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국제협력단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과 개발도상국가와의 우호협력관계 및 상호교류를 증진시키고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사회발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국제협력단을 설립하여 각종 협력사업을 하게 함으로써 국제협력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개발도상국가"란 국민소득 수준, 산업구조, 경제발전 단계 등을 고려하여 외교부장관이 정하는 국가를 말한다. 제3조(법인격) 한국국제협력단(이하 "협력단"이라 한다)은 법인으로 한다. 제27조(유사명칭의 사용 금지) 이 법에 따른 협력단이 아닌 자는 한국국제협력단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1] 제28조(「민법」의 준용) 협력단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약칭 KOICA)은 대한민국의 국제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외교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2]이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대왕판교로 418에 위치하고 있다.
2 대외 무상 원조 사업
상기한 대로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즉 공적개발원조의 기제 아래, 대(對)개발도상국 무상협력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원조수여국에서 원조공여국으로 발전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는 전담 기관의 대내외적 필요성에 기반하여 한국국제협력단법에 의해 1991년 연건동 청사를 시작으로 2008년에 현재 본부인 성남 신청사까지 확장이전되었다. 국가별/대륙별 협력 사업(주로 프로젝트형)이나 국제기구 협력 사업, 민관 협력 사업, 개도국 연수생 지원 사업, 해외 긴급 구호 사업, 그리고 하기한 해외 봉사자 파견 사업을 주 업무로 하고 있으며, 국가별 프로젝트 사업이 사실상 주 업무이지만 일반인에게는 해외 봉사자 파견 사업으로만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40개국 이상에 해외 사무소가 있으며 심지어 USAID 대응 사무소도 있지만, 해외 사무소가 있는 국가 중 봉사단원이 없는 국가도 있다.
3 지구촌 체험관
현재 KOICA가 개발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수여국들의 문화를 접하기 힘든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별 전시, 글로벌 전시, 기타 여러 전시들을 하여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성남과 영월 각 두 곳에 위치해 있다. 현재 성남 신청사의 본관에서 숲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지구촌 체험관은 기존에 염곡동 월드프렌즈교육원 1층에 있었던 지구촌 체험관을 부지 안에 있는 1층짜리 건물로 이전 개관하게 된 것이며, 영월 지구촌 체험관은 영월 월드프렌즈교육원에 있다.
4 해외 자원봉사
KOICA 자원봉사단에 참여하면 여러 경제적 낙후국가에 가서 기술 및 의료,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자원봉사를 평균 2년 동안 하게된다.
2015년 현재 WFK봉사단으로 통합되어 있는 단원 종류 중 월드프렌즈 코이카봉사단과 새마을봉사단 훈련 및 파견을 직접 주도하고 있으며, 뒤에 서술하겠지만 지금은 대체복무제도인 국제협력요원(국제협력봉사요원과 국제협력의사)제도는 폐지되어 월드프렌즈 코이카봉사단은 기존의 일반 봉사단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여느 해외봉사 프로그램과 달리 기본 2년[3]의 장기 복무 형태를 띄므로, 어지간한 인내심만으로는 버티기 힘들 뿐더러 안전 사고 등에 휘말리지 않는 운도 많이 필요하다.
분야는 낙농업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국제협력단에서 주력으로 하는 분야는 한국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 실제로는 (한국에서의 업무 특성상) 간호 분야의 인기가 높았으며, 파견국의 치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국제협력봉사요원이 있을 당시에는 특히) 태권도 분야도 많다.
선발 단계에서부터 안내는 2년간의 파견을 안내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당연히 중도에 귀국할 수 있으며 아래에 설명할 지원금 때문에 대체로 1년간은 파견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2년을 다 채우더라도 추가로 연장하여 3년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4].
해외 봉사라는 것 자체는 우리 나라가 6.25 전쟁 이후 겪었던 참상을 극복하는 데에 세계 각국의 선진국이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해주던 당시의 모습과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 이러한 지역에 국제협력단이라는 국가기관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해외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것이므로 최근 유행하는 NGO 해외봉사가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몇 주 기간이고 보통은 참여비를 지불하는데다 현지에서 단체로 활동하며 파견 전 교육 및 파견 도중 지원이 허술한 것과는 정 반대의 특성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2년 동안 해당국가에 가서 생활하는 생활비[5][6] 나 여러 비용[7]을 지원하며, 매월 50만 원 정도의 귀국준비금이 국내 통장에 예치되다가 1년 이상 해외 봉사 후 귀국하게 되면 일시불로 지급된다. 이마저도 후에 서술할 국제협력요원의 경우에는 그런 거 없다.
