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플리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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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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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의 는 신경쓰지 말자
낙타는?
ὁπλίτης (그리스어 단수형, 호플리테스)
όπλίται (그리스어 복수형, 호플리타이)
hoplite (영어, 홉라이트)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 사진에도 나오는 크고 둥근 방패인 호플론(ὅπλον)을 들고 있어서 호플리테스라고 불렀다. 호플리테스/호플리타이는 고대식 발음이고, 현대 그리스어로는 오플리티스/오플리테라고 읽는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중장보병으로 사용장비는 모두 개인이 사비로 구입해야 했기 때문에 경제력이 있는 중상류층이 대다수였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기본적은 군사훈련을 받았고, 일정 연도 동안 군대에서 복무해야 했으며 국가의 부름이 있을 때는 이에 응해 전쟁에 나가야했다.

사용하는 장비는 개인이 구입하는 방식이었으므로 표준화되진 않았으나 각 도시국가에 따라서,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일정한 규칙은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청동으로 만든 투구와 흉갑, 정강이받이를 착용했는데 이것들의 무게는 약 27kg 정도 나갔다. [1][2]주 무기는 창으로 도리(δορύ)라고 했으며, 길이는 약 2.4m정도였다. 방패는 나무에 청동을 도금한 아스피스 (ασπις)를 사용하였으며, 창이 부러지거나 잃어버렸다든지, 대형이 무너졌을 때에 사용하기 위한 보조무기로 크시포스(ξίφος)라고 하는 양날 한손검을 사용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에는 호플리테스의 장비를 줄인 경보병 에크도로모이 (Εκδρόμοι)가 등장했다. 단어의 의미는 '길위의 사람들' 이라는 뜻인데, 이전의 호플리테스들은 전투시에는 보병으로 싸웠지만, 이동할때는 그래도 말이나 당나귀 등등 형편이 되는대로 말을 탔는데 이들은 전투시에도 이동시에도 걸어다녔기 때문에 약간 비하적인 의미가 들어가있다. 이들은 창과 보조무기인 칼, 투구와 방패만 착용하고 팔랑크스 대형을 짜고 있다가, 상황에 맞춰 대형에서 이탈해 싸우는 전법을 훈련받은 이들이었다.

전투시에는 팔랑크스를 짜서 싸웠다. 보통 방패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창을 들었으므로 창을 앞으로 내밀고[3] 병사 각자의 방패가 옆에 있는 전우를 보호하도록 횡대형을 짠 후, 이 대형을 8열 또는 그 이상 모아서 팔랑크스를 짰다. 제일 오른쪽에 서는 병사는 자신을 가려줄 옆 사람의 방패가 없어 절반만 보호를 받으므로 경험이 많은 병사를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팔랑크스끼리 격돌하면 이 곳을 노려 공격했다.

팔랑크스는 일단 대형이 갖추어지면 측면과 후면에서 오는 공격에 매우 취약해지고, 기동성이 떨어져 빠른 방향전환과 전진이 어려웠다. 게다가 전장의 지형이 고르지 않을 때는 창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따라서 전투는 쌍방의 대표자가 만나 전장을 정하고, 그 전장에서 정면승부를 벌이는 방식으로 치루어졌다. 전투 시간도 1시간 이내로 짧았고 사상자 수도 적은 편이었다. [4] 초기 도시국가간의 전쟁은 적 군대를 전멸 시키고 상대도시국가를 점령하는 게 목적인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인데, 굳이 현대식으로 비유하자면 이권을 놓고 다투는 도시국가간의 결투에 가까웠으며 상술한 이유로 상대 군대의 전열을 와해시키는 것만으로도 전투의 승패는 결정났기 때문이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게 고대 그리스인들이 특별히 신사적인 방식으로 전쟁을 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 당시 공성기술이 형편없어서 견고하게 쌓여진 성벽을 두룬 대도시 같은 경우에는 왠간해서는 정복이 불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공략이 어려웠다. 변변한 공성무기가 없어서 사다리를 들고 싸울 때가 많았고, 공성기술이 좀 뛰어나다는 아테네나 테베쯤 되어야지 공성추를 동원했다. 그나마 효과적인 공성술은 상대 도시를 포위하는 장벽을 밖에 건설해서 아사시키는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일반적으로 전투는 주도시를 제외한 변두리 마을이나 국경 요새 등의 지역에서 벌어졌다.

