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

騎兵 / Cavalry


19세기까지는 기병이 방진을 붕괴시켰다면 보병이든 포병이든 그저 편히 죽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으앙 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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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육군 기병 병과 휘장. 현재도 사용한다.[1]


1 개요

육군에 존재했던 을 타고 싸우는 전투병과. 똑같이 말을 탄다고 해도, 이동을 위해 말을 사용하는 기마보병, 포병, 수송 병과 등은 기병이 아니다.

2 역사

2.1 고대 : 기원전 9세기 ~ 기원 후 4세기

고대은 품종 개량이 되지 않아 크기부터 작은데다가[2] 마구(馬具)가 발달하지 않아 일부 기마민족을 제외하고는 기병이 잘 쓰이지 않았고, 대부분 전차를 운용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기병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정찰 임무에 투입되거나 투창을 하는 방식, 그리고 정작 싸움은 말에서 내려서 하는 기동 보병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형태는 후대의 용기병 또는 현대의 기계화보병과 유사하며 말의 기동성을 특히 중시하여 사용한것이다. 유사하게 일본도 중세기에 이런 식으로 기병을 운용하였다.

이후 말의 품종 개량과 마구 발달을 통해 무장한 전사(戰士)를 태우고도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군마가 탄생하면서 전차는 도태되고 중기병(重騎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등자없이 승마하여 칼과, 창, 투창, 활등을 다루는 훈련영상.

고대에는 아직 등자가 발명되지 않았고, 안장도 제대로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낙마하지 않고 달리면서 창과 검을 자유롭게쓰면서 돌격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기병들도 창을 쥐고 적 보병을 향해 돌격하여 진형을 무너뜨리는 기록이 많이 나오고, 실제로 수차례 승마실험을 통하여서 검증도 되었다. 물론 안장과 등자가 있는 것에 비해 승마 안정감이 떨어지는 편이었고, 중세 유럽때처럼 겨드랑이에 창을 끼워놓고 돌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광활한 초원지대의 유목민족들은 말을 타고 싸우는 전투법이 일찍부터 쓰였는데, 중국에서는 조나라 무령왕이 이들을 본떠 호복기사(호복을 입은 기마무사)라는 기병부대를 편성하여 승마에 적합한 의복과 무장을 갖추고 활을 쏘는 궁기병을 편성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전국시대 진나라에서는 냉병기로 무장한 기병부대를 별도로 편성하였는데 특히 장평대전에서 백기가 이들 기병부대를 이용하여 적의 보급로를 끊어서 승기를 잡은 일화는 유명하다.

2.1.1 경기병


고대 중국 조나라의 호복기사. 말이 대단히 작게그려졌는데, 잘못 그린 것이 아니라 당시 마종의 크기를 고려하여 그린 것이다.

고대의 전장에서 기병이 처음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을 사용하는 경기병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도 활을 든 기병대가 제일 먼저 등장하였으며 일찍이 아시리아 제국에서도 주요병과로 취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목민족들의 기병대에 착안하여 등장한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기사(오랑캐 옷을 갖춘 기마무사)들 역시 을 쏘는 경기병이었다.

경기병은 서로는 우크라이나스텝 지대로부터 동으로는 만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유목민들의 주력 병종이었다. 유목민들에게는 목축과 수렵이 생계수단이었기에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경기병이 육성되었고, 광활한 초원은 활을 필요가 아닌 필수품으로 만들었기에 양 다리만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양손을 이용해 활을 쏘았다고 한다. 흉노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스스로를 '활의 백성'이라 자처했으며 중국의 문헌에도 이들을 '장성 이북 궁술의 나라'라고 일컫는 표현들이 보인다.

빠른 기동력을 갖춘 경기병들이 다수 모이면 칼이나 창 등의 냉병기를 든 보병은 그저 과녁일 뿐이고 중기병조차도 대응이 힘들었다. 똑같이 원거리 무기를 갖추지 않았으면 이들의 화살공격에 맞설 수 없었고, 무장이 가벼워 빠른 탓에 말을 타고도 이들을 추격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러한 경기병을 많이 보유한 유목민족들은 정주민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들이었다.


파르티아의 궁기병

이 활을든 경기병들은 다른 병과들처럼 대오를 맞춰 적과 교전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를 여러 뭉텅이로 쪼개어 적을 에워싼 뒤 벌레떼(swarm)처럼 우르르 달려들어 공격하다가 우르르 빠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반복되는 화살 공격에 적들이 손실을 견디지 못해 전투의지를 상실하거나, 대오가 무너지거나 할 때 중기병등을 이용한 돌격을 겸하여 적을 무너뜨리기도 했는데 카르헤 전투가 대표적이다.

다만 근접전에서는 불리하였고 마상사격이 일반 사격에 비해 어렵고 사거리가 짧아서, 전투력을 온존하고 있다가 역습, 경기병들에게 근접전을 강요당하여 패배하거나, 보병의 화망에 못이겨 패배한 경우도 많았다.

예컨데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때에 조나라 이목이 흉노군을 유인하여 백병전을 펼쳐 흉노군 10만명을 몰살시킨 적이 있었고, 한나라의 흉노원정시에는 곽거병이나 이감이 기병대로 돌격하여 백병전으로 이들을 제압한 이력이 있었다. 삼국시대때는 원소군의 국의가 활을 쏘며 전진해오는 공손찬의 백마의종 기병부대를 방진과 쇠뇌를 이용하여 격퇴한 바 있고, 위나라의 전예조창과 함께 수송용 수레를 원형으로 빙 둘러 장애물을 삼아 원진을 만들고, 그안에서 쇠뇌를 쏘면서 오환의 기병대를 격퇴한 바 있다. 로마에서는 트라야누스 집권기에 기병과 궁병을 대규모로 육성하여 파르티아 원정을 펼치어 유목민족 기병대를 제압하기도 하였다.


2.1.2 중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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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카타프락토이

인류 최초의 기병은 경기병이었으나, 말의 품종과 마구가 개량되어 보다 무거운 무게를 지탱할 수 있어져 중기병이 탄생 했다. 최초의 중기병은 고대 중동에서 등장한 카타프락토이였다. 카타프락토이가 정확히 언제부터 등장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기원전 10~7세기경의 아시리아 기병이 화려한 장식에 영향을 받아 마갑을 입힌 카타프락토이로 발전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후대와 같이 금속제마갑, 갑주등으로 말과 기수을 갑주로 감싼 중장기병은 기원전 5~6세기경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때 궁병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 철제흉갑, 투구, 그리고 말 전면만 가리는 철제마갑을 씌운 기병이 처음 등장하였다. 물론 활과 단창, 철퇴와 장검으로 무장한 이들은 전술적인 면에서 돌격과 돌파보다는 기병인 만큼 기동성을 이용한 기습, 측면과 후방교란, 그리고 이들이 걸친 "금속제갑주를 착용하여 방호력이 괜찮은 무장"을 이용해 적 궁기병 혹은 궁병과의 대적을 담당하였다. 쉽게 말해 처음 중기병은 돌파와 돌격하여 방진을 부수고 적진을 휩쓸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궁병의 원거리 화력에 버티면서 기병대 간의 전투에서 경무장한 기병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봄이 옳다.