또한 현지 파견 후에는 물론 60여개의 수혜국 각각의 사정이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한국의 '시' 정도 규모 도시에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배치된다. 물론 모두 다른 기관으로. 즉 파견된 근무 기관에는 한국인이 나홀로 있으며슛 볼은 나의 친구 다른 한국인 봉사단원을 만나려면 최소 차로 30분은 가야한다. 남자 단원의 경우는 더 열악하여, 아예 혼자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유일하게 필리핀을 제외하면 영어를 (제2)모국어로서 사용하는 국가가 없으므로 파견지에서는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국내 및 현지도착직후 합산 4개월여의 현지어 교육을 받게 된다. 근무지로의 배치 이후에는 한국어 교육과 같은 특수한 분야가 아닌 이상 한국어를 쓰는 현지인이 있을리 만무하고 운이 좋다면 영어를 아는 현지인이 있어서 가끔 농담이나 건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얄짤없이 현지어를 써야한다.
다만, 국가기관이 보내는 봉사단원이다보니 신변안전의 문제가 있기에 TV에서 보이는 해외봉사활동처럼 신발도 못신는 아프리카 꼬맹이들에게 의자 만들어주고 책상 만들어주는 정도의 일은 전혀 없다. 실제로 치위생사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이 한국대사관 바로 옆 병원에 배치돼서 한국대사관 직원, KOICA 직원, KOTRA 직원들 스케일링만 줄창 하다가 회의를 느껴 중도귀국 하는 사례가 있었다. 반면, 이러함에 불구하고 파견국의 인프라가 너무 나빠 컴퓨터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은 학교에 도무지 전기가 들어오질 않아 전원이 꺼진 컴퓨터를 앞에 놓고 2년동안 자판 연습만 시키고 돌아오는 경우도 다수.
기본적으로 한국국제협력단은 인적 자원의 지원만을 하는 것으로 방침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현장지원사업이라 하여 단원의 분야에 맞춰서 물적 자원도 지원하고 있다. 이전에는 학교 건물을 지어주는 등의 토목지원도 종종 있었으나 하도 사기를 많이 당해서[8]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건물은 잘 지어주지 않는 편.
파견된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KOICA 소속 행정원의 통제와 관리를 받게 되나, 각 국 오지에 뿔뿔히 흩어진 50~100여명의 봉사단원을 대사관 옆 KOICA 사무실의 2~3명밖에 되지 않는 턱없이 적은 수의 행정원이 관리하다보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 행정원들은 차기 봉사단원의 수요조사까지 겸하는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봉사단원들의 관리가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로 국제협력봉사요원을 포함한 봉사단원들은 근무지/주거지를 이탈하는 경우 안전확보를 위해 반드시 합당한 사유와 함께 이동신고서를 제출하게 되어있으며, 승인을 받아야만 이동할 수 있는데, 종교활동을 위해서 교회에 가야하는데 교회가 근무지에서 두시간 떨어진 수도에만 하나 있어서 일요일에 외출을 해야합니다 하는 상황에서 이 룰이 단원과 행정원의 귀차니즘 앙상블에 의해 잘 지켜지지는 않으며, 지켜진다 한들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또한 봉사단원들은 마찬가지로 안전확보를 위해 운전이 금지되어 있는데, 수요처 조사를 부실하게 해서 교통편은 커녕 포장도로조차 없는 현지 시골마을에 파견을 시켜놓으니 어불성설이 된다.
이처럼 빈곤속의 빈곤(?) 생활을 2년간 유지하는 것이 해외봉사단원의 생활이다.
5 대체복무 제도
봉사단을 파견하는 현지국은 말 그대로 봉사를 받아야 할 만큼 다양한 인프라 및 치안을 포함하여 열악한 사정상 심신이 건강한 파견인이 요구된다. 국제협력단은 NGO(비정부기구)가 아닌 GO(정부기구)이기 때문에 봉사자의 신변안전에 매우 까다로운 이유로 선발이 엄격해서 국제협력단이 파견하는 해외봉사단의 공급은 수요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그런 관계로, 예를 들자면 도시철도와 같이 정규 소속인원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운 기관에 공익근무요원을 파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군 입대를 대체하여 부족한 일반 봉사단을 메꾸는 역할을 하는 국제협력봉사요원 제도를 운영해왔었다. 저런델 누가 가겠냐 싶을 수 있지만, 일단 군대 대신 갈 수 있는데다 후진국이라도 해외 여행이 가능한 점, 취업시 스펙으로 무시못할 이력을 등재할 수 있는 점 등으로 경쟁률은 꽤 됐다.
