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KBS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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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4월부터 6월까지 KBS에서 일어난 노동조합 파업.

2 상세

1990년 3당 합당이 되면서 1988년 10월에 임명된 시민운동가 출신 서영훈 사장이 임기(기본적으로는 3년)를 다 채우지 못하고 법정수당 변태지출이라는 죄를 뒤집어쓰며 해임되었다. 이후 새로 부임한 사장은 서기원씨(언론인이자 소설가로, 서기원 캐스터와는 동명이인이다). 문제는 이 서기원이란 사람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였다는 것.
근데 방송국 사장중에 낙하산 아닌 사람이 있기는 한가?? 30년재직한 방송국 직원이 사장취임해도 낙하산 취급받는데...
민주화 바람을 타고 노동활동이 활발해지던 시국에서[1] 새 사장 부임과 함께 제작환경이 80년대의 권위적인 환경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이에 관련해서 KBS 노조[2]는 반발 움직임을 보였다. 결국 노사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파업을 시작했던 것. 파업 과정에서 이금희(당시 KBS 아나운서)가 저녁뉴스 도중에 끌려나가거나, KBS 박성범 보도본부장은 9시뉴스의 중단을 지시하여 20여분간만 뉴스가 나간 후 방송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3] 결과적으로 이 파업은 노조의 역할을 공고히 했다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6월에 더 이상의 파업에 한계를 느낀 KBS 노조에서 파업을 중단하고 방송의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노조원 몇명의 모가지가 잘려나가게 되었다는 슬픈 후문이 있으며 1991년 지방선거에서도 민자당이 압승을 거두웠고 1992년 총선 결과에도 민자당이 무소속 의원 확보로 과반은 넘게 차지하였기에 서기원 사장은 3년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났다. 한 편 이 기간동안 노태우 정부에게 친화적인 논조로 되돌아오면서 KBS 9시 뉴스의 시청률은 내려 앉아서 10%대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그치게 되었다.[4] 하지만 김영삼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친했기에 정권 재창출 크리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도 파업에 참여하였다.

한편, KBS 사태 당시 역사는 흐른다 울밑에 선 봉선화 등의 드라마가 잠정 중단되었으며 이들 중 <울밑에 선 봉선화>에 출연해 온 김미숙은 이 작품이 잠정 중단된 후 어둔 하늘 어둔 새를 통해 MBC로 자리를 옮겼다[5].

아울러, 김미숙 외에도 전인화 김희애 조민수 김영철 최재성 등의 인기 배우들이 KBS 사태 후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으며 김혜수 이미연 손창민 하희라 등 대학-대학원 학생 연기자들은 학점 만회에 전념해 왔다.
  1. 1990년도의 국가슬로건이 '산업평화 정착의 해'였을 정도. 89년에 노동쟁의가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
  2. 지금의 제1노조에 해당. 2009년에 파업했던 언론노조 KBS본부는 제2노조에 해당하며, 이 안의 역학관계는 복잡하다. 이 때만 해도 제1노조가 진보적 성향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 보수화되면서, 진보적 경향의 사원들이 갈라져 나간 것이 제2노조.
  3. 이러한 중단은 KBS 9시 뉴스 전체에 있어서도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정확히 24년 후, 길환영 사장 퇴임을 위한 총파업때도 이 상황은 이어진다.
  4. 의외로 KBS 9시뉴스가 수위권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중장년층 이상 시청자층에게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것은 홍두표 시절부터였고 서기원 사장때까지는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률면에서 압도적이었다
  5. 이 작품에서 홍이숙 역을 맡았던 김보연은 <어둔 하늘 어둔 새>에 앞서 KBS 2TV 꽃 피고 새 울면에 캐스팅되었으나 작가와의 불화로 도중하차한 데 이어 KBS 사태까지 발생하자 '어둔 하늘 어둔 새'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