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바르바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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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 사략선과 교전 중인 USS Enterprise(1801년)

1 개요

1801년에서 1805년까지 벌어진 미국바르바리 해적간의 전쟁. 미국 역사상 최초의 국제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최강 미 해군이 처음 만들어지게 된 계기.

2 배경

18세기에서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지중해 일대에는 여전히 바르바리 해적이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이들은 서구 유럽의 상선들을 습격해 납치한뒤,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다(쉽게 말해서 21세기의 소말리아 해적하고 같다). 다만 영국 국적선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영국 국적선을 건드렸다가는 당시 세계 최강 영국 해군이 출동하기 때문에 악명 높은 바르바리 해적들도 영국 국적선은 건드리지 않았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는 미국 선박들도 영국 국적선으로 인정을 받아서 바르바리 해적들의 납치를 면할수 있었지만, 미국이 독립한 후 바르바리 해적들은 "미국? 그건 어디에 있는 듣보잡임?" 하면서 미국 선박들을 납치해서 몸값을 뜯어냈다. 당시 미국은 신생 국가로 나라 재정이 열악한 형편이라 제때 몸값을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리되자 미국 정부는 윌리엄 베이브릿지에게 겨우 요구 금액에 거의 맟춘 돈을 들고 바르바리 해적들을 통제하는 지중해의 파샤들과 협상하러 갔지만, 파샤들은 "이스탄불 가서 협상하셈"이라고 베이브릿지와의 만남을 거부했고, 베이브릿지는 이스탄불로 가서 오스만 제국과 협상하려 했지만 오스만 제국은 입항도 거부해 미국 국기 대신 오스만 제국 깃발을 달고 입항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런 반응에 미국은 위협을 느끼고 해군의 창설 및 군비 증강에 나섰고, 그렇게 창설된 함대를 지중해로 파견해 상선들을 보호하였다. 바르바리 해적들도 "미국 애들은 돈 안 준다"라면서 잡아둔 포로들을 노예로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1801년 5월 14일, 트리폴리의 파샤 유수프 카라만르(Yusuf Karamanlı)[1]가 트리폴리의 미국 영사관성조기가 걸린 깃대를 칼로 베어서 성조기를 쓰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분노한 미국은 이 사건을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 간주하고 트리폴리에 대한 반감이 격해졌다.

3 진행

이런 와중에 6월 1일, 리처드 데일이 인솔하는 4척의 함선으로 구성된 미 해군 함대가 지브롤터를 통과해 지중해로 들어왔다. 이들의 본래 임무는 지중해의 미국 상선 보호였지만 트리폴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통보해 1차 바르바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 해군 함대는 트리폴리를 섣불리 공격하지는 않고 트리폴리 해상에 진주하면서 해상 봉쇄에 치중했다. 트리폴리의 바르바리 해적들이 전선 24척에 2만 5000여 병사를 거느리고 있어서 정면공격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8월 1일,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호와 트리폴리 바르바리 해적의 폴라카선이 충돌했을 때 엔터프라이즈호의 포격으로 폴라카선은 전투불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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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803년에는 전함 7척으로 구성된 미 해군 함대가 트리폴리를 봉쇄했고, 2년 후인 1805년에는 윌리엄 이튼(William Eaton) 장군이 이끄는 미 해병대와 현지 용병으로 구성된 혼성 부대가 리비아 북동부 도시 다르나(Darnah)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미군 측은 35명이 전사하고 64명이 부상을 당한 데 비해, 바르바리 해적단은 800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전투로 인해 파샤 유수프 카라만르는 300명이 이르는 미국과 유럽인 포로들을 석방하고 배상금 6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휴전 조약을 조인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바르바리 해적의 무력이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라서, 미국이 미영전쟁에 정신이 팔린 동안 바르바리 해적들은 다시 미국 선박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겐트 조약으로 한숨 돌린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다시 지중해에 미 해군을 파견하여(2차 바르바리 전쟁) 바르바리 해적의 미국 선박에 대한 공격을 완전히 중단시켰다.

미해병대의 군가에 '몬테주마 궁전에서 트리폴리 해변까지~'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바로 이 전쟁 때문에 그런 가사가 붙었다.
  1. 알바니아 출신의 오스만 세력가로 트리폴리에서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