마케도니아의 중기병 헤타이로이

돌격과 충격을 이용한 기병의 전술이 기원전 4세기경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 의해 개발되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의해 기병의 돌격전술은 아시아 고원 지역에까지 알려졌다. 보병과 협동하여 기병의 충돌력을 활용하는 이 전술을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나 기본적으로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카타프락토이는 장창을 이용한 돌격과 돌파보다는 중무장한 기병의 튼튼한 갑주를 이용한 근접전에서의 우위를 중점으로 이용했다. 파르티아, 박트리아의 유목민들은 철제비늘갑주와 마갑을 씌운 그들의 기병에 장창을 도입해 돌격과 충격전술을 접목시켰고 이로써 진정한 의미의 중기병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시기 중기병은 아직 안장의 발달이 미흡하고 등자도 없어 후대의 본격적인 중기병과는 차이가 있었다. 보통 말 위에서는 창을 겨드랑이에 끼는 방식인 카우치드 랜스가 아니라 양손으로 창을 움켜쥐고 내지르거나 어깨 위로 들어서 찌르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방식은 승마시 안정감이 떨어졌고 양팔을 모두 사용하는 동작의 한계상 전투 간격이 넓어 조밀한 전투대형을 이루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육중한 갑주와 말의 돌파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알렉산더의 동방원정당시 이들 중기병들이 막강한 활약을 펼치는가 하면 고대 지중해 유역에서도 중기병은 많은 활약을 펼쳤다. 흔히 궁기병을 이용해 로마군이 유린됐다고 알려진 카르헤 전투에서도 이들 중기병이 돌격전을 벌여 로마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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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카타프락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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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에 남아있는 개마무사


가야 기마인물형 토기

동아시아에서는 기원후 2~3세기경 삼국시대까지도 마갑을 입힌 중장기병의 수가 없거나 극히 적었으며 본격적으로 대량 운영된 것은 5호16국시대에 들어선 시기이다. 마갑이 동아시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는지는 아니면 유목민들을 통해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파된 것을 받아들인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기원후 2~4세기 경 선비족이 먼저 중장기병을 대량 운용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한국은 고구려의 경우 300년대 중반으로 보이는 황해도 안악 3호고분에 개마무사가 나타나는것으로 보아 그 쯤에 중장기병이 운영된 걸로 추정된다. 이밖에 가야에 기마인물형 토기나 마갑유물등이 발굴되어 마갑을 씌운 중장기병이 한반도 남부에서도 운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마갑을 씌운 중장기병의 등장이 늦다는 것이지, 동아시아에서도 중기병을 이용한 충격전술은 일찍부터 존재하였다. 본격적으로 기병을 이용한 돌격전이 등장하는것은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흉노원정때로, 이무렵부터 기병대가 본격적인 전투병력으로 대량육성되었고, 이광의 아들 이감이 흉노 기병대에게 돌격전을 펼쳐 승리한 것과, 곽거병이 기병 800명을 이끌고 흉노군 2천명을 궤멸시키는 는 등 주로 기병 간 돌격전이 많이 펼쳐졌다.

이후 기원후 2세기경 삼국시대때에 여포가 기병을 이끌고 장연에게 돌격해 승리한 기록이 있고, 조인이 기병을 이끌고 돌격전을 펼쳐 포위당한 아군을 구출한 기록들이 등장해 기병대가 보병에게 돌격한 사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 밖에 관우가 말을 타고 돌격하여 적 지휘관인 안량을 살해한 기록도 있으며 기원후 240년경에 고구려의 동천왕이 5천의 철기병(중장기병인지는 불분명)으로 위나라 군대에 돌격하여 위나라의 관구검이 방진으로 맞섰다는 기록이 있다.


2.2 중세 : 기원 후 4 ~ 15세기

이미 고대에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병대는 중요한 존재였으나,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시기부터 서유럽에서 기병대의 역할은 종전보다 더 중요해졌다. 서유럽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세워진 프랑크 왕국의 군대도 초기에는 기본적으로 보병이 중심이었으나, 8세기 중엽부터 군벌들에게 봉토를 나눠주고 각각 사병을 육성하고 기마병을 육성하기 수월한 봉건제도를 실시하였고, 이미 그전부터 기사계급이 성장하여 기병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활약상도 점점 증가하였다. 주로 창이나 냉병기를 이용한 백병전 위주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고 창대를 겨드랑이에 끼는 카우치드랜스라는 창 파지법이 유행하면서 창을든 중기병대가 주축이 되었다.

동로마와 중동에서는 국가단위로 대규모로 기병을 육성하였는데, 서유럽에서 중기병들이 대거 활약하는 것에 비해, 동로마와 중동의 중기병대는 측면이나 후방의 돌파를 위해 가끔 쓰이는 것에 그쳤고 서유럽과 달리 궁기병의 활용률이 매우 높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활을 이용한 경기병이 존재하였으며, 후한시대부터 기병을 이용한 충돌 및 돌격전술이 부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고, 남북조시대부터는 마갑까지 갖춘 중무장기병대의 돌격전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한국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개마무사를 다룬 벽화가 등장하거나, 마구, 마갑등이 출토되기도 한다.

한반도 역대 왕조들은 농경국가임에도 기병 비중이 은근히 높은 편인데 고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에 이르면 기병대원들은 대부분 철갑을 입으며 전력의 큰 중핵이 되었다. 고려사 병지에 따르면 북계의 주진군 총병력이 4만 633명인데 그 중 기병이 약 54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경기병도 포함한 수치지만 전체 병력 중에 8분의 1이 기병이라는 소리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기병으로 윤관이 창설한 별무반의 신기군을 들 수 있으며,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를 상대로 싸운 인간흉기 이성계 사병 2천명도 대부분 기병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황산 전투 이후 왜구가 타고다니던 말 1600여 필을 노획했다.


2.2.1 중기병

동로마제국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일찍부터 중기병대와 궁기병대의 제병협동 전술이나 돌파전술이 유행하였고, 서로마제국 멸망 후 프랑크 왕국때도 백병전을 하는 기마병의 사회적 위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였고, 후한~ 남북조 시대를 기점으로 동아시아 역시 중기병의 역할이 부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는 남북조시대에는 마갑을 갖춘 선비족 기병대등이 활약하는 등 3~4세기 이후부터 마갑을 갖춘 중무장 기병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데 한국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중장기병이 육성 및 운용되었다. 삼국시대 공손찬의 백마의종도 마찬가지지만, 유럽의 중기병과 달리 동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동유럽등에서는 기병대열에 궁기병을 섞어서 활을 쏘면서 돌격하는 중기병 대열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카우치드 랜스

서기 9~10세기에는 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돌진하는 "카우치드 랜스(Couched Lance)"라는 새로운 기병전술이 등장 했다. 등자와 함께 등장한 이기술이 서유럽에서 기병이 활개칠 수 있게 더욱 보탬이 되었다. 카우치드 랜스는 창을 잡을때 겨드랑이를 활용함으로써 한손만으로도 창을 안정적으로 쥘 수 있었고, 남은 다른 한손으로는 방패를 쥐어 화살이나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으며, 양손으로 창을 쥐는 것과 달리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거나 양팔의 간격이 넓지 않아 좌우로 간격을 좁혀 집단으로 대열을 이루기도 수월하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등장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린 화이트에 의하면 이미 서기 10세기 이전부터 동로마 제국이슬람에서는 흔하게 쓰였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몽골등이 많이 사용하여 수렵이나 전투를 그린 회화에서 많이보이고, 청대에 기병을 그린 삽화에서도 확인된다. 10세기 이전 서유럽의 경우 마상전투를 다룬 그림이나 태피스트리에서 여전히 말위에서 두손으로 창을 잡은 모습이 확인된다.