또한 전투이후에 추격에 게을렀던 것도 다름이 아니라 그럴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죽은 상대병사의 무구와 소지품은 그대로 승자의 것이 되었고, 또한 포로도 노예로 팔면 엄청난 돈을 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수입과 무훈을 떨쳤다는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리스인들은 상대병사를 쫒아가서 잡아야하는 동기가 충분히 있었다. 다만 갑옷을 무겁게 입은 중보병이 죽자고 도망치는 적을 뜀박질로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서 별도로 경보병이나 기병을 풀지 않으면 추격이 어려웠다. 그런데 그리스의 지형 특성상 목초지가 마땅치 않아서 기병을 구비 안한 도시가 많았고, 때문에 추격하여 섬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추격을 안한 대표적인 나라인 스파르타는 기병대도, 궁수나 경보병도 없었다. 반면에 기병 수급이 비교적 원할했던 보티아에이 지역이나 시라쿠사는 기병과 경보병을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패잔병들을 끈질기게 추격했다.

1.1 각종 매체에서의 호플리테스

아예 이쪽을 다룬 로마: 토탈 워에서 다뤄지는데 왠지 그리스의 고전 호플라이트도 후기(마케도니아) 팔랑스를 쓴다. 역덕을 위해 역덕이 만든 EB모드에서는 방패를 붙여서 쭉 서서 사이로 방패를 내리찍는 모션을 만드는 것으로 타협했다. 후속작인 토탈 워: 로마2 에서는 호플리테스 팔랑크스와 파이크 팔랑크스로 구분되며, 전자는 그리스 계통의 밀집보병이 사용하고 후자는 마케도니아식 밀집보병이 사용한다.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군대는 전부 호플리테스로 구성되어 있다.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는 그리스 진영의 기본 보병유닛으로 나온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1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후에 아카데미를 지어야만 생산할 후 있는 엘리트 보병이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대신 (각가 17, 5) 이동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의 고전 시대 기본 보병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양이나 인디언(!)문명 등도 전부 홉라이트를 사용한다.(...) 사실 모든 국가는 특수 유닛을 제외하면 그 종류가 나라마다 동일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

위의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를 비롯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중 고대 시대를 그리는 게임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기병에 강하고 화살 공격에 약한 게 특징. 심지어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에서 많은 모티브를 얻은 웹게임 그레폴리스에서조차 마찬가지다. 호플리테스의 팔랑크스는 긴 창을 수풀처럼 촘촘하게 세워 화살에 대한 방어력이 높았고 단독으로 있을 때도 호플론 덕분에 화살을 잘 막아낼 수 있었는데, 아마 자신도 경장이면서 원거리에서 견제하는 궁병을 중장보병이 쫓아가 잡기 힘들다는 점을 반영한 것 같다.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그리스의 창병 대체 유닛으로 나온다. 당대의 창병보다 강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판테온도 호플리테스..처럼 생겼지만 왠지 체력이 매우 낮은 암살자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왼손잡이라 많이 배척받을듯..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전사 계열 직업 3랭크의 하플라이트가 호플리테스에서 따왔다. 영어명도 같고, 방패에 창을 들고 싸우는 컨셉이 같지만 하플라이트는 창을 역수로 들고 싸우는 차이점이 있다.

Hoplite 라는 구글 스토어의 게임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친구는 방패는 잘 못쓰고 창과 발길질을 주로 쓰는 듯하다.

2 노바1492의 부품

해당 항목의 팔형 항목 참조
  1. 경제력이 없는 농민병은 창과 방패, 보조무기, 투구 정도를 착용하는 수준이었다.
  2. 부가 보호대를 갖추더라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팔 보호대는 오른쪽에만, 정강이 보호대는 왼쪽에만 착용하기도 했다. 왼팔은 방패를 들기 때문에 방패에 가려지니 방패를 잃지 않는 한은 보호대가 없어도 노출되지 않고, 밀집 대열을 짤때는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오른쪽 다리는 뒤로 가서 왼쪽 다리만 노출되고 오른쪽 다리는 가려지기 때문.
  3. 정해진 파지(把指)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집한 상황에서 적들을 강한 힘으로 내려찍기 위해 어깨 위로 올려 드는 방식(Overhand)을 주로 사용했다.
  4. 모든 전투가 짧았던 것은 아니다. 팔랑크스 진형 특성상 적 진형의 약점인 우측을 공격하기 위해 아군은 좌편향 기동을 해야만 했다. 물론 이건 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서로가 옆구리를 파고 들기 위해 하루종일 지리멸렬하게 원을 그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이런 상황이 생길 경우에는 해가 진 후 전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명일에 다시 모여 전투를 치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