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전쟁

혹시 미국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을 알아보러 왔다면 미국 독립 전쟁 항목으로.

시기1812년 6월 18일 ~ 1815년 2월 18일

한자: 英美戰爭 또는 美英戰爭
영어: Anglo-American War 또는 War of 1812, American's Forgotten War

1812년 미국영국이 벌인 병림픽 전쟁으로 전형적인 승자없는 싸움. 미국과 영국이 붙어서 캐나다가 이겼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흔히 War of 1812이라고 부르고, 미국 한정으로 당시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Mr. Madison's War이라고 부르거나 America's forgotten war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 전쟁도 잊고 이거도 잊다니...

1 전쟁 배경

미국은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독립했으나, 이것은 프랑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국력으로는 여전히 3류국가에 불과했다. 거기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럽 대부분을 점령하자 대륙 봉쇄령으로 맞서면서 프랑스를 봉쇄하고 동맹국들에 병력을 파견하는 등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대프랑스 전략의 일환으로 영국은 프랑스와 교역하는 모든 선박들에 대한 강제검열을 개시했다. 여기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미국은 전 국민이 영어를 썼던 터라 영국 탈영병들이 가장 숨기 좋은 곳이었다[1] 그래서 더욱 집중적인 수색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당시 미국 선원의 수준이 좋은 편에다 같은 영어를 썼기 때문에 강제로 영국 해군에 징집당하는 경우도 많았다.[2] 이에 미국은 분노했고 영국과의 관계는 다시 막장으로 치닫게 되었다.

한편 당시 미국 북쪽에 위치한 영국령 북아메리카(BNA, 현재의 캐나다) 식민지는 전략적으로 미국에게는 위험요소였다. 영국령 북아메리카는 서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무기를 보내줬기 때문에 테쿰세의 저주로 유명한 테쿰세가 티피카누 전투를 일으키는 등 영토확장에 매우 위험한 존재로 떠올랐다. 한편 미국은 세력확장을 막 시작하던 시기였기에 영국령 북아메리카까지 탐내기 시작했고, 이런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줘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은 영국에 전쟁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나 양국은 정작 전쟁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우선 영국은 대부분의 전력을 유럽에 집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신경쓰기 어려웠다. 게다가 정작 선전포고를 한 미국도 영국과 친하고 교류도 많이 하는 연방주의자들의 근거지인 북부가 전쟁에 반대했고, 민병대는 주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였다. 아직 미국 연방정부는 매우 약했고 미국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나라, 하나의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형성되기 전이다.[3] 이런 미지근함이 어느정도였냐면 국경 근처 민간인들은 서로 이웃사촌이라는 생각이 강했고,[4][5] 나이아가라 근처 양군 지휘관들은 전쟁 직전까지 심심할 때 만나 술마시고 카드 게임하는 사이(...)였을 정도다. 이런 점들 때문에 미국은 전쟁을 선언하고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연방정부의 훈련된 육군이 고작 7천명(!)이었고 군함도 14척 뿐이었다. 미군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2 경과

미국은 전쟁 초기에는 캐나다의 몇몇 요새와 도시(현재 토론토인 요크도 점령했다가 퇴각한다)를 점령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결국 위에서 언급한 점들 때문에 서서히 발목을 잡혀 영국령 캐나다의 중심도시인 몬트리올 점령에 실패했다. 그 이유도 걸작인게, 4,500명 중 1천명은 국경 진군을 거부했고, 나머지 병력도 방어군의 허세에 밀려 공격을 포기해버렸다.

반면 영국은 나폴레옹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자 병력을 아메리카로 돌릴 여유가 생겼고, 나중에는 블래든스버그 전투에서 미군을 격파한 후 무방비 상태에 놓인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기습해 불태워버렸다. 독립 이후 미국의 수도가 외국군대에게 점령당했던 것은 이때가 유일하다. 백악관은 불타버려 수리를 해야만 했으며, 그 외 미국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여러 관청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이때 메디슨 대통령의 아내 돌리 메디슨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와 기밀 서류를 안고 영국군이 백악관에 도달하기 직전에 급히 탈출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은 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라 전쟁이 점점 더 길어지자, 그냥 없던걸로 하자는 내용의 겐트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당시 교통 사정상, 실제 전투는 조약 체결 뒤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전투가 루이지애나뉴올리언스 전투인데 루이지애나상륙하려 한 영국군을 상대로 미군이 맞선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앤드류 잭슨이 이끄는 미군은 단 21명(혹은 83명)의 사상자가 나온 반면 영국군은 무려 2037명의 사상자가 나와 크고 아름다운 교환비율을 달성했다. 비결은 라인배틀을 시도하는 영국 정규군에 대해서 라이플로 무장하고 산병전술을 전개한 미군이 철저히 은폐엄폐하고 저격전술을 펼친 것. 이 전과로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영웅으로 부상했고, 후일 대통령이 되는 기반을 닦았다.