그러다가 카우치드 랜스가 도입되자 오히려 서유럽에서는 동로마제국이나 이슬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동로마와 중동은 여전히 중기병대를 적진의 측면이나 후방을 타격하는 용도로 사용하였으나, 카우치드 랜스가 도입된 후 서유럽에서는 중기병을 보병/기병, 정면/측면을 가리지않고 적진에게 돌파하는 용도로 수시로 사용하고, 돌격의 횟수도 단번이 아닌 여러차레로 나누어 축차돌격을 감행하는 등 전투 내내 말이 탈진하여 쓰러질 정도로 창을든 중기병들의 돌격을 많이 활용하였다.[3]

이러한 추세에 맞춰 창의 형태도 한 손으로 잡고 겨드랑이에 끼기 쉽도록 변화했고,


기병용 갑옷의 오른쪽 가슴 부위에는 창받침이 생겨났다.

또한, 카우치드 랜스의 도입으로 기병대 대열도 약간 변화하였는데, 종전에는 마름모나, 삼각형, 쐐기형으로 대열을 편성하여 대열을 두껍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가로로 길고 얇게 펼쳐진 횡대 대열을 꾸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열을 가로로 길게 배치할수록 창을 이용하여 적을 더 많이 찌르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대열이 얇아 최초 돌격이 저지되었을 경우 병력을 후퇴시켜 재정비한 후 재돌격하는 것이 두꺼운 대열에 비해 더 수월하였다.

이후 서유럽의 기병들은 막강한 돌격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동로마 역사가 안나 콤네나는 서유럽의 노르만인 기병대를 보고 "말 위에서는 무적이며 바빌론의 성벽마저 뚫어버릴 수 있을 정도"라고 평가하였고, 실제로 서유럽의 보두앵 4세는 1177년 몽기사르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국군 500명과 성당 기사단 80명의 기병대를 이끌고 돌격을 감행해 2만 6천명의 살라딘 군대를 박살내버리기도 했다.

랜스를 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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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중기병.

동시대 동아시아에서는 거란, 여진족 등 철광을 확보한 유목민족들이 집중적으로 중기병을 육성, 그 군사력으로 북송을 재패하고 만주, 연해주, 북중국을 장악하면서 한때를 호령했으며, 남송고려역시 마갑을 씌운 중장기병을 운용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몽골족 역시 군의 편성에서 중장기병을 많이 운영하였다. 마갑을 씌운 중무장기병은 원나라 멸망기 까지, 멀리는 청왕조때까지 존속하였다.

청나라의 갑주와 마갑

조선은 초기에는 창을 다루는 기병을 40%, 활을 다루는 기병을 60%로 구성했으나 세조대 궁기병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 창기병은 사실상 없어지고 임진왜란 직전에는 주로 궁기병들만 남게 된다. 단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에 창기병의 모습이 그려져있는것으로 보아 창기병이 완전 없어진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명군이 쓰는 편곤이 도입되어 활과 더불어 조선 기병의 주력 무기로 자리잡으면서 창기병의 위치를 차지하는 돌격기병이 생겨 서양과 비슷한 방향으로 기병 활동 성격이 변하게 된다.[참조]


2.2.2 경기병

중세 전장에서 경기병이 자주 맡은 역할은 정찰 및 적진 교란과 전투 종반에 후퇴하는 적의 추격이었다. 적이 진형을 구성하고 있을 때 경기병이 먼저 나가서 전반적으로 찔러보고 약점을 찾는 식이거나 중기병의 돌파 시에 함께 나아가 적진에 사격을 가해 중기병의 돌파를 쉽게 해주는 식이다. 실제로 금나라의 기병 편제는 항상 중기병과 경기병이 한 부대로 편성되었다. 이 경우 중기병의 돌파가 쉬워질 뿐 아니라 적도 중기병으로 맞대응할 경우 충돌 전에 먼저 적의 숫자와 기세를 꺾어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전투의 종반에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여 전력을 가장 확실하게 줄이는데에 경기병만큼 좋은 병과도 없었다.

고대에서부터 최초의 기병은 활을든 경기병이었고, 중세때에도 활을든 경기병은 꽤 많은 활약을 했다. 활약의 내용은 고대때나 중세때나 크게 변하지 않아서, 말을 타고 계속 이동하면서 적에게 화살을 퍼부어서 타격을 입히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12세기 초반에는 경무장한 금나라 기병 17명이 자기들을 쫓아오는 2,000여명의 북송 보병대를 활만 쏘아 일방적으로 유린하여 궤멸시킨 일화가 있다.[4]

몽골제국의 경기병은 2종류의 합성궁과 3종류의 화살을 사용했는데, 활의 사용은 단순한 엄호, 견제를 넘어서 적의 대열을 와해시키고 타격을 주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중기병도 다수 존재했으나 역시 동시대의 기병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경장이고, 전투의 주력은 주로 활을든 경기병이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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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경기병.

유목민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나라들에서 유독 활을 이용한 경기병을 많이 운용하였는데, 예컨대 유럽의 헝가리중동의 여러 이란계, 튀르크계 제국들이나 중국 역시도 많은 경기병을 이용했다. 개중에서 사산 왕조맘루크에서는 중무장한 기병이 활을 쏘며 돌격하는 전술로 유명했다. 조선은 국책적으로 궁기병을 집중적으로 운용하였고, 일본의 초기 사무라이들 또한 마상 궁술을 중시 여겼다. 또한 카우치드 랜스가 발달하기 전 일부 서유럽 기사들도 마상궁술을 사용하곤 했다.

2.3 중세 말 : 기원 후 15~18세기

화기에 의해 저지당하는 중기병의 돌격. 파비아 전투를 다룬 그림

튼튼한 갑옷과 말의 빠른 기동성으로 움직이는 중장기병은 냉병기 시대의 현대의 전차라 할 수 있을 만큼 위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화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힘을 잃어간다. 이러한 중장 창기병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 폴란드 윙드 후사르로 당시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던 몇 배의 파이크 보병 방진을 돌파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윙드 후사르가 격파한 파이크 방진은 서유럽의 정예 파이크 방진에 비해 뒤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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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폴란드의 경우는 예외적인 것으로, 16세기부터 서서히 기병의 주무장이 창에서 권총으로 바뀌게 된다.

기병 끼리의 전투에서 총으로 원거리 사격을 가하는 것이 창으로 다가가 찌르는 것보다 유리하고, 총을 쏘아대는 보병들에게 창기병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다는 등의 이유가 있었다. 특히 1587년 쿠트라 전투(Battle of Coutras)에서는 프랑스 국왕군의 창기병이 위그노군의 총기병에게 패배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창기병이나 돌격기병들이 쇠퇴하고, 사격위주로 싸우는 총기병대가 오와 열마다 번갈아 교차 사격을 하는 카라콜 전술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병화기의 화력이 기병화기보다 위력이 높았기 때문에 카라콜의 변형전술인 신교도 카라콜, 스네일(snail), 리마콘(limacon)등이 그 주를 이루다가 30년전쟁에서 스웨덴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총을 쏜 뒤 돌격하는 "하카펠 기병"을 육성함으로써 돌격기병을 부활시켰다.


