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 일반 개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물수능[1]

2000년 11월 15일 실시되었다. 2000학년도의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연령대(1982년 3월생~1983년 2월생)가 이른바 "현역"에 해당되는 주 응시집단이었으며, 총 응시인원은 85만 305명이었다. 총 응시인원이 80만명을 넘는 마지막 수능이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저출산 경향을 볼 때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으로 예측된다.

1999학년도~2004학년도의 6차 교육 과정에 해당하는 수능이며, 특기할 점으로는 제2외국어 영역이 최초로 도입된 시험이었던 점과 물수능의 맏형 격으로 취급될 정도로 매우 쉬워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2 물수능의 효시

역대 최악의 난이도를 찍었던 1997학년도 수능 이후로 수능은 계속해서 쉬워져서 이 해에 절정에 달한다. 이과 전국 언수외 평균 23.2점, 문과는 26.7점이나 상승한 것이다. 99수능, 00수능과 비교하면 이과는 34점, 문과는 31.8점 상승한 것. 01 수능에서는 문이과를 통틀어 66명에 달하는 만점자가 속출, 변별력을 상실한 물수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11월 현재까지 최다 만점자가 배출된 수능이다. 비교적 물수능이었다고 평가되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의 만점자 수를 간단하게 쳐바르는 2001 수능의 위엄 이 때의 명언 : "00년 수능은 언어만 어려웠고, 01년 수능은 수학 한 문제만 어려웠다." 이 때문에 그 전까지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일부 수험생들이 막상 01 수능에서 평소의 점수를 받고 재수로 돌입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오르비스 옵티무스의 설립자인 이광복(lacri)이 대표적. 심지어는 수능 만점자가 내신 때문에 서울대 법대 정시모집에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거꾸로 공신의 대표 강성태는 물수능의 덕을 봤다고 평가된다.

3 제2외국어 영역의 신설

한편 이 해의 수능에서 처음으로 제2외국어 영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물수능이라는 당해 수능의 특징과 처음 실시하는 시험이라는 특성, 그리고 수능 제2외국어 영역은 총점에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치르는 시험인데다 반영하는 대학도 거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전설이 되었다. 이 해 치러진 제2외국어 시험 중 압권은 바로 중국어. 01 수능 중국어 시험은 중국어를 하나도 몰라도 한자만 조금 알면 누구나 40점 만점에 30점 이상의 고득점을 할 수 있다는 전설을 낳았다. 관련글 아무리 훗날 제2외국어 아랍어 문제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나왔다 해도 당시 시계 문제 (17번)를 넘지는 못했다.

4 시험의 상세

시험은 다음과 같이 총 5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언어 영역과 외국어 영역에서 문제 수와 시험 시간이 각각 5문제, 10분씩 줄었다는 것 외에는 1999학년도 및 2000학년도 수능과 같다. 이는 신설된 제2외국어 영역에 할당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교시영역계열 구분문항배점시간(분)
1언어 영역공통6012090
2수리 · 탐구(Ⅰ) 영역인문, 자연, 예체능3080100
3수리 · 탐구(Ⅱ) 영역사회탐구 영역인문, 예체능4872120
자연3248
과학탐구 영역인문, 예체능3248
자연4872
4외국어 영역공통508070
합계220400380

+ 제2외국어 영역(선택, 총점 산정에서 제외)

수리 · 탐구(Ⅰ) 영역은 이후의 수리 영역, 수리 · 탐구(Ⅱ) 영역은 이후의 사회탐구/과학탐구 영역과 이름만 다를 뿐 완전히 동일하다. 따라서 본 2001학년도 수능의 교시, 영역, 계열 구분, 문항, 배점, 시간, 시험 범위 등의 세부 정보는 이후의 6차 수능인 2002학년도~2004학년도 수능과 실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성적표의 외관은 2002학년도~2004학년도와 다소 달랐는데, 1) "등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점, 2) 400점 만점의 총점 및 총점 기준 백분위가 표시되었다는 점, 3) 표준점수, 변환표준점수, 백분위 등의 정보가 이후처럼 정수로 표현되지 않고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즉,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 표현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400점 만점의 총점이야 2002학년도~2004학년도 때에도 표시만 안 되었을 뿐 전 영역 점수를 다 더함으로써 구할 수 있었으므로 이 점에서의 실질적 차이는 없었으나, 총점 기준의 백분위가 표시되었다는 점은 이후의 수능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점이었다. 이후의 수능에 따른 입시 결과의 퍼센테이지가 모두 추정치에 지나지 않는 것과 달리,[2] 이 때까지의 총점 기준 전국 석차는 당연히 정확한 실제값이었다.

시행 결과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 기준 역대 최악의 물수능. 수능 초창기에 비하면 평균점수가 대폭 상승했으나 그래도 객관적으로는 그럭저럭 어려운 편이었던 1998학년도와 1999학년도 수능, 딴 영역은 다 쉬웠지만 언어 영역 하나만큼은 상당히 어려워서 그나마 변별력을 갖추었던 2000학년도 수능과 달리, 전 영역이 골고루 다 쉬워서 딱히 변별력을 확보할 만한 영역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쉬운 문제에 높은 배점을 하고, 어려운 문제에 낮은 배점을 하는 소위 역배점 현상이 눈에 띌 정도가 되어 점수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때문에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왔으며, 400점 만점 중 원점수 기준 390점[3] 이상인 학생 역시 인문계 1%, 자연계 1.5% 정도로 전국적으로 몇천명씩(...) 쏟아져 나왔다. 역대 최고 불수능인 1997학년도 수능에서는 390점 득점자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전까지 가장 쉬운 수능이었던 2000학년도 수능에서조차 390점은 자연계 기준 전국 0.1% 정도로 전국의 웬만한 학교/학과를 골라서 갈 수 있던 초고득점이었으나, 2001학년도에서 그 값어치가 급격히 하락해 버린 것. 그렇다 보니 만점자 중에서도 서울대학교 특차모집에 떨어진 학생이 있을 정도였으며, 최상위권에서도 한두문제 실수하여 전국등수가 몇천등씩 훅 떨어져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재수, 삼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물론 반대급부로 어중간한 학생이 초대박을 터뜨려 명문대 진학에 성공한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평소 공부를 죽어라 못했던 바보들도 이날만은 적어도 300점은 넘었던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그 다음해인 2002학년도 수능보다야 양반이었지만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고, 수능 시험의 난이도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더 쉽게 출제해서 대학의 과도하게 경직된 서열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어느 정도 난이도는 유지해야 대입시험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쉽게 출제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면서 그 다음해 시험은 비교적, 아니, 매우 어렵게 출제된다.
  1. 만점자가 무려 66명이다. 역대 최악의 물수능이라 불리는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만점자가 절반도 안 되는 29명인데다가 당시에는 사탐 과탐 다 보던 시대였으니 이 수능이 얼마나 굉장한 물수능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2. 더군다나 2005학년도부터는 획일화된 총점 기준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고
  3. 전체 220문항 중 사실상 한 자릿수의 문제만을 틀려야 받을 수 있는 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