. 와드 일병은 영국군 묘지에 묻혀 다른 6명과 함께 묘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 실제로 있었던 사고를 바탕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미화된듯하다. 물론 군인 대부분은 젊은 청년이기 때문에, 과거나 지금이나 주둔지 주변의 여자와 썸이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거문도 주둔 영국군 규모는 200명 내지 300명에서, 최대 700~800명까지 주둔했다고 한다. 거문도 주둔 군함도 5내지 6척에서 최대 10척까지 주둔하였다고 한다.
점령 도중 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9명의 수병이 사망했는데 이 중 6명의 시신은 본국으로 운구되었고 3명은 거문도에 매장되었는데, 이들의 묘지가 지금도 거문도에 남아 있다. 영국 해군이 민폐를 저지르지 않아서인지 섬사람들이 무덤 관리를 비교적 잘 해줬다. 이는 영국군이 점령할 당시 주민들을 동원할 때 임금을 주고 땅을 사용할 때에도 사용료를 지급하는 등 신사적인 방식으로 처리한 탓도 크다. 결국 주한영국대사관은 2005년부터 거문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하여 2015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관련기사 20세기 들어서 죽은 수병의 후손인지 친척인지가 찾아와서 이장하나 했는데, 꽃 한 송이 달랑 놓고 가서 섬사람들이 그 야박함을 탓하기도 했다고.[3]. 현재는 2기만 남아 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 당시 여기까지 가서 참배를 하려 하였으나 바쁜 일정상의 이유로 무산되기도 했다.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 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윌리엄 J. 머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데일(Charles Dale)"로 새겨져 있다.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3일 알비온호 승무원 알렉스 우드(Alex Wood)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3 관광
상당히 가는 데 오래 걸리고 인프라도 부실하지만 한번 가면 확실히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섬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를 빌려서 섬을 일주할 수도 있으며,[4] 섬 양 끝에는 공원으로 조성된 등대들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밖에도 고도에서 고속정을 타고 1시간여를 달려가 백도를 보고 올 수도 있다.
주요 관광 포인트를 꼽자면 아래의 셋을 예로 들 수 있겠다.
3.1 거문도 등대
서도 남쪽의 수월산에 있는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로, 1905년에 세워졌다. 다만 이건 옛 등대 얘기고 지금은 그 옛 등대가 노후화되어 옆에 새로운 등대를 세웠다. 새로운 등대는 등대 겸 전망대로 개방되어 위에 올라가서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백도도 작게나마 볼 수 있다. 등대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으며, 뒤편에는 국토부의 관리청사가 있다.
가는 길이 약간 특이한데, 도중에 포장된 길이 아닌 자연 암반에 데크만 살짝 걸쳐놓은 곳이 있다. '목넘어'라고 불리며 이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면 거문도 등대에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불면 파도가 높이 친다.
이렇게.
3.2 녹산 등대
서도 북쪽의 녹산에 있는 무인 등대. 거대한 거문도 등대와는 달리 크기가 상당히 작고, 주변에 고사목들이 있어 직접 보면 상당히 분위기가 특이하다.
아래편에 있는 신지끼[5] 동상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3.3 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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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 - 상백도.
백도 - 하백도.
거문도에서 대략 28km 정도 떨어진 무인 군도. 총 39여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상백도와 하백도로 나뉜다. 그 중 상백도에는 1938년에 일제가 세운 무인 등대가 있다. 거문도에서 고속정을 타고 가서 보고 올 수 있으며, 옛날만 하더라도 상백도에 상륙해 무인 등대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올 수 있었으나 환경 문제 등 복합적인 이유로 현재는 주변을 둘러보고 오는 것만 허용된다.
이름인 백도(白島)의 유래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 섬이 하얘서(白) 백도이다
- 섬이 99개라서 백(百)에서 일(一)을 빼 백(白)도이다
라고 한다. 그냥 아무거나 믿어도 문제될 건 없다.
보고 오면 상당히 기억에 남는 곳이지만, 가는 길에 날씨가 좀 안 좋다 싶으면 파도가 격하게 쳐서 난데없이 해상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수도 있으니 혹시라도 위키러 중 백도를 보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점은 유의하길 바란다.
4 여담
- 1981년부터 인근의 무인도인 백도와 함께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거문도 쑥이 등록되어 있다.
- 당초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던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2015년 9월에 준공되었다.
- 기상특보가 2015년 12월 28일부터 여수시 내륙 지역과는 별도로 운영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