마갑이 줄어들고 기마병이 입는 갑옷도 변화하였는데, 화기가 발달하기전에는 전신 판금갑옷을 입다가, 화기가 발달하고 나서부터는 총알을 막으면서 사람이 입고다닐만한 무게를 지니기 위해 맞아도 덜 치명적인 부위의 갑옷을 없애는 대신, 중요부위를 매우 두껍게 하는 갑옷양식이 유행한다.

청나라 기병대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병대의 전술이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명군의 경우 마갑을 폐지하고 편곤, 기창, 활 등을 사용하는 기병대와 함께 핸드캐논등을 활용하는 기병대를 같이 운용하기도 하였고, 청나라 군의 경우 별도의 편성없이 기병대가 마창과 활, 총을 전부 갖추어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군도 부분적으로 마갑까지 갖춘 중장기병을 잔존시켜 운영하기도 하였고, 사르후 전투에서는 조선군을 상대로 돌격전을 펼치어 승리하기도 하였다.

총기가 등장하고 부터는 활을 이용하는 궁기병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총을 사용하거나 권총을 이용하는 기병의 수가 증가하였는데, 이미 일찍부터 서유럽에서는 이를 이용한 카라콜전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준가르군과 청군의 교전

특히 준가르와 청 간의 전쟁에서 기병대의 화기사용이 더욱 두드러졌다. 준가르 군은 뛰어난 소구경 화포와 기동력을 이용하여 화력전을 펼쳤고, 적이 다가오면 지리적인 엄폐물을 활용하거나 수송용으로 쓰인 낙타등을 엄폐물로 삼아 말에서 내려 총격전을 펼쳤는데, 청군도 이에 하마사격과 화력전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군의 기병대가 마상궁술과 하마총격술, 화포사격술등 다양한 사격전술을 펼치며 기술적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4 근대 : 기원 후 18~19세기

18-19세기에 이르자 머스킷을 사용하는 전열보병이 전장의 주력이 되었고, 소총에 장착하는 총검이 발명되어 이제는 장창병의 보조도 필요없어졌다. 이제 기병대가 단독으로 잘 정비된 총병 전열을 향해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로 취급 되었다. 거기에 기술의 발달로 포병이 더욱 강화되면서 굳이 기병을 보내지 않더라도 선제타격으로 보병대열에 충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기병은 다시 고대 세계처럼 보조군으로서의 능력을 더 절실하게 요구받았고, 이에 따라 보병이 할 수 없는 모든 일을 도맡게 되어 수많은 병과가 파생된다. '

물론 돌파력을 이용한 돌격전도 여전히 존재하였으나, 다른병과와 협동하에 제한적으로 실시되었고, 원거리 투사무기를 사용하는 경기병 역시 거의 사라져, 돌격전에 사격을 하거나 돌격을 하면서 한 두발 사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상에서 활과 총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이집트 맘루크 기병대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보병방진의 화력을 못이기고 궤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가 되면 기병용 갑주가 거의 사라져 중기병과 경기병의 차이는 주로 말의 중량에 좌우 되고 승마자의 장비는 별 상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나폴레옹 전쟁기의 워털루 전투에서 괴멸당한 영국군의 스코츠 그레이(Scots Grey)는 후사르와 다를바 없는 복장을 했고, 근위 기병대(Horse Guard)는 군복에 투구만 착용했지만 말이 대형마였기 때문에 중기병으로 분류된다.

이 시기 주요 기병의 병과는 다음과 같다. 각 병과의 자세한 설명은 개별 항목을 참고.


2.4.1 울란

Ułan(폴란드어)/Ulanen(독일어)/Uhlan(영어)

나폴레옹 근위대 소속 폴란드 울란.

근대 창기병. 울란(우완)은 폴란드 등지에서 부른 이름이며, 영어로는 랜서라고 했다.

나폴레옹의 폴란드 울란의 경우 정면대결이라면 드라군이나 후사르, 흉갑기병을 능가라는 전력을 과시했고, 워털루 전투에서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영국의 정예 중기병대 '스콧츠그레이'(ScotsGrey)를 개발살냈다

물론 이때 당시엔 두 부대의 정면격돌이아니라 스콧츠그레이가 프랑스군 보병과 포병을 상대로 무쌍을 찍다가 너무 신나서 대열이고 뭐고 엉망이 된 상태에서 프랑스 퀴레시어와 울란의 공격을 받아 괴멸당한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일단 검기병이 아무 준비도 없이 창기병이 해달라는 대로 정면으로 꼴아박는 일부터 잘 없으니까.

이 때문에 영국군에도 창기병이 등장하게 된다. 윈스턴 처칠도 창기병 출신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나폴레옹의 대 기병 기병대의 주력은 16개 연대의 프랑스 퀴레시어이다. 나폴레옹은 장비를 일신하여 갑옷 착용율을 높였고, 폐지되어가는 분위기였던 배갑도 부활시켜 장갑 방어력이 늘려서 프랑스 기병대의 대 기병 요격부대로 큰 활약을 벌였다.

그리고 같은 경기병이지만 척후임무 및 적 전열의 측후방 타격이 가능한 등 매우 기동성과 활용도가 높은 검기병인 후사르에 비해 창기병이라 방향전환이 힘들어 측면이 약하고 검기병이 창기병이 해달라는 대로 순순히 아무대책도 없이 정면충돌해 주지 않는 데다가 진형이 풀리거나 창의 거리 안쪽으로 파고들면 급격하게 불리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훈련 강도도 일반 기병보다 강해 쉽게 양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폴레옹 이후로도 기병의 주력은 검과 총을 사용하는 후사르가 될 수 밖엔 없었다.

강력한 돌격력에도 불구하고 병과상으로는 경기병에 속한다. 이유는 빠른 돌파를 위해 덩치보다는 속도가 빠른 말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2.4.2 후사르

Hussar

크림 전쟁기 영국군 제11 후사르 연대[5]의 후사르.

대표적인 경기병/검기병.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또한 경기병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중세 기사급의 중기병이 되어버린 케이스이다. 후사르의 원조는 헝가리 등지의 동유럽계 경기병이었으며, 19세기 전쟁 등을 다룬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굽은 검인 세이버를 휘두르는 털모자 쓴 기병이 바로 후사르이다.


2.4.3 샤쇠르

Chasseur

추격하는 근위 샤쇠르.
본격 나토 최강 기병 프랑스의 엽기병(獵騎兵). 엽기적인 기병이 아니다. 이들은 후사르와 장비 면에서는 비슷했지만, 사냥꾼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패주하는 적의 추격하는 것이 주임무.

기병뿐 아니라 추격임무를 맡는 경보병도 샤쇠르(보병 샤쇠르)라고 불렸다.


2.4.4 쿼러시어

Cuirassier

돌격하는 나폴레옹 기병대 소속 쿼러시어.

흉갑기병. 총탄과 기병도에 대한 약간의 방호력을 가진 두꺼운 흉갑을 입는 돌격용 병과. 대표적인 중기병이었다. 이들은 중기병이었기에 굽은 검인 세이버를 쓰는 후사르나 샤쇠르와는 다르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직선형의 기병도를 장비했다. 중기병보다 상대적이게 작고 속도가 빠른 말을 타는 경기병인 샤쇠르나 후사르는 속도를 이용한 베기에 유리한 세이버를 장비했다.