2.1 해전

당시 미국과 영국의 해군력은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군은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다. 물론 같은 프리깃급의 단함전투에서였고, 전체적인 면에서는 영국 해군에 밀리는 규모였다.[6] 그러나 대형 프리깃을 주축으로 미 해군은 해군 장관이 바뀌는 동시에 단함전투 대신 통상파괴로 전략을 바꿨고, 이후 영국 상선에 붙은 보험료가 급격히 치솟는 등 영국을 효율적으로 괴롭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활약을 보인 함선은 컨스티튜션(헌법 함)이었는데, 미 해군 사상 첫 단함전투 승전 사례를 기록했다. 미 해군이 창설되면서 유럽의 강대국들처럼 대규모 함대를 만들 형편이 안되자 6척의 대형 프리깃[7]을 주력함으로 건조하는데 유럽 해군의 프리깃 정도는 가볍게 발라버리고 전열함한테도 상황에 따라서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괴물로 설계했다고(...). 이때 컨스티튜션은 38문 프리깃함인 게리에르를 압도적으로 발라버렸다. 이것이 헌법의 파워다 영국놈들아[8]

실제로 게리에르와의 전투에서 전열함급의 방어력을 가진 컨스티튜션은 게리에르의 포탄을 튕겨냈다고 한다. 사실 44문 대형 프리깃 자체가 3급 전열함과 38문 프리깃 중간에 끼인 어중간한 함급이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대형 프리깃 운영을 잠깐 하다 낭비라고 판단하여 다들 버리거나 38문 프리깃으로 다운그레이드시켰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대형 프리깃이 제일 필요했다. 플랫폼 자체도 38문 프리깃 입장에서는 전열함과 싸우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영국 해군에서도 "사실은 전열함하고 맞장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이 함선은 지금도 미 해군의 현역이다(...). 영미전쟁 이후로도 활약하다가 한동안 도크에 있었는데, 컨스티튜션의 해체 기사 오보로 인해 이 상징적인 함선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뒤이어 대규모 복원작업을 통해 항해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영국의 HMS 빅토리와는 다르게 컨스티튜션은 운영 인원도 배치되어 있고, 자력항해도 가능하다.

단 이걸로 미 해군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안되는게 상황을 파악한 영국 해군은 단함전투를 금지했다. 컨스티튜션과 동형함인 프레지던트는 프리깃 3척의 합공으로 나포되기도 했다. 거기다 영국은 보험료가 오르는 수준이었지만 미국은 모든 해상무역로가 봉쇄될 수준이었다.

3 기타

워싱턴 D.C와 가까웠던 메릴랜드의 메켄리 요새는 영국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성조기는 메켄리 요새에 계속 게양되어 있었고 이를 보고 감명받은 변호사 프랜시스 스콧 키가 이 성조기를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현재 미국의 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가 탄생하였다.

해당 전쟁은 현대에 있어서는 캐나다에서 주로 재조명되는 편이다. 물론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현 캐나다 내에서 싸움이 많이 벌어진 것도 있고, 독립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 탓에 역사적으로 드라마틱한 사건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전쟁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캐나다에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실제로 전쟁 초기에 본국이 대륙에 묶여 있는 기간에는 영국령 북아메리카가 거의 자력으로 막아낸 거나 마찬가지였고). 캐나다의 미약한(...) 민족주의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전쟁임은 분명하다. 캐나다측에선 미국의 선제 공격을 받고도 결국 땅을 지켜냈으니 이를 본인들이 승리한 전쟁(...)으로 여기는 편이라 카더라.

특히 그 잘난 천조국 미국의 수도를 한때나마 점령했다는 상징성 때문에 막 역사를 배우는 캐나다 학생들에게 국뽕맛을 보여주는 핵심 컨텐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미국 쳐들어가서 수도를 점령하고 백악관도 불태웠음ㅎㅎ"하고 자랑아닌 자랑을 하는 캐네디언도 있다(...). 그걸 들은 미국인은 질세라 "우린 캐나다따위한테 털린게 아니라 영국이랑 싸운거거등??"이라고 응수하고, 그러면 캐나다인은 다시 "그때 그 양반들이 우리 조상이니까 캐네디언이지 참나 그럼 독립전쟁은 영국인이랑 영국인이 싸운거임요?ㅋㅋ"라고 반박하며 병림픽을 벌이는게 정해진 수순.

