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와 더불어 서양의 고대를 대표하는 명칭이다. 하지만 이 지역이 단일국가로 있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분열되어 있다가 마케도니아고대 로마에 의해 강제로 통합당하게 된다.

1 개괄

고대 그리스의 범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편이다.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미노아(미노스) 문명과 이후 그리스 본토와 트로이 일대에서 펼쳐지는 미케네 문명 즉 에게 문명 시기를 고대 그리스와 같이 설명하고 있으나, 고전문화가 꽃피는 후대의 그리스 문화와는 차이가 많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도리아인이 남하해서 미케네 문명이 무너지고 역사가 거의 기록되지 않는 암흑 시대의 시점인 기원전 1100년경부터를 시작으로 보고 있다.

이후 기원전 800년경부터 도시국가폴리스와 에트노스가 그리스 각지에서 성립하게 된다. 폴리스들은 기원전 776년에 고대 올림픽을 통해 동족의식을 가졌으나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폴리스는 대체적으로 방어를 위해 세운 성벽을 중심으로 도시를 이루면서 형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왕국의 형식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정의 형식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식민활동의 활성화와 화폐경제의 도입, 철 가격의 하락 등으로 평민들도 무장을 하게 되면서 전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자 그들의 발언권이 커지게 되었다. 이후 폴리스는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민주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폴리스로는 아테네스파르타, 테베를 들 수 있다.

폴리스의 패권은 우선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가 제국이라 불리던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면서 지니고 있었으나, 아테네 못지 않은 세력을 자랑했던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자 무너지게 되었고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가 폴리스의 패권을 쥐게 된다. 하지만 레욱트라 전투에서 테베를 중심으로 하는 반스파르타연합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패권은 다시금 테베로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 폴리스들이 혼란을 거듭하던 동안 북쪽에서 힘을 키우던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2세가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폴리스군을 격파하면서 그리스 폴리스들은 마케도니아의 점령을 받게 되었고 알렉산드로스 3세의 시대를 거치게 되면서 완전히 약화가 된다. 이후에는 헬레니즘 제국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전의 문화를 잃어버리게 되고 고대 로마에 의해 마케도니아가 멸망당한 이후에는 자치권마저 사라지게 되면서 고대 그리스는 막을 내리게 된다.[1]

2 역사

2.1 암흑시대

말 그대로 암흑시대다. 도리아인의 남하가 시작된 기원전 1100년경부터의 시대를 말하며 이 시기에는 이전에 화려하게 꽃피웠던 미케네 문명의 흔적이 사라졌으며, 역사적 기록이 호메로스의 각종 저서들을 통해 알려지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이 시기 동안에 미케네 문명을 주도했던 각종 왕국들이 몰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2.2 폴리스의 성장

기원전 800년경부터 각종 폴리스가 등장하게 된다. 각종 폴리스들은 귀족들이 중심이 되는 귀족정을 택했으나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식민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평민들의 권한이 확대되면서 점차 민주정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는 성격에 따라 귀족정이 더 강화가 되기도 하였다. 전자의 대표적인 폴리스가 아테네고, 후자의 대표적인 폴리스가 스파르타다.

아테네는 상공업을 중심으로 폴리스를 운영해나갔으며 식민활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그 과정에서 평민들이 무장을 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자 기원전 594년 조정자 솔론은 일부 평민들을 재산의 정도에 따라 정치에 참가시키게 되는 금권정치를 하게 된다. 하지만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그러한 불만을 가진 빈농들의 지지를 받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참주를 칭하며 정권을 장악하고 귀족들을 내쫓는 참주정치를 하게 된다. 참주정치는 기원전 510년경 무너지게 되고 뒤이어 등장한 클레이스테네스는 기원전 502년 행정개혁과 참정권 확대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때 당시 시민권은 아테네에 살고 있는 성인 남성에 한정한다.

스파르타는 정복민 도리아인이 세운 폴리스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복국가의 이미지가 강했다. 기원전 8세기 말과 7세기 후반에 걸친 메세니아 전쟁을 통해 전체주민의 5~10%만이 시민권을 가지게 되고 나머지 자신들에게 대항했던 정복민들을 노예로 삼으면서 지배하는 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다. 스파르타의 주민의 절대다수는 정복노예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반란을 끊임없이 경계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상무적인 분위기를 가지면서 저절로 군사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2.3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 참고

2.4 아테네 제국

비록 그리스 폴리스들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페르시아는 강국이고, 그로 인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폴리스들끼리 뭉쳐야 할 이유가 생겼는데 결국 페르시아 전쟁을 주도했던 아테네가 맹주가 되어서 기원전 477년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였다. 델로스 동맹은 그야말로 아테네의 제국이나 다름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반 동맹 폴리스에 대한 배척은 향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 시기 아테네의 민주정치도 기원전 457년 페리클레스가 집권하면서 황금기를 이루게 되었다. 페리클레스는 민회의 권한을 강화하였으며, 아레오파구스 회의 즉 귀족회의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10명의 장군의 권한을 강화시켜서 국정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정권을 잡은 이후에 대중영합주의를 펼치면서 그의 사후 중우정치로 흐르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2.5 펠로폰네소스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참고

2.6 스파르타테베의 패권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주도하던 델로스 동맹을 해산시켰고, 아테네를 스파르타의 동맹시로 종속하게 만들었다. 아테네에서는 스파르타 수비대의 후원하에서 30인 참주의 과두제가 성립되었으나 공포정치로 인해서 다시 민주정치가 성립되었지만, 이전과 다른 중우정치로 흐르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폴리스를 가혹하게 다루었고, 이후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참패를 당하게 되자 테베를 중심으로 폴리스들이 뭉치게 되었고 결국 테베가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스파르타 지배의 메세니아를 해방시켜서 스파르타는 생활기반을 잃고 패권을 잃게 되었다.

스파르타를 대신해 패권을 잡은 테베는 얼마 가지 못해 기원전 362년 아테네-스파르타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고, 그리스 폴리스들은 혼란과 무정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2.7 마케도니아의 점령이후

그리스 폴리스들이 서로 분열을 지속하던 중 북쪽에서 성장하던 마케도니아필리포스 2세의 뛰어난 지도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서 그리스 폴리스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마케도니아의 성장에 아테네와 테베가 화해를 하고 연합을 이루어 마케도니아에 대항했으나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결국 그리스 폴리스들은 스파르타를 제외하고 거의 전부 마케도니아의 명령을 받는 코린토스 동맹으로 묶이게 되어 군사적 자치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에 오르자 테베와 아테네가 다시금 반 마케도니아 세력을 이루었으나 곧바로 격파당했고, 이 때 테베는 완전히 몰락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 이후 디아도코이들로부터 시작된 헬레니즘 제국 시기엔 그리스 폴리스들은 정치적인 영향력까지 상실당한체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가 기원전 148년 마케도니아가 로마 속주로 편입당하고 연이어 기원전 146년 로마의 보호령이 되어 폴리스 체제도 결국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존중을 받았다(상류층의 이중언어, 그리스인 가정교사, 동로마 제국 등)고 한들, 이미 그리스의 독창성은 사라지고 과거의 유산으로 연명할 따름이었기 때문이다.

3 고대 그리스의 인물

4 관련 문서

  1.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정도만이 자치권을 지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