2.4.5 드라군


이베리아 반도전쟁기의 영국군 드라군

용기병. 기병총 드라군을 다루는 병사. 어원은 이들이 다뤘던 총의 이름. 본래는 말을 타고 이동하다가 전장에서는 말에서 내려 하마전투를 실시하는 승마보병으로서 기병이 아닌 보병이었으나, 이후 18세기에 들어와서부터는 후술하는 총기병과 비슷하게 말 위에서 사격하는 기병으로서의 승마전투도 행하게 되면서 보병에서 기병으로 바뀌게 되었다.

영국군의 경우에는 18세기 후반부터 잡다한 기병 병과를 해체하고 중 드라군과 경 드라군으로 개편 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뒤 오히려 대륙의 영향을 받아 여러가지 기병 병과가 생겨나게 된다.


2.4.6 캐러비니어

Carabinier(프랑스어)/Carabineer/Carbineer(영어)

나폴레옹 기병대 소속의 후기 케러비니어. 퀴러시어보다도 잘 차려입은 갑옷이 눈에 띈다.

총기병. 카빈[6]을 다루는 병종으로, 이쪽은 드라군과는 달리 처음부터 말 위에서 사격하는 기병으로서의 승마전투를 염두에 두었던 부대이다. 따라서 적의 탄환을 막을 충분한 갑옷과 총을 다루는 것의 편의를 위해 대형마를 운용 했다. 따라서 중기병으로 분류. 총기병은 19세기까지 남은 대표적인 기병 병종이었지만, 나중에 가면 퀴레시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흉갑기병이 된다.

이들 역시 드라군과 마찬가지로 치안 유지에 투입되었고, 이 때문에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있는데, 현재 이탈리아군 소속 국가 헌병대인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는 1814년에 창설된 사보이 왕가 소속 총기병 연대가 1861년 이탈리아 통일과 함께 이탈리아군에 편입된 것이 기원이다.


2.4.7 시파히

سپاهی(오스만 터키어)/sipahi(영어)

2차 빈 포위 당시의 시파히 기병대.

오스만 제국의 정규 기병대[7]로, 예니체리와 함께 오스만 제국 군단의 핵심전력. 크게 근위대인 '카프쿨루'와 유럽의 봉건 기사격인 '티마를르'로 나뉜다. 훗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식민지군이 운용하던 경기병대인 '스파히'와 영국 동인도 제국 소속 인도인 용병인 '세포이'의 모티브기도 하다. 항목참조.


2.5 근대 : 기원 후 20세기

19세기 후반 미국 남북전쟁을 참관한 유럽 국가들의 육군 기병 장교들은 "미 육군 기병은 총만 쏘네?" 하며 비웃었다. 미 육군, 특히 북군의 총이 발달한 것도 있지만 급히 군의 규모를 늘리다 보니 마상 검술을 비롯한 수준 높은 승마술을 훈련시키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남부 육군의 기병 사령관이었던 존 싱글톤 모스비 장군의 부대는 세계 최초로 기병도를 장비하지 않은 기병대로 유명하며 젭 스튜어트 장군과 함께 남부 육군 최고의 기병사령관으로 꼽히는 나탄 베드포드 포레스트 장군의 기병대는 말은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고 거의 대부분의 전투를 하마상태에서 치뤘다. 하지만 리볼버레버액션식 라이플을 비롯한 연발총의 발달로 기병이 칼 휘두를 일은 거의 사라졌고, 마상에서 연발총 쏘는 게 효율도 좋았다.

사실 세계대전 시기 이전부터 기병의 역할은 꾸준히 축소되는 경향을 겪어왔는데, 이러한 경향은 화기의 성능이 시대에 따라 개선되어 가면서 시작된 일 특히 포병의 발달과 무연화약의 개발로 후장식 소총탄피가 개발됨에 따라 기병의 생명은 치명상을 입었다. 이전까진 머스킷 대열이 장전속도와 명중률 문제로 기병에 그토록 취약하였는데 이 시기 화약 성능의 개선에 따른 두 발명은 전장식 화기를 쓰던 시절에는 볼수 없었던 명중률과 연사속도를 실연시켯다. 스탈린도 기병장교 시절에 포병에게 죽을 뻔했다. 더군다나 제1차 세계대전 즈음이 되면 포병까지 갈필요없이 보병이 사용하는 기관총이 난사되는 환경이 조성됐으므로 기병의 입지는 기동성과 정찰정도 밖에 남지 않게 되었는데 정찰 임무마저 비행기가 발명(...)되면서 입지를 빼았겼다.

그나마 기동성의 존재로 인해 기병은 2차 세계대전까지 전장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기술이 더 발달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폴란드 육군의 창기병대러시아카자크 기병대가 크게 알려져 있다.[8] 폴란드 육군 창기병대는 창 들고 전차에 꼬라박은 뒤 전차가 나무로 만들어진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나, 이건 사실 용맹히 싸웠던 폴란드군을 바보로 선전하기 위한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 헝가리와 같은 추축국의 프로파간다다. 실제 폴란드 육군 기병대는 독일군 보병의 포위망을 돌파하려다가 전차부대와 충돌, 끝까지 저항하다가 몰살당한 사례이며 이 장면을 찍어다 프로파간다용으로 쓴 게 퍼진 것이다. 사실 이 시대의 폴란드 창기병은 말이 창기병이지 기관총도 가지고 있었고, 전원 개인 화기로 무장한 말로 이동하는 정예 보병에 가까웠다. 연대 규모로 가면 대전차포와 대공포, 부속 기갑중대까지 붙은 세계대전 기준으로는 매우 현대화된 부대였으나 '창기병'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도록 기병창과 기병도 역시 지급하고 훈련도 했으며, 실제로 창기병 돌격으로 독일 육군 보병중대를 격파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전멸한 사례중 일부는 퇴각중인 후방부대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싸우다 전멸했다고 한다. [독일 육군을 무찌르는 기병대의 위엄] 폴란드 기병대는 세계대전 일어나기 몇년 전에 일어난 소련-폴란드 전쟁에서 소비에트 러시아 육군을 분쇄한 활약으로 세계에 막강한 폴란드군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독소전쟁 개전 이후 동부전선에선 나치 독일에 포섭된 카자크 기병들이 활약했지만, 소련 육군 역시 카자크족을 징집해 추격전이나 게릴라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소련 육군은 여기에 1개 기병군단과 1개 전차군단을 조합한 기병-기계화 집단을 창설해 전차가 기동하기 힘든 지형에 투입하거나 일반적인 전차부대보다 더 빠른 기동력을 발휘하게 하여 추격과 포위 기동에 활약하게 했다. 전쟁 막바지에는 카자크들이 도망치는 독일군들의 목을 수확하고 다녔다고 한다. 흠많무

독일군은 일반적 이미지와는 다르게, 차량화와 기계화 비율은 대단히 낮은편[9]으로 전쟁 기간동안 엄청난 숫자의 말을 징발했다. 1939년 개전 당시에 59만 마리, 1945년 1월에는 120만 마리에 이를 돌보는 인원만 수만명이었다. 중간에 죽거나 다친 말까지 포함하면 유럽 전역에서 최대 700만마리의 말을 징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독일군은 고질적인 석유 부족으로 최일선의 전차부대를 제외하면 말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로 수송부대나 포병대, 지원장비 등을 견인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후방의 빨치산에 대응하기 위한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량과 더불어 일부 부대는 기병으로 구성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독뽕들은 폴란드나 소련 깔 처지가 못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무장SS의 제7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라는 전쟁범죄부대가 있다.