미디어에선 원래 전쟁 자체가 병림픽에 상대적으로 마이너하기도 해서 잘 다뤄지지 않는 편인데다 서양 근대사에 관심이 거의 없는 아시아에선 더 비중이 적다.

그러나 정치사적으로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전쟁인데 이 전쟁으로 반영감정과 미국인으로서의 애국심이 고취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친영주의자들이 다수였던 연방주의자들은 반역자 새퀴들이란 인식이 박혀 중앙정계에서 세력이 약해져 와해되어버린다. 연방주의자: 주의 자율권이 중요하다며 반연방주의자 새퀴들아. 메디슨에 이어 먼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이런 기조에 사실상 쐐기를 박아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사건이었다. 또한 이 전쟁 이후 미국은 유럽국가가 다시 아메리카 지역에 손을 뻗치게 되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고 후일 먼로 독트린이 나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방미를 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캐머런 총리 앞에서 불탄 백악관 드립을 쳤다. 서로 웃으면서 넘겼고 캐머런 총리는 오바마에게 다시는 못쳐들어오겠네 식의 드립을 쳤다.[9]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서로 웃으면서 넘겼다.

예외적으로 알파캣 작가의 플린트 락 머스킷 나폴레옹의 바다는 영미전쟁을 배경으로 한 웹툰이다.

  1. 거기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4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던터라 아직 미국영어영국영어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다!
  2. 이런 강제 징집은 프레스 갱(press gang)이라 불릴 정도로 악명높았다. 아무나 보이면 잡아다 해군으로 만들었는데 시의원이 잡혀가거나 프레스 갱에 의해 끌려갔다가 막 제대한 인원을 다시 끌고가는 등 폐해가 심각했다. 혼블로워에서도 밤중에 호각을 신호로 길거리에 나와있는 모든 남성을 무차별로 징집해가는 당시의 막장스런 상황이 잘 묘사된다. 항구와 해안도시에서 점점 인원을 채우기 어려워지자 내륙까지 징발원들이 돌며 징집했고, 이에 마을 단위로 징발원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영국 본토에서는 징발이 어려워지자 눈을 돌린게 미국 상선에 탄 미국 선원이었다.
  3. 미국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나라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이보다 50년쯤 뒤 남북전쟁을 겪고 이겨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시기부터로, 이전에는 주의 독립성이 현재보다 훨씬 강했다.
  4. 애초에 영국령 북아메리카 거주민들중 미국 13주 출신들도 많았는데, 흔히 생각하듯이 왕당파여서 피난 온 사람뿐만아니라 그냥 땅 얻으러 간 사람도 많았다. 본래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도 퀘벡 지역보단 잉글랜드와 더 가까워서 국경이 없는 듯한 교류가 활발했다. 오죽하면 국경을 넘어 친지들 놀러가는 일은 일상이었고, 아이들을 국경 너머에 있는 학교(...)에 보낼 정도였다.
  5. 실제로 전쟁이 시작하자 민간인들은 "우리 잘지내는데 왜 그래"라는 반응이었다.
  6. 당시 미 해군의 최고 등급의 함선은 44문 대형 프리깃 3척과 38문 프리깃 3척이 고작이었고 나머지는 슬루프나 브릭 같은 등외함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그 미국의 대형 프리깃함이라는 물건이 영국의 3급 전열함이나 4급함에 준하는 스펙이었다(프리깃은 통상 5~6급함). 그러나 영국 해군의 전체적인 규모를 보면 미 해군에겐 상당히 압박스러운 규모였다. 그 덕분에 미 해군은 대형 프리깃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최대한 함대결전을 회피하며 38문 프리깃을 상대로 하는 단함전투나 영국 상선을 상대로 사략전술을 펼치는 수 밖에 없었다.
  7. Original Six. USS 체서피크(Chesapeake), 프레지던트(President),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컨스티튜션, 컹그레스(Congress), 컨스텔레이션(Constellation).
  8. 여담이지만 영국의 헌법은 일반 법률과 분리된 별도의 문서로 정리돼 있지 않아 불문헌법 국가이다.
  9. 정확히는 '그 때보다는 좀 더 잘 지키고 있네요.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