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정리사업

貨幣整理事業

1 개요

구한말 시기 일본 제국대한제국의 경제를 자국의 경제에 종속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행한 화폐개혁.

2 내용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을 체결한 일본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명분으로 고문들을 파견한다.[1] 이 고문들 중 재정을 담당하기 위해 파견된 자가 바로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 種大郞).[2] 그리고 이 메가타가 대한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추진한 사업이 바로 갑오개혁 이후 조선의 주요 경제정책이었던 은본위제도를 철폐시키고 일본과 동일한 금본위제도를 도입한 것. 이어서 단행한 것이 바로 화폐정리사업이었다. 화폐정리사업의 목적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조선 화폐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일본 화폐를 조선 사회 곳곳에 유통시켜서, 경제적으로 침투를 쉽게 하기 위한 것.

화폐정리사업의 주 대상이 된 화폐는 바로 1892년부터 조선에서 발행된 백동화였다.[3] 사실 아닌게 아니라 이 당시 조선의 경제상황에서 화폐개혁사업은 분명히 필요한 사업이기는 했다. 우선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조정이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백동화를 마구마구 찍어내서 인플레이션 효과가 엄청났으며, 단순히 마구마구 찍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조정이 주도하여 불량화폐까지 시중에 마구 유통시키지까지 했다.[4] 이 당시 통계를 보면, 수도 서울 내의 유통되는 화폐의 25%가량, 그리고 제2 도시였던 평양에서는 80% 가량이 불량 혹은 위조된 백동화였다.

당시 화폐교환 과정에서 일본은 구 백동화를 신화와 바꿀 때 액면가로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구 백동화의 질에 따라 상대적으로 교환비를 달리해서 신화와 바꾸어주었다. 즉, 백동화를 등급별로 나누어 갑(甲)인 경우에는 액면가 2전 5푼 그대로, 을(乙)인 경우에는 2전 5푼짜리를 1전으로, 병(丙)인 경우에는 교환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백동화를 정리하였다.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백동화를 정부에서만 발행한 것이 아니라, 주조의 특권을 얻어 행하는 특주(特鑄)나 환관이나 관리가 행한 묵주(默鑄), 일본으로부터 밀수된 사주(私鑄)등이 횡행하여 화폐의 종류만해도 관주가 16종에 사주 560종, 도합 백동화 한 화폐의 종류만 해도 576종이나 되었다.

3 그런데 왜 문제?

조선인이 가졌던 화폐 중 거의 대부분은 악화였기 때문에, 화폐 교환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백동화는 을이나 병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많은 조선인들이 교환을 거부하여 가지고 있는 화폐가 무효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교환 4일전에서야 황성신문을 통해 통보되었고, 충분한 통보조치나, 홍보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인으로서는 백동화 정리가 상당히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인들의 경우 화폐정리사업을 미리 알고 있어서 사업이 시행되기 전 악화를 미리 양화로 바꾸는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4 결과

조선인의 통화보유량이 급감했음은 당연한 일이고, 조선의 상인과 은행이 다수 파산하면서 이 시점에서 조선의 상업자본은 사실상 몰락하게 된다. 당연히 그 공백을 채운 것은 일본의 경제력. 일본 제일은행[5]이 한국의 국고금 취급과 법화 발행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의 지위를 확보하게 됐음은 물론이고, 더불어 금융조합·농공은행·어음조합·공동창고회사 등까지 설립해 일본은 조선의 산업 경제활동을 통제·장악하고, 기간산업을 독점하게 된다. 이 결과 민족자본가 중 화폐가 아닌 현물(토지)을 보유한 지주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상인출신 부호보다는 만석꾼 같은 민족자본가가 대부분인 이유이기도 했다.

분명 화폐정리사업은 언젠가 해야 할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를 조선/대한제국이 하지 못하고 일본의 손에 의해 주도됨으로서 기간산업이 모두 넘어가고 조선 상인들이 몰락하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1. 물론 그 고문들이 정말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서 온 것인지 아닌지는 설명이 더 필요한가?
  2. 외교 고문이 미국인 스티븐스였던 탓에 이 사람도 서양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버드 대학교의 로스쿨을 졸업한 일본인 변호사였다.
  3. 이 백동화는 지금의 한국 상황으로 치자면 오천원권 지폐만원권 지폐 정도 역할을 하는 보조화폐라고 보면 된다.
  4. 조정이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외국인들과 시중의 상인들까지도 공공연하게 위조화폐를 만들어 시중에 풀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노답(...) 이 당시 조정이 얼마나 뻔뻔했냐면 불량화폐를 시중에 풀어놓거는 자기들이면서 세금 및 공물을 수납받을때는 백동화를 결제수단으로 이용하기를 거부하고 일본의 화폐를 선호했다. 참..... 헛웃음만 나온다.
  5. 第一銀行. 한자를 봐도 알겠지만 일본할 때의 일이 아니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다이이치 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