이탈리아군 역시 기병대가 존재했는데, 가장 유명한것은 독소전에 파견된 육군 사보이아 기병연대의 기병돌격. 1942년 8월 24일에 있었던 일로 포병 지원까지 받던 소련 육군 시베리아 보병연대를 기병 돌격으로 박살내버렸다. 졸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군이지만 이런 분전도 많았다.

몽골군 역시 2차대전 시기에 기병대가 존재했고, 할힌골 전투의 빌미를 제공 하기도 했다.

참고로 2차대전 당시 자력으로 전군의 기계화를 이뤄낸 군대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미군이다.도로를 따라 끝없이 밀려오는 보급트럭과 전차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랜드리스를 통해 소련군 또한 전쟁 중후반부 부터는 군의 기계화에 성공하는데 이런 개쩌는 물량을 상대로 겁도 없인 덤빈 히틀러가 미친놈이다. 다만 그런 미 육군도 1920년대 까지는 소수의 기병대를 운용했으며, 주로 헌병들이 탔다고 한다.

1차 대전과 달리 전선이 고착되지 않고 기동전 위주가 된 덕분에 기병이 반짝 활약은 할 수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 기병이 활약할 여지는 기마경찰대로서 사용하는정도이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때 이후 전장에서의 독일이나 영국, 미국 육군의 '기병대'는 많은 경우 말로만 기병이고, 헬기, 차량화부대나 기갑 또는 기계화 보병이 되어있었다.

물론 한자어로 번역을 해서 기병이 되긴 했지만, 사실은 'cavalry'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변한 것에 가깝다.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어 중 비슷한 변화를 겪은 비슷한 분야의 단어를 찾는다면 전차가 있다. 원래는 춘추전국시대에 널리 쓰던, 말이 끄는 전투용 수레를 이르는 말이었다.


2.6 현대

현대전에서는 기술 발달로 육군이 기계화 되면서, 의장대와 기마 경찰대 정도를 제외하면 을 이용하는 부대는 거의 없으며, 과거에 기병이 맡았던 역할은 전차장갑차, 그리고 헬리콥터들이 계승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이들을 현대의 기병이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 기갑 부대나 헬기 강습 부대 등은 이전에 기병이 하던 일을 대신하고 있다. 타던게 말에서 장갑판 두른 자동차나 헬리콥터가 되었을 뿐이지. 현대에 와서 중기병의 "충격력" 개념은 전차가 계승했고, 경기병과 총기병의"속도와 범용성" 개념은 헬기장갑차가 계승한 격이다. 이 중 장갑차는 기병처럼 기동하는 역할이 아니라 보병을 수송하는 개념이므로,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병의 기동성을 가진다. 즉, 과거의 승마보병 드라군의 개념을 계승한 것으로 봐도 되겠다. 처음에는 하마(하차) 전투를 위주로 하다가 점점 승마(승차) 전투를 주요 교리로 하게 된 것도 드라군과 장갑차를 타는 기계화보병의 공통점.

많은 기갑 부대, 헬기 강습 부대들이 부대 마크에 편자를 넣고, '기병(Cavalry)'이라거나 '드라군(Dragoon)' 등을 부대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명한 예로는 미국 육군의 제1기병사단이나 제2기갑기병연대 등이 있다. 2차 대전중의 독일 기갑부대는 복장과 마크에서 프로이센 창기병을 계승하고 있었다.

보통 유럽 군대에게 있어서는 기병대는 과거 군대의 전통을 상징하기에 부대의 역사가 몇백년 되어 기갑으로 변환한 병과들도 후사르, 창기병, 샤쇠르, 퀴러시어, 드라군 등의 명칭을 이어받고 있다.

반면 이런 전통이 빈약한[10] 편에 속하는 미국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모든 기병 병과가 단 하나로 통일되었고, 지금의 수색대 단대호는 본래, 그리고 현재 미국 기병의 단대호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UH-1 휴이를 주력으로 공중강습전을 벌이는 공중 기병대(Air Cavalry), 기갑차량을 편제받아 위력정찰 역할을 하는 기갑 기병대(Armored Cavalry)로 개편된다. 이후 공중 기병대는 보다 전문적인 공중강습부대나 공수부대 등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대신 카이오와 정찰헬기 등을 사용해 기갑 기병대의 눈 역할을 맡고 있으며, 기갑기병은 각 사단 내지 여단전투단에 연대 단위로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에서도 대한민국 국군 기갑 연대 휘하에 기병대가 2개 중대 정도의 규모로 있었다. 개전 초기 전역부터 지연전역 때까지 전장에서 계속 싸웠다. 물론 북한군 탱크에 정면으로 돌격하는 미친 전술은 당연히 아니었고, 말을 타고 이동하다가 교전시 말에서 내려서 보병 전투를 진행하는 드라군처럼 운용하였다. 지연전 전개 기간 동안에는 기병대 대장 장철부 소령이 적에게 포위되어 전사[11]하는 등 사실상 괴멸되었지만, 북한군을 상대로 기병돌격을 감행포위망을 뚫고 이기는 등 상당한 활약도 했다. 그러나 50년 8월을 전후한 무렵에는 말이 거의 전멸한 상태에서 추가 수급이 불가능해 보병으로 개편되었다. 이때 살아남은 말들은 훗날 경찰 및 헌병에 흡수, 기마경찰대와 기마헌병대가 되었다가 역시 1950년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1972년에 제1군사령부에서 강원도 산악지대에서의 수송과 대간첩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 토종 조랑말을 이용한 타마(駝馬)부대를 창설하기도 했으나 말먹이를 수급하기 어렵고, 기계화 장비들을 도입하면서 필요성이 줄어들어 1982년에 공식 해체되었다. 현대 한국군에서 정식으로 말을 운용하는 곳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승마 교육을 담당하는 군마대가 유일하다.

[관련자료]
[관련자료2]

전설의 군대인 로디지아군의 경우도 대게릴라전용으로 기병을 운용했었다. 지형상 차량을 원활히 운용하기 어려운 곳에서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말이 원래 아프리카에 사는 동물이 아니라서 그런지 교육수준이 떨어지는 흑인 게릴라들은 말의 존재를 처음 보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했었다고. 로디지아군 항목의 동영상을 보다보면 드라군 마냥 총들고 말달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런 이유다. 물론 로디지아 자체가 사라지고 나서는 반짝 부활했던 이 기병들도 뿔뿔이 흩어졌겠지만...

그러나 일부 산악지역, 사막 등 차량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짜 기병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있다. 정말 험난한 곳은 말로도 못 가니까 걸어가야만 하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산악 지역같은 험한 곳은 말은 힘들긴 해도 그럭저럭 갈 수 있더라도 장갑차로는 택도 없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 굳이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동만 말을 타고 하는 드라군식의 운용으로도 이런 지형에서는 쓸모가 있다. 그냥 걷는 것보다는 빠르기에 험지에서도 기동성을 어느정도 발휘할 수 있으며, 사람 대신 기관총이나 견인포 같은 무거운 공용 화기를 운반하는 용도로 쓸 수도 있기에[12] 아주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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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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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러시아 내전?