국제협력봉사요원은 신체검사등급 1~4등급자를 대상으로 하여, 일반봉사단원보다는 선발 기준이 조금 더 까다로워 년 2회 선발, 영어필기시험/영어면접시험/전공필기시험/전공면접시험/최종면접의 5차 전형으로 년간 평균 100여명을 선발하였으며, 복무기간은 30개월로 동 세대의 현역 입소자에 비해 6~8개월가량 긴 복무기간을 갖었다. 합격 후에는 서류상 공익근무요원의 하위 분류[9]로 공익근무요원과 마찬가지로 4주간의 군사훈련 후 6~8주간의 국내합숙연수, 출국 후 6~8주간의 해외합숙연수, 24개월간의 해외봉사활동, 그리고 남은 1~2개월은 국내로 귀국하여 일반적인 공익근무요원이 되거나 현지에서의 봉사를 연장하여 있을 수 있었다.
실제 현지 각 국가에 배치된 후의 활동은 일반봉사단과 완전히 동일했다. 생활비와 주거비도 일반봉사단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상기한 귀국 후 일시불로 받는 금액은 따로 없다. 매월 25일에 해당 연도 군인 해당 계급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10]에서 KOVA(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 가입시 원천 징수되는 적립금(약 13,600원)을 공제한 금액이 나라사랑카드 연계 통장으로 입금된다.
국제협력봉사요원은 그 운영의 특성상 다양한 의미에서의 인프라 및 치안이 대단히 열악한 현지에 2년 이상을 나홀로 파견이 되어 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에 영어, 영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현지어 습득능력, 전공/전문분야 지식, 건강, 심지어는 한국에서의 경제적 능력[11]마저 선발 기준에 속하기에 시행 당시에도 사회고위층 및 외교관 자녀의 합법적 대체복무로의 우대 의혹, 현지 파견 후 부족한 현지 관리요원의 관리 사각지대에서의 탈선행위 등과 같이 그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을 받아왔으며 정권이 교체되면 없어졌다가 정권 말기에 다시 등장하는 등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왔다.
그러나 2012년 발생한 낙뢰 사고로 인해 이러한 군복무 대체 국제협력요원 차출은 2013년 8월을 끝으로 중지되며, 2016년 1월 대체복무 중인 나머지 인원이 철수하면서 대체복무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5.1 대체복무자 낙뢰 사망사건
2012년, 스리랑카에서 낙뢰에 의한 피해로 KOICA 소속 봉사단원 2명(24세 여성, 22세 남성)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망한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국제협력봉사요원 자동차 분야로 파견된 대체복무자였으며, 시신은 한국으로 운구되어 영결식을 할 예정이였지만 유족들이 대체복무 중 사망으로 국가유공자와 동시에 현충원 안장을 요구하며 영결식을 무기한 연기했다. 결국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했고 2012년 11월 2일 가족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링크
이 사건을 계기로 2013년 상반기부터 KOICA는 대체복무요원을 선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6 신규 지원자에 대한 조언
KOICA 해외자원봉사단원은 국내에서 일정 기간 [12] 파견교육을 받고, 출국하여 길게는 6개월 정도 적응기간을 거쳐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면접에서부터 능력을 위주로 선발하며, 경쟁률도 엄청나므로 [13] 실무면접에서 무언가 어필할 수 있어야 뽑히기 쉽다. 이력서에 쓰지 못할 정도의 능력이라도 [14] 실무에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면 인정해주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다고 막 쓰진 말고. 실제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어느정도 지원분야에 대한 접점은 필요하다.
사회시스템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국가들에 가서 일을 해야 하므로, 스스로 현지인들과의 소통하며 혼자 지원금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프로젝트까지 잘 하면 좋겠지만, 일단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대인관계 유지능력이 좋지 않다면 상당히 힘들고, 건강상의 하자가 있으면 가지 않는게 좋다. 병원의 도움을 거의 받을 수 없다 생각해야 하고, 질병문제로 중도귀국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으면, 먼저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돕는 것은 그 다음이다.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정도로 그 나라 사람들은 허약하지 않다.
봉사단원으로 선발된 후 처음 국내 교육기간에는 다들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견되어 각종 스트레스 상황들 [15] 에 직면하면 사람들의 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지 되돌아보고 고쳐나가는 계기로 삼는 것이 오로지 유일하게 상황을 좋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스트레스에 너무 강한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지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도 얻을 것이 없다.
개발도상국들에 가게 된다는 점 때문에 어느정도 편견이 있을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 나라 사람들은 돈과 사회안전망, 건강 문제 정도 말고는 우리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당히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는 가난한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오히려 헬조선보다 행복도는 훨씬 높은 곳도 차고 넘치게 많다. 다만 아프리카 같은 경우 비정상적인 경제 착취 구조에 고통받는 문제가 있고, [16] 그 나라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해 주려고만 하면 결국 자기만족일 뿐이다. 진정 봉사를 하러 가는건지, 아니면 그저 지원금을 받으러 가는 건지 생각해보자.
