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 ||||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 |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 |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1 개요
5차 교육과정 세대의 마지막 수능. 물수능이라 불릴 뻔 했으나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수능.[1]
1997년 11월 19일[2]에 실시되었다.
만점자는 없었고 전국 수석도 공개되지 않았다.[3]
2 시험의 상세
교시 | 영역 | 계열 구분 | 문항 | 배점 | 시간(분) | |
1 | 언어 영역 | 공통 | 65 | 120 | 90 | |
2 | 수리 · 탐구(Ⅰ) 영역 | 인문, 자연, 예체능 | 30 | 80 | 100 | |
3 | 수리 · 탐구(Ⅱ) 영역 | 사회탐구 영역 | 인문, 예체능 | 48 | 72 | 120 |
자연 | 32 | 48 | ||||
과학탐구 영역 | 인문, 예체능 | 32 | 48 | |||
자연 | 48 | 72 | ||||
4 | 외국어 영역 | 공통 | 55 | 80 | 80 | |
합계 | 230 | 400 | 390 |
3 난이도
전체 평균 점수는 221.8으로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해 41.8점 상승한 수준이지만, 만점자는 없었다. 97학년도에 비해 왠만한 과목은 다 쉽게 출제되었다.[5]
과목별로 언어영역(국어)은 평균 점수 120점 만점에 77.68점(100점 만점에 64.73점)이었으며 인문계는 원점수 114점 정도가 1.3퍼정도였다. 원점수 110점 이상이 인문계 16642명(4.04%), 자연계 13640명(3.75%)으로 평균이 이과가 근소하게 높았으나, 110점 이상의 상위권 기준으로 문과가 우세한 시험이었다. 이 당시 등급의 개념은 없었으나, 만약 평가원 식으로 등급을 매기면 문과,이과 모두 5개 틀리면 1등급에 들 수 있는 정도로 7차 이후 기준으로 어려운 난이도였다. 물론 5차 교육과정 기준으로는 꽤 쉬운 난이도.
수리탐구Ⅰ(수학)은 100점 만점에 인문계 평균 35.69점, 자연계 평균 42.15점이었다. 원점수 80점 만점에 75점 이상이 인문계 3810명(0.92%), 자연계 4070명(1.12%)이었고 만점 비율 이과, 문과 각각 0.21%로 같게 나와 작년보다 쉬워졌다. 97수능은 75점 이상이 자연계는 100명 이하, 인문계는 10명 내외였다. 원점수 70점 이상은 인문계 8191명(1.98%), 자연계 9796명(2.69%)였다. 65점 이상 인문계 14325명(3.47%), 자연계 17646명(4.86%)이었다.
외국어영역은 80점 만점에 45.08점이 평균 점수였다. 원점수 75점 이상 인문계 17330명(4.20%), 자연계 16990명(4.68%)으로 쉬운 편이었다.
수리탐구Ⅱ(사과탐)는 100점 이상이 인문계 12065명(2.93%), 자연계 13455명(3.70%)였다. 110점 이상이 인문계 1314명(0.319%), 자연계 1731명(0.47%)으로 역시 작년보단 쉬웠다. 작년은 110점 이상이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이었다. 6차 교육과정의 사탐, 과탐과는 교육과정이 달라 비교하기 어려우나 비교하자면 6차 교육과정의 시험보다 다소 어려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난이도는 원점수 300점 이상이 110832명으로 '당시 기준' 사상 최대의 인원을 보였다. 원점수 350점 이상은 인문계 9200명대(2.2%정도), 자연계 9800명대(2.7%정도)였으며 360점 이상 인문계 5100명대(1.2%대), 자연계 5200명대(1.4%대), 370점 이상 2200명대(0.54%), 자연계 2100명대(0.58%), 380점 이상 인문계 600명 내외(0.14%), 자연계 500명 내외(0.12%)정도였다. 원점수 390점 이상은 인문계 33명, 자연계 30명뿐이었다. 사실 이 정도 난이도는 6차 이후 시험에서는 어려운 편에 속한다. 단지 97수능이 너무 어려운 편이라 비교되어서... 그리고 전체적인 점수 분포가 상위권, 중상위권이 늘어나 항아리형 분포를 보였는데, 이는 97수능에 비하면 정상적인 분포를 보였다.[6]
한편 이 해부터 수시모집이 본격 시행되는데, 수시모집에서는 수능 성적을 그다지 많이 고려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서울대학교의 경우 수시모집 예비 합격생은 수능 성적이 상위 10% 안에만 들면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1997년 12월 2일에 서울대학교 사상 최초의 수시모집 예비 합격생 348명의 명단이 발표되었고 이 가운데 330명이 최종 합격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