한 예로 사막과 산악이 대부분인 중국의 서북부 지역에는 기병대가 현존하고 있다. 이쪽은 아무래도 지형 특성상 차량화부대의 유지, 보수가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로 발달한 듯.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기병이 활약했다. 원래 이땅에 살던 북부동맹이나 탈레반 등은 기계화된 기동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특성상 기병을 사용했는데 미국과 전쟁이 발발하면서 북부동맹에게 지원나간 미군 특수부대가 폭격 유도를 해주면 북부동맹이 기병 돌격(!)을 실시했다고. 몇몇 전투에선 미군 특수부대도 같이 기병 돌격했다고 한다(...). 이후에 미군도 현지의 열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노새를 이용한 물자 수송을 하기도 했다.


2.6.1 공중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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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서 이러고 다니지는 않는다
보면 알겠지만 미국 기병대로 위가 빨갛고 아래가 하얀게 인도네시아모나코 국기와 닮았지만 당연히 별 관계 없다. 원래는 성조기에서 Stripes에 해당하는 빨간색과 하얀색이다. 1862년 일반명령 4호에서 기병대 깃발(guidon)을 성조기 줄무니를 이용해 만들라는 명령이 내려왔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것.

Air Cavalry

냉전과 그에 수반된 베트남 전쟁 당시, 보병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지형들을 통과하여 전장을 자신들이 먼저 고른다는 개념으로 미 육군 제1기병사단이 공중강습사단으로 개편되어 제11공중강습연대가 사단 내에 예하 부대로 배속되면서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하늘을 뒤덮은 휴이의 파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수송헬기를 이용한 공중강습전은 여타 다른 공중강습사단들에 소속하는 보다 전문적인 공중강습부대들에게로 넘기고, 정찰헬기와 무장헬기·공격헬기 등을 이용한 정찰과 화력지원·대전차전 등을 주로 수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갑 기병대의 눈으로서의 역할이다. 물론 그렇다고 수송헬기 자체를 아예 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수송헬기 전력도 자체적으로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부대에서 운용하던 헬기의 퇴역식에서는, 과거 기병대의 전통에 따라 애마를 안락사시키듯이 퇴역하는 헬기를 보내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이 부대의 강습보병들과 조종사 등 항공대 인원들도 병과표지를 기병의 것을 달기도 한다.


2.6.2 기갑 기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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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실전에서 이러고 다니지는 않는다

Armored Cavalry

베트남 전쟁의 종결 이후, 공중강습사단이었던 미 육군 제1기병사단이 삼중임무수행능력(TRICAP, 기갑/항공/강습 3개 임무의 동시수행)을 요구받으면서, 공중강습과 더불어 편제에 전차기병전투차를 편제받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현대적인 기갑 기병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갑차량을 활용한 위력정찰이 주된 임무이며, 각 사단 내지 여단전투단에 연대 단위로 파견되어 활동하기도 한다. 또한 기병전투차만이 아니라 전차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정찰만을 수행하는 부대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기갑 기병대는 수색대의 역할을 맡고 있는 부대이지만, 정찰 장갑차 문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타 국가의 수색부대와는 교리가 다소 다르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수색부대들은 가급적 직접교전을 피하여 정찰을 하나, 미군 기갑 기병대의 경우에는 정찰을 한 뒤 그 상대들을 직접 갈아버린다 아예 현용 CFV와 주력전차가 배정되고 직접 교전을 꺼리지 않는 점에서 점에서 타국의 수색부대와는 차이가 큰 편.

대한민국 육군 편제에서는 각 기계화 보병사단 직할의 기갑수색대대와 독립 기갑여단의 기갑수색중대가 그 명맥을 이어받았다. 영문 명칭 역시 동일하게 사용한다.


3 유명한 기병대

3.1 현실


3.2 가상

4 기병으로 유명한 인물들

4.1 현실


4.2 가상

5 각종 매체에서의 기병

5.1 드라마, 영화

한국이든 외국이든 영화, 사극 등에서 기병전이 제대로 묘사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대개는 그냥 말탄 기병들이 보병들의 옆을 얌전히 지나가거나, 기병과 보병이 대치한 상태로 질, 질을 주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나 군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런 묘사에 분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크다. 일단 말은 매우 비싸며, 말을 탈 줄 아는 전문 배우를 구하기 힘들고, 훈련된 말이라 해도 결국 동물인 만큼 촬영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다, 기병의 충격력과 돌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말들이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사람 머리 높이에서 떨어지는 낙마 장면은 전문 스턴트맨을 써야 할 정도로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위험하다. 백병전과 달리 살아있는 생물인 말을 이용한 전투는 사실적인 리인액트가 무척 어렵고 위험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칸나이 전투를 다룬 BBC의 다큐멘터리에서 한니발군의 기병을 묘사하기 위해 고용된 리인액터들은 카우치드 랜스를 사용해야 했다. 고증을 따르자면 창을 양손으로 쥐고 돌격하거나 창을 역수로 잡고 밑으로 내려 찍는 방법을 써야겠지만, 이는 고삐를 다룰 손이 없으며 몸의 중심을 잡기가 어려운 탓에 낙마 사고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극 한편에 수십 수백 억의 예산을 쏟아 붓는 BBC마저도 기병전의 묘사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정도로 기병의 연출은 어렵다.

기병전을 그나마 볼 수 있는 영상 매체는 현재로서는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이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첫 돌격, 그리고 뒤이어지는 백병전을 살짝살짝 다뤄주는 정도다. 상술했듯 안전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기병 돌격 장면은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의 로한 기마대 돌격장면이다. 배우들의 연기력, 막대한 물량, CG와 실사가 조화된 소설적인 연출, 웅장한 BGM([#Riders of Rohan], [The Battle of the Pelennor Fields]) 등이 아름답게 어울려, 영화 속 전투장면 베스트를 논할때 항상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랭크되는 희대의 명장면이다. 기병이 보병과 접촉하기 전에 3~4회의 화살세례를 온몸으로 뒤집어 써야 한다는 현실적이고도 처절한 요소도 잘 묘사되었다.

다만 이 기병 돌격장면은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오크들이 변변한 대기병진형도 형성하지 못 했다 하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토록 두터운 진형을 짜고 있는 보병들을 상대로 기병들이 일직선으로 돌격하면 충격력이 금방 없어져 정지해 버리고[13] 보병들에게 둘러싸여 학살 당할 뿐이다. 제대로 묘사하면, 실제 기병돌격처럼 여러 웨이브로 나누어 보병의 전열이 무너질 때까지 돌격을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는 관객이 보기에는 다소 맥 빠져 보일 수도 있으며, 원작에서도 세세한 기병 돌격이 묘사되기 보다는 원경에서 마치 빗자루가 먼지를 쓸어내듯이 묘사되고 있으니 영화감독 입장에서는 이런 연출을 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또한 로한인들의 군마는 현실의 군마와 달리 장애물, 뾰쪽한 것과 같이 말들을 주저하게 하여 기병의 충격력을 감소시킬 그 어떤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설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달리 단 한번의 돌격으로 방진을 찢어내고 적을 패퇴시킬 수 있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충격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 2, 3편에서 보병들은 일괄적으로 기병의 돌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묘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14] 단 한번에 돌격에 적의 방진이 무너져 바로 추격 섬멸전 양상으로 흐르도록 묘사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의 기병전 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케락의 백성들이 성으로 안전하게 들어올 시간을 벌기 위하여 이벨린의 발리앙(올랜도 블룸)이 이끄는 소수의 유럽 기병대가 압도적 다수의 이슬람 기병대를 상대로 일자형 진형을 장방형으로 바꾸어 가며 돌격하는 장면이 장렬하다. 중장갑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포로로잡히는것도 고증에 맞는다. [영상]

<브레이브 하트>도 역사왜곡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여러 볼거리가 충실하게 채워진 훌륭한 작품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장창을 기습적으로 빼든 스코틀랜드 보병방진이, 코앞까지 돌진한 잉글랜드 기병을 제압하는 스털링 전투의 묘사가 인상적이다. 잉글랜드 기병이 출진하여, 충분한 충격력을 얻을 때까지 속도를 서서히 올리는 장면은 묵음처리가 되는데, 시청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연출도 훌륭하다.