파견되면 받는 지원금으로는, 그 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최고 몇십배 이상 남을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17] 그렇기에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현지인들의 비난이나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봉사의 의미가 없어진다. 현지인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고, 어지간하면 잘 어울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현지어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인생에 남을 추억도 만들고, 간혹 복귀해서도 연락이 가능한 친구도 만들 수 있다. 현지인의 추천이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일도 상당히 많으니 [18] 적응을 제대로 한 경우와 아닌 경우의 봉사 생활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꼭 염두에 두자.
전, 현직 봉사단원들이 항상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이 현지어 체득이다. 스페인어 같은 건 오히려 쉽고, 각종 상형문자 (...) 와 비슷한 수준의 글자들과 방언, 다중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있어 난이도가 수직상승한다. 파견 국가를 전혀 선택할 수 없기에, [19] 염두에 두고 지원함이 옳다. 항상 사전을 끼고 살고, [20] 현지인과 어울려 지내는 생활이 재차 강조하지만 매우 중요하다.
파견 후에는 자신의 파견분야와 무관한 일을 해도 된다. 컴퓨터교육 같은 건 컴퓨터 인프라 자체가 부실하고,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쳐도 그들이 그 지식을 나중에 써먹을 곳이 전무한 경우도 있으며, 무엇보다 교육대상자들이 영어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 이러면 굳이 분야에 얽매이기보다는 그들의 생활을 진짜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자. 하지만 프로젝트는 지원분야로 해야 함을 명심할 것.
기간을 채우고 좋게 귀국한 경우 KOICA의 취업지원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 이를 위반하여 한국국제협력단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한 자는 과태료의 제재를 받는다(한국국제협력단법 제31조).
- ↑ 기존에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었으나, 2016년에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으로 유형이 변경되었다.
- ↑ 보통 NGO 프로그램은 초단기부터 길어봐야 몇 개월 수준
- ↑ 이때는 본부와 파견 기관의 승인이 모두 필요하며, 거절되는 경우 원안대로 근무한다.
- ↑ 생활비와 주거비(대도시/소도시 구별)는 국가별 물가를 고려하여 모두 다르나 월 평균 주거비는 300달러 + 생활비 500달러 선을 받게 된다
- ↑ 국가별 물가를 고려한다지만, 물가 상승률 반영이 매우 늦고, 대도시에 거주해 많은 단원들이 왕래하는 경우나, 생필품이 아닌 생활 가전 등은 개도국이 훨씬 비싼 경우가 더 많으므로 절대 넉넉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돈을 쓸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없어 현지화가 남는 경우도 있다
- ↑ 3~6가지에 달하는 예방접종비 및 출국지원금, 보험료, 긴급의료서비스, 긴급의료후송서비스, 명절선물 등
- ↑ 해당국의 기관에 기증하는 것으로 하여 건물을 다 지어놓고 나니까 현지인들이 서류를 조작해서 학교장 개인이 건물을 착복한다든지...
- ↑ 공익근무요원으로서의 소속은 외교부
- ↑ 30개월이므로 이병-일병-상병-병장 순으로 6-9-8-7개월로 계산한다.
- ↑ 현지에서 주는 생활 보조금을 안쓰고 모아놨다가 현지인에게 사채를 줬던 단원이 귀국 시기가 오자 빚 독촉을 하다가 현지인에게 집단 린치를 맞은 사건이 있었다.
- ↑ 2개월 정도
- ↑ 컴퓨터교육 분야가 50:1 정도.
- ↑ 예를 들어, 컴퓨터 수리 10년,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지 않고 그냥 자영업을 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도운 경우 능력을 인정받아 뽑힌 사례가 있다.
- ↑ 특히 의식주
- ↑ 플랜테이션 농업을 선진국에서 강요하여 자국 국민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수출용 작물만을 키우게 하고, 꼭두각시 정권을 만들어두어 혁명을 봉쇄하는 것. 보통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추구에 희생되는 경우.
- ↑ KOICA 해외봉사의 최고 이점인데, NGO 계열로 가면 혼자서 집도 구하고 식비도 전부 해결해야 한다. 지원금? 거의 없다시피 하다. 황제봉사라는 굴욕적인 별칭도 있는데, NGO나 기타 단체 봉사활동은 길어봐야 몇 개월이다. 2년을 버텨야 하는 KOICA 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 ↑ 라오스에서는 통장을 개설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할 경우 무조건 현지인의 추천이 필요하다. 해외봉사단원은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 1~3순위 지망만 써 낼 수 있고 결과는 그냥 랜덤...
- ↑ 한-스 사전 같은 경우 꽤 있으나 다른 나라들은 택도 없다. 사전이 하나 있을까 말까하고, 그 마저도 전직 봉사단원이 직접 만든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판 사전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