최근에는 HBO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 6 9화의 쟁점인 윈터펠 전투에서 존 스노우램지 볼튼이 각기 이끄는 스타크 병력과 볼튼 병력의 기병 충돌 장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거진 쌈싸먹는 어마어마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극중 지휘관들의 전략적 오판과는 별개로 중세 기병의 돌격력과 기병 대 기병간의 난전 묘사를 그 어떤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존 스노우의 시점에서 난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롱테이크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중세판으로 옮겨놨다 봐도 될 만큼 압도적. 전투 종반에 볼튼 창병대의 방진에 존 스노우의 야인 군대가 끔살당하기 직전, 그들을 지원하러 온 베일의 대규모 기사단이 방진의 후미를 강타해 압살해 버리는 장면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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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병전 묘사의 TOP는 역시 1970년 영화 <워털루>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CG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진짜 코사크 기병 2000여 기까지 동원된(!!!) 14,000 여 정도가 동원된 것이 장관이다. 평원을 뒤덮을 기세로 몰려든 기병들이 보병들의 수많은 방진들 사이로 말려드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압권. 배우 하나가 낙마하면 그 사람은 100% 끔살 확정일 정도로 대단히 위험한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걸 찍을 생각을 했는지. 또 포탄이 터질 때마다, 보병들의 일제사격이 있을 때마다 기병들이 무더기로 넘어지는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연기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해당 항목 참조.


5.2 게임

대다수의 전략 게임에서는 기병을 그저 힘세고 강한 빠르고 강한 보병수준으로 구현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를 비롯한 고전 RTS 게임에서도 이런 경향이 강한데, 게임 엔진상 기병의 충격력을 묘사하는 게 어렵고, 게임의 기본 디자인 자체가 전쟁을 정확하게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토탈워 시리즈마운트 앤 블레이드처럼 꽤나 훌륭하게 구현해 놓은 게임도 있다. 게임상에서 멈춘 기병은 보병의 좋은 먹잇감이 되며[15], 창병이나 전열보병에 매우 취약하지만, 돌격을 수차례 반복하여 적을 약화시키거나 적을 패퇴시킨 후 전과확대 단계에서 추격하는 임무를 맡는 등.[16] 상당히 현실적이다. 또한 일단 붙어서 칼질을 하는 다른 게임과 달리 충돌시 적 보병이 뒤로 날아가기도 하며, 혹은 한번 들이받았을 뿐인데 전열이 개박살나면서, 모랄빵이 나는걸 생생히 볼 수도 있다.

또한 경기병과 중기병간의 특성이 꽤 커서 경기병은 창기병이 아닌한 큰 충격을 주기가 어렵고 방어가 약해 잘 죽지만 쉽게 지치지 않고 빠르며, 중기병은 강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나 첫 돌격 이후 지치기가 쉬우며, 기동 또한 경기병에 비하면 많이 뻑뻑한 편이다.

온라인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직종이다. 그도 그럴것이, 뭔가를 타면서 공격까지 가능해진다면 파티 플레이때 다른 파티원에 비해 이동속도가 넘사벽으로 차이가 나게 되는데, 그러면 그만큼 팀웍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냥 속도에 따른 성장 및 아이템 파밍 면에서도 밸런스 붕괴가 되기 쉽다. 그리고 일단 기마상태의 전투 자체를 구현하기가 썩 쉽지가 않다. 단순히 시스템을 구현하는것이든,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든 난점이 산적한다. 3D 오픈월드 계통의 온라인 게임이라면 더불어 조작성까지 난해해진다. 굳이 구현하려 든다면 트리 오브 세이비어캐터프랙트슈바르츠라이터가 대표적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헤카림의 경우 정통 기병의 기동력은 물론 충격력까지 가장 잘 구현한 몇 안되는 사례다. 파멸의 돌격(e)은 이동 속도가 최대치로 증가할수록 가할 수 있는 피해량도 최대로 늘어난다. 이동속도가 많이 추가될 수록 공격력도 늘어나는 패시브는 덤. 이 충격력을 구현한 스킬의 위력을 극대화한 전략이 바로 유성 헤카림.
  1. 현재는 기갑, 공중강습, 기계화보병등의 부대가 전통 계승 차원에서 전투병들이 사용한다. 이들이 기병의 방계후손이기도 하고.
  2. 야생마인 얼룩말의 어깨높이가 1.3m로 오늘날 경주마의 어깨높이인 1.5m보다 작다.
  3. 13세기 영국 수도사 베이컨에 의하면 여러차례의 재돌격으로 말이 쓰러져 바꿔 타야 했다고 한다.
  4. 폴 J. 스미스, 《천부(天府)에 과세를 해서》, 하버드대학 출판국, 1992
  5. 여담으로, 바로 이 연대가 저 유명한 발라클라바 전투의 그 경기병 연대 되시겠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고.
  6. 카빈이란 말 자체가 캐러비니어에게서 유래하였다. 그외에도 등산장비인 카라비너역시 여기서 유래.
  7. 오스만의 기병은 크게 '아큰즈'(Akıncı) 나 '델릴레르'(Deliler) 라고 하는 비정규 기병대와 신하국, 칸국 등에서 파견된 병사. 그리고 시파히들로 구성되어있다.
  8. 전간기에는 신생 폴란드공화국 육군의 창기병대와 소련 적군 카자크 기병대 간의 기병전이 벌어진 적이 있다.
  9. 어느 정도였냐면 전격전의 전설의 자료에 따르면 독일군의 월간 차량 생산량으로는 비전투손실의 2%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저조하여 10개의 기갑사단과 6개의 차량화보병사단에게 보유한 차량 대부분을 꼴라 박았을 정도였다.
  10. 실제로 미국은 독립전쟁기에 드라군밖에 보유할 수 없었고, 폴란드에서 온 의용병단으로 풀라스키의 군단이라는 창기병대를 하나 보유하게 된다.
  11. 완전히 포위되어 포로로 잡히기 직전에 스스로 권총 자살하였다.
  12. 헬리콥터도 가능하겠지만 대공무기에 취약한것과 연료문제가 있다.
  13. 새벽의 저주의 버스 돌파 장면을 생각해 보자.
  14. 2편의 우르크 하이들은 간달프의 타오르는 빛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기병의 돌격을 대응하지 못하는 것 처럼 묘사되며, 3편의 오크들은 화살비에도 굴하지 않고 돌격해오는 기병대에 뒷걸음질 치며 사기가 꺾인 묘사를 보여준다.
  15. 수가 적고 덩치가 큰게 주된 이유다.
  16. 전열 돌파는 주로 중기병, 추격 및 전과확대는 